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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8 (20:01:18)

마른 땅에 단비를 

쿠바에서 일본으로

 

< 허태성 목사_HIS 6MRC 훈련생 >

 

 

 

쿠바 선교를 계획했지만 일본 선교를 준비케 하신

하나님의 이끄심의 과정 

 

사랑하기 힘든 일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고자

 


   19808월의 어느 날 밤 여의도광장에서 한 청년이 일어섰다. 일생에 있어서 전체가 아니어도 단 몇 달이라도 선교사가 되어 자신을 주님께 드릴 사람은 그 자리에서 일어서라는 고 김준곤 목사의 설교를 듣고서 말이다. 그 때 한 여대생도 일어섰다는 사실을 그로부터 36년이 지나서 알게 되었다. 훗날 그 여대생은 내 아내가 되었다. 지난 해 말에 하나님은 강변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나를 불러 내셨다. 감히 좀 과장하자면 안디옥교회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불러내신 것처럼. 나와 아내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28년간의 목회를 내려놓았다.

 

   지난 해 말에 강변교회에서 목회를 마치자마자 나는 목동에 있는 GMTC(한국선교훈련원)에 입소하여 약 5개월 동안 합숙훈련을 받았다. 목회를 내려놓고 선교를 하겠다고 결정은 했지만 선교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었던 나는 그 훈련을 통해서 선교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선교 마인드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나라로 가야할 지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몇 분의 선교 지도자들과 상담하며 기도하다가 쿠바를 선교지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쿠바에 가보았다는 사람도 없었고 더구나 쿠바에 살면서 나를 안내해 줄 그 누구도 알지를 못했다. 그래서 기도하기를 시작했다. 몇 다리를 건너서 GMS 소속의 한 선교사와 기적처럼 연락이 되었다. 쉽지 않은 곳이지만 일 단 와보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201777일 멕시코 칸쿤 공항을 이륙한 에어멕시코가 한 시간 만에 쿠바 아바나 공항에 착륙하였다. 오후 3시 경에 드디어 약간의 흥분과 두려움을 가지고 쿠바에 역사적인 첫발을 딛게 되었다. 쿠바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사회주의 정권하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탓인지 공항직원들은 무표정했고 불친절했다. 수하물을 찾는 안내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짐을 찾느라 2시간 이상을 공항 여기저기를 뛰어다녀야 했지만 그 어떤 직원도 도와주지 않았다. 다리도 아프고 화도 났다


 그러자 내 입에서 기도가 튀어 나왔다. 주님, 짐 좀 찾게 해주세요! 그 때 한 쿠바인이 내 앞에 나타났다. 쿠바로 들어오는 비행기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알베르또라는 40대 청년이었다. 그는 쿠바 동쪽 끝 지역인 올긴에서 민박집을 하는 사람인데 꼭 자기 집에 오라며 명함을 주기에 받아 놓았는데, 그는 내가 사귄 최초의 꾸바노였다. 그런데 그 역시 짐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나와 마주치게 된 것이었다. 결국 그의 도움으로 짐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미리 그를 사귀게 하시고 만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를 드렸다.

 

   나는 쿠바에서 일 주일 동안 머물렀다. 그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 쿠바를 방문하는 외국인은 아무데서나 머물 수 없다. 꼭 정부가 허락한 호텔이나 까사(민박집)에서만 숙박이 가능하다. 나는 99년 전 스페인이 통치하던 시절에 지어진 까사에서 숙박을 하였는데 말은 잘 통하지 않았으나 주인 부부가 친절하게 해 주어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택시를 렌트하여 사용했는데 1951년에 출고된 쉐보레였다. 계기판은 다 고장이 나있고 시트의 쿠션은 푹 꺼져 버린데다가 움직일 때마다 경운기처럼 덜덜거리는 소리가 나는 고물차에 기사까지 여섯 명이 타고 다녔다. 이러다가 언제 멈추어 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앞섰지만 타이어 펑크가 한 번 난 것 빼놓고는 멈추지 않고 잘도 굴러 다녔다. 나와 아내는 긴장했지만 현지 선교사는 이 정도면 아주 좋은 차라며 연실 웃었다. 그런데 그 차의 값이 3,500만원이나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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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혁명광장



   쿠바는 선교사가 들어가서 거주하며 살기에 참으로 불편한 나라이다. 몇 가지 실상을 소개한다.

첫째, 쿠바 선교사는 송금을 받을 수 없다. 아직도 미국에서 달러가 쿠바로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는데다가 은행계좌를 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을 찾으러 미국 마이애미나 코스타리카까지 나가야 한다. 아니면 쿠바를 방문하는 사람에게 현금을 배달받아야 한다. 이번에 나도 5,000달러를 수송했다.

둘째, 외국인은 차를 소유할 수 없다. 그래서 쿠바선교사 중에는 차가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냥 걷든지 대중교통을 이용할 뿐이다.


   셋째, 인터넷이 안 된다. 모뎀을 이용해서 겨우 이 메일을 사용할 수 있지만 와이파이는 최고급 호텔에서나 가능하다. 그것도 한 시간에 우리 돈 약 1만원 상당의 이용권을 구매하여야 한다.

넷째, 쿠바 선교사들은 자녀가 없다. 부부만 와 있거나 혼자서만 와 있다. 자녀를 키울 수 있는 교육 환경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섯째, 쿠바에는 한인교회가 없다. 왜냐하면 선교사들을 제외하면 3명 내외의 코트라 직원과 유학생 몇 명 외에는 한인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섯째, 교회설립이 허락되지 않으며 외국인들에 의한 설교나 전도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교사는 한글학교 사역을 하고 있다.


   일곱째, 선교사가 종교비자를 얻는 것이 매우 힘들다. 대부분 학생비자로 있는데 수업료로 매달 300달러 이상을 내야하기에 경제적 부담이 크다.

여덟째, 쿠바는 가난한 나라이지만 외국인은 고물가에 시달리고 있다. 수도 아바나에서 방 두 개짜리 아파트를 월세 1,000달러를 내고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외국인은 현지인과 다른 화폐를 사용해야만 한다. 현지인보다 적게는 10배에서 많게는 30배 이상 지불해야 한다.


   아홉째,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오고 가기에 항공료와 시간적인 부담이 있다.

열째, 쿠바는 한국과 아직도 미수교국이다. 오히려 북한과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6.25 전쟁 때는 우리와 친했고 더 잘 살아서 지원물자를 보내준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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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교회 성도(주일예배)


 

   쿠바인들은 가난하기에 아직도 마음이 비교적 순수하다. 그들은 가난 속에서도 웃음과 춤과 노래를 부르며 산다. 쿠바인들은 문맹자가 거의 없다. 성경을 가르치기에 좋은 토양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쿠바를 흔히 천주교 국가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미 중남미에서 천주교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 현지 선교사에 의하면 성당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사람은 쿠바인구 중 4%에 불과하고 기독교인들은 8%를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가 제대로 신학 공부를 하지 못한 사역자들이 사역하고 있기에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쿠바에는 중국의 삼자교회 같은 친정부적인 교회도 있고 가정교회도 있다. 경제적 어려움과 핍박 속에서도 쿠바교회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비록 은사중심적인 교회이지만 그들이 뜨겁게 기도하며 찬양하는 모습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나게 한다. 주님께 대한 열정과 사랑이 식어 버린 한국교회가 오히려 겸손히 배워야 할 부분도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나는 쿠바에서 일본으로 선교지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58년 개띠인 내가 쿠바에 들어가서 선교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현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쿠바를 마음에서 내려놓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그 땅이 어렵고 열악하다 할지라도 나에게 있어서 쿠바는 첫 사랑같은 나라이다. 내가 적어도 한 10년만 더 젊다면 꼭 도전해 보고 싶은 나라이다.


   나는 현재 합신 선교사 훈련과 겸하여 일본선교사가 되기 위한 훈련도 받고 있다. 연말에 훈련이 끝나면 비자를 신청하여, 비자가 나오는 내년 3월경에 출국하려고 한다. 물론 일본도 선교하기에 쉽지 않은 나라임을 잘 알고 있다. 한국인으로서는 과거의 불행한 역사로 인해 사랑하기가 힘든 나라이다.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을 가지고 찾아가서 남은 생애를 일본선교사로 살아보려고 한다. 독자 여러분께 일본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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