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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3 (14:52:40)

하나님의 뜻이다

 

1. 강대상에서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표현이 자주 인용된다. 문제가 되기도 한다. 문창극 장로가 한 설교 중 이 표현 때문에 국무총리 후보 자리에서 자진 사퇴했다. 일제 식민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신앙인들은 이해되는 데 불신자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일제 식민사관을 지지한다고 보며 언론은 기독교도 싸잡았다.

 

SNS에서 이런 언론을 이렇게 평한다. 예수가 "죄 없는 자,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말한 것을 보고 한국 언론은 "예수, 매춘부 옹호 발언 파장. 잔인한 예수, 연약한 여인에게 돌 던지라고 사주."라고 트집 잡는다. 그리고 예수가 위선적 바리새인들에게 분개하여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꾸짖은 데 대해 한국 언론은 "예수, 국민들에게 X새끼 발언 파문"으로 보도한다. 이것은 전형적 좌파의 비판 방법이 아닌가?

 

불신자의 관점(역사적)에선 이 세상의 주인은 인류이다. 이성과 상식의 관점에서 사람들은 현상만을 보고 평한다. 그러나 성경의 관점(성경적)에선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사도 바울이 분명히 말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11:36절) 교회와 신자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역사적 사건들을 해석해야 한다.

 

그럼 사도 바울이 말한 성구는 일제 식민사관을 지지하는가? 하나님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고난을 당하도록 일제 식민을 동의한다는 식의 주장은 성경 어디서도 지지하지 않는다. 거룩한 하나님은 스스로 불의를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인류 사회에 대해 보편적 부성을 늘 보여준다(마5:45절). 하나님의 보편적 부성은 아버지로서 자녀를 징계하듯 인류 사회를 징계 내지 징벌한다는 것을 또한 뜻한다.

그럼 하나님은 인류 사회를 어떻게 징벌하는가? 거룩한 하나님이 직접 징벌할 수 없다. 하나님은 사단이란 존재를 이용한다(욥1-2장).  사단은 하나님의 승인 아래 인류 사회의 악과 불의를 징계한다. 마찬 가지로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을 징벌하기 위해 더 불의한 앗수르와 바벨론 제국을 몽둥이로 사용했다. 이 때 민족적 불행 원인은 하나님이나 사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선민 사회 자체에 있었다. 그 후 이 제국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또한 멸망 당했다(렘25:12절). 

이 때 선민은 조국의 멸망을 지켜보며 하나님이나 바벨론 제국을 절대로 원망하지 않았다. 멸망의 원인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 언약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땅이 또한 그 거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음이라"(사24:5절) "나팔을 네 입에 댈지어다 대적이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 이는 무리가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호8:1절: 말2:8절 참조)

이씨 조선 시대 한국 사회도 이미 말기적 증상을 보였다. 약육강식의 시대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푼 일본이 약해진 한국 사회를 가만 놔둘 리 없다. 하나님은 징계를 위해 일본을 몽둥이로 들어 사용했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른 해석은 일제 식민을 하나님이 지지했다는 것을 결코 뜻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를 징벌하기 위해 더 악한 일본 제국을 사용했을 뿐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일본 제국을 또한 징벌하기 원했다. 하나님의 일본에 대한 징벌은 일본 식민사관을 절대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2. 그럼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표현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창조 후 에덴 동산을 창설한 후 그곳에 선악과를 심었다. 그리고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금지시켰다(창2:17절). 그러나 아담이 따먹었다. 이것은 인류 사회가 하나님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며 살겠다는 뜻이었다. 이 선택에 따라 하나님은 인류가 자의적으로 행한 악과 불의에 대해 주인으로서 심판해야 한다.

 

 

그러나 인류가 죄를 지을 때마다 하나님은 징벌이나 징계할 수 없다. 매번 그렇게 한다면  이 세상에 인류 사회란 한 순간도 존재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와 악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를 정한 후 이 법의 한계 안에서 하나님은 인류 사회의 악행과 불의를 참거나 또는 심판한다. 이렇게 하나님은 주인으로서 자신의 창조 세계의 질서를 계속 유지내지 보존한다. 이를 하나님의 알반 은총론이라 한다.

 

 

왜 그래야 하는가? 자신의 창조 목적(창1:26-28절)을 달성하기까지 인류 사회와 자연 세계는 계속 보존되고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제 식민은 근본적으로 한국 사회의 잘못으로 인한 불행한 결과이다. 하나님이 그 동안 베풀어 준 은총을 선하게 그리고 지혜롭게 이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의 원인은 한국사회 자체에 있었다. 당시 사회의 악행과 불의가 도를 넘어가자(창18:18-21) 하나님은 일본을 징계의 몽둥이로 사용하여 한국 사회를 징벌했다.

 

 

3. 이 결과에 대해 한국 사회가 취해야 할 지혜로운 자세는 무엇인가? 민족주의나 애국주의 관점에서 한국을 침략한 일본에 대해 무조건 분노하고 미워하기보다 먼저 자신에게서 민족적 불행과 비극의 원인과 이유를 찾아야 한다. 당시 국제적 상황에서 볼 때 어느 나라든지 약해진 한국을 먹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우리의 잘못으로 한국 사회가 분열되고 무너지며 약했다. 이런 때 우리보다 훨씬 강했던 일본이 한국인에게 자비와 선을 베풀 것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는가?

 

 

역사적 관점에서 물론 그들의 침략성을 원망할 수 있지만 성경적 관점에선 그리 지혜롭지 못하다. 남 탓만 해선 성장할 수 없다. 유감스럽지만 우리들은 이런 단순한 지혜를 버리고 일제 식민사관의 역사적 정당성의 문제로 동족끼리 치고 박고 여전히 싸우고 있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리석기 그지없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이런 불필요한 논쟁으로 얼마나 많은 국력을 분산시키고 낭비시켰는가? 

물론 해방 후 일제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은 정말 유감이다.  이것도 한국 사회의 잘못이었다. 해방 후 정권을 세우는 과정에서 일본 제국의 앞잡이였던 순사들과 형사들이 다시 권력을 잡았다. 이승만 정권과 미군정이 이를 허락했다. 당시 상황으로 본다면 이승만 정권은 이북의 공산주의와 이에 동조하는 남한 사회의 공산주의자들 때문에 나라를 하루 속히 안정시켜야 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 중에서 갓 해방된 조국을 분열시키려는 공산주의자들 또한 많았다. 이승 정권은 무엇보다 먼저 나라를 지켜야 했다.

물론 나중에라도 이승만 정권은 미군정과 협의하며 일제 청산을 분명히 해결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 일에 실패했다. 대부분의 권력자들이 친일파였고 연이어 625전쟁이 발발했기 때문이다. 625 전쟁 후 한편 공산주의 잔당을 물리쳐 사회질사와 안정을 찾아야 했고 다른 한편 국가 재건에 국력을 모아야 했다.  당시의 역사적 그리고 사회적 상황이 일제 청산을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하나님이 일제 청산을 허락하지 않았다. 계속 하나님은 한민족을 연단했다(삿2:21-23절).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이 문제를 달리 생각함으로 극복해야 했다. 그러나 좌파들은 이 문제를 이용하여 한국 사회를 여전히 분열시키고 있다. 놀랍게도 김대중노무현의 좌파 정권이 10년 동안 대한민국을 다스렸지만 일제 청산 문제는 여전히 미제로 남아 있다. 국민이 기회를 이들에게 주었지만 말이다. 일제 청산은 그 만큼 골이 깊은 사회적 문제란 뜻이다. 이를 잘 아는 좌파는 여전히 이 문제를 보수 정권에게 계속 묻는다. 이 요구는 정당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잘못과 실수였다. 누구를 원망하기보다 보수나 진보나 다 같이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4. 그럼 한국 사회는 이 문제를 계속 고집할 것인가 아니면 달리 극복할 것인가?  우리의 지혜와 의지에 달린다. 이를 보면서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거나 징계할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세운 법과 원칙을 스스로 어기면서 만물을 주관하지 않는다. 인류 사회의 반응을 보며 축복내지 징벌을 결정한다. 이 때 하나님의 결정과 심판은 늘 공의롭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성경의 표현은 인간의 악행을 승인내지 동의한다는 뜻이 절대로 아니다.

 

이 점에서 기독교는 일제 식민사관을 절대로 지지할 수 없다. 일제의 무자비한 식민 통치는 인류의 양심에 비추어 보아도 마땅히 비난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일제 식민이라는 불행한 사건 이면에 한국 사회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감추어져 있었다.  새로운 시대를 열려면 옛 시대를 닫아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창조적 파괴와 같다. 물론 이 때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패러다임의 급격한 물리적 변혁은 흔히 고통과 고난을 동반한다. 진화론적 역사관도 얼마든지 용인하는 해석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보라! 민족적 불행과 비극을 극복하고 국력이 세계적으로 10위 안팎에 머물고 있다. 하나님은 민족적 불행을 통해 대한민국을 새롭게 만들어 세웠다. 하나님 앞에 대한민국이 수행해야 할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 기독교 세력이 가장 강한 나라 그리고 선교사를 미국 다음으로 많이 파송한 나라이다. 민족적 불행을 비관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결국 불행이나 비극 앞에서 국민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더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조국에 대한 자학적 역사관은 그리 좋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성경의 표현은 역사학적 관점에서도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다. 기독교가 신학적 관점에서 달리 설명할 뿐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동일하다. 인류 사회의 불의가 불행의 원인이다. 이 원인에 대한 평가와 해석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언론이 이를 문제 삼고 트집 잡는다면 역사에 대한 상식 빈곤을 스스로 증언하는 것이다. 언론은 교회 안의 신학적 표현을 가지고 더 이상 문제 삼지 말아야 한다.

 

5. 반면 목회자와 신자들도 이 표현을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하다.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사람의 지은 죄를 용인한다는 뜻이 절대로 아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죄를 지었다. 나단 선지자를 보내 하나님은 호되게 꾸짖었다. 아무리 디윗이라해도 하나님은 그의 죄를 용인할 수 없었다. 다윗이 회개하자 나단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죄를 즉시 선언했다.

 

그러나 그에게 죄에 대한 징계 내지 징벌은 면제되지 않았다. 나중 아들들 사이 왕권 문제로 다윗이 가슴을 치게 하는 불행과 비극이 가문에 발생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지만 그렇다고  죄인 다윗까지 멸망시키지 않았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라도 인류의 죄를 짊어지겠다면 하나님은 예외 없이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해야 했다.

 

하나님의 법에 따르면 죄값은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지 지불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죄를 미워하되 인간을 미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타락 후 죄인 인류를 미워했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낼 수 있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성경의 표현은 인간이 지은 죄도 못 본체 한다는 뜻이거나 죄인을 무조건 용서한다는 뜻도 절대로 아니다.

 

6. 지금 한국 교회에서 목회에 성공한 목회자들이 자주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 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주장하며 스스로 용서를 선언한다. 그리고 의인인 체 위선이란 죄를 추가시킨다.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지은 죄가 하나님의 어떤 뜻에서 나왔는지에 대해 어느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다. 두 경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다윗의 경우처럼 그가 피택자라면 책망과 교정 그리고 교훈을 위해 죄를 짓도록 하나님이 막지 않고 허용할 수 있다. 그를 낮추기 위함이다. 이 때 회개를 조건으로 죄에 대한 용서는 가능하지만 징계는 절대로 면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교회의 공적 기관에서 분명히 자신의 죄에 대해 공개적으로 회개하고 그에 합당한 징계를 겸손하게 받아야 한다. 이것이 그가 피택자란 증거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그를 유기시키기 위해 그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허용할 수 있다. 이들은 말씀과 양심을 어긴 후에도 하나님의 뜻이라 주장하며 스스로 용서를 선언하고 의인처럼 행할 것이다. 교회와 교인들도 기쁘게 동의한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지나가고 잘 되기만 한다. 그는 분명히 버림 받은 자이다. 그가 회개하지도 않았고 그리고 하나님이 그를 교정하도록 하는 징벌도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반드시 징계하기 위해 매를 든다.

 

결국 "하나님의 뜻이다"란 표현은 변명의 방법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징계 또는 징벌한다. 그리고 이 표현은 하나님이 모든 악을 저지른 장본인임을 주장하지도 않는다. 아울러 이 표현을 잘 이해하지 못한 체 하나님의 주됨을 부정하는 신학도 비성경적이다. 하나님은 주로서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다스린다. 그 없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참조:

http://blog.naver.com/rassvet/220029831407 일 식민지 하나님의뜻 논쟁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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