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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는 이단 경계


<유영권 목사, 빛과 소금의 교회, 총회이대위원장>

 

신학과 현장의 경험과 인격이 균형을 이룬 이단 전문가 양성해야

 

 

필자는 이대위원이고, 이대위 위원장이다. 누구라도 이단에 대해 물으면 답할 자료들을 가지고 다니지만, 나를 만나는 사람들 중에 이단에 대해서 묻는 목회자 혹은 성도의 수가 많지 않다.


필자의 이단 지식에 대한 불신일까? 아니면 이단 자체에 대한 무관심일까? 아니면 스스로 이단으로부터 자신과 교회를 지킬 수 있는 자신감일까? 이단에 대해 궁금한가? 이단에 대해 진지하게 문의한 적이 있는가?


시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눈물로 상담을 호소하는 교회, 가정, 성도들이 있다. 이미 상상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은 경우이다. 피해를 입기 전의 무관심의 정도와 피해를 입은 후의 간절함이 극과 극을 달린다.

 

일반적인 이단에 대한 막연한 자세


통계청 자료를 보면 한국 기독교인의 수가 850만 명 정도이다. 그 중에는 이단의 수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단들이 말하는 수를 무시하고 할 수 있는 만큼 최소화시켜도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150만 명을 훨씬 넘는다. 아닐 것이라고 아무리 부정을 해도 사실이다.


심각한 것은 이단에 빠진 사람의 수가 현재에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이단의 피해는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관련자들을 만나 한국교회가 이단에 대해 힘을 모아 적극적으로 대처하여야 한다고 알릴 때마다 들려오는 유사한 메아리는 미래를 더욱 두렵게 한다. 대부분 이단의 등장과 존재에 대해 어느 순간에 등장하였다가 때가 되면 사라지리라 여기는 듯하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쇠퇴할 것을 쓸데없이 불집을 쑤실 필요가 있을까? 홍보만 해 줄 뿐이다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불 위 냄비 속에 개구리와 같은 한국교회


정통 기독교의 성도 수가 700만 명이라고 하고, 이단의 속한 사람의 수가 150만 명이라고 하자.


신앙을 통하여 추구하는 목표 성취를 빌미로 조건을 붙여 이끄는 이단의 특성상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이 윗선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이단에 빠진 150만 명이 움직이는 것이다. 반면에 일반 교회는 어떠한가? 평균 20%가 열심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 140만 명이다. 매년 끊임없이 이단 단체가 발표하는 전체 인원의 수가 늘어나는 이유이다.


기독교가 갖고 있는 부정적 요소들을 배제하더라도 이단과 관련한 계산만으로도 한국교회는 위기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단에 속한 사람의 수는 늘어나고 있다.


한국교회가 이러한 위기의식을 갖지 않고 있다면, 한국교회는 불 위 냄비 속에 담긴 개구리와 다르지 않다. 냄비 속 개구리는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여유 있게 헤엄치다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현대 이단들의 교묘한 전략과 결과 예상


이단의 관심은 돈이다. 돈 없는 이단을 보았나? 돈이 없는 교주를 보았나? 이단에 세뇌당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내 놓게 되어있다. 사람들이 가정을 뛰쳐나오고, 학교를 그만두고, 직장을 포기하든지 혹은 소홀하게 여기는 것을 보라! 이런 사람들을 동원하는 일은 어렵지가 않다. 때문에 이단은 사람들의 동원능력이 뛰어나다.


많은 돈과 동원된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의 필요를 채워주는 이단들의 소식을 듣고 있지 않나? 벽에 그림을 그려주고, 김장과 연탄을 나눠 주고, 쪽방을 다니며 독거노인들을 돌보며 지역 행사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을 동원하여 적극 참여하면서 봉사를 한다.


아름답게 포장하여 세계를 다니며 갖는 각종 행사와 이벤트에 각국의 수장들과 교주들이 함께 찍은 사진과 기사들을 보지 못하였는가? 간혹 이단 단체가 정치인들로부터, 기관으로부터 표창장을 받는 이유이다.


세상은 이단과 정통교회를 분리하여 판단하지 않는다. 세상이 이단과 정통을 구별할까? 세상은 교리와 신학에 관심이 없다. 다 똑같은 기독교로보고 교회로 본다. 그리고 자기의 필요를 채우는 쪽에 손을 들어준다.


이런 세상을 향해 양의 탈을 쓴 늑대와 순수한 양을 분별도 못하냐고 비난을 퍼부을 것인가? 아니면 제발 분별을 하라고 고함을 질러야 할까? 그렇다고 세상이 반응이나 할까?


이것이 한국교회의 위기의 배경이다. 한국교회가, 우리 교단이, 우리 교회가 이단대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이단의 피해는 단순하지 않다.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케 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교회를 무너트린다. 나는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인해 무너지고 있다는 말을 쉼 없이 쏟아내고 있다

 

무분별한 이단 해제 시도와 관련한 타 교단들의 혼탁한 모습에서 그 심각성을 본다.

 

결론


성도가, 교회가, 교단이, 한국교회가 이단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여야 할까? 이단은 발생 발견 즉시 존재할 수 없도록 하여야 한다. 이단에 대한 자세는 냉정하고 냉철하여야 한다. 이단성과 관련하여 의심이 가면 관용이 아니라, 철저한 조사가 우선이다. 이단에 대한 냉정하고 냉철한 자세 역시 사랑을 배경으로 하여야 한다.


기관이든, 개인이든 이단에 대한 판단은 확인된 자료와 사실에 근거하여야 한다. 이단으로부터 이탈한 사람들에 대해선 철저한 교육과 함께 사랑으로 돌봐야 한다. 이단피해로부터의 최고 전략은 사전예방이다. 이단경계주일 등을 활용하여 이단을 알리는데 힘을 다하여야 한다. 일 년에 한 두 차례 세미나를 반드시 하여야 한다.


이단의 피해에 대한 해결은 교회, 지역연합, 기독교연합기관이 힘을 합하여 하여야 한다. 교회마다 전문이단상담자를 양성하여야 한다. 신학교와 교단에서 이단전문사역자, 신학과 현장의 경험과 인격이 균형을 이룬 이단 전문가를 양성하여야 한다.


이단 및 사이비대책위원회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와 지지가 있어야 한다. 이단 및 사이비대책위원회는 교단으로부터 인정과 존중을 받는 기관이 되도록, 내용에 있어서는 정확하고, 모양에 있어선 겸손하여야 한다.


우리교단이, 총회 이대위가 한국교회의 든든한 파수꾼이 되어주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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