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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no image |김수흥칼럼|우리는 매월 행복할 수 있다_김수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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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6 2006-03-29
우리는 매월 행복할 수 있다 김수흥 목사_합신초빙교수 우리나라의 언론 매체들은 금년 3월 한 달을 행복했던 기간이라고 말했다. TV 도 그랬고 라디오도 그랬으며 신문 역시 3월 한 달은 우리 국민 모두가 행복 했었다고 대서특필했다. 3월은 대한민국이 세계에 더욱 알려진 한 달이었고 또 국민들의 마음이 하나가 된 한 달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한 달은 행복했다 지난 3월 3일부터 보름 넘게 우리나라는 야구 때문에 행복했다. 세계 최강이 라는 미국을 본토에서 꺾었고 또 아시아 최강이라는 일본을 두 번이나 꺾어놓 았다. 미국의 언론 매체들도 한국이 도대체 어떤 나라냐고 반문했다. 이것은 한국을 몰라서 묻는 말은 아니었다. 놀라서 하는 말이었다. 우리들 스스로도 놀란 것은 2002년 월드컵 때도 4강에 들더니 이번에도 야구 에서 4강에 들었다. 두 종목에서 4강에 든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것이 다. 그 동안 국민들은 지겨운 뉴스에 숨통이 막힐 지경이었는데 이런 시원한 소식, 행복한 소식 때문에 응원에 열을 올렸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 동포 들도 캘리포니아의 야구장에 모여 응원에 열을 올렸고 한국 본토에서도 열을 올렸다. 사람들은 3월 19일, 대표 팀 유니폼 색깔인 파란색 옷으로 갈아입고 잠실야구 장, 서울 시청광장,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대형 전광판이 설치된 전국 월드컵 경기장, 시민 운동장에 모여 ‘대한민국’을 외쳤다. 비록 이날 일본 과의 경기에서 패(敗)하긴 했지만 대한민국이 잘 싸웠다는 데서 모두들 행복 했었다. 이제 사람들은 6월 독일 월드컵에 시선을 돌리고 있다. 또 4강에 가 자는 것이다. 차제에 국민들은 3월만 아니라, 그리고 6월만 아니라 매월 행복하게 사는 비 결을 습득해야 할 것이다. 4월도 5월도 그리고 나머지 7월 이후의 1년도, 아 니 내년 1년도 그리고 영원토록 계속해서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체득해야 한 다. 사실 3월은 행복했었으나 그 행복은 참 행복에 비하면 너무 미미(微微) 한 것이다. 그저 약간의 행복이요 짧은 기간의 행복일 뿐이었다. 우리는 이 제 참 행복에 이르러야 한다. 성경은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 익하니 금생 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말씀한다(딤전 4:8). 육체의 단련은 우리들에 게 약간의 유익을 줄뿐이고 경건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모든 방면에서 유익을 준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데도 유익하고 또 우리의 내 세(來世)에까지 유익이 도달한다는 말이다. 2002년도의 월드컵 4강 성적은 우리 국민들을 즐겁게 했고 얼마 전에 있었던 동계 올림픽 때 우리 선수들이 쇼트트랙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도 국민들에 게 큰 선물을 안겨준 것이며 3월의 야구 4강의 소식도 큰 선물이 되긴 했으 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에 받는 은총에 비하면 너무 적은 것이다. 혹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아야 생기는 것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 그래 서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를 떠나기도 하고 혹은 그냥 기독교 안에 있으면서 매일 불평으로 지낸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의 걸음을 똑바로 걷는 경우 매월 (每月) 행복하고 또 매일 행복하며 매시(每時) 행복하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따르면서(마 16:24) 매일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눅 10:38-42) 또 매일 기도하며(눅 17:11-19; 18:1-8) 주님께서 세우신 전도 자들을 존경 하고(갈 4:14) 부모를 하늘처럼 대하며(엡 6:1) 또한 다른 성도들 을 용서하는 중에 형제자매처럼 사랑하면(엡 5:2; 골3:13) 행복지수는 거의 최고로 올라간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후렴 생략).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후렴 생략)”(찬송가 495장). 더 나아가 우 리가 초막에 살면서도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면(엡 5:20; 골 3:17; 살전 5:18) 오늘도 기쁨, 내일도 기쁨, 오늘도 천국의 삶, 내일도 천국의 삶을 살 게 된다. 매일 매일 기쁨 누려야 중국선교에 일생을 바친 영국선교사 허드슨 테일러는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어떻게 일생을 사역자로 보낼 수 있었습니까? 그러면서도 행복한 비결은 무엇 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다. “제 헌신과 행복의 비 결은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 님의 뜻과 맞추는 일부터 합니다. 그러면 인생이 보람 있지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우리를 맞추어 우리가 서 있는 현장(現場)이 천국이 되 고 바로 이 시간이 행복한 시간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163 no image |목회칼럼| 목사와 설교_변세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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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7 2006-03-24
목사와 설교 변세권 목사·온유한교회 어제는 황사 오늘은 꽃샘추위가 봄과 짝을 이룬 우리의 마음을 시샘한다. 강 단에 선 설교자의 떨리는 마음을 표현이라도 하는 것 같다. 지난주는 어떤 모 임에서 설교학 교수도 아닌 사람이 설교 평가해야 하는 기회가 있었다. 요즘 교역자들은 설교를 참 잘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의 설교도 다시 돌아보게 되 었다. 설교 평가 기회 가져 설교의 목적은 단순히 머리에 지식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여 행 동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설교학에서 강조하는 설교의 핵심은 ‘청중을 끌 어들이는 설교’여야 한다고 했다. 설교를 들으면서 ‘목사님은 어쩌면 내게 꼭 맞는 말씀으로만 설교를 하실까...’라고 청중이 생각을 한다면 그 설교 는 성공적인 설교이다. 청중을 끌어들이는 설교를 하려면 3가지의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목회자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설교여야 한다. 목회자 자신의 삶의 걸 음을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교훈을 받지 못했다면 성 도들에게 줄 수 있는 살아 있는 말씀이 비게 된다. 둘째는, 시사성이 있어야 한다.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해 하 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고 계신가를 선포해야 하며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 야 하는가를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심방과 상담을 통해서 교인들의 형편을 잘 알아야 실생활 에서 필요한 설교를 할 수 있다. 교인들의 형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 으로 그들을 돌보는 목양을 통해 청중들이 오늘 들어야 할 말씀을 정확하게 가르칠 수 있다. 이렇게 3가지의 조건이 잘 갖추어진 설교가 강단에서 선포 될 때 성도들은 여호와께로서 받은 말씀으로 배부르고 양육받으며 말씀에 순 종하게 된다. 목사가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설교사역이다. 사단은 이 직무를 못하게 하기 위해 사소한 일에 바쁘게 할 것이다. 어떤 일도 목사의 설교사역을 방해해서 는 안 된다. 헨리 위드비쳐는 “여러분 가운데 설교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 니다. 성공적인 설교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그의 전생활이 강단을 지향하도 록 해야 합니다. 목사는 한 가지 일을 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그 한 가지 의 일 은 설교하는 일입니다”라고 지적했다. 설교는 가장 어려운 일이다. 설교자의 모든 것을 요구한다. 사단은 한가하게 놀고 있는 게 아니다. 기도와 말씀, 봉사에 신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을 보면 계속 공격해온다. 설교가 신선하고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훈련 과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거의 한 주간을 설교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 “토요일이 되어서야 겨우 준비하는 설교는 마치 식당에서 웨이트레스가 요리 도 안 된 날 음식을 배달하는 것과도 같다”고 부르스 모한니 목사는 말했다. 요리 안된 음식 줄 수 없어 설교는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다. 우리가 저녁식탁을 떠나도 음식은 여전히 남 아있는 것처럼 설교는 주일 아침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설교자가 되기 위해 또 좋은 목자요, 목사가 되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더 많은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매주 선포되어지는 설교 말씀을 통해 영적인 진보와 성숙을 이어가는 교단 구성원들과 성도들의 행복해하는 표정을 보고싶다.
162 no image |목회수상|캄보디아에 무사히 다녀왔습니다_김명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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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2 2006-03-15
목회수상 캄보디아에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긍휼로 그리고 여러 성도들의 뜨거운 기도와 사랑으로 지난 월요일부터 금요일 저녁까지 캄보디아에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한국에 서 간 목회자 축구선수들과 할렐루야 축구단 선수들을 포함하여 캄보디아, 태 국, 베트남에서 온 선교사 축구선수들 120여명이 함께 모여(미안마에서는 비 자 문제로 참석하지 못했음) 제1회 할렐루야 컵 축구대회를 은혜 가운에서 만 족하게 진행했습니다. 할렐루야 축구대회 잘 마쳐 참석자들은 35도 이상의 무더운 일기 가운데서도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면서 스포츠를 통한 멋지고 신나고 아름다운 교제와 협력을 만끽했고, 맛있는 음식 을 나누며 함께 즐거워했고 그리고 저녁에는 예배와 찬양과 기도와 말씀을 통 해 은혜를 받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베트남 팀이 1등, 태국 팀이 2등, 한국목회자 팀이 3등, 캄보디아 홈 팀 이 4 등을 했습니다. 시상식을 거행하며 1, 2, 3, 등에 각각 트로피를 전달했고 참 가한 선두들 120여명 모두에게 각각 10불씩을 격려비로 전달했는데 모두들 놀 라며 너무너무 좋아했습니다. 강변 성도들이 저에게 전해준 사랑의 선물을 전 한 것뿐입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의 축구에 대한 열기는 대단했습니다. 할렐루야 축구팀이 씨 엠립 대표팀과 한 번, 캄보디아 클럽 대표팀과 한 번, 캄보디아 국가대표팀 과 한 번, 모두 세 번 경기를 했는데 캄보디아의 라나리드 왕자가(현 올림픽 위원장, 현 국회의장, 전 총리) 세 경기에 모두 참석하여 열렬히 응원을 할 정도였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처음 있는 일인데 선교사들에게 큰 고무가 되 는 일이었다고 현지 선교사들이 말했습니다. 경기 때마다 캄보디아 왕자와 캄보디아 축구협회 라비 켁 회장과 함께 특별석 에 앉아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두 사람 모두 마음과 생각이 트여 있 었고 영어가 유창했고 유머 감각도 많았는데 쉽게 가까워질 수가 있었습니 다. 기독교에 대해서도 호의적이었습니다. 제가 두 사람에게 감사를 드리면 서 한국에 초대한다고 했더니 아주 좋아했습니다. n 기독교에 호감 보인 캄보디아 왕자 이번 모임은 즐겁고 행복한 모임이었습니다. 이틀을 뜨거운 무더위 가운데서 지내다가 저녁에 설교를 하려고 했을 때 머리가 혼미해져서 도저히 설교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해변 칠언 중 첫 번째 말씀인 “얘들아!”라는 말을 반 복하고 또 반복하고 또 반복하다가 설교를 그만두었는데, 그 혼미한 설교를 녹음해두지 않은 것이 아쉽다고 말하면서 모두들 즐거워했습니다. 둘째 날에는 더위에 완전히 적응되었는지 설교를 한 시간 반 동안 원고도 보 지 않고 잘 했습니다. 많은 선교사들과 한국목회자들이 저와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하다는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모두가 하나님 의 긍휼과 은혜 때문이고 여러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의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 합니다. 참석한 많은 선교사들이 할렐루야 컵 대회를 해마다 계속할 수 있기를 바라 고 있습니다. 이번 할렐루야 컵 대회와 각종 축구대회와 축구 클리닉 등 여 러 모임을 가능하도록 힘에 넘치도록 재정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은 한국의 여 러 교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이번 대회를 위해서 많은 기 도와 수고로 준비하신 엄태근 장로님과 현지 준비위원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캄보디아를 떠나는 날인 금요일 오전 프놈펜 외각 지역에서 어린이 사역을 잘 하고 있는 우리 강변교회의 황인범 군의 사역지를 잠깐 둘러보았습니다. 매 일 오전과 저녁에 700여명의 어린이들이 평화교회에 함께 모여 캄보디아어와 영어와 한국어로 각종 찬송을 얼마나 열정적으로 부르는지 모릅니다. 기도를 얼마나 아름답게 하는지 모릅니다. 성경말씀을 열심히 배우며 캄보디아의 내 일의 희망으로 얼마나 귀하게 자라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희망이 보이는 내일의 캄보디아 그곳으로 가는 길에 시장에 들러 오렌지 1400여 개를 사서 아이들에게 두 개 씩 주었습니다. 강변교회 성도들 몇 사람이 황인범 군에게 전해달라고 저에 게 전해준 사랑의 선물을 열 배로 더해서 전해주었습니다. 너무너무 고마워하 고 좋아했습니다. 사실은 그것도 모두 여러분들이 저에게 전해준 사랑의 선물 입니다. 저는 항상 강변교회 성도들이 저에게 전해주는 분에 넘치는 사랑에 눈물겹도 록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때마다 저에게 전해주시는 여러분들의 사랑의 선 물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며 여러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161 no image |목회칼럼| 아비의 마음_정창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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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0 2006-03-15
아비의 마음 정창균 목사·합신교수·새하늘교회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한 교회의 담임목사와 신학교의 교수가 되어 바삐 지내 고 있을 때 어느 날인가 제 아버님께서 제게 진지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제 창균이 너는 잊어버린다.” 그동안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제 앞가림도 못한 채 신학 공부한다고, 가난한 부교역자로 교회사역 한다고 그리고 유학생활 한다고 나이 40이 되도록 힘들 게만 사는 자식을 바라보며 한시도 걱정을 놓을 수 없었던 아버님께서 이제 안정된 목회에 정착하는 저를 보시며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한 시름 덜었다 는 안도의 표현인 것이었습니다. 한 시름 더신 아버지 아버님은 제가 어릴 때도 제 큰 누님이 결혼하여 잘 사는 것을 보시면서 “내 가 그 아이는 잊어버린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고생하 며 힘든 과정을 지내는 작은 누님을 두고는 그렇게 못 잊어 하시면서 눈에 밟 힌다고도 하시고 자다가도 생각이 난다고도 하셨습니다. 아버님께서 제게 “너는 이제 잊어버린다”고 하실 때까지 저는 아버님에게 “눈에 밟히는 자 식”이고 “자다가도 생각나는 자식”이었던 것입니다. 10년 넘게 담임목회를 해오면서 요즘 들어 저는 교인들을 보면서 부쩍 그런 말씀으로 자식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셨던 아버님의 심정이 절절하게 떠오르 곤 합니다. 부모에게는 “이제 안심하고 잊어버릴 수 있는 자식”과 “눈에 밟혀서 자다가도 생각나는 자식”이 있다는 아비의 그 심정이 어떤 심정인지 우리 교인들을 보면서 실감이 나는 것입니다. 물론 교인들이 제 자식인 것은 아니지만 목회자가 품는 교인들에 대한 마음 이 때로는 마치 아비의 마음과 같다는 것을 확인하곤 합니다. 오랫동안 안타 까운 마음으로 걱정하며 기도해온 사람인데 드디어 모든 게 잘 되어서 안도하 는 마음으로 이제 잊어버릴 수 있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직도 자다가도 생각이 날 만큼 마음이 아프고 또 걱정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다가도 생각나는 성도들 있어 사정이 얼마나 딱하고 마음이 아픈지 한 때는 새벽에 그 사람들을 위하여 기 도할 때마다 “내가 하나님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이 간절하게 들기도 하였 습니다. 단번에 그들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고 싶어서였습니다. 때로는 이 분들만 잘 되면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제 나는 할 일 다 했다”며 홀 가분하게 나의 길을 갈 수 있을 텐 데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인들을 바라보며 이러한 마음을 품는 것은 저의 타고난 성품이 그러해서가 아닙니다. 제가 목회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모든 목회자들이 자기의 교 인들에 대하여 품는 공통된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목회자들 에게 주신 본능에 가까운 것이기도 합니다. 두어 주 전에 지방에 있는 한 교회에 집회인도 초청을 받아 갔습니다. 그 목 사님은 예배당 옆에 있는 목양실을 온돌방으로 꾸며놓고 거기서 살다시피 하 고 있었습니다. 집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목사님 소유의 대형 아파트가 있는데도 거기서 살지 않고 그렇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새벽 한시가 되건 두 시가 되건 자다가도 교인 생각이 나면 즉시 일어나 강단으로 올라가 엎드려 서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부르짖으며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이었 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대형 아파트에서 편히 사는 것보 다 좋다는 것이었습니 다. 어쩐지... 그 말을 듣고서야 저는 그 교회에 들어가 앉으면서부터 품었던 의 문이 풀렸습니다. 교인들이 심지어 장로님까지도 목사님을 마치 아버지를 모 시듯이 하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목사님이 그렇게 아비처럼 그 교인들 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목사님을 보면서 저는 오히려 부끄러웠고 우리 교인들에게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부끄럼 느껴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고속열차 안에서 사도 바울의 말씀이 자꾸 떠올랐습 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기쁜 마음으 로 전할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 우리의 생명까지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습 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아버지가 자녀를 대하듯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보아주었습니다... 진실로 여러분은 우리의 영광이며 기쁨입니 다.” 눈물이 핑 돌며 사도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참 부러웠습니다. 우리의 목회 현장도 이러했으면 좋겠습니다.
160 no image |김영규칼럼| 인상 개념들 창조 계시의 선포와 함께 완성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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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3 2006-03-15
인상 개념들 창조 계시의 선포와 함께 완성돼 김영규 목사_뉴욕학술원, 남포교회 협동목사 과거에 많은 사람들이 시간에 대해서 생각할 때 언어를 사용하고 언어 사용 과 더불어 이어지는 여러 가지 표상들을 그려보며 의식의 지향적 행위로 대상 을 찾았다. 그러나 그런 기능들을 괄호 안에 넣음이 없이도 시간에 대해서 생 각했고, 그렇게 회상하고 생각하며 꿈을 꾸고 있는 자신을 다시 볼 수 있는 자기 의식의 구조와 관계없이 시간 개념들을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크게 어 떤 객관성 없이 생각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과거엔 시간의 단위 개념 빈약해 시간이나 공간이 각각 분리되어 절대적이지 않고 공간과 시간의 연속이 절대 적이라고 생각하였던 아인쉬타인도 여전히 생각하고 표상하여 증명하는 과정 에서 쉽게 속도와 시간을 분리하고 운동과 시간을 분리하고 있음을 보게 된 다. 반면에 진화론을 믿는 많은 학자들은 한 대상의 변화나 다양성, 혹은 여 러 대상들의 다양성과 변화를 쉽게 시간이나 역사로 바꾸어 비약하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행하기도 한다. 의식이 어떤 대상을 지향하고 있고 표상하고 있 는 이상 그 의식은 시간이나 공간을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 른 것이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어떤 절대적 시간이나 절대적 공간을 창조하였다는 기록 은 없다. 다만 빛이 있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에 의해서 밝고 어두운 주 기를 만드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하늘의 광명체들의 창조와 더불어 낮 과 밤의 주관이나 계절과 일자와 연한을 이루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거 기에 광명체들의 운동이나 그로부터 추론된 시간 자체에 대한 언급은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광명체들에 의해서 징조와 계절, 일자와 연한을 만들었다는 것만이 계시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이런 일상 용어들의 배경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려진 것은 없다. 적어도 애굽의 제6왕조(절대적 연대에 대해서 의견들이 많지만 주전 2300년 과 주전 2200년 사이)이래 공공문서나 비문들 및 파피루스 편지들에서 흔히 연한과 달 수 및 일 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사용한 시간 개념들 의 기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그 기원이 종교적인지 아니면 정치 사회 의 구조로부터 온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시간 단위 개념 기원 분명치 않아 예를 들어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군대의 장이 총리대신의 편지를 받고 알려 지지 않은 사람에게 보낸 편지에서 (페피 2세) 제11년 소무(계절)의 첫 달, 23일이라고 첫 줄에 기록이 되어 있고 이어서 그 편지의 도입 부분과 내용이 나온다. 총리대신으로부터 옷을 받기 위해서 군부대를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 고 그 곳에 도착했지만 그 곳에서 6일동안 옷을 받지 못했고 그 부대를 위해 서 옷을 받는데도 온 종일이 걸린 것에 대해 불평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편지를 쓴 관원은 시종 자신을 ‘이 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을 볼 때 이미 주종 관계가 형성된 정치사회구조 안에서 그와 같은 기록문화가 정착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고대 애굽의 6왕조 시기에는 고도의 정신문화도 발달하여 치리자의 ‘의인상’도 발견된다. 재판에 있어서 의를 행하여 강자보다 약자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하여 배고픈 자들에게 빵을 주며 헐벗 은 자들에게 옷을 주고 배가 없는 자를 높이며 자식이 없는 자를 매장해 주 고 과부를 돌보며 악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의인상’이었다. 이런 고대 애굽의 정신문화는 그 후대 증거인 창세기에서 족장들이 내려간 애 굽 땅의 분위기와 모순이 되지 않는다. 그러한 정신문화로부터 발전된 11왕조 나 12왕조의 일상 용어들의 개념들은 창세기의 창조기록 상의 일상 용어들의 가장 가까운 언어적 배경들이다. 물론 이 때에는 과학(수학, 의학 등)도 발달 하여 덧셈, 곱셈, 나눗셈, 제곱근, 임의 수에 대한 개념 등 많은 추상적인 개 념들이 발달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한 수학 문제 중에는 기름 1년의 량에 대해서 하루의 량을 계산하 는 문제가 있는데, 그 계산 과정에 “너는 해를 날로 만들어라. 그 때 365일 된다”는 표현이 나온다. 여기에서 정확히 일년을 365일로 계산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물론 인간을 위한 하늘과 땅의 창조, 코로 숨쉬는 마음의 기 운의 창조,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 인간을 위한 채소와 육축의 창조, 빛 의 창조에 대한 기록도 나온다. 4천년 전에 1년을 365일로 계산해 그러나 그 시대로부터 나온 한 순간, 한 시간, 한 날, 한 해, 죽음 후, 미래 와 영원 등의 일상적인 시간 개념들은 창세기의 창조 계시를 통하여 스스로 있는 자로부터 명하매 존재하는 절대적 창조의 대상들이 되어 피조 세계의 본 질을 결정하는 수단들이 되었다는 것은 모든 발전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159 no image |김수흥칼럼|웃음과 기쁨_합신초빙교수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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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24 2006-03-15
웃음과 기쁨 김수흥 교수_합신초빙교수 국어사전을 살펴보면 웃음은 ‘웃는 동작, 웃는 소리’라고 되어 있고 기쁨 은 ‘마음이 즐거움, ‘반가움’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런 정의를 보면 웃 음과 기쁨이라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웃음’이라는 낱말과 똑같은 뿌리인 ‘웃다’라는 동사를 찾아보면 ‘기뻐서 소리를 내다, 얼굴에 기쁜 표정을 짓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렇다면 웃음이나 기쁨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웃음과 기쁨은 같은 맥락 그러나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두 가지 사이에 차이를 두고 있다. 더욱이 그리 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경우 웃음과 기쁨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 고 있다. 웃음이란 것은 인위적으로 지을 수 있는 것이고 기쁨은 영혼 깊은 곳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무튼 우리는 많이 웃어야 한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TV에서는 ‘웃찻사’ (웃음을 찾는 사람들)나 또는 ‘개그콘서트’(gag-concert) 프로그램을 운 영 하여 국민들을 웃기고 있다. 특별히 ‘웃찻사’는 ‘대한민국이 웃는 그 날까 지’라는 슬로건을 걸어놓고 수많은 젊은 코미디언들이 열을 올리고 있다. 그뿐 아니라 얼마 전부터는 서울대학의 가정의학과에서도 웃음을 연구하며 국 가적으로 보급하고 있다. 특히 웃음치료사나 웃음전문가를 양성하여 사람들 을 치료하고 있다. 그 치료 분야는 놀랍게도 다양하다. 우울증, 암, 심장병 등 다양한 병들을 다루면서 치료한다. 아무튼 지금은 웃음이라는 것이 많이 연구되어 웃음의 효과로는 긴장(stress) 해소, 신체의 유연성 증진, 신체의 순발력 증진, 체력 증진, 정신력 증진, 체중감량(diet), 인간교제 증진, 미 용 증진 등 수많은 효과를 말하고 있다. 요즈음에는 웃음 십계명을 걸어놓고 실천할 정도이다. 그 중에 몇 가지만 보 아도 우선 크게 웃을 것, 억지로라도 웃을 것,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웃을 것, 시간을 정해놓고 웃을 것, 마음까지 웃을 것, 즐거운 생각을 하면서 웃 을 것, 여럿이서 함께 웃을 것 등 계명을 정해놓고 실천하고 있다. 아무튼 우 리는 이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대한민국 전체가 웃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 서 곳곳에서 싸우는 소리 대신 웃는 소리가 들리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 다. 유행처럼 번지는 웃음 십계명 그런데 우리가 더욱 소원하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 전(全) 국민이 기쁨(즐거 움)을 소유하기를 바라고 있다. 참 기쁨이란 것은 인위적으로 지을 수가 없 다. 영혼 깊은 곳에 자리 잡는 기쁨이라는 것을 어떻게 인위적으로 만들 수 가 있겠는가.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을 품어야 한(恨)이 풀리게 되어 있고 만 족하게 되어 있다. 그냥 “하하하”하고 웃어서 될 일이 아니다. 인간의 영혼은 우주보다 귀한 것이어서(마 16:26; 막 8:36) 우주를 다 소유해 도 기쁨이 없고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주신 예수님 을 마음에 품어야 기쁨이 생기게 마련이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점령당하기까 지는 기쁨을 가질 수가 없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예수님 대신 이 땅에 오신 성령님으로 점령당하기까지는 기쁨을 가질 수 없다(눅 10:21). 주의할 것은 예수님으로 점령을 당한다는 말이나 성령님으로 점령을 당한다 는 말이나 또는 약간 달리 표현하여 예수님으로 충만하다는 말이나 성령님으 로 충만하다는 말이나 똑 같은 말이다(롬 8:9-11). 우리는 성령님으로 점령당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한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일을 하 셔서 열매가 나타나게 마련인데 대표적인 열매로 아홉 가지가 있다(갈 5:22- 23). 그 중에 기쁨의 열매가 있다. 기쁨은 성령께서 주시는 열매 우리 국민 모두가 하늘에서 오신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고 성령님으로 충 만해서 항상 기쁨으로 살아야 한다(엡 5:18). 웃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뻐하 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하다. 아무리 한 생애동안 웃으며 살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지 않는다면 웃는 중에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성령으로 충만한 중에 기쁨으로 사는 사람은 반드시 천국에 간다. 우리는 지금 매일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기쁨으로 살뿐만 아니 라 또한 ‘대한민국이 기뻐하는 그 날까지’ 기쁨 운동을 일으켜야 할 것이 다.
158 no image |목회칼럼|희망을 말하자_유병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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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7 2006-03-09
목회칼럼 희망을 말하자 유병의 목사·한양교회 하늘의 별은 캄캄한 밤에 오히려 유난히도 밝게 빛난다. 그래서 시인 에머슨 은 ‘별이 없는 밤하늘은 없다’고 노래했나보다. 이러한 자연의 이치에도 깊 고 깊은 하나님의 계시가 있다는 것은 신학을 전공하지 않았어도 어렵지 않 게 알게 된다. 창세기 1장 3절에 경이롭게 펼쳐지는 하나님의 창조와 새로운 우주질서, 곧 코스모스(Cosmos)가 공허와 혼돈 그리고 흑암의 대 혼란 카오스(Chaos : 무질 서) 속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극도의 혼란 속으로 빠져 가는 우리사회에 던 지는 얼마나 큰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인가? 하나님이 계시고 또 그분의 말씀 이 들려만 온다면 어두운 이 땅에도 빛나는 새 역사는 분명코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공허와 혼돈 뒤에 위대한 창조 세계 펼쳐져 애굽으로 내려간 선민 이스라엘, 400년의 길고 긴 세월이 흘러갔다. 그들은 애굽의 체질로 이미 변해버렸고 애굽의 파라오의 강퍅한 마음은 이스라엘을 더욱 어려운 절망의 밤으로 옥죄어 갔다. 하지만 그것은 영광스런 출애굽의 역사를 재촉한 것일 뿐이었다. 찬란한 다윗 왕조는 이스라엘의 역사가운데 어두운 사울 왕조의 퇴조에서 시 작된다. 하나님으로부터 임명받은 사울이 권력을 사유화함에 따라 나라는 점 점 깊은 혼란과 암흑의 시대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어두운 밤에 다윗의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나라를 반석 위에 세워주시는 것을 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온 세상은 어둠에서 광명한 빛을 보게 되고 죽음에 서 생명을, 절망에서 희망을, 슬픔에서 기쁨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 앞에 하 나님의 음성이 들려지지 않던 400년의 암흑의 시대가 있었다는 것도 기억해 야 한다. 또 예수님은 아무것도 구할 것이 없는 빈들 그것도 어둠이 짙게 대지를 덮고 있을 때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고 저들을 만족하게 먹이신 기적을 보이셨 다. 이 사건이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종교개혁의 찬란한 광채는 또 언제 비추었던가? 권력과 양심, 돈과 성직을 맞 바꾸는 중세 로마 천주교회가 부패할 대로 부패하여 온 세상이 카오스 천지였 을 때가 아니던가? n 가장 극심했던 암흑기에 종교개혁 일어나 현하 우리의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은 어두운 시련의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허우적거리고 있는 듯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총체적 위기이니, 경제적 난국이니, 심각한 양극화의 현상이라든지 모두 우리를 불안 하게 하는 소식만 끝없이 들려온다. 어디 정치인뿐일까? 깨끗한 조국의 내일을 준비해야하는 교육계의 부정과 선 진한국을 이끌어 줘야하는 과학계조차 병들어 국제적 망신을 당하지 않았는 가? 문빗장까지 열어놓고 내 집 식구는 굶기면서도 햇볕정책을 펴왔지만 옷 을 벗은 것은 우리일 뿐이 아닌가싶고 통일은 고사하고 내부 분열만 거듭하 고 국민대통합을 말하지만 양극화현상은 점점 심화되어가고 있다. 점차 심해지는 어두운 현상들 우리 민족은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정이 많은 민족이요, 두뇌가 뛰어난 민족이요, 열심은 그 어느 민족도 따라올 수 없다. 그 덕분에 더 이상 파먹 을 것 없는 좁은 땅에서 이만큼 잘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닌 가? 그러나 지나치게 강한 비판 의식과 협동심 부족, 무엇보다 정직성의 결여 는 국제 표준(Global Standard)에 못 미쳐 수준미달 국가로 낙인이 찍혔으니 이를 어떻게 회복하고 만회할 수 있을지 암담하기만 하다. 이제 우리는 혼자서 김치만 먹고 살수는 없다. 팔 것은 팔고 살 것은 사줘야 하는 세계화의 시대를 가야한다.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었다. 홍콩에까지 가서 원정 시위를 했어도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더 많을 뿐이다. 세계화 의 수준에 맞추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다. 세계 표준화, 결코 장애물 되지 않아 하나님은 공허와 혼돈과 흑암 (Chaos무질서)가운데 가라사대 ‘빛이 있으 라’ 말씀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그 결과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 라.’ 하나님은 아름답고 찬란한 코스모스(Cosmos)를 창출하셨다. 이 얼마나 놀라운 감동인가? 그러기에 지금 우리는 희망을 갖는다. 그리고 이사야, 예레 미야 선지자처럼 희망의 메시지를 준비한다. 인구의 25%가 된다는 크리스천만이라도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살자. 교회도 거품을 제거해보자 하나님이 그렇게도 기뻐하시는 정직성을 회복하고 편협한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세계인을 끌어안아 서로 사랑으로 좋은 이웃이 되어 준 다 면, 고객만족에서 고객감동을 주는 세계 표준을 넘는 한국인이 될 것이다. 민족주의 극복이 당면한 과제 이제 교회는 카오스(Chaos) 뒤에 있는 새로운 코스모스를 바라볼 줄 아는 시 선을 가진 믿음의 사람들을 키우기로 하자.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참 된 용기의 사람들을 키우기로 하자. 그리고 오늘은 희망을 말하자. 그 희망만 이 사랑과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며 그 희망만이 건강 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믿기에 말이 다.
157 no image |김영규칼럼|“인간 의식은 하나님 은총 누리는 독특한 회로”_김영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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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7 2006-03-02
“인간 의식은 하나님 은총 누리는 독특한 회로” 김영규 목사 ·뉴욕학술원 ·남포교회 협동목사 외부의 정보가 눈의 망막을 떠나 시상피질의 정보로 전환되는 과정에 있어서 첫 관문의 정보로 바꾸어 졌을 때 그 영역의 정보들이 눈에서 망막에 입력된 정보입력에 의존하는 것처럼 생각되어 왔었다. 그러나 예상과 전혀 다르게 망 막에 입력된 대상의 크기와 거리와 다르게 주체가 보는 대상의 크기와 거리 에 의존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선입 정보가 판단 근거로 작용해 이것은 그 동안 철학자들이 인식론에서 주체의 능동적 행위가 앞서고 그 의식 의 지향성으로 인한 차연이나 동일성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구성 하는 성격이 있다는 것을 주장해 왔는데, 이런 주장이 실제로 과학적으로 증 명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랫동안 관념주의의 이름으로 존속해 왔다 가 훗설의 현상학으로부터 더 정착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이제 프랑스의 현 대 포스트 모더니즘의 철학자들의 비평이론에 의해서 꽃을 피고 있는 내용이기 도 하다. 즉 우리가 우리 자신을 예리하게 관찰하는 것 자체가 현대과학의 MRI의 사진보다 더 오래된 관찰방식과 기구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 되고 있다. 과거에나 지금이나 우리가 보고 듣는 정보들을 의사들이 신뢰하지 않는 것은 그 정보가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 정보들이 병 원인들을 진단하 는데 환자들이 스스로 대부분 잘못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 고 듣는 것도 계속 수정함으로 정확하게 대상을 인식하듯이, 뇌 자체도 계속 적으로 대상에 대한 외부정보가 입력되어짐으로 자체 스스로 전환된 정보들 을 늘 수정하여 정확하게 대상을 보고 있는 셈이 되고 있다. 그러나 뇌에서 정보들이 여러 가지 형태들로 변이되어 이동하면서 독특하고 복잡한 회로를 이루고 있는 상태가 충분한 대상에 대한 정보들인가를 묻게 된 다. 꿈에서 본 것들도 엉성하기도 하고 모순되지만 눈을 뜰 때만큼의 현실감 과 실재감이 있는 것이 과연 뇌의 시상피질에서의 뇌 화면 자체가 그런 현실 감이나 실재감을 갖기 때문인가를 묻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뇌는 자신의 현실감과 실재 감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외부의 빛의 정보 없이도 눈의 운동이 필요로 하였 기 때문에 뇌세포들의 연장으로 망막에 있는 신경세포들이 있게 되었고 그래 서 그 신경세포들이 필요로 하는 눈을 만들어 그 전체로 현실감이나 실재감 의 유기적 영상장치들이 되어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뇌의 정보 네트 워크는 그 자체의 정보회로들의 움직임을 가지고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외배 엽으로부터 눈을 만들어 정보의 흐름들의 전체 유기적 조화를 통해서 그 실재 감이나 현실감을 만들어 낸다고 본다. 끊임없는 수정 이뤄지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꿈에서도 유기적 뇌 화면 속에 자아가 움직이기 위해서 뇌 화 면의 시상의 각도와 같은 기능들이 재생되는 눈의 운동이 필요로 한다고 가정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능들에 대한 설명 모델들도 꿈에서도 왜 자신이 자 신을 볼 수 있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런 자기를 보는 자기를 전기력과 자 기력 및 힘을 결합하는 수학적 모델처럼 그들이 서로 직각이 되는 표상으로 차원들을 더하는 그런 식으로 표상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3차원 공간에 시 간의 차원이 더해 질 때도 그런 방식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의 차원 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상에 대해서 거리를 갖는 행위 혹은 운동이 시간이라고 한다면, 그 시간은 이미 언급한 뇌의 시상피질과 함께 종합적으로 나타나는 자기를 보는 자기의 운동과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시간은 의식적 차원의 독특한 운동의 종류에 불과하다. 그런 시간 운동은 태양과 지구, 달과의 운동 관계로 표현 된 시간과는 다를 것이다. 거시의 특별한 회로로 대상이 있고 우리의 의식의 특별한 회로로 오기까지 정 보들의 전달회로가 있으며 그 회로들 사이의 꼬임이 거리감이며 그것을 우리 는 시간이라고 부르고 있는 셈이다. 즉 특별한 회로로 시간을 제거할 수 있다 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복잡한 회로들이 있고 그런 회로의 정체적 운동인 의 식 현상이 만든 소리나 그림이 있다고 해서 시간이 있다고 해서는 아니 된 다. 시간은 물질 이상의 존재 우리의 의식은 문제를 푸는 장소가 아니다. 우리의 의식은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는 독특한 회로의 형식일 뿐이다. 그 의식으로부터 만든 모든 가 공물이 나 문화 및 문명들은 그런 회로들의 찌꺼기들이다. 그런 것들에 생명을 걸만 한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들이 우리를 창조자에게로 가까이 가 는 형식이라면 그것으로 최대의 기능을 다한 것이라고 본다.
156 no image |목회칼럼|“지역 전문 이사회 통해 선교 전문성 갖추자”_한광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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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2 2006-03-02
“지역 전문 이사회 통해 선교 전문성 갖추자” 한광수 목사/ PMS(합신세계선교회) 이사장, 사명의교회 필자는 공적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얼마 전에 중국과 러시아를 다녀왔다. 여러 명의 선교사들을 만나게 되었고 선교사들이 개척한 교회들과 선교사들 이 운영하는 신학교를 보고 왔다. 우리 교단의 선교사들의 장점이라면 교회 를 개척하는 것과 신학교를 운영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선교사들의 피땀 어 린 수고의 열매로 인하여 감사를 드린다. 벌써 우리 PMS(합신 세계선교회)에 소속된 선교사가 2백 명이 넘는 이 시점에 서 우리는 이제 선교에 대하여 체계를 잡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그 동 안 우리 교단에서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에는 큰 성과가 있었지만 그들에게 전략을 수립해주며 관리하고 돌봐주는 일에는 매우 미흡하였다. 그 동안 PMS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의 전략과 돌봄은 상당수가 초교파 선교단체 에게 맡겨져 왔었다. 그 증거로 현재 PMS에 소속된 선교사들 가운데는 절반 이 넘는 53%가 Dual Membership으로 이중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교단의 초 창기에는 어쩔 수 없이 초교파 선교회에서 가지고 있는 전문성의 기능을 의존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KWMA(한국세계선교협의회)에 등록된 초교파 선교단체의 숫자를 보면 2003년 2 월에 82개 단체에서 만 3년째인 현재 105개 단체로 늘어났다. 즉 23개 단체 가 생겨난 것이다. 반면에 교단 선교부는 17개 교단에서 오히려 15개 교단으 로 2개가 줄어들었다. 아마 기존의 선교단체가 나중에 가입한 것도 있겠고 새 로 생겨진 단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15개 교단 선교부(모달리티)와 그 7 배에 해당하는 105개의 초교파 선교단체(소달리티)는 엄청난 대조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PMS에 소속된 선교사들이 이중으로 가입되어 있는 선교단체들이 과 연 전문성이나 선교사들을 돌보는 면에 있어서 만족할만한 것인가? 소수의 몇 몇 단체들 이외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즉 전략, 돌봄, 감독 등이 필요한데 전혀 감당하지 못하는 초교파 선교단체가 많이 있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이 제 선교사들을 돕기 위해서는 우리가 앞장설 때가 되었다. 이들 소달리티들은 모달리티보다 기능적인 전문성을 갖추었을 때 우리는 마땅 히 도움을 받아 협력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그러나 PMS가 이제는 선별해 야만 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선교사를 후원하는 교회수도 많이 생겼고 같은 지역에 파송하는 선교사 수도 늘어나고 있으며 선교부에서 세계 선교회 로 격상시켜졌다. 그러나 막상 선교사들을 잘 관리하며 전략적인 도움을 주 기 위해서는 12지역으로 나누고 그 지역을 중심하여 후원하는 교회들을 중심 으로 전문 이사회가 조직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조직된 지역 전문 이사회에서는 PMS가 하지 못하는 일을 도울 수 있 을 것이다. 예를 들면 그 지역에 파송된 선교사들을 돌보는 일, 평신도 전문 인 선교사들을 훈련시켜서 붙여주는 일, 선교사 자녀들의 교육문제, 선교사들 의 복지 및 더 나아가 선교전략까지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서 수립할 수 있다 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존의 소달리티에서 해오던 것들을 전문성 단체와 연계해서 맡아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이 지역 전문이사회가 잘 운영된다면 그 동안 발생했던 여러 가지 문제들이 보완되리라 믿어진다. 즉 이중 소속 때문에 생기는 재정의 투명성 결여, 여러 곳을 통해서 지시를 받음으로 통제 불능, 선교사가 후원교회의 대표에게 알리 지 않고 직접 성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등 많은 문제들이 해소될 것이 다. 뿐만 아니라 좋은 면에서 더 큰 역할을 기대한다. 지역 전문이사회가 더 욱 발전된다면 노회의 역할도 감당하여 선교사들을 실질적으로 선교지에 세워 질 교회를 세우는 것과 목사와 장로의 임직 및 성례식 거행, 청원, 소원, 부 동산 관리 등의 일을 하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지역 전문이사회가 출발할 수 있을까? 자연스러운 방법 은 같은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이 자신들을 후원하고 있는 교회나 단체의 명단을 PMS에 알려주면 그 대표자들을 소집하여 간략한 규정을 알려주 고 그들 스스로 이사회를 조직할 수 있도록 PMS가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이 미 선교사 파송 예배 때 모여 있는 후원교회들 중심으로 조직된 전문이사회 도 생겨났다.
155 no image |김수흥칼럼|부정과 비리 언제쯤 드러나는가_김수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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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2 2006-03-02
부정과 비리 언제쯤 드러나는가 김수흥 목사·합신초빙교수 오늘날처럼 부정과 비리가 심각한 시대도 없을 것이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지금은 과거에 비해 부정과 비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부정과 비리가 없는 분야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과학계에 도 부정과 비리가 심하여 과학 논문, 과학 잡지에까지 가짜가 있는데 국내외 를 가릴 것 없이 많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세상 곳곳에 가짜 판쳐 최근 발표한 바에 의하면 중국은 짝퉁(knockoffs) 천국을 이루었다고 한다. 식품뿐만 아니라 각종 생산품에 걸쳐 우리 한국 상품을 마구 복사하여 한국 의 진짜 상품과 구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 북한은 위조 달러 를 만들어 가만히 앉아서 돈을 쌓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측에서 국제 사회에 홍보하며 또 실제로 북한 당국에 말을 해도 별로 시원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범죄는 날이 갈수록 더욱 극성 을 부린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어떤 젊은이는 몇 년 전부터 시작하여 최근까지 70명 이상의 여성을 향하여 강도 강간을 저지르고 하는 말이 자신도 자신이 저지른 강간 회수에 놀랐다 고 고백했다는 것이다. 이 성범죄는 또 선진국일수록 후진국에 뒤지지 않고 있다. 미국 뉴욕의 맨해튼의 부자들은 ‘매춘고객리스트’에 떨고 있다는 것 이다. 미국의 수사 당국은 최근 국제매춘조직을 적발하여 ‘매춘고객리스트’ 를 입수함으로써 부자들이 자기의 이름이 그 리스트(list)에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하고 노심초사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것이다. 이 부정과 비리는 언제쯤 드러날 것인가. 사람들이 추측하는 대로 영원히 드 러나지 않을 것도 있을 것인가. 혹시 드러난다면 언제쯤 드러날 것인가. 금 방 드러날 것인가. 아니면 인류의 종말에 드러날 것인가.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첫째,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는 당사자는 즉시 안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양심이라는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 “양심”이란 ‘선악의 판단을 위해 하 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기능’을 뜻한다(롬 2:15; 고후 4:2). “양심”이란 글자대로 말하면 사 람에게 내재(內在)해 있는 지식으로서 선과 악을 식별하 는 기능이다(롬 2:15; 고전 10:25; 딤전 4:2). 양심은 인간에 대하여 재판관 의 입장에 있다. 사람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양심을 반려자(伴侶 者)로 삼고 있다. 그래서 양심이 맑은 사람들은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는 즉시 자기의 잘 못을 인식하게 되고 혹시 양심이 화인(火印) 맞았다고 해도 희미하게나마 인식하 게 된다는 것이다.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는 즉시 자신의 부정을 인식하는 크 리스천은 양심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즉시 죄를 고백하게 된다는 것이다 (행 23:1; 24:16; 고후 1:12; 4:2; 딤후 1:3). 둘째, 즉각적인 자복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은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고 난 후 얼마 안 되어 하나님께서 드러내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전도자의 죄 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비교적 빨리 드러내시고 그렇지 않은 경우 어느 정도 의 시간을 두고 드러내신다. 이유는 전도자는 일반 성도들보다 한발 먼저 거 룩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영국의 어떤 남자는 앵무새 때문에 자기의 불륜이 드러났다고 한다. 앵 무새는 이 남자가 다른 여자와 자주 전화하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흉내내 는 바람에 부인한테 들통이 난 것이다. 성도의 죄는 모두 세상에서 다 드러나 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렘 25:29; 겔 9:6; 벧전 4:17). 성경은 성도 들을 향하여 점과 흠이 없이 되라고 명령한다(엡 1:4; 5:27; 벧후 3:14; 계 14:5). 우리는 하루 빨리 죄를 고백하는 작업에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으로부 터 은혜를 받고 또 쓰임을 받아야 할 것이다. 셋째,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서 불신자의 부정과 비리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마 25:31-32; 롬 14:10; 고후 5:10). 세상에서는 숨겨있던 것들도 그리스도 의 심판대 앞에서는 다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 때가 되면 그리스도로부터 정 죄의 심판을 받고 지옥으로 가야한다. 드러나지 않는 죄 없어 우리 성도들은 세상의 불신자보다 조금 낫다고 해서 안심할 것이 아니라 아 예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지 않아야 할 것이며 혹시 잘 못을 저질렀다면 빨리 자백하여 세상을 밝게 살아야 할 것이다.
154 no image |목회칼럼|골로새서에서 찾은 교회 일군의 모습_신현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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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3 2006-03-02
골로새서에서 찾은 교회 일군의 모습 신현수 교수/ 평택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교회의 일군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러면 교회의 일군 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교회를 섬겨야 합니까? 사도 바울이 골로새교회를 섬기 는 자세에서 우리는 한 좋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종일 뿐만 아니라 교회를 섬기는 일군이었습니다(골 1:23). 그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말합니 다. 교회는 바로 주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는 기꺼이 교회를 섬기 려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교회 섬김의 일에 따르는 어려움과 고통을 기쁘 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일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몸에 채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골 1:24). 왜 그렇습니까?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의 몸으로 이 땅 에 오셔서 하늘 나라의 진리를 선포하시고, 사람의 모든 연약함을 고쳐주시 며, 마 침내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것은 인류를 죄에서 건져내기 위한 고난이었습니다(골 1:13-14. 20-22). 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 이 영원 전에 계획하신 인류 구원이 성취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은 이 땅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 이 예수님을 주로 믿고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은 이 구원의 일이 그의 백성의 복음 사역을 통해서 이루어 가시기를 기뻐하 십니다. 이 일에는 고난이 따릅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 안에 여전히 죄의 성 품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가기 위해서 교회의 일군이 된 것이 우연이니 자신의 뜻이 아니 라 하나님의 계획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러면 교회의 일군으로서 교회를 섬기는 일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권면하며 가르치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 도가 주가 되신다는 복음의 진리는 본래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에게 감추어진 비밀이었으나, 이제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에게도 알려졌습 니다.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과 더불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지으신 분이십니 다. 뿐만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는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 에 오셔서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고 다시 사심으로써 세상 의 산 소망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를 주로 믿는 사람들을 그의 말씀으 로 이끄시고 다스리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땅 사람들이 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그의 다스림을 받아 가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 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섬김의 일의 목표는 어디까지입니까? 그것은 모든 사 람이 그리스도안에서 완전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라 함은 먼저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는 모두를 뜻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공동체적입니 다. 나 혼자만 잘 믿어 천국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신앙적 이기심이며 성경 적 태도가 아닙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한 사람이라도 소외되는 경우가 있으 면 그것은 그 공동체의 머리가 되신 주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한 걸음 나아가 ‘모든 사람’은 이 땅 모든 사람을 포함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섬김의 일의 대상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이 언젠가는 복음을 받아들여 주님의 백성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록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아 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삶의 원리에 따 라 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다스리는 만물의 주가 되시 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완전케 되도록 하는’ 것은 전연 실수가 없도록 해 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성숙하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교회를 섬기는 교회의 일군은 이러한 시 각과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김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것은 지혜롭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 다. 하나님이 모든 일들을 주권적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하지만 이것은 교회 를 섬기는 일에 우리가 손을 놓고 있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 에서 무거운 책임 의식을 가지고 우리의 모든 지혜를 동원해야 합니다. 우리 가 섬겨야 할 지체가 어떤 믿음의 수준계에 있고 어떠한 삶의 상황에 놓여 있 n는지를 잘 파악하여 그것에 맞는 가르침과 훈련을 해야 합니다. 교회의 일군으로서 해야 할 우리의 섬김은 적당히 할 일이 아닙니다. 사도 바 울은 힘을 다해 교회를 섬겼습니다. 마치 레슬링 선수가 경기에 이기기 위해 온갖 힘을 쓰듯이 말입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 는 일이기에 철저한 사명감과 불타는 열정을 가지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 신 그 일에 열정을 힘을 다 기울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하는 섬김의 일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해야 합니 다. 사도 바울은 ‘내 안에 역사하는 이의 역사를 따라’ 교회를 섬긴다고 가 르칩니다.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일은 내 힘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서 주시는 힘으로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바로 깨달을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지혜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혜롭게 섬기기가 어렵습니다. 뿐만 아니 라 우리는 진리를 알고도 그대로 행할 수 없을 만큼 연약합니다. 따라서 우리 가 섬기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믿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의 다스림을 받아가도록 하는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야 할 수 있습니 다. r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도하는 일입니 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때 우리는 믿음의 일을 해 갈 수 있 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일군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의 무릎을 꿇 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하는 일은 열매도 맺기가 어렵고 결국 오래 가지 못합니다. 우 리가 교회를 섬길 때 언제나 기억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또는 공동체적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힘을 힘입는 일입니다. 이러 한 뜻에서 일찍이 고 박윤선 목사님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결코 기도보다 앞 서지 말라"고 강조하셨습니다.
153 no image |목회칼럼|어떤 목사를 선호하는가?_변세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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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0 2006-02-22
목회칼럼 어떤 목사를 선호하는가? 변세권 목사-온유한교회 아무리 눈이 와도 벌써 들녘에 꿈틀대는 봄기운을 막을 수는 없나보다. 그래 서 그런지 오늘도 슬픈 음악 같은 비가 내린다. 목회를 하면서도 이런 슬픈 연가 같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바르게 배웠다는 것의 명제는 있지만 조금이 라도 다르면 안 된다는 억지 함정에 나도 모르게 젖어있다. 과연 나는 어떤 목사인가? 어떤 목회자인가 자문해 송인규 교수는 ‘목회와 신학’에서 ‘바람직한 목회자상’에 대한 글을 실었 다. 그 글에서 교회 성도들이 목사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목사 를 선호하고 목사가 어떤 모습을 갖추기를 바라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소견을 쓰고 있다. ① 주술적 기능 : 목사를 신적 축복과 저주의 중재자로 생각한다. 그래서 목 사는 교우들의 자녀나 사업이 잘 되도록 복을 빌고 능력을 발휘해 병을 고치 는가 하면 필요한 경우 불행이나 재앙을 쫓는 권능의 대리자로 이해한다. ② 경영적 기능 : 목사를 교회라는 조직체의 최고경영자(CEO)로 본다. 교회 란 어쩔 수 없이 하나의 조직체로서 목사는 끊임없이 교회를 성장시켜야 한 다. 예배당을 크게 짓고 사역을 다양화 하며 수적 발전(헌금 및 위원)을 꾀하 는 종교적 영영에서 기업가를 요구한다. ③ 교육적 기능 :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가르쳐야 한다. 물론 자신 이 먼저 말씀의 원리에 의해 변화되어야 한다. 목사의 설교, 성경공부 인도, 일대일 양육, 상담, 지도자 훈련 등에서 뛰어나고 성경말씀과 진리 됨에 대 한 확신 및 열정으로 열매를 거둬야 한다. ④ 윤리적 기능 : 목사가 인격자의 본보기요 윤리적으로 흠 잡을 데 없는 지 도자가 되기를 고대한다. 목사는 말씨, 예의범절, 행동거지, 생활방식에서 상 식에 부합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뿐 아니라 특히 돈, 성(性), 권세, 명예 와 관련해 깨끗해야 한다. ⑤ 보양적 기능 : 목사의 기능은 교우들을 돌보고 보호하며 감싸준다. 교우들 은 목사가 자신들에게 위로를 베풀고 항상 부드럽게 맞이해 주기를 기대한 다. 그리고 목사로부터 각종 신앙적, 일반적 사안에 대해 묻고 개인적 조언 을 구한다. ⑥ 비판적 기능 : 목사는 시대풍조와 더불어 신앙 공동체의 기만적 경향들을 통찰력 있게 읽어내는 선지자로 이해된다. 목사의 날카로운 사정가(査正家) 적 안목은 세상의 모든 왜곡과 위선과 오류와 불의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그렇다면 교우들이 기대하는 여러 가지 기능에 대해 어떤 소신과 주관을 가져 야 하는가? 주술적 기능은 거의 추천할 만한 것이 없다. 경영적 기능도 긍정적 요소보다 부정적 요소가 더 많다. 경영적 기능은 교회를 유기체가 아닌 조직체로만 부 각시킨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비록 교회에 조직체적인 양상(인원, 예산, 활 동, 직책 등)이 있고 필요하겠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유기적체 본질의 맥락 에서 가능하다. 즉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몸을 구성한 지체끼리 상합하고 연락함(골 2:19) 그리고 신앙 공동체적 관계 형성(용서, 용납, 겸손, 사랑, 섬김, 존경, 친절 등)이 우선이다. 교육적 기능 및 윤리적 기능은 어떤 기능보다 목사가 갖춰야할 본유적 면모 에 가깝다. 그러나 한 두 가지 기능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보양적 기능도 목사의 목양(牧羊)적 책임과 가장 긴밀하게 연관된이다. 한 가지 주의할 점 은 교우 들이 항상 목사의 도움, 조언, 돌봄만을 의존하는 바람에 소아(小兒) 로 남게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비판적 기능 역시 어느 정도 요구된다. 우 리 각 개인과 신앙공동체는 늘 부패한 본성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누군 가 비판과 교정, 책망, 권계를 필요로 한다. 전인적 기능 갖추고 있어야 목사에게 기대할 가장 중요한 기능이 교육적 기능, 윤리적 기능이라고 생각한 다. 동시에 항구적 의존성만 경계한다면 보양적 기능 역시 매우 중요하다. 그 다음에 비판적 기능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올바른 복의 개념이 전 제될 경우에 주술적 기능도 제한적으로나마 수용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신앙공동체의 유기체적 본질과 전도에 의한 수적 성장을 잊지 않는다면 경영 적 기능 또한 보완적 기능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본다. 이 모든 것을 갖출 수 있다면 그리고 이 모든 기능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성도들이 옆에 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칭찬받는 목사일 것이다.
152 no image |목회칼럼|진실을 거짓처럼 설교해서 되나요?_이재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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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2 2006-02-22
진실을 거짓처럼 설교해서 되나요? 이재헌 목사_대구 동흥교회 설교자의 한 마디 한 마디 외침에 사람들의 얼어붙었던 마음이 눈 녹듯 녹아 나고 회개의 눈물을 쏟아내기를 기대하는 것은 교회를 섬기며 말씀에 수종드 는 모든 목회자들이 갖는 동일한 소망일 것이다. 선포되는 말씀을 듣고서 삶 의 기준과 방법, 가치관이 달라지면서 죄악의 담을 넘어 구원의 성 안으로 들 어오는 무수한 영혼들을 바라보는 것은 말씀을 선포하는 자들에게 주어진 최 고의 행복이면서 또 가장 큰 기도의 제목이기도 하다. 즉각적 반응 기대하는 설교자 그러기에 말씀을 들고 강단에 설 때마다 이런 감동과 역사를 기대하며 기도하 는 것이 모든 설교자의 공통된 모습이다. 하지만 혼신을 다하여 진리를 선포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기대하는 영적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차갑게 굳어 있는 성도들의 모습을 볼 때 밀려오는 부담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 또한 모든 설 교자들이 함께 느끼는 고통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 주변에는 거침없이 쏟아지는 유창한 말들과 청중을 사로잡는 유머와 제 스처로 이른바 스타가 되어있는 설교자들이 대중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을 본다. 복음의 대중화라는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매우 반가운 현상이지만 또 다 른 한 면에서는 대중의 호감을 쫓아가며 외형적인 화려함으로 포장되어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우를 떨쳐 버리기가 어렵다. 수많은 사람들이 웃고 박수 를 치고 눈물을 닦아 내기도 하지만 과연 진정한 영적 변화의 모습이 그 속에 서 일어나고 있는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목사님이 연극배우인 성도로부터 연극 초대장을 한 장 받았다고 한다. 평소에 즐겨 연극을 감상하는 분은 아니지만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의 성도가 직접 출연하는 연극인지라 시간을 내어 관람을 하게 되었다. 연극이 진행되 는 동안 목사님은 알 수 없는 열등감과 부끄러움에 견딜 수가 없었다. 이유 인 즉 그 많은 관객들이 배우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절대적인 반응을 보이며 환호하고 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속으로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목사님은 연극이 끝나자 곧 바로 그 성도를 찾아 가 답답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다. “성도님이 한 연극은 한 사람의 작가가 만든 이야기 아닙니까? 그런데 그 꾸 며낸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이렇게 환호를 하고 눈물도 흘리니 도대체 어떻 게 된 겁니까? 내가 강단에서 설교할 때는 진실만을 말하는데도 이런 반응을 본 적이 없고 오히려 졸음을 참지 못하는 성도들이 너무나 많으니 이것이 도 대체 어떻게 된 거죠?” 방금 무대에서 내려온 성도는 아직도 마르지 않은 땀을 닦으면서 이렇게 말했 다. “목사님은 진실을 가지고 마치 거짓말처럼 말씀하시는데 저희는 거짓말을 가 지고서도 마치 진실처럼 말하잖아요.” 설교자는 진리만을 말하도록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성급한 영적 변화 의 열매를 기대하며 숙성되지 못한 대중들의 인스턴트식 기호에 치중하여 그 값지고 소중한 진리를 대수롭지 않은 부스러기나 마치 생명 없는 조화의 아름 다움에 바꾸어 버리지는 않는가 하는 두려움이 있다. 전혀 진리가 아닌 허상(fiction)을 아주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꾸미고 가꾸어 서 마치 대단한 진실(true, fact)인 것처럼 아름답게 진열해 놓은 진열대 앞 에서 온통 정신을 빼앗 겨 버리고 환호하는 세상 사람들을 본다. 비단 개인만 이 아니다. 온 사회와 대중이 그러한 외형적 매력에 빠져들면서 마치 집단 체 면 상태로 다가가는 듯한 모습이 우리 주변에 편만한 것을 본다. 그 엄청난 사회 체면은 서서히 허상을 진실로 탈바꿈 시켜 나가고 있는 듯 하 다. 그들에게 더 이상 진실의 근원은 의미가 없어지고 단지 가시적이고 현실 적인 아름다움과 풍요로움, 환희만이 최고의 가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외형주의 가치관이 진리의 말씀까지도 포장하여 대중의 기호에 맞게 차려 내 고자 하는 유혹이 설교자를 사로잡는 다면 진리는 계속적으로 가식과 위선의 포장 속에 갇혀 버리고 말 것이다. 결국 생명은 아무런 힘도 나타내지 못하 게 될 것이다. 가식과 위장은 생명력 없어 거짓을 진실처럼 포장하여 끝없이 유혹하는 세상을 향하여, 진실을 진실답게 선포할 수 있는 설교자로 서기 위하여 몸부림치며 기도하는 것이 생명을 가 진 진실을 선포하는 한 사람의 설교자로서 가져야 할 가장 우선된 일임을 새 겨본다.
151 no image |칼럼|GOP 근무와 탤런트 원빈_안만길 목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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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8 2006-02-16
칼럼 GOP 근무와 탤런트 원빈 안만길 목사_염광교회 필자의 가족은 아들이 셋이다. 어떤 분들은 딸이 없어서 안 됐다고 측은하게 생각한다. 집사람도 아들이 셋인 것을 만족하고 감사하였는데 작년에 장모님 께서 소천하실 즈음에 생각이 조금 변한 것 같았다. 처가는 6남매로 딸이 다 섯인데 자기들이 어머니를 정성스럽게 모신 것을 생각하노라니 역시 딸이 있 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 같다. 큰아들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입대를 미루다가 작년 7월에 강원도에서 훈련을 받고 지금은 강원도의 한 GOP에서 근무 중이다. 처음 배치 받은 곳이 행정반 이었는데 성격이 꼼꼼한 편이 아니라 힘들어하였다. 그래서 지금은 최전방 초 소에 내려가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 편지가 왔다. 톱 탤런트 원빈이 자기 중대로 전입해 왔다는 것이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남쪽의 국군으로 열연하였던 매우 인상적인 배우이 다. 아마 부대가 한참 들떴으리라 생각된다. 처음 전입 와서는 함께 웃고 잘 지내 다가 막상 눈이 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눈을 치우고 보급차량의 운행이 힘들어 밥도 비상식량만 먹으니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인다고 한다. 화려한 연예계에 있다가 군대라는 제한된 범위 안에 서 생활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톱 탤런트가 늦게라도 군에 입대하여 제 일 어려운 환경에서 근무해나가는 것을 볼 때 대견해 보인다. 아울러 우리 아 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니 큰 기쁨이기도 하다. 아무쪼록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국 남자들의 대화 중에 군대 이야기를 빼면 할 말이 없다고 할 정도로 군 입대 경험은 남자들의 생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군대를 다 녀와야 사람이 된다고 하는 말까지도 있다. 군 복무를 통하여 강인한 체력을 단련하고 명령과 복종의 엄격한 상하관계와 강한 훈련을 통하여 어떤 고난과 위기도 극복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또한 전우애를 통하여 더불어 사 는 따뜻한 인간성이 자라게 되는 것이다. 군복무는 믿는 청년들이 과거에 많 은 핍박 가운데서도 신앙을 지켜서 승리했다는 신앙의 훈련장이기도 하다. 이 렇게 볼 때 군복무는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면이 더 많은 것 같다. 요즈음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하여 많은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 회가 대체 복무제를 권고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권고가 특정한 이단 종파의 편의를 위한 권고가 될까 심히 염려된다. 우리나라가 오늘의 자유를 얻게 위하여 우리 조상과 선배들이 얼마나 많은 피 를 흘렸는가? 거기에는 UN 참전 16개국의 젊은이들도 함께 피를 흘렸다는 것 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자유는 결코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진정한 평화주의자는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평화는 허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시대가 변하여 기존의 통념이 무너져 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수호되 어야 한다. 건강한 믿음의 청년들이 국방의 의무를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의 길이다. 교회가 개혁주의적인 평화관을 가지고 국방의 의무를 소중히 여기며 군입대 한 젊은이들을 위하여 기도와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경건과 영성 추구하는 시대 과거 중세시대에는 교리적 확신으로 일차원적 평면 신앙의 삶에 영향력을 미 치고 상당한 감동을 경험했지만, 포스트 모던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의 도시 사회는 우리에게 더욱 깊고 다변화된 차원의 영적인 요구를 가지게 한다. 때 문에 강단에서 보다 근원적이고 존재론적 깊이를 필요로 하는 현대인들의 피 폐를 효과적으로 만져줄 수 있는 깊은 영성을 제시해야 할 때가 되었다. 오늘의 현대인은 한 인간으로서 소화할 수 있는 건강한 분량을 훨씬 초과하 는 양의 정보와 수많은 만남과 세밀한 관계들, 다변화된 시스템, 문화적 현란 함과 스피디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런 삶의 무게 속에서 균형이 어긋난 스트레스를 분초처럼 힘겹게 견뎌내는 현대인들에게는 구태의연한 예배나 부 흥회 방식으로 영적 욕구를 채울 수 없다. 이미 기독교회는 자본주의적 운영방식과 물량주의적 성공과 추구에 동기를 부여하고 심화시키는 일을 해왔고 이런 토양은 결국 교회 내에 기복적 신앙문 화를 형성해 놓았다. 그리고 그 저변에서 악순환으로 ‘싸구려’ 그리스도인 들과 ‘명목상’ 그리스도인들을 대량 생산해 왔으며 맛을 잃은 소금이요 밝 음을 상실한 희미한 빛으로 나타나도록 했다. 이러한 부작용들은 한국기독교 전반에 걸쳐 자성의 동기를 갖게 만들었다. 작금에 와서 기독교계는 스트레스와 피곤함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 그리스도 인들을 위하여 영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건전한 신앙생활을 유도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 고 있다. 성경공부, 제자훈련, 아버지학교, 영성훈련, 성경통독훈련, 맞춤전도나 세미 나 등 다양한 활동들이 만들어지고 진행되고 있지만 보다 다변화된 이 사회에 서 필요한 것은 개인적인 경건이나 영성을 회복시켜 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 겨진다. “영성”이란 말이 우리의 귀에 익숙하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선배들 은 주로 경건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해 왔다. 경건 혹은 영성이란 주로 중세 보편교회에서 신앙이 제도권으로 고착이 되 자 주로 수도원을 중심한 신비주의적 형태의 신앙으로 기존 제도권의 고착화 된 신앙의 문제 의식과 반발로 생겨났다. 인격과의 만남, 내적 고요와 정숙, 명상, 내밀한 수양과 탐구를 통해 하나님과의 친밀한 정서를 추구하는 신앙 운동으로 기독교 초기부터 이미 존재해왔던 흐름이다. 이제는 더 이상 교회에서 행사 중심의 목회보다 성도들이 개인적으로 하나님 을 만나고 그 분과 사귀며 자신의 내면을 통찰하고 자신을 가꾸며 내적 자기 확신과 담대함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자존감을 높이며 자원함으로 헌신하도록 이끄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마음의 여유나 녹지공간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현대인들의 욕구나 그들 의 치열한 갈등과 삶의 피로와 묵은 때들을 씻겨 낼 수 있는 새로운 적용 차 원의 교회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너무도 빠르게 흐르는 시대, 정보가 넘쳐서 감당하기 어려운 시대, 언제 밀 려날 지 모르는 두려움을 안고 사는 시대에서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자신을 계 발하며 현실을 정복하는 그리스도인을 교회가 생산해야 하지 않을까?
150 no image |김영규칼럼|“모든 현상의 실마리는 하나님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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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5 2006-02-16
“모든 현상의 실마리는 하나님께 있어” 김영규 목사 ·뉴욕학술원 ·남포교회 협동목사 지금 파동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은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근본 물리적 개념들에 있어서 시간 개념을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 잘 알려진 대로 뉴턴에 의해서 그 자체와 그 본성으로부터 외부와 관계없이 동등하게 흐르거나 항상 유사하고 불변으로 남아있는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의 개념이 정의될 때, 우리 의 지각으로 느끼는 모든 상식으로부터 해방이 초점으로 있었다. 그래서 일상 에서 사용되는 시간이나 날짜, 해는 그런 진실하고 수학적인 시간 대신 사용 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변하지 않는 절대세계 그의 절대공간의 개념에 대한 추론도 땅이 움직인다면 공기의 공간은 땅의 관 점에서 상대적으로 항상 동일하게 남을 것이고 다시 공기들이 움직이면 절대 공간의 다른 부분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며 또 다시 그 부분이 움직이면 다른 부분이 움직이지 않는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절대공간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 이다. 지금 아인쉬타인으로 말미암아 그런 절대공간이나 절대시간이 사라졌 다. 문제는 아인쉬타인이 말하는 에너지 자체이면서 절대속도(C)로 가속하고 있 는 그런 절대 빈공간이 파동을 일으켜 꼬인 차원들이 있다는 것이요 그 차원 들이 오늘날 힘의 입자들에게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절대 스핀운동으로 닫 혀진 임계 에너지(h/2π)가 절대속도로 가속하고 있는 공간으로 이해된다면, 온도가 높을수록 어떤 껍질을 벗겨내듯이 왜 절대속도로 힘의 입자들이 떨어 져 나오고 그런 온도에서 왜 재생되는지는 설명이 된다. 그러나 그 이론을 가지고 힘을 매개하는 입자인 광자가 낮은 온도를 향하여 일정한 파장으로 몰락할 때 사물들 사이에 상대적 객관성이 있고 그 빛의 몰 락이나 흡수 속에 만물의 현상이 있는지는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거꾸로 상식으로 버려야 하였던 정지에 대한 인간의 시각이나 의식이 외부운동과 어 떤 관계가 있는지가 이제 마지막 인류가 풀어야 할 더 큰 과제로 남아 있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런 이론들이 수학으로 설명되어야 하고 상식으로 분명하 게 번역되어야 하는 이상, 그 안에 상 식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즉 근 원적으로 지향성 오류와 인간의식의 정보의 방향인 판명성의 오류가 남아 있 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보이는 것이 모두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다(히 11:3). 모든 신비는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고 나타난 것은 모두 우리를 위 한 것이다(신 29:29). 원자시계나 전자시계도 그런 상식들과 오류들에 따라 우리의 시간의식에 따라 우리를 위한 것이다. 낮의 태양과 밤의 달과 별들과 그 운동들도 우리의 안식과 상식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신비로운 모든 말 씀과 계시들은 우리에게 가깝고 우리의 입에 있으며 우리의 마음에 있는 것 과 관계된다(신 30:14).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하나님은 역사적으로 항상 자신의 언어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쓰는 언어로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이 지은 이름에 따라 사무엘이라 부르시고 기다리시며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말로 혼돈할 때 사무엘이라 다시 부르시고 기다리시며 그 때에도 다른 사람들의 말로 혼돈할 때 말씀하시기 위해서 다 시 부르시고 기다리시는 분이시다. 그렇게 하나님의 어떤 계시나 전달방식은 어느 한 시대의 인간들의 상식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역사상 있을 수 있는 모 든 인류의 상식을 위한 것이다. 역사상에 나타나는 모든 인류들에게 가장 판 명하게 계시된 내용이 전달되는 방법은 그런 방식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진정한 사실은 당시대의 이해된 사실이나 당시대의 과학적 사 실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신 하나님 안에 그대로 남아 있는 그것이다. 그것 의 진정한 의미는 여전히 하나님 안에 있다. 창조자 하나님이 아직도 계시다 는 사실이 최우선이다. 너무 지구 중심이나 우리 중심으로 이해되는 어떤 표상들이든 그 안에서는 의 미가 없어진다. 인간에 의해서 언젠가 아마 전 우주가 다 설명될 때, 그때 비 로소 그 말씀의 진정한 의미도 다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의미는 거기에서 더 분명하게 발견될 것이다. 하나님 섭리, 현상계보다 우선해 태양에 의해서 반사된 달의 빛도 빛이라고 변명하거나 지금의 태양계 운동 이 전에 혹은 태양계 밖에 물이나 뭍, 식물들이 먼저 창조되었는지 누가 알겠는 가고 답변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요 우리가 관찰하는 시간에 대한 경험도 우리를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우리가 마지막으로 관찰하는 모든 것은 창조에 대한 답이 아니고 섭리에 대한 답일 것이다.
149 no image |목회칼럼|“자녀 출산과 양육을 장려하며”_김명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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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2 2006-02-16
“자녀 출산과 양육을 장려하며” 김명혁 목사_강변교회,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나는 어린 아이들을 아주 좋아한다. 나는 주일 아침마다 유아부 유치부 유년 부 초등부 중등부를 잠깐씩 들른다. 유치부 아이들은 나에게 달려들어 안기기 도 하고 업히기도 한다. 유아부 유치부 어린이들 12명 내외가 항상 주일 저 녁 예배에 참석한다. 모두 나와서 성경을 암송하고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내 가 주는 스티커를 받아 들고 아주 좋아한다. 어린이들도 저녁 예배 참석해 나는 3년 전부터 어린 자녀를 셋 둔 가정을 추수감사절에 모두 앞으로 나오 게 해서 선물과 함께 일인 당 20만원씩 봉투에 넣어 주면서 축하해 주었다. 여섯 가정 정도가 100만원씩을 받았다. 너무너무 좋아하며 큰 격려가 된다고 말했다. 어린이들 나에게 이런 편지들을 보냈다. “목사님 제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용돈과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였기 때문이에요. 저도 목사님처럼 내가 아닌 남의 행복 을 위 해서 사는 하람이가 될게요. 권하람 올림.” “저는 목사님이 주신 용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었어요. 처음에는 돈 이 아깝기만 했지만 지금은 보람이 있습니다. 좋은 일을 했다는 것이 제 마음 에 남으면서 매일 기뻐지는 것 같아요. 예준 올림” 최근에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생명과 희망 네트워크”를 만들어 자녀 출산 과 양육을 장려하는 운동을 벌이는 것을 보며 얼마나 마음에 흐뭇함을 느꼈는 지 모른다. 김삼환 목사님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도 분명한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올바로 지적했다. 신학자들은 이 명령을 ‘문화 위임령’이라고 부르고 마태복음 28장의 명령을 ‘선교 위임령’이라고 부른 다. 강변교회는 즉시 당회를 소집하고 다음과 같은 내용을 결의했다. ① 세 자녀 이상 가정에 대하여 세 번째 이상 자녀 출산 시 보조금 30만원을 지급하고 육 아 보조금 월 5만원을 만 5세까지 지급한다. 세 번째 이상 자녀 입양 시에도 상기 기준을 적용한다. ② 세 자녀 이상 가정에 매년 추수감사절에 축하금을 가족 1인당 20만원 씩 5년 동안 지급한다. ③ 교회의 공간과 시설을 탁아소 로 운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키로 하다. 어린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며 출산 장려 방침을 발표하자 모두들 좋아 하며 즐거워했다. 나는 자녀 출산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말하면서 50세까지 는 얼마든지 더 낳으라고 권면한다. 사실 내가 아기 때부터 너무너무 사랑하 는 혜진이의 엄마는 40이 지나서 예쁜 아기를 하나 더 낳았는데 지금은 세상 에 이렇게 예쁜 아기가 있느냐고 감탄하며 좋아한다. 늦동이 보고 좋아하는 부모들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빚어낸 저 출산의 위기를 교회가 앞장서서 극복하기를 바란다. 물론 정부가 출산과 양육과 교육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정책을 수립하 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성이 직장에서 직업인으로 성공하는 것보다 가정에 서 어머니로 성공하는 것이 가장 값진 성공임을 교회는 새롭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자녀들을 많이 출산하므 로 가정과 교회와 나라 발전에 기여하고 그리고 가정과 교회와 나라 안에 웃 음꽃이 피어나게 하는 행복 운동이 널리 퍼져 나가게 되기를 바란다.
148 no image |김수흥칼럼|점술가의 예언은 정확하게 맞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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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3 2006-02-16
점술가의 예언은 정확하게 맞는 것인가 김수흥 목사_합신초빙교수 2006년 1월 KBS TV ‘아침마당’에서는 두 사람의 사회자의 인도로 열 사람 의 토론자가 ‘점술가(占術家)의 예언은 얼마나 들어맞는 것인가’를 두고 한 시간 동안 아주 열띤 토론을 버렸다. 그런데 그 토론자 중에 한 사람만이 점술가의 예언이 들어맞았다는 것이고 두서너 사람은 전혀 맞지 않아서 큰 낭 패를 보았다는 것이며 그 외 나머지 대 여섯 사람은 그저 재미로 보는 것이 지 그것이 꼭 맞으려니 하고 점집을 찾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재미로 점집 찾는 사람들 많아 최근 뉴스에 의하면 이 점술은 점점 더 퍼져나가는 추세라고 한다. 서울의 최 고 부자들이 모여 사는 어느 곳에는 화려한 수입품 매장과 고급 음식점 사이 로 점(占)집과 사주 카페 70여 개가 즐비하게 모여 있어 소위 ‘점술 밸리’ 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 역학부터 구슬점, 타로 카드, 대나무 뽑기 등 종목은 아주 다양하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점술 집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 들이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과학시대에 점(占)집은 사라지지 않고 ‘운명산업’으로 진화 하는데 재테크, 입시, 이혼 등 전문 영역으로 세분화되고 있으며 현재 우리나 라의 45만 역술, 무속(巫俗)인이 관련된 전체 운명산업의 규모는 2조원이 넘 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상에서 운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술사이트는 모두 150여 개, 사주닷컴은 이 중에서도 기업형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 역술은 이제 교육의 영역에까지 들어와서 우리나라의 10여 개 대학에 연구 학과들, 예를 들어 ‘얼굴경영학과(관상강의집중)’ ‘장례풍수학과’ ‘풍수 명리학과’ 등 여러 학과가 개설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점술가의 예언은 어느 정도 정확하게 적중하는 것인가. 과연 점술가들 의 말을 믿을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의 말을 믿고 기업을 경영하고 혹은 결혼 을 하며 혹은 이혼에 돌입하고 혹은 일반 사회 생활을 마음놓고 영위할 수 있 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역술가들이 어떻게 문제를 풀어내는가를 간략히 살펴보면 그들은 우주 만물 이 어떤 공식에 의해서 되어 있듯이 사람의 운명도 어떤 원리에 의해서 되어 있다는 가정 하에 푼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주(탄생한 年, 月, 日, 時) 팔 자(예를 들어 연에는 계, 미, 월에는 무, 오, 일에는 신, 축, 시에는 임, 진 같은 글자)를 푸는 사람들은 천지 만물이 우주의 음양(陰陽)의 기운에 따라 일정하게 움직이듯이 인간도 우주의 음양의 기운에 따라 정해졌다는 데서 출 발한다는 것이다. 사주팔자를 푸는 사람들은 특별히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의 성 질을 가지고 있는 오행(五行)의 영향을 중요하게 받는다는 가정 하에 풀어 나 간다. 그러니까 사람의 탄생 시간이 어떤 별의 영향을 많이 받는 시간이었느 냐에 따라서 사람의 운명이 달라진다고 믿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사주가 있 고 또 팔자가 있는데 그 사람에게 해당하는 글자를 모두 찾아내어 만세력으로 부터 글자들의 상관 관계를 따지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풀어나가는 사주팔자는 첫째로 비과학적이라는 말을 듣기에 충분하 다. 비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오행을 보는 데서 생긴다. 옛날에는 행 성이 다섯 개라고 믿었는데 사주팔자의 원리를 펴낸 후에 3개의 행성이 더 발 견되었다 . 그래서 사주팔자 풀이는 과학적이 못되는 셈이다. 둘째로 가령 사주팔자 풀이를 과학의 시대에 걸맞게 지금 개량한다고 해도 역 시 믿을 것은 못된다. 이유는 과학이라고 하는 것도 사람의 앞날을 맞추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일기 예보를 발표하는 기상청은 철두철미 과학에 근거하 고 풀어가지만 일기 예보가 정확하게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눈이 엄청나게 많이 올 것이라고 예보해서 사람들은 사재기를 많이 해 놓고 눈이 올 것을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눈이 약간만 날리고 마는 수가 있는 것이다. 셋째로 사주는 우주의 공식이나 혹은 원리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우주를 지금 도 주장하시고 또 사람을 끊임없이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말하지 않는다. 하나 님은 사주팔자가 똑같은 사람의 피부, 외형, 지문(指紋), 마음을 다르게 만드 셨을 뿐 아니라 한 생애도 다르게 인도하신다. 사람이 태어나던 바로 그 시간 의 우주 기운 자체가 사람의 일생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 의 일생을 끊임없이 주장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한다(신 7:1-5). 인생 주관자는 바로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들이 인생의 탄 생이나 혹은 한 생애에 영향 을 주는 것으로 착각하지 말고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엄청난 능력으로 인생을 직접 주관하시고 인도하심을 믿어야 한다(창 24:48; 신 8:15; 삼하 22:20; 시 78:53). 그리고 우리는 매일같이 우주의 조성자이시 며 주관자이신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기 위하 여(시 107:7; 136:16; 눅 1:79) 기도함으로 반드시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할 것 이다.
147 no image |칼럼|합신 동문으로 합류 선포식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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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4 2006-02-16
“합신 동문으로 합류 선포식을 갖자” 이선웅 목사/ 남문교회 유머가 풍부한 어느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하였다. “찜·찜이란 무엇인가?” “찜·찜이 무엇이냐 하면, 사람들이 식사 시간에 식당에 가서 아구찜이나 꽃 게찜 같은 찜을 주문할 경우에 딱 한 접시만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두 접시 를 주문해서 각각 상 앞에 올려놓으면 그것이 곧 찜·찜이다”라고 하였다. 말이 되는 이야기임에 틀림이 없다. 필자도 말이 될 만한 것을 한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밑도 끝도 없이 “합신 동문으로 합류 선포식을 갖자”라고 제목을 걸고 나오니까 어리둥절할 수밖 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설명에 들어가고자 한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만일 필자가 웨신 출신이라면 합신 교단에 몸담 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약간 찜찜한 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 운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렇다면 아예 이 참에, 그러니 까 ‘교단설립 25주년 기념대회’를 하는 이번 기회에 화합 차원에서 친교 한 마당 시간 같은 때에 잠시 시간을 할애하여 웨신 동문들의 합신 동문으로의 합류 선포식을 가지자는 것이다. 물론 혹 웨신 출신이 아닌 분들이 있을 경우 그 분들도 마찬가지이다. 그 분 들도 모두 합신 동문이 되게 하자. 모두들 한국 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때 우 리와 함께 아픔을 겪으면서 고난의 길을 헤쳐 나온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그 분들 대부분이 이미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정규 과정 아 니면 목회 대학원 과정을 이수한 바 있다. 그리고 그전에 이미 같은 교단에 몸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단 합신 동문으로의 기수 배정은 이렇게 하자. 웨신대학부(4년)를 졸업하고 바로 목사 안수를 받은 이들은 거기다 3년(신대원 과정)을 더해서 졸업 연도 를 계산하여 합신 동문 해당 기수에 합류케 하자. 몇 년 전에 합신 총동문회에 참석했을 때 모두들 마음 문을 열어 놓고 웨신 동문들을 맞을 준비들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너무너무 흐뭇했었다. 합신 동 문들은 합신 동문들 대로 참 멋있는 분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웨 신 동문들의 합신 동문으로의 합류 선포식을 갖자는 것이 다.
146 no image |김북경의 살며 생각하며|목사와 장로(5)-한 팀 사역자 의식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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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4 2006-02-16
목사와 장로(5) “한 팀 사역자 의식 함께 가져야” 김북경 총장_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어떤 공동체라도 성공하려면 팀 사역이 잘 되어야 한다. “워털루 전쟁은 이 미 이튼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승패가 결정됐다”라는 영국 격언이 있다. 이튼 이라는 명문에서는 학생들의 협동 정신을 운동을 통해 함양시키는 오래된 전 통이 있다. 워털루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웰링튼 장군이 바로 이튼 출신 이었다. 협동 정신 함양해야 축구 경기도 또 하나의 좋은 예다. 최근에 박지성 선수가 알맞게 파스한 공 을 다른 선수가 멋있게 받아 골인시킨 적이 있었다. 남에게 성공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을 열어 주는 것은 공동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수이다. 목사와 장로들도 이런 협동 정신으로 목회해야 교회가 살 수 있다. 교회는 목 사가 낮아지고 장로의 질이 향상될 때 목사와 장로가 한 팀 사역을 잘 할 수 있다. 목사를 포함한 모든 장로는 같은 목회자로서 아름답게 동역을 하고 성 도들 앞에서 장로들이 서로 화목한 모습을 보여줄 때 하나님이 화평과 성장 의 복을 주실 것이다. 그런데 교회에서 목사와 장로에 대한 개념을 다르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이 것은 아마 장로교의 정치체제를 잘못 이해한 데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장로 회 정치는 독립(회중)정치와 감독(교황)정치 사이에 위치해 있다. 즉 교회들 의 연합을 무시하고 개교회의 독자적인 치리를 절대시하는 독립교회와 개교회 의 독자적 치리를 무시하고 교회 위에 있는 더 높은 권세에 의해 치리되는 감 독(교황)체제를 주장하는 로마교회나 감리교회 사이에 있는 것이 장로회 정치 를 하는 장로교회이다. 장로교회는 독자적인 독립교회도 반대하고 교회 위의 감독정치도 반대하기 때 문에 노회나 대회, 총회를 신앙의 일치 안에서 보편적 교회의 연합을 이루는 모임으로 본다. 반면에 장로교회는 목사를 노회의 회원으로 보고 장로와 집사 는 개 교회의 회원으로 보기 때문에 직분간의 계급이 있는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목사와 장로는 같은 지교회의 당회를 형성하여 하늘 나라를 확장하는 공동 목표를 가지고 일하게 된다. 더 이상 목사회와 장로회가 구분 되어 존재 하지 않으며 목사도 장로로서 치리 장로와 평등한 지위를 누리게 된다. 이런 점에서 목사와 장로는 상호 협력의 관계 아래 있다. 장로가 죽어서 거듭나야 하지만 목사가 먼저 죽어야 당회가 살고 당회가 본래의 직분을 잘 해 나갈 때 교회가 살 수 있을 것이다. 상호 협력 이뤄야 뿐만 아니라 당회는 향후 훌륭한 교회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일에 힘을 쏟아 야 한다. 그 예로 앞으로 목회자가 될 강도사, 전도사(신학생)를 아끼고 격려 하는 일이다. 그리고 당회는 그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 구체적으로 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재정을 공급할 뿐 아니라 그들을 당회와 교역자 회에 참석시켜서 보고 배우게 하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강도사 등 목회자 후보생들은 장차 목회 전선에서 일하게 되기 때문에 그들 의 의견과 제안을 충분히 참작하는 것도 필요하다. 나아가 신학생들의 시간 과 정력을 아껴서 공부에 정신을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줘야 한다. 학생 의 주업은 공부이기 때문이다. 목회 실습은 졸업 후에도 할 수 있다.
145 no image |목회칼럼|손발 편하자고 머리를 텅 비우는 어리석음_정창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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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3 2006-02-16
손발 편하자고 머리를 텅 비우는 어리석음 정창균 목사/새하늘교회 지난해 2월 말, 교회 부흥사경회를 시작할 때였습니다. 강사 목사님께 최대한 의 친절을 베풀기 위하여 이것저것을 미리미리 살피고 준비하고 나름대로 애 를 썼습니다. 당일 오후에는 이 지역이 초행이라는 강사 목사님께서 어려움 없이 교회를 찾아오시도록 약도를 팩스로 보내드리든지 전화로 상세히 오시 는 길을 안내해 드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뜻밖에 강사 목사님께서는 우 리 교회가 있는 곳이 조흥은행 일산지점인지 탄현지점인지만 확실히 알려달라 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다른 것은 필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초행길 잘 찾아 온 목사님 그리고 약속 시간이 되어 목사님은 정확하게 우리 교회에 도착하여 예배당으 로 올라오셨습니다. 참 신기하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목사님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지역의 복잡한 길에 있는 교 회를 그렇게 쉽게 찾아다니는 비결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목사님 차에 설치 된 네비게이션이었습니다. 번지수만 입력하든지 아니면 주변 건물만 입력하 면 정확하게 왼쪽으로 돌 것과 오른 쪽으로 돌 것, 직진 할 것을 알려주면서 게다가 앞으로 몇 킬로가 남았고 몇 분이 남았는지 미리미리 알려주면서 그렇 게 원하는 장소까지 데려다주는 신통망통한 기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유난히 길눈이 어두워서 자주 골탕을 먹는 저는 그것이 참 부러웠습니다. “나도 그거 하나 있으면 참 좋겠네요!” 강사 목사님과의 식탁에서 그냥 한 마디 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는 두어 달이 지났습니다. 월요일인데 우리 교회 장로님 한 분으로부 터 전화가 왔습니다. 화요일이 제 생일이었는데 장로님들이 생일 선물로 제 차에 그 신통망통한 기계를 달아주기로 했다고 어느 오디오 센타로 오라는 것 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떨결에 제 차에도 그것을 달았습니다. 그놈 하는 짓이 하도 신기해서 그것을 실험해본다고 아내와 큰 딸 아이까지 태우고 이리저리 쏘다녀 보았습니다. 그 기계는 모르는 곳, 모르는 길이 없었 습니다. 일부러 그놈이 알려준 길과 다른 길로 가버리면 즉각 “경로에서 벗 어났습니다”하며 가르쳐 주 었습니다. 그리고는 거기부터 시작하여 다시 다 른 길을 택하여 제가 가고 싶다고 알려준 목적지까지 가는 다른 길을 얼른 찾 아내서 새로 안내를 시작하였습니다. 정말 편하고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놈의 도움을 그렇게 재미있게 받으며 쏘다니던 셋째 날 저는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차를 출발할 때 어디를 통하여 어 떤 길로 어떻게 목적지까지 갈 것인지 지도가 환하게 제 머리 속에 그려지는 데 이제는 도무지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순간순간 그 기 계가 말하는 대로 로보트처럼 핸들만 돌리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제 머리 속은 점점 텅텅 비어가고 저는 점점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떠올리 는 사람이 아니라 순간순간 기계의 명령만 그대로 이행하면 되는 기계가 되 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계를 계속 사용하다간 큰 일 나겠구나!” 그래서 정말 모르는 초행길을 가는 경우 외에는 이 신통망통한 기계를 꺼놓 고 다니기로 하였습니다. 핸드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모든 전화를 단추하 나로만 눌러서 하게 되는 바람에 머리 속은 때로는 우리 집 전화번호도 기억 이 나지 않는 먹통 이 되어버린 것이 한스러웠는데… 이번에는 모든 상상력이 마비된 텅 빈 머리통이 되어버릴 뻔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예배 중의 찬송도, 설교 본문도 그 밖의 모든 것도 영상으로 다 띄워주는 서비스 만점의 어느 큰 교회에서 드렸던 예배가 생각났습니다. 얼마나 편한지 교인들은 찬송가나 성경을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고 예배 중 에 찬송, 성경 뒤적이며 찾느라 고생할 필요도 없고, 예배 시간도 단축되 고… 편리한 것이 하나 둘이 아닐 것 같았습니다. 편리함이 주는 위협 느껴 그러나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결국에는 창세기가 성경의 제일 앞에 있 는지 제일 뒤에 있는지, 설교본문의 앞에는 무슨 말씀이 있고 바로 다음에는 무슨 말씀이 이어지고 있는지, 자막에 나타난 그 말씀 외에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일회용 신자가 되고 말겠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편리한 것이 언제나 좋은 것도 아니고 더욱이 언제나 우리에게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삶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스스로 기억하고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복이자 특권입니 다. ‘네비’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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