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성경 계시의 주인이신 성삼위일체 하나님


< 임용민 목사, 새소망교회 >

    

 

신구약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열어 보여주시는 계시이다. 이 말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하심, 무한하심, 불변하심에 가장 합당하고 절대적이다. 왜냐하면 피조된 인간이 철저하게 하나님이 만드시는 눈과 입과 귀와 피부와 감정을 가졌을 뿐, 창조자가 아니기에 하나님을 우리의 실력으로 스스로 열어서 알 수 없다.


성경 전체가, 그리고 각 부분들이 여러 모양으로 이것을 밝히 드러낸다. 성경 시대 전체가 여러 모양과 여러 방식으로,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성삼위일체 하나님, 그분 자신에 대해 분리됨이 없이, 오해됨이 없이 증거했다.


때문에 사도 시대를 마치면서 교회는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실체의 통일성, 실체적 속성의 통일성과 실체적 속성의 교류성, 그에 따른 위격의 구별성을 오해됨이 없이 가르쳤다. 왜냐하면 완성된 계시는 성삼위일체 하나님 그분 자신과 분리됨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약의 교회는 사도 시대를 끝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매우 크게 받는다. 교회는 충분하고 명백한 성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성경 계시로 받은 것이다.


사실 우리는 초대교회가 무엇을 배웠을까 많이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해 충분한 답을 줄 수 있는 초대교회의 흔적은 설교와 성례이다. 이 두 가지 내용은 각각 들리는 말씀과 보이는 말씀으로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드러내는 수단이다.


이 때 설교와 성례는 모두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공통성을 갖는다. 성경 계시가 완전히 완성된 이후에는 교회의 모든 것은 사실상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속한 것만 드러냈던 것이다. 이런 현실 때문에 사도 요한의 제자 폴리캅이 자신의 죽음의 때에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노래했던 것은 이상하거나 신기한 일이 아니다.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 그에게 경배하는 것에 오해나 부족함이 없었다.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극치로서 완성된 계시인 성경이 지향하는 것을 정확하게 고백한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 뿐이다. 그래서 오고 오는 모든 시대의 교회들은 성경 계시의 주인이 되시는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대한 참된 신앙고백을 그 특징으로 갖는다.


이것은 매우 소중한 특징으로, 자신들을 그리스도에게 속했다고 말하는 모든 교회는 항상 인정하는 진리이다. 그래서 이것은 국가가 주도하는 종교 회의가 됐든, 부패한 로마 교회가 됐든, 종교개혁 시기의 민주적 종교 회의가 됐든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진리로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아타나시우스 신경의 경우 다음과 같이 명백한 참된 신앙고백의 선()을 제시한다. “구원받기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모든 것들에 앞서 보편 신앙(catholicam fidem)을 붙드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그 보편 신앙을 전적으로 순전하게 보존하지 못한다면, 의심할 필요 없이 영원히 멸망 받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보편 신앙이다. 우리는 삼위() 안에서의 한 하나님(ut unum Deum in Trinitate)과 일체() 안에서의 삼위()(Trinitatem in unitate)을 경배한다.”


이와 같이 참된 교회의 신앙고백의 선은 매우 명확하다. 우리의 구원을 걸고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참되게 고백하는 선을 양보하지 않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시대는 성경을 통해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배우지 않는다.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실체의 통일성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고, 우리의 이익과 현실이 더 궁금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시대는 성삼위일체 하나님 그분 자신에 대한 참된 표준을 성경을 통해, 교회에서 배우는 것을 불편해한다. 조금 양보해서 배우고 있다 해도, 그 배우는 양에 있어서도 매우 지엽적이며 파편적인 것만 다룰 뿐이다. 그런데도 현대교회는 힘들다 어렵다 하길 중지하지 않고 실용성에 근거해서 이러한 참된 신앙의 길은 불필요한 것이라고 불평한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교회는 성경을 통해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실체의 통일성에 따른 신구약성경의 실체의 통일성 그 자체에서 멀어져도 안타깝지 않은 것이다.


급기야 성경은 조각나고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그 자리에 인간의 욕망을 위한 성경 해석이 자리한다. 인간의 문학과 문화와 문법과 언어가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하고 무한하고 불변하신 속성들 위에 눌러 앉은 꼴이 되고 말았다. 마치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세를 불렀을 때, 모세와 같이 자기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잘 안다고 말하는 형태가 된 것이다. 계시를 주신 성삼위일체 하나님, 계시의 주인이신 성삼위일체 하나님 그분 자신보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와 언어와 지식이 더 탁월하다고 말하는 모양이 된 것이다.


결국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실체의 통일성에 기초한 모든 진리는 거의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소위 사람들이 찾기 원하는 만들어진 하나님으로 가득할 뿐이다. 사실상 성삼위일체 하나님과 그의 계시로서 성경은 인간의 욕망을 편드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러므로 우는 우리 시대의 지성이 발달한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에 눈이 멀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성경 계시의 저자이시며, 주제가 되시는 성삼위일체 하나님 그분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수단으로서 우리의 지성과 문명이 치닫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 자체로부터 멀리 떨어진 우리의 발전과 편리함은 오직 성삼위일체 하나님 그분 자신을 참되게 알도록 할 때 의미가 있고 진정한 의미에서 발전이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세상 자체가 보이는 것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교회조차 보이는 것에 갇히는 모순과 오류 속에 빠져 들어가는 것 자체가 큰 재앙의 증거인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말하는 성삼위일체 하나님 그분 자신과 그의 영광을 말하는 것을 어색하게 여기거나 생소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성경을 들고서 그 속에서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적 본질에 참예하는 길을 잃어 버려서는 안 된다. 그것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언어와 가장 익숙한 문화와, 이 모든 것들로 인해 누리게 된 큰 편리함과 평안에 익숙한 감각 때문에 말이다.


성경은 가장 완전하고 완성된 성삼위일체 하나님 자기 자신에 대한 계시이다. 우리의 현실의 속도와 편리함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교회는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참되게 가르치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러한 진리가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것과 이것을 명확하게 가르치지 못하는 현대 시대와 우리의 편리함이 형벌로 주어졌음을 알고 애통해야 할 것이다.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564 |목회칼럼| 무엇을 심고 무엇을 거두고 계십니까?_안두익 목사
편집부
1746 2016-09-06
563 |김영규칼럼| 인공지능 개발과 신학적 과제
편집부
1880 2016-08-23
562 |목회칼럼| 술이부작(述而不作)_이동만 목사
편집부
1840 2016-08-23
561 |목회칼럼|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는 이단 경계_유영권 목사
편집부
2103 2016-08-23
560 |목회칼럼| 함께하는 교육_손종국 목사
편집부
1679 2016-08-23
559 |목회칼럼| 삼포신자들이여_이은상 목사
편집부
1653 2016-08-02
558 |목회칼럼| "큰 교회? 작은 교회?"_임용민 목사
편집부
1733 2016-08-02
557 |목회칼럼| 교회는 정직자들의 모임_이은국 목사
편집부
1766 2016-07-05
556 |김영규칼럼| 창조 질서와 자연이 주는 복
편집부
1919 2016-07-05
555 |목회칼럼| 점검하며 삽시다_안두익 목사
편집부
1573 2016-06-21
554 |목회칼럼| 동성애는 결코 성적 취향이 아니다_가정호 목사
편집부
1726 2016-06-21
553 |김영규칼럼| 성자 그리스도와 인간 존재 이해
편집부
1760 2016-06-07
Selected |목회칼럼| 성경 계시의 주인이신 성삼위일체 하나님_임용민 목사
편집부
1805 2016-06-07
551 |목회칼럼| 초대교회의 모습을 기대해 보면서_정종은 목사
편집부
2001 2016-05-24
550 |목회칼럼| 하나님의 영광인가 우리의 영광인가?_김영길 목사
편집부
2070 2016-05-10
549 |목회칼럼| 제3의 목사상(牧師像): 장수(將帥) 혹은 성주(城主)_김무곤 목사
편집부
1782 2016-05-10
548 |김영규칼럼| 순수 이성보다 앞선 ‘자연’의 빛
편집부
1969 2016-04-26
547 |목회칼럼| 버티고(Vertigo), 비행착각 현상_박동근 목사
편집부
2287 2016-04-12
546 |목회칼럼| 신뢰(信賴)가 힘이다_김수연 목사
편집부
2175 2016-03-29
545 |목회칼럼| ‘칼(劍)’의 권세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통치_장대선 목사
편집부
2028 2016-03-29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