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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3 (11:52:51)

목회칼럼

뒤집지 않은 전병煎餠 

 

< 이동만 목사, 대구 약수교회 >

 

 

 

신앙적 열심과 일상에서의 인격적 인애의 향기가 동시에 나타나야 

 

 

   호세아 7:8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합되니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라는 말씀이 있다. ‘뒤집지 않은 전병은 비유적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 적합하지 못하다는 의미이다. 전병은 찹쌀가루나 밀가루 따위를 둥글넓적하게 부친 음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전병은 앞뒤를 다 알맞게 노릇노릇 굽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뒤집지 않으면 한쪽은 시꺼멓게 타고 다른 쪽은 생 가루로 남게 된다. 한쪽은 너무 익어서 다른 쪽은 너무 익지 않아 문제가 된다.


   이스라엘이 뒤집지 않은 전병인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한 여러 설명이 있지만 이렇게 생각해 본다. 호세아 6:6의 말씀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에서 보듯이 제사와 번제는 많은데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것이 너무 없다는 것이다.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은 제사나 제물이 부족하다고 책망하시지 않았다. 도리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하신다(1:11). 그 이유는 이들의 손에 피가 가득하기 때문이었다.


   그 피가 가득한 모습은 선행을 배우지 않으며, 정의를 구하지 않으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지 않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않으며,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1:17).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이 전병의 한쪽이라면 인애를 행하는 것은 다른 한쪽이다. 어느 한쪽이 잘못 돼도 하나님께 드려질 수 없다. 구약에서 보면 이스라엘은 늘 제사에 열심이었지만 인애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자는 사람에게 인애로 다가가야 마땅하다. 인애는 자비, 선함, 참 사람다움, 사랑이다.


   예수님의 바리새인을 향한 질책도 다르지 않다.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렸도다”(23:23).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12:6)는 호세아 6:6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오늘 한국 교회에서도 안타깝게 동일한 모습을 목격한다. 얼마 전 한 사령관 부부의 소위 갑질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신문에서 이 기사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새벽 기도가 나오고, 주일 예배가 나오는 게 아닌가. 또 터졌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든 상황을 알 수 없고 늘 기사라는 것이 과장되기 쉬운 것임을 감안하더라도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 사람이 사령관이 되기까지 얼마나 수고가 많았겠는가. 육사를 나와 대위에서 소령 되기가 어렵고, 대령에서 별을 달기가 어렵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별을 4개나 달았으니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주일 예배에 출석하고, 새벽 기도를 가고 하는 것과 나이를 봐서 자신은 장로요, 부인은 권사일 가능성이 높다. 인터넷에 거룩한 모습으로 부부가 나란히 강단에 앉아 있는 사진도 올라왔다. 아마도 군선교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을 것이다. 한쪽 전병은 확실히 너무 잘 익었다. 그런데 다른 한쪽은 전혀 익지 못한 게 아닌가. 다른 종교를 가졌다는 병사를 교회에 데려갔다. 그를 참으로 그리스도께 인도하려면 우리 사령관님 부부는 참 좋으신 분이었다.’고 회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모습이 이들 부부에 그친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한국 교회의 틀이 잘못 되어 이런 모습은 여기저기서 나타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믿음의 힘이 자신의 성공과 명예를 얻는 데만 작용하고, 자신을 버리고 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데는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보다 높은 가치가 아니라 상식 수준에도 못 미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기도와 성경읽기, 성경 필사, 주일성수, 십일조 헌금과 선교와 봉사 등을 열심히 한 결과는 일상적인 삶에서 참 사람의 향기로 나타나야 한다.


   ‘아우슈비츠라 하면 우리에게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떠오를 것이다. 아우슈비츠(폴란드 남쪽에 소재한 소도시, 폴란드어로 오슈비엥침이었는데 독일식으로 바뀜)라는 곳은 본래 그렇게 잔인한 곳이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수용소 때문에 아우슈비츠는 치를 떨게 만드는 곳으로 낙인이 찍혀 버렸다. 아우슈비츠는 본의 아니게 참 억울하게 되었다.


   성도인 우리의 모습에 의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되기도 하고, 모욕을 받으시게 되기도 한다. 우리는 범사에(하나님을 예배하는 일과 사람들에게 인애를 베푸는 일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는(2:10) 삶을 살아야겠다.


   “Business for Mission!”이 아니라 “Business as Mission!”으로 가야 한다. 이 말은 선교를 위한 사업이 아니라 사업 자체가 선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맡은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감당할 때 그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되고, 선교의 기회도 된다. 하나님은 한국 교회가 예배를 적게 드린다고, 헌금 적게 한다고 책망하시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인애의 삶을 보시며 분발하기를 촉구하실 것이다.


기독교의 능력은 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인격이다” - 윌리엄 우드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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