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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7 (15:00:33)


극한의 현장에서 만난 하나님


< 민현필 목사, 중동교회 교육담당 >

 

하나님은 절망과 한계 속에 있는 인간에게 있어 구원의 소망

 

랭던 길키는 1939년 미국 하버드 대학 철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후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연경 대학'에서 영어 강사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길키는 일본의 진주만 공습 직후 일본군에 의해 중국 북부의 산둥 지방에 있는 위현 수용소에 수감되는 신세가 된다. 대략 1,500-2,000여명의 서양인들이 포함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용광로와 같았던 그 수용소에서 그는 2년 반 동안 시간을 보내게 된다.


철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젊은 수재의 예리한 인문학적 감수성에 의해 포착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은 죄성으로 가득 찬 누추한 모습 그 자체였다. 그 때의 일을 상세히 일기로 남겼던 길키는 후일 수기 형식의 <산둥 수용소>라는 인상적인 작품을 남기게 된다.


모든 사회적 기반이 상실된 수용소라는 제한적 공간 속에서 새로운 인간 실험의 장을 경험했던 길키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위기는 기술의 실패가 아닌 인격의 실패로부터 야기되었다"(p.142).


그는 여러 나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뒤엉켜 살면서 겪어야 했던 인간 실존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바로 '이기심'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이 이기심은 도덕적인 명분이라는 거창한 위선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기도 한다.


"수용소 생활이 깨닫게 해준 것이 또 한 가지 있다. 인간의 도덕성과 비도덕성은 우리 생명의 가장 심오한 영적 중심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이다...인간은 이 영적 중심으로부터 삶의 안전성과 의미를 얻으며, 그래서 이 영적 중심에 자신의 궁극적인 사랑과 헌신을 다 바치게 된다"(p.429).


나아가 길키는 인간의 비도덕성은 결국 인간의 영적 중심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에 문제의 핵심은 그 중심이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에 헌신되어 있느냐 하는 것에 있음을 지적한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간들에게서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는 종교성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도덕성은 사회적 실존 안에서 행해지는 종교다"(p.433).


길키는 여기서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죄성을 본다.


"죄란 유한한 대상에게 궁극적인 종교적 헌신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 죄란 자아와 자아의 실존, 또는 자아가 속한 집단에 최우선적으로 관심과 헌신을 기울이는 것이다"(p.432).


이런 길키에게 있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담과 하와의 역사성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길키에 의하면 그런 문제는 생물학이나 인류학자들의 몫이라고 말하면서 한 발 물러선다. 또한 인간의 문제를 아담으로부터 받은 유전 탓으로 돌리는 것은 진화의 조상인 동물을 탓하는 것만큼이나 무익하고 무책임한 태도라고까지 말한다.


이렇듯 길키는 외과 의사가 환자의 환부를 예리한 칼로 도려내고 해부하듯 죄성으로 점철된 인간의 실존을 날카롭게 파헤치지만 분명 우리와는 다른 신학적 입장에 서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키가 수용소 경험을 통해 배운 통찰은 목회자들뿐 아니라, 세상 속 인간 군상들의 틈바구니에서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성도들에게도 통찰력 있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실제적인 사회적 행동을 보면 이런 신학적 개념, 즉 우리는 선을 원하지만 의지에 있어서 악하다는 원리가 그 어떤 판단 기준보다 더 잘 우리의 경험을 설명해준다. 내가 수용소에서 본 것은 바로 원죄론이 말하는 것이었다....주어진 상황에서 우리가 행하고 싶은 바를 무엇이든 마음껏 원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서로 사랑하기를 원할 자유는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의지는 그것을 정말로 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문자 그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에 매여 있었다"(p.212).


그는 원죄론을 신학 책이 아닌 혹독한 수용소 경험을 통해 배운 셈이다. 궁극적으로 길키가 본 것은 인간의 자아숭배 혹은 우상숭배였다(p.432). 이러한 사유의 과정에서 길키는 인간이 얼마나 위선과 허위의식으로 가득 찬 모순된 존재인지를 누차 강조한다.


인간은 억압적 상황 속에서 자신의 이기심에 따라 행동하고,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각가지 도덕적 명분을 추구하며 자신의 지성을 활용한다는 것이다(p.208, 431). 그렇다면 그가 도달한 결론은 무엇일까? 길키는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진정한 신앙인은 의미와 안정성의 중심을 자신의 생명에 두는 대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 안에 둔다. 그는 자신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포기했기 때문에 그의 삶에서 진짜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이웃의 복지가 된다. 이런 신앙은 사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신앙은 내적으로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고, 자기중심성을 포기하여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p.435).


결국 인간은 그가 스스로 거부한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할 때에만 자아라는 감옥에서 해방된 진정한 이타적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길키는 시종일관 하나님'에 대한 언급은 자제한다. 그러나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야 도덕적 절망과 한계 속에 있는 인간에게 있어서 구원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역설한다.


이렇게 <산둥 수용소>는 인간의 죄성이나 허위성, 신앙의 의미까지도 역설하는 변증적 차원의 성격도 갖고 있다. , 이 외에도 미처 다 열거하지 못한 다양한 인문학적 성찰들이 풍성하게 담겨 있다

 

이 책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와 더불어 수용소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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