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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1 (19:57:50)

 

신앙이 삶을 창조하다

 

< 조주석 목사, 영음사 편집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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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영은, 『케플러 - 신앙의 빛으로 우주의 신비를 밝히다』, 성약, 2011년

 

 

“당대의 과학적 맹신에서 벗어나 참된 진리를 추구한 진정한 신앙인”

 

 

지은이는 서울대 공대 교수다. 그는 새롭고 깨끗한 에너지를 찾는 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속한 교회에서 청소년학교, 청년 모임, 계절 학교에서 과학을 강의하고 소속 교회의 신학교에서 과학 개론도 강의한다.

 

이러한 그가 종교개혁 시대의 과학자인 케플러의 삶을 우리 시대로 불러들인다. 이것은 그에게서 자신의 소명 의식에 대한 동질성을 확인하고픈 마음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케플러를 이렇게 요약한다. “신앙과 삶, 그리고 과학의 터전을 늘 교회에 두었던 그는 자신이 속한 교회의 배척을 받았는데도 평생 그 교회를 사랑하고 바로 세우고자 애썼다.”

 

요한네스 케플러는 루터가 사망한 지 25년이 지난 1571년에 태어나 59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목사가 될 것만 생각하고 루터교의 신학 본거지였던 튀빙겐 대학에 입학한다. 그의 이런 소원은 조부, 외조부, 어머니도 바라던 바였다. 그러나 신학부 3학년 때에 오스트리아 남부에 있는 그라츠의 개신교 학교가 튀빙겐 대학에 수학 교사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해왔다.

 

튀빙겐 대학 평의회는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케플러를 천거하지만 그는 신학 공부를 중단하고 수학 교사로 가야 하는지를 두고 고민한다. 두 달 후 대학 당국에 조건부 수락을 한다. 그곳에 갔다가 다시 튀빙겐으로 돌아와 신학 공부를 마치고 목회의 길로 들어갈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그는 뒷날 우주의 법칙을 발견하고 난 뒤 이때를 회고하면서 그 부르심이 하나님의 음성이었다고 회고한다.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하고 케플러가 과학적으로 입증한 지동설은 지금 누구나 받아들인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아무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지동설이었을지라도 그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2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프톨레마이오스가 주장한 천동설이 확고한 대세였다.

 

반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1543년에 비텐베르크 대학의 수학 교수인 레티쿠스에 의해 출판되어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졌지만 극소수의 지성 사회에게만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가톨릭이든 개신교 신학자들이든 거의 다 반대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평생 옹호하고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한 케플러는 위험한 인물 그 자체였다.

 

신앙 문제에서도 그런 존재로 비쳐졌다. 그는 루터교회의 회원이었지만 성찬론에서 루터의 공재설을 따르지 않고 멜란히톤의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에 동의하면서 영적 임재설이 성경의 가르침에 더 적합하다는 확신을 끝까지 굽히지 않는다. 이와 더불어 루터교의 공식 신앙고백서인 협화신조가 주장하는 그리스도의 인성 편재론도 거부한다.

 

협화신조에 따르면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그의 인성이 하늘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든 편재하여 계신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이 거부는 그가 루터교회로터 제명될 수 있는 사유가 된다. 자신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신앙의 자유가 허락된 오늘날과 다른 시대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용기는 참 대단했다.

 

그는 평생 루터교를 떠나지 아니하고 교회를 사랑한 성실한 교인이요 당대의 과학적 맹신에서 벗어나 참된 과학적 진리를 추구한 진정한 자유인이다. 물론 점성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시대적 한계를 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에 흐르는 선명한 태도는 개혁 지향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현실과 짐을 훌러덩 벗어던진 도피주의자가 아니었다. 교회나 과학계에서 이리저리 채였지만 자신의 소명을 따라 하루하루 끙끙대며 살아낸 진정한 현실주의자였다. 이러한 삶이 보여주는 묵직한 교훈은 무엇일까. 신앙은 삶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그의 삶은 나에게 또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신앙과 직업은 어떤 관계를 갖는가. 이 두 가지는 교회와 어떤 관계를 갖는가. 신앙인은 자기 직업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지긋지긋한 밥벌이의 수단쯤인가. 아니면 부패한 문화를 개혁하고 창조적 문화를 건설하는 소명이어야 하는가.

 

루터교 안에서 칼빈주의 과학자로 살아간 케플러를 우리 시대로 불러들여 신자의 소명 의식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그려낸 본서를 과학자뿐 아니라 목회자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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