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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구해야 할 것과 사용해야 할 것들


< 박동근 목사, 한길교회 >

 

세상에는 돈의 가치로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것 알아야

 

 

세상을 살며 한 개인과 공동체를 병들게 하는 가장 원초적 유혹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그것을 돈과 성()과 권력이라고 합니다.

 

몇 년 전 한 청년이 친구들과 함께 어머니와 누이를 불태워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자신이 가족들을 살해한 이유를 강남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보험을 노렸던 것입니다.


작금 세상을 온통 뒤덮은 뉴스를 보면 온갖 비리와 범죄와 살인과 폭력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사람이 죽었다는 말에 충격을 받지 않을 만큼 살인과 폭력에 무뎌져 버린 것 같습니다.


사실 심각한 범죄로 드러난 사건 혹은 그런 사건을 일으킨 범죄자들만을 손가락질 할 수도 없습니다. 돈이 최고라는 가치관을 우리 모두 공유하고 스스로 그것을 지지하며, 세상에 하나의 트랜드로 뿌려 놓은 것은 우리 자신일 것입니다.


단지 우리는 가시적인 어떤 일을 저지르지 않았을 뿐, 그런 잘못된 가치관이 세상의 풍조가 되도록 하는데 모두 한 몫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일부 뿌려놓고 지지하고 개선하지 않은 가치관이 그러한 사건들을 만들고, 그러한 범죄자들을 만들고, 우리 스스로 또한 그 폐해를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돈과 성과 권력은 그 자체로 파괴력을 지닌 유혹물이 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상업주의는 이 병원균들이 욕망으로 타오르도록 더욱 더 부채질하는 것 같습니다. 지식도, 스포츠도, 심지어는 종교적 가치도 돈으로 계산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미 성은 상품화 된지 오래입니다. 권력은 돈을 통해 일구어지고 돈을 엎고 쟁취한 권력은 다시 돈을 벌어들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은 돈으로 엮어져 가고 사람들의 삶의 본질을 지배하는 것도 역시 돈입니다. 이미 물()은 신()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듯합니다.


돈도 성도 권력도 이것 자체가 악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돈은 생명이 없습니다. 이성도 없습니다. 성 역시 그 자체로 악한 것이 아닙니다. 생명이 이어지고 이 생명의 시작이 사랑의 씨앗이라 생각할 때, 성은 생명을 존재케 하는 사랑의 현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권력 역시 그것이 어떤 방향성 안에서 사용되고 영향력을 끼치느냐에 따라 몹시 다른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돈도 성도 권력도 인간이 품은 의도와 가치관에 의해 몹시 추한 것으로 돌변해 버릴 수 있습니다. 불은 가까이하는 거리에 따라 사람을 태워 죽일 수도 있고 몸을 따뜻이 해주는 없어서는 안 될 생존의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그래서 누려야 할 것(thing to enjoy-추구해야 할 것)과 사용해야 할 것(thing to use)을 구분했습니다. 타락은 누려야 할 것이 사용되고, 사용되어야 할 것이 누려질 때 발생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신앙인으로서 신앙적 가치가 정체성을 규정하고, 그 삶의 목적은 자신이 섬기는 주님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사랑하라고 명하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웃 사랑'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대상은, 우리가 누려야 할 대상은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최고의 가치를 위해 사용할 것들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볼 때 우리에게 돈이란 우리의 가치관에 이끌려 가는 삶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사용할 것을 섬기고, 섬길 대상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이용하여(using), 그리고 사람을 이용하여(using) 사용할 것을 추구하고 쟁취하려는 가치관의 전복 현상이 위기에 가까울 만큼 팽배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양심의 영역에서 사기를 치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돈 몇 푼을 인해 사람을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잦은 사건들이 터지고 터져 사람들의 마음을 무뎌지게 합니다. 사람들은 공부도, 예술도, 스포츠도, 모든 것들을 돈의 가치로 측정하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돈의 가치로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말입니다.


돈은 그 가치들을 위한 시녀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사람을 복되게 하라고 존재하는 이 중립적인 도구들이 사람 위에 서는 비극이 없는 사회가 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이 도구들이 주인이 되어, 사람과 심지어는 신앙을 이용해 먹는 일은 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신자들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신뢰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생각에 파고들고, 그 심겨진 말씀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우리들의 생활은 조금씩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강단이 회복되고,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교리에 더욱 마음을 헌신하는 일들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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