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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인경(LXX)이 번역되었던 곳, 알렉산드리아

 

장인수 박사(D.Min., Ph.D.)

성서역사배경연구학회 소장

(The Biblical-Historical Backgrounds Institute)

biblelands@paran.com

 

622-8.jpg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는 알렉산드리아 성채

 

 

“유대인들을 형제국가로 예우하고 신앙의 자유 보장한 알렉산더 대왕”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는 온화한 기후와 눈부신 햇살, 밀려오는 파도, 맑은 날씨 등은 전형적인 지중해 도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기원전 60년경 그리스 역사가 디오도로스(Diodorus)가 이곳을 방문한 뒤 “아름다움과 규모 부요함과 편리함 그리고 화려함에서 알렉산드리아와 견줄만한 도시는 없다”는 말을 남겼다. 이처럼 디오도로스가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하여 찬사를 아끼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지성적인 도시는 이제 전설이 되었다.

 

동방원정을 떠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336-323 BC)이 기원전 331년 봄 이집트의 정통을 이은 왕으로 즉위한 후 경무장병(輕武將兵)과 사수(射手)와 근위대를 이끌고 카노푸스 나일강 지류를 타고 16개 마을이 밀집한 곳에 새 도시 하나를 건설했는데 이곳이 바로 알렉산드리아이다.

 

그에 앞서 알렉산더는 섬의 도시 두로를 정벌하고 가자(Gaza)를 두 달 만에 함락시킨 후 이집트를 정복하러 도착했을 때, 이곳 페르시야 지방 총독이었던 마자케스(Mazaces)는 겁을 먹고 멤피스로 후퇴하였다.

 

이때 이집트인들은 정복자 알렉산더를 해방자로 맞이하였다. 그는 곧 이집트인들의 환영을 받으며 이곳의 통치자가 되었다.

 

그가 멤피스(Memphis)에 도착하자 마자케스는 그에게 8,000달란트에 해당하는 은을 비롯한 왕궁의 재산과 이집트의 지배권을 넘겨주었다. 이때가 기원전 332년 겨울이었다. 8,000달런트의 거액은 그 액수로만 385,000명의 사람들이 1년간 생활할 수 있는 재원이었다. 이로써 기원전 525년 캄비세스(CambysesⅡ, 530-522 BC)가 이집트를 정복한 이후 202년 만에 이집트인들은 비로소 페르시야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되었던 것이다.

 

아문(Amun)의 사제들은 알렉산더를 제30왕조 초대 바로인 넥타네보 2세(NectaneboⅡ, 360-343 BC)의 아들로 선언하고, 이집트의 통치자로 공식 선언하게 된다. 알렉산더는 당시 이집트에서 유명한 아문(Amun)의 신탁처가 있는 시와(Siwa) 오아시스를 방문하고 아문 신전의 시와 제사장이 아문 신을 대신하여 그를 제우스의 아들이라 환영하였다.

 

역사는 흘러 알렉산더가 죽고 난 후(기원전 323년 6월 13일) 곧이어 후계자들의 권력투쟁과 유산상속에 대한 분쟁이 발생했다. 그중에서 가장 현명하게 처신한 장군이 지략가였던 프톨레마이오스 장군(PtolemaeosⅠ, 305-282 BC)이었다. 그는 알렉산더 대왕의 어린 시절에 펠라(Pella)에서 함께 뛰놀던 소꿉친구로 훗날 알렉산더의 신임을 받는 장군이 되었다.

 

알렉산더가 기원전 323년 사망할 때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렉산더를 계승한 이집트 총독직을 계승하였다.

 

알렉산더의 시신이 방부처리 된 체 다메섹(Damascus)에 이르렀을 때 그는 지혜롭게 처신하였는데, 알렉산더가 유언으로 시와의 아문 신전에 묻히기를 원하였다는 구실로 그의 시신을 가로챈 것이었다. 결국 알렉산더의 무덤은 세마(Sema)라고 알려진 왕궁지역에 안장하였다. 하지만 후일 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 14 BC-AD 14)가 이집트에 도착하여 그의 무덤에 엄숙하게 참배한 이후 알렉산더의 무덤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프폴레마이오스 1세는 내정을 정비함과 동시에 문화육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의 후계자로 기원전 285년에 즉위한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부왕의 정책을 더욱 발전시킴과 동시에 고대 이집트의 왕가전통이었던 근친혼을 스스로 행하였다. 이러한 관습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여왕 클레오파트라 7세(Cleopata Ⅶ, 51-30 BC)까지 이어졌다.

 

역사는 거슬러 올라가 알렉산더 대왕이 두로섬을 성공적으로 점령하고 지중해 해변을 따라 예루살렘을 향했을 때 요세푸스와 탈무드에 따르면 당시의 대제사장이었던 야두아(Jaddua, 350-320 BC)가 화려한 제사장의 옷을 입고 한 무리의 제사장들을 이끌고 알렉산더를 맞으러 나갔다고 한다.

 

이 야두아 대제사장은 머리에 관을 쓰고 손에는 금대접을 바쳐 들고 알렉산더에게 가까이 다가와 그가 그리이스의 최초의 왕이 되고 페르시아 제국을 정벌할 것이라는 예언이 기록된 다니엘의 구절을 보여 주었다(이 다니엘서는 다니엘 8:5에 관한 예언을 일컫는 말이다).

 

알렉산더 또한 야두아 대제사장을 향하여 자기의 꿈속에서 노인을 본 일이 있었다고 대답하였다. 이때 이후부터 유대인들과 알렉산더는 친구(filo�라고 불렀다고 한다. 후일 알렉산드리아에 많은 유대인이 저주하였다는 것은 알렉산더의 유대인 배려 정책에 영향이 컸었다고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이 도시의 별도의 구역에 거주하면서 자기들의 신앙관습의 보호를 받았다. 신앙의 자유를 보장받았다는 것은 유대인들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작용하였음을 의미한다(Harold Lamb “Alexander the Great”, The Encyclopedia Amerieana. 1. 3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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