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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 대한 오해 / ‘증거가 필요하다?


< 장대선 목사, 가마산교회 >


신자의 선한 행실은 성경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명령 따르는 것

 

구원파의 헛된 구원관과 톰 라이트와 같은 일부 변형된 칭의론자들의 주장들로 인해 기독교 신앙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칭의의 문제가 상당히 혼란스러운 것이 최근 기독교의 동향입니다.


때마침 큼직큼직한 사건들과 실수들이 교계 여기저기로 터져 나오면서 그동안 우리들이 믿던 기독교 신앙에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부각되면서 기존의 믿음 혹은 칭의 신앙을 재고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에 있어서 우리의 경건이나 노력이 반드시 수반하여야 한다는 생각은 지극히 조심스럽고 위험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에 관련해서는 우리의 그 어떤 것도 반영될 여지가 없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장로교회 신자들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신적 작정 안에서의 구원을 믿는 신앙 가운데 있기 때문에 칭의 이후의 경건과 성결한 삶이 마치 구원받은 증거이며 표증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적 작정의 교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믿는다고 할 적에, 그 믿음이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즉 십자가 사역을 통해 완성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 포함되는 것을 믿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그 믿음은 또한 우리 안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사역 결과로써 발생하는 것이기에, 그러한 믿음은 우리들에게서 산출되는 어떤 수고나 노력도 기여조차 할 수 없는 전적인 은혜일 따름입니다.


로마서 46절에서 바울 사도는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말하면서 아브라함의 칭의가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에 주어졌으며(4:10), 우리를 정죄하는 율법의 마침에 대하여서도 이르기를 모든 믿는 자에게 의에 이르게 하시는 그리스도이시니라”(10:4)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칭의에 대하여 우리에게 수반되는 수고와 헌신을 어느 정도라도 반영하려는 것은 율법의 마침이 되며 모든 믿는 자들을 의에 이르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현저하게 욕보이는 지극히 죄악된 생각입니다.


이와 관련하여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4장은 구원의 믿음에 대하여 다루면서 제2절에 이르기를 구원 신앙의 중요한 역할은 은혜 언약의 효력을 토대로 칭의와 성화와 영생을 위해 오직 그리스도만을 영접하고, 받아들이고, 의지하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제3절에서 이 믿음은 정도의 차이가 있어 약하기도 하고 강하기도 하며, 자주 여러 모양으로 공격을 받아 약해질 수도 있지만 마침내는 승리한다고 했고, 아울러 이 믿음은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여러 각도에서 성장을 거듭해 온전한 확신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믿음, 혹은 칭의에 있어서 모든 원인과 결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자의 행실은 어떤 의미가 있으며, 믿음에 전혀 수반되지 않는 신자들의 경건의 문제는 무엇 때문일까요?


먼저 구원의 믿음에 대해 다루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4장 제1절의 문구를 보면, “선택 받은 자들이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려면 믿음의 은사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이 은사는 그들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사역에서 비롯하는데 대게 말씀의 사역을 통해 일어나며, 성례의 집행과 기도와 말씀의 사역을 통해 더욱 강화되고 증가된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6장에서는 선행에 대하여 다루면서 제1절에서 이르기를 선한 행위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으로 명령하신 것일 뿐 성경의 근거 없이 인간이 맹목적인 열정이나 선한 의도를 가장해 임의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신자의 선한 행실이란 일반적인 의미의 윤리적 혹은 도덕적 행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찾아지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에게서 선한 행실이 따르지 않는 문제는 일차적으로 목회자들로 인한 것이며, 특별히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벙어리가 된 설교자들로 인한 문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구원에 대한 오해는 믿음의 증거를 수반하지 못하고 있는 신자들이 아니라, 진리의 성경보다 신자들에게만 관심을 두고 있는 벙어리들과 장님들로 강단위에 서고 있는 설교자들이 주도한 것입니다.


설교자 자신이 헌신하기로 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어떤 내용인지조차 모르면서 목사 안수를 받고 그저 강단에서 소리나 지르는 벙어리들과 장님들 말입니다.


진리는 지금도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심을 받는 신자들의 복(4:6)에 대한 것이지, 선한 행실로 완성되는 의에 대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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