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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2 (10:57:32)

복음, 공공의 진리를 말하다

 

< 조주석 목사, 영음사 편집국장chochuseok@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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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리 뉴비긴, SFC, 2008년, 101쪽|

 

 

복음은 공적 진리다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용기와 순종뿐”

 

다는 아니어도 다수의 그의 책들을 읽었다. 우리말로 번역된 레슬리 뉴비긴의 책들이 나에게 크게 공감이 간 것은 복음에 대한 그의 접근 태도였다. 그는 복음이 진리라는 점에 온통 집중한 선교사다.

 

사실 돌이켜 보면 이 지면을 통해 나는 『복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이 난을 시작했다. 그때는 한 개인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복음 진리, 곧 사적 진리 그 이상의 복음은 제시할 수 없었다. 복음이 공적 영역에서도 어떻게 보편적 진리가 될 수 있는지는 풀리지 않은 숙제였다.

 

레슬리 뉴비긴이 인도에서 30년 동안 선교하고 돌아온 그의 조국 영국은 인도보다 훨씬 더 이교적 국가가 된 것을 확인하고 큰 도전을 받는다. 이러한 도전을 통해 그는 자신의 조국에서 어떻게 복음 진리가 공적 진리로 제시될 수 있을지를 모색하고 연구한다. 그러한 모색은 그의 여러 책들을 통해 이미 제시된 바 있다. 하지만 본서가 아주 특별한 의의를 갖는 것은 이 소책자 한 권에 자신의 문제의식을 굉장히 집약적으로 풀어놓았다는 데 있다.

 

그가 돌아온 조국에서 기독교의 복음은 사적 영역의 신념 정도로 전락한 상태였다. 어떻게 해서 우주적 진리가 그처럼 사적 신념 정도로 축소되고 만 것인가. 그 원인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는 이 문제가 근대의 인식론과 상관있다고 파악한다.

 

계몽주의이래 서양은 300년 동안 내내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아는 것과 믿는 것 사이를 갈라놓았다.

 

신앙과 지식 사이의 거짓된 이분법을 주장한 것이다. 마치 탐구된 진리 지식이 탐구자의 헌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발견되는 것처럼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서양 전통 속에 계몽주의 이전에는 없었던 이분법, 곧 “나는 안다”와 “나는 믿는다” 사이의 거짓된 이분법이 생겨났다고 말한다.

 

그는 1장에서 이렇게 진단한 다음, 2장에서는 복음 진리를 교회 안에서 긍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회는 반드시 복음의 진리, 곧 유일한 주와 구주인 그리스도의 주권과 삼위일체 신앙을 확언해야만 한다.” 이 복음은 먼저 교회 안에서 공적 진리로 긍정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 교회의 담을 넘어 공적 영역에서 우주적 진리로 제시되어야 한다. 이는 긍정과 부정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긍정의 방식은 교회 영역에서 일어나지만 부정의 방식은 교회의 담을 넘어 공적 영역에서 일어나게 된다. 이 부정의 방식을 그는 3장에서 다룬다.

 

부정의 방식이란 교회가 이데올로기를 폭로하고 저주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국가를 섬기고 사랑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애국주의에 함몰하지 않는 한 우리는 더 많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국가에 대한 절대적 헌신은 속박이다. 가족과 혈족은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귀한 선물이지만, 인종주의는 선한 것의 타락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제정한 사물 안에 존재하는 특정한 요소를 그리스도의 유일한 핵심적이고 절대적인 위치에 갖다 두려는 이데올로기를 거부해야 한다.

 

교회는 왜 이런 방식으로 진리 증언을 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지역 회중이 우주적 교회의 한 가지(a branch)가 아니라 우주적 교회가 가시적이 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우주적 교회의 가시적 현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를 민족교회로 이해하게 되면 복음이 강력하게 공적 진리로 선포되기 어렵다. 히틀러 시대에 독일교회가 범한 대표적인 실패다.

 

나는 본서를 읽으면서 내면의 한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에 대한 새로운 의미다. 그는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순교로써 자신의 신앙을 증언했다. 이러한 거부는 신사 참배가 공적 교의로 강요되던 지배적 구조를 그 밑바닥부터 뒤흔든 전복적 행위다. 다시 말해 교회의 담을 넘어 복음을 부정의 방식으로 담대히 증언한 것이다. 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주님이시요 구주이셨다.

 

독일에서는 본회퍼가 그런 증인이었다면 우리에게는 주기철 목사님이 그런 증인이시다. 이런 내면의 소리가 내게 들려온 것이다. 그래서 이번 책읽기는 내게 무척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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