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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5 (00:00:00)
기독교는 몸을 긍정한다

사람을 위한 영성



|로드니 클랩,IVP,2006년|


본서를 읽기 전까지는 내 자신의 신체적 몸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딱 꼬집어 내기는 어렵다.

‘신체’에 대해
무관심 하기 쉬워

정신의 차원에 속하는 지식 획득에는 한껏 열을 올렸건만 정작 그 지식을 담
고 이리저리 나르는 신체적 몸에 대하여는 왜 깊은 생각이 없었을까. 몸은
아무래도 영혼의 거처 정도로 생각한 것은 아닐까. 몸보다 영혼을 더 우월시
한 그리스 철학이 배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합리성에 치중해 온 근대 교육을
비판 없이 수용한 결과는 아닐까.
내가 속한 이천 년 기독교 전통에 따르면, 신체적 몸이란 사회적 몸과 분리
될 수 없다고 본서는 주장한다. 신자 개개인은 교회를 떠나 그 존재가 성립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말이 개인 중심의 소비 자본주의 시대에 익숙
한 현대인에게
는 생뚱맞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나는 이 주장에 온전히 동의
한다. 이 주장의 테두리 안에서 우리 선배들이 가진 ‘신체적 몸’과 ‘인간
의 성’과 ‘성찬’에 대한 어떤 이해들을 본서는 심도 있게 논의한다.
신체적 몸에 관해서 기독교는 몸이 부활한다고 전제함으로써 죽음의 순간까
지 몸을 포기하지 않는다. 육체를 부정적으로 파악한 당시의 세상 철학이나
크게 성행한 영지주의와는 판연히 다른 입장이다. 창조와 성육신과 부활의
교리가 이를 담보한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지적인 능력에 너무 치중한 나머
지 사람이 정신만 가진 존재인 것처럼 축소되었고, 몸은 두뇌를 나르는 성가
신 수레로 전락해 버렸다.
긴 역사 속에서 성의 문제를 관찰할 때 비로소 우리는 어떤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독신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 이전의 주장들과 다른 태도를 칼빈
이 취함으로써 독신이 결혼보다 더 이상적이라고 하는 생각은 점차 약화되었
다. 그렇더라도 성적 즐거움을 부정하는 유보적 입장이 칼빈에게서 멈춘 것
은 아니다. 오늘에야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기혼자에게 성을 즐기라고 격려하
는 현실인 것을 보면 그러하다.
저자는 성에
대하여 부정적 태도를 보인 과거의 유산을 놓고 이렇게 반성한
다. “우리 선조들이 지상의 남자와 여자들에게 무성(無性)을 칭송하고 그것
을 가지라고 요구한 것은 실현된 종말론이라는 신학적 오류에 빠진 것이다”
(74쪽). 이런 파괴력 있는 성찰이 신학자도 아닌 평신도에게서 나올 수 있다
니 놀랍다. 나는 이 말에 힘주어 밑줄을 그었다. 나의 시각을 새롭고 크게
틔어준 성찰이어서다. 우리의 구원은 구약 때의 것과 비교도 안될 만큼 진전
된, 실현된 종말의 때에 이루어진 것이나 아직도 신체적·성적 욕구에 흔들
리지 않을 만큼 완전한 것은 아니다.
근대 교육의 우산 아래 있는 우리는 합리성과 지적 능력을 크게 중시한다.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의 몸은 마치 영혼의 명을 받드는 신하인양 격
하되었다는 말이다. 몸이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 것이다. 몸에 관한 이러
한 시각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한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의 태도와 실천에도
결핍은 따를 수밖에 없다.
내게 있어서 성찬은 기념의 성격을 띠거나 기억을 돕는 보조 도구로 축소된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한 몸으로서, 또 한 몸 안에서 성찬에 참여하게 된

. 우리의 몸은 성찬으로 중개되는 은혜와 자비에 참여하게 된다. 성찬은
오늘의 여정에 힘을 공급하는 현재의 식사일 뿐 아니라 예비적 식사이기도
하다. 우리의 몸이 성찬에 참여할 때 유한한 몸이 아닌, 부활 소망을 갖는
몸으로 재확인되기 때문이다.
필자와 동일한 영적 임재라는 성찬관을 나도 가지고 있지만(139쪽), 실제에
서는 기념이나 기억 정도로 축소되는 것만 같다. 성찬에 참여하는 횟수가 적
어서인가. 성찬이 은혜의 수단이기는 하지만 말씀 없이는 성찬 자체로는 아
무 효력도 가질 수 없다는 가르침에서 비롯한 인식 때문인가. 나의 결핍을
그런 탓으로 결코 돌려댈 수 없는 노릇이다.
성찬이란 하나님이 의도하신 세상의 참 모습, 곧 함께 나눔으로써 모두가 풍
성하고 충만한 삶을 배로 누리는 그런 세계가 무엇인지 보여준다는 저자의
신앙 인식에서, 나는 분명 비켜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성찬의 본질조차
훼손할 수 있어

더욱이 과거에 멋지게 창조되었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 멋지게
회복된 세계로 우리를 편입시킨다는 성찬과는 더욱 거리가 먼 것만 같다. 힘
든 것도 사실이었으나 상쾌하고
복된 책읽기요 글쓰기였다.


조주석 목사_합신출판부편집실장
chochuse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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