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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2 (22:18:06)

 (부제: 자유마저 부정한 사도 바울)

 

예수님은 자유에 대해 말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8:32)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8:36)  사도 바울도 말했다.“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5:13) 

예수님은 자유를 얻는 방법에 대해 그리고 사도 바울은 자유의 적용 방법에 대해 각각 말했다.  사도 바울이 자유에 대해 더 말한다.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고전9:1) ‘자유라는 추상명사를사도라는 구상명사와 관련시켰다.  자유라는 원리에 의해 사도라는 직분을 수행해야 한다고 그가 말한다.  진실로 그는 자유자의 상태에서 사도가 되었고 사도가 된 후에도 여전히 자유자로 살았다.  목회자나 지도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그가 잘 설명해 준다.

 

성공과 출세가 가장 큰 가치이며 인생의 목적인 유교 문화권에서 지도자들은 사도 바울이 말하는 자유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성공이 가져다 준 달콤한 열매를 즐겨야 한다는 이기적인 소원이 지나치게 강하며 그리고 자신이 누리는 권위와 권세를 초법적 또는 탈법적으로 사용하려 한다.  이런 잘못된 노력과 자세는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역력하다.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동등한 국방의무를 부과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자녀들만은 이 의무에서 면제시키려 한다.  이들은 사도 바울의 자유를 완전히 비웃는다.  이런 통치자와 지도자는 흐르는 시간과 함께 가진 권력으로 인해 서서히 부패한다.  자기 부정을 모르는 소치이다.

 

사도 바울은 한 걸음 더 나갔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9:19)  그는 진정한 자유에 이른, 다시 말해 완숙한 신앙 경지에 이른 성도이며 동시에 사도였다.  목회자를 포함한 성도라면 누구나 이런 신앙 경지에 이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 정도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예수님을 잘 알았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0:25-28)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자신의 권리를 유보시킬 수 있는 자유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보다 한발 더 앞서 갔다.  스스로 자신을 십자가 위에 대속물로 드렸다.  예수님처럼 사도 바울도 자유자였다.  그도 예수님처럼 한 걸음 더 나가야 했다.  그는 자신의 자유마저 부인했다.  모든 사람의 종이 되기 위함이었다.  유교 문화권의 통치자나 지도자는 도저히 이를 이해할 수 없다.

 

신앙의 최고 경지에 달했다고 생각할 때 흔히 목회자를 비롯한 성도는 마치 다 끝난 듯이 그것으로 만족한다.  이 때쯤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존경과 칭찬을 주고 그는 이를 즐기며 은근히 자랑한다.  그러나 이것은 율법주의자들의 모습이다.  이런 식으로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  

기독교는 이보다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처럼 수양(修養)을 통해 최고의 도덕적 경지에 달함을 전혀 목적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독인은 진리의 깨달음을 최고의 경지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본()을 따라 자신이 도달한 자유의 경지마저 부인했다.  그리고 기쁘게 다른 사람들의 종이 되어 주었다.  더 높은 차원의 헌신과 봉사로 나가기 위함이다.  이것은 성숙한 신앙 경지와 그것이 주는 만족감 자체를 부인하고 자신을 낮춤으로 비로소 가능하다.

 

그럼 사도 바울이 자신의 자유를 부인하고 스스로 종이 된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었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자기부정에 대한 노력이 부족하다면 성도들이 그 만큼 영혼 구원에 소홀할 수 있다고 사도 바울은 말한다.  이런 성도 자신이 복음 전파와 영혼 구원에 장애 내지 방해될 수 있다.

이를 안 사도 바울은 한 영혼이라도 구원할 수 있다면 자신을 낮추며 기꺼이 종이 되어주었다.  그는 율법주의자에게 그와 같이 되었고 그리고 율법폐기주의자에게도 그와 같이 되어주었다(고전9:20-21).  그리고 할례자에게 그와 같이 되었고 무할례자에게도 그렇게 되어주었다.  그는 예수님을 철저히 배우고 실천했다(2:6-8).

주 안에서 얻은 자신의 자유마저 부정할 수 있는 자유, 이것이 신앙과 윤리의 최고 경지이다.  누구에게 이것이 가능한가?  사도 바울이 답했다.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4:5)

그리스도를 위하여 신자의 종이 되려면 자유마저 부정할 수 있는 자유를 소유해야 한다.  이 때 비로소 주님이 원하는 진정한 사랑의 헌신과 봉사가 가능하다.  이렇게 자기부정은 성화와 목회의 최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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