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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기도로 금메달을 딴 펜싱 선수


< 정요석 목사, 세움교회 >


“기도라는 명목으로 사람의 욕심을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박상영 펜싱 선수가 이번 8월에 열린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에페 종목의 금메달을 땄습니다. 한 점이면 지는 10-14에서 그는 연속으로 5점을 획득하여 15-14로 극적으로 역전했습니다.


   그는 10-14에서 포기하지 않고 “나는 할 수 있다”라고 되 뇌이며 평상심으로 대범하게 칼을 휘둘러 그의 말처럼 끝내 해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저는 전율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아들이 금메달을 따도록 기도했다는 기사를 읽고는 또 놀랐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아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 기도만 했다고 인터뷰했습니다. 그녀는 박상영의 올림픽 대비 훈련에 맞추어 2달 전부터 매일 전국 사찰을 돌며 기도를 올렸고, 그때마다 “펜싱 선수 박상영 리우올림픽 파이팅”이라는 기도 내용을 기왓장에 적어 올렸습니다. 그 덕에 전국 유명한 사찰에는 그 기왓장이 하나씩 다 있다고 합니다. 그녀는 시합이 있는 8월 9일 저녁 5시부터 진주 인근 사찰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앞으로 많은 불교인들이 사찰의 기왓장을 사대면서 기도를 할 것입니다. 특히 금메달을 따는 순간에 기도를 했다는 진주 인근의 사찰은 영험한 사찰로 이름이 나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는 불자들로 붐빌 것입니다. 어쩌면 이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사찰 입구에 걸릴지도 모릅니다.


   불교도 아이러니컬하게 기복을 강조하는 사찰들이 부흥합니다. 오순절 계통처럼 북을 치며 통성으로 기도를 하는 절들은 불자들로 붐빕니다. 로또 1등 당첨이 나온 복권판매소에 사람들이 줄을 서듯, 기도응답이 이루어진 사찰들은 한동안 인산인해가 됩니다.


   그녀가 기도에 관하여 인터뷰한 기사를 한국인들은 접하며 기도에 관한 개념을 형성합니다. 이러한 식의 기도 이해는 그녀에게만 특별한 것이 아니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부터 한국인들에게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에 대한 이러한 정서와 이해가 그대로 기독교의 기도에 파고듭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신에게 정성스럽게 간구하면 응답을 받는다는 생각이 무속, 불교, 기독교에 상관없이 한국인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합니다. 이것을 넘어서서 성경에 의거하여 기독교의 참된 기도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가 무척 힘듭니다.


   우리 주님은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마 6:7)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인이 중언부언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부처나 무당들이 섬기는 잡신처럼 생각하여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중언부언하는지 모릅니다. 자극적으로 기도하여 신의 감동을 받아내어 응답을 받아내고야 말겠다고 여깁니다.


   참된 신자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고, 하늘 아버지는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십니다. 그런즉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십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처럼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자신의 원을 부인하는 것은 강력하게 날아가는 로켓의 방향을 바꾸는 것보다 힘듭니다. 기도 없이 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자기가 속한 나라와 지역의 문화와 정서를 성경으로 극복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좋은 게 좋은 식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진리가 드러나도록 생각하고 행동하는 삶입니다.


   바알을 섬기는 이들은 응답을 받으려고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고, 큰 소리고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였습니다(왕상 18:28). 마치 무당들이 하는 굿과 비슷합니다.


   이러한 기도 이해가 우리에게 침투하지 않도록 경계하여야 합니다.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회를 하지만, 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이것들을 잠재우기 위하여 회개하며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라는 명목으로 사람의 욕심을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우리의 원함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구하는 것이 기도임을 알고, 성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더욱 상고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열심으로 기도 응답을 받으려하기에 앞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이미 주시고자 한 약속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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