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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석의 북카페

현실에서 칼빈주의로 살아가기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홍병룡 옮김 | |IVP
399쪽 | 2007년

저자는 자신이 처음에는 칼빈주의 전통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으로 털어
놓는다. 개인의 변화에만 집중하였지 사회적 변화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세상의 억눌린 자와 불행한 자를 돌보는 일은 하나님의 몫이라고 생
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된 자신의 신앙 전통은 전혀 그렇지 않은, 중세
적인 것과는 확실히 구별되는 급진적 성격을 띤 것이었다.

억눌린 자에 대한 관심 커져

그 신앙 전통은 세계 형성적 기독교로서 칼빈주의다. 여기서 세계란 자연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사회 질서를 의미한다. 따라서 칼빈주의는 사회 질서를
개혁해서 새롭게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그 개혁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사회적 불의에 의해 고통
받고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
에 주목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이 서로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약자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지향한다. 하나님의 평화가 임한 그런 사회다.
이런 기독교라야 세계를 형성해 가는 것이지 그렇지 못하면 기독교가 세계
에 등을 돌리고 만다.
이것이 칼빈이 발견한 기독교였고 그것을 칼빈주의라고 한다. 이전의 내세
지향적이었던 어거스틴적이고 중세적인 회피적 기독교와는 크게 다르다. 물
론 양자 모두 구원을 주창하는 동일한 종교지만 후자는 신앙의 내면화에 주
력했고 전자는 사회 구조 개혁에 힘을 쏟았다.
이러한 칼빈주의는 오늘날 분명 필요하고 또 크게 주장되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가 그것을 강하게 요청한다. 좌파 학자인 이매뉴얼 월러
스틴에 따르면, 근대 세계 체제의 주된 특징은 여러 국가와 다양한 민족이
점차 자본주의 경제 체제 속에 하나로 여지없이 편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미와 북서부 유럽과 일본이라는 중심부가 반(半)주변부나 주변부 국가들
을 자신들에게 종속시키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요청되는 것이 정작 무
엇이
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칼빈주의자들이 분명 놓쳐 왔던 바가 있었다. 월터스토프는
이를 찾기 위해 두 신학 사조를 탐색한다. 그것들은 칼빈주의를 가장 훌륭하
게 변형시킨 신칼빈주의와 해방신학이다. 전자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네덜란드에서 발전한 신학이요, 후자는 남미의 카톨릭에서 유래한 신학이
다. 필자는 이 두 사조로부터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분석한 사실에 주목하
고 그것을 탐색한다.
신칼빈주의는 문화 개혁과 관련하여 우상숭배를 배척했고 해방신학은 지배
및 착취와 관련하여 인간 해방을 주장했다. 후자는 탐욕과 권력욕에 추동되
어 중심부가 주변부를 지배하는 세계 체제를 죄라고 규탄하며, 전자는 경제
성장을 궁극적인 선으로 취급하는 세계 체제를 우상숭배라고 비판한다. 그런
데 문제는 신칼빈주의가 성장 우상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전략은 제시하
지만, 스스로 억압과 착취에서 해방되려고 싸우는 집단들에 대해서는 별 말
이 없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이랜드 사태가 불거지자 싸잡아 기독교도 함께 욕먹었다. 그것의
핵심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는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도 있겠으나, 내가 보기

에 기업주의 기독교 사회 사상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을 우
호적으로 볼 수 있는 신학 논리가 매우 빈약했다는 점이다. 약자에 대한 권
리를 시장 논리로 희생시켰다. 이것이 바로 월터스토프가 본서를 통해 우리
의 칼빈주의를 향해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가 아닐까 한다.
본서는 나에게 이런 질문도 던져왔다. 너의 개혁신학은 어떤 것인가. 저자
가 나중에 인지한 칼빈주의 전모가 분명 나의 것은 아니었다. 사회 불의와
관련하여 구조를 배제한 채 개인의 차원으로만 접근하면 칼빈주의 전모에는
결코 다가설 수 없다. 이에 더하여 교회의 원수라고 지목한 세상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좀더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은 사회 구조나 사회 체제와
단단히 손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이 본서를 읽으면서 얻은 나
의 큰 유익이다.

사회 구조에 대한 이해 높여야

“착취당하는 자들의 편에 서는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주님을 고백하는 일
부 그리스도인들과 대립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 세계가 안고 있는 또
하나의 커다란 슬픔이다.” 이게 현실의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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