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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9 (19:51:37)

 

삶의 깊이를 요청하는 고통

 

< 조주석 목사, 영음사 편집국장 chochuseok@hanmail.net >

 

 욥기설교.jpg

|박영선|박영선의 욥기설교|559|도서출판 영음사|

 

순종-축복, 불순종-저주라는 보응원리에 일침 가해

 

고통이 없는 세상이라면 좋을 텐데 왜 고통은 존재하는 것인가? 악인이 당하는 고통이라면 몰라도 이유 없이 당하는 인간의 고통은 무엇이라는 말인가? 그리고 의로운 욥이 당하는 고통은 또 무엇이라는 말인가?

 

행복하게 살다가 갑자기 불행을 당한 욥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를 찾아온 세 친구는 위로보다는 네가 범죄한 까닭에 당하는 것이라 판단하고 회개하라 욥을 다그친다.

 

사탄은 욥에게서 복을 제거하면 신앙도 버릴 것이라고 시험한 반면 그의 세 친구들은 욥이 당하는 고통의 현실을 범죄가 가져온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단죄한다. 그들이 욥에게 들이댄 판단 기준은 보응의 원리였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을 주시고 불순종하면 징벌하신다는 것이다. 이 원리에 따라 하나님은 인류뿐 아니라 자기 백성의 행위도 판단하신다.

 

이 원리에는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그가 하시는 일들은 다 옳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세 친구는 줄기차게 3회전에 걸쳐 이 원리로 욥을 판단하나 그것으로는 자신의 고통이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다고 비명을 지른다. 그래서 하나님께 따져 묻는다. 내게 잘못이 없는데 왜 이런 고통이 온 것입니까? 하나님이 틀린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정말 의로우시다는 말입니까? 당신이 하시는 바가 정말로 다 옳다는 말입니까? 신학에서는 이러한 난해한 문제를 신정론(神正論)이라 하여 다룬다. 욥기도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욥이 당하는 지긋지긋한 고통은 그의 신앙이 어떤 것인지를 시험받는 현실 문제였다. 보응의 원리로 다 설명되지 않는 답이 없는 막막한 현실 속에 하나님은 드디어 찾아오신다. 그리고 당신의 통치가 얼마나 위대하고 크신지를 보여준다. 창조자 하나님은 그가 지으신 창조 세계를 어떻게 다스리고 움직여 가시는지를 자연계를 들어 하나하나 들려주신다. 하나님은 보응의 원리라는 통치 방식에만 갇힌 분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능력이 많으시고 위대하시고 의로우신 창조자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부당하게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욥의 꽉 막힌 의문의 한계를 지적하고 깨부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이제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을 악하다 할 수 없었다.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4:4). 이처럼 그는 스스로 어리석고 무지하다고 고백한다.

 

이유 없이 당하는 재난이나 고통이 자신의 잘잘못과 직접 상관없는 불가사의한 것이라 해도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을 악하다 하거나 원망할 이유를 창조자에게서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신자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설교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어놓고 어떻게 하나 보자 하는 그런 대상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으로 하나님은 창조의 완성으로 끌고 가신다고 선언하는 것이 성경이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신자의 삶에 찾아드는 가난과 실패와 불행이 신앙 안에서 무엇인지를 바로 설명해 주지 못하고 그저 믿음이 없어서 그런 비루하고 불쌍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몰아세우는 현실도 적지 않아 보인다.

 

수많은 방송설교가 그 증거가 아니겠는가.

 

과거엔 적극적 사고방식이 교회에 들어와 신자의 고통을 외면하게 만들었다면 지금은 교회 안에 깊숙이 들어온 신사도 운동이 그런 역할을 자처하는 것으로 보인다. 성령의 능력 부으심이 발생하면 가난을 번영으로, 실패를 성공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고 속삭인다.

 

성령의 능력이 동전만 넣으면 뭔가 툭 튀어나오게 하는 자판기라도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욥기가 성경에 등장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신사도 운동의 성령론은 성경을 지금 왜곡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욥기는 순종-축복, 불순종-저주라는 보응 원리에 지나치게 기울어진 한국교회의 신앙 실상에 허를 찌르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욥기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인간의 고통은 삶의 깊이, 신앙의 깊이를 우리에게 요청하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훈련시키는 하나님의 손길이라는 것이다. 설교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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