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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2 (11:42:02)

교리가 전무한 한국 교회

 

 

< 고경태 목사, 광주 주님의교회 >

 

 

한국 교회를 낙관적으로 평가하는 교회 지도자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모두가 다릅니다. 그러면서도 진보와 보수에서 공동적으로 일치되는 주장은 ‘한국 교회가 교리에 얽매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 비판은 너무나 맞지 않는 비판입니다. 비판을 하는 사람이 교리가 무엇인지 알고서 교리에 얽매였다고 하는 것도 아니며, 실제적으로 한국 교회에는 교리가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의 강단은 기복신앙이나 축복신앙과 같은 기복설교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기복신앙은 이 땅을 목표하는 현세신앙이기 때문에 기독교와 전혀 맞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한국 교회와 어떻게 교리가 어울린다고 평가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교리설교를 하면 절대로 축복설교를 할 수 없습니다. 소요리문답 1번에서 더 나가지 못한 한국교회의 수준이 교리에 얽매여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분석입니다.

 

오히려 한국 교회는 교리가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교리에 얽매이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교리가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무지에 얽매인 한국 교회를 교리가 얽매여 있다는 것은 무지의 극치입니다. 기독교가 무엇인지도, 교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기독교의 미래를 논한다는 것도 아이러니이며, 교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교리를 부정하는 것도 아이러니입니다. 무지는 폭력보다 더 무서운 공격입니다. 폭력에 견디었던 기독교가 이 무지에 침식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리를 ‘얽매는 것’이라고 분석한 것은 자유주의 신학의 모토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을 배우지 않아도 교리를 부정하는 것은 자유주의 신학이 인간 본성에 부합되는 논리를 펼치기 때문입니다. 하르낙은 교리가 기독교의 헬라화임으로 헬라화를 제거하여 기독교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논리가 받아드려져서 헬라의 것을 벗길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가 되지 못했습니다. 하르낙이 제거하려 했던 기독교 헬라화 개념이 삼위일체 교리였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하면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고백을 180도로 수정해야 합니다. 교리를 얽매는 것이라고 평가한다면 삼위일체 교리의 수정은 불가피하며, 성경의 무오 신앙 또한 수정되어야 합니다. 교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이 교리가 성도를 억압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이 되지 못해 기독교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추구해야 될 대상과 목적은 오직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그러나 진보진영에서는 사회참여를, 보수진영에서는 기복신앙을 주장합니다. 두 주장은 모두 머리로 가지 않는 기형 기독교입니다.

한국교회가 바로 가려면 기독교에 대한 이해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언제나 기독교 정신은 ‘처음부터’였습니다. 이것이 개혁정신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초대교회의 신앙을 다시 검토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그래야 16세기의 종교개혁, 17, 18세기 신앙부흥운동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현재에서 시작하고 검토하는 것은 바리새적이며 사두개인적 종교, 즉 자기 눈의 들보를 빼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들이 비판하는 모습을 답습하는 죄인의 전형적인 모습이 됩니다.

 

한국 교회는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고대교회 그리고 성경, 그리고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현재의 문제는 현재에서 풀 수 없는 것이며, 과거에서 다시 시작해야 풀리는 것입니다.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과거에 믿음의 선진들이 고백했던 그리스도의 신앙 고백을 탐구합시다. 그들의 열정으로 생명을 걸고 그리스도를 탐구합시다. 카타콤으로 가야하며, 동굴로 들어가서 그리스도를 탐구하고 고백합시다. 그렇다면 신앙 부흥은 분명히 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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