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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05 (00:00:00)
http://www.rpress.or.kr/files/column/law.hwp"법이요!"-그 오용과 남용의 현실

남웅기 목사/ 대구 바로선 교회

소위 `회의법'이란 게 있다. 회의 질서와, 의사 진행의 공평성과, 의사 결정
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이 회의법은 교회도 널리
준용하고 있다. 단 하나, 교회만의 독특한 회의 규칙이 있다. 세상에서의 모
든 의사 결정은 과반수든, 2/3 의결이든, 전적 다수결에 의존한다. 그러나 교
회는 그렇지 않다. 일반적으로 다수결을 따르되 다수결을 무력화시킬 수 있
는 회의 규칙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법이요!"라는 외침이다.

의안(議案)이 성립되어 표결에 붙여질 무렵,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안(案)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확신하는 어느 한 개인이 법조문을 들고 나와 "법이
요!" 한 마디만 외치면, 그 회중의 나머지 모든 사람이 그 안에 찬동한다 할
지라도 그 안건은 폐기되어 버리는 것이다.

처음 노회에 참석했을 때, "법이요!" 이 한 마디가 주는 충격은 대단했다.
그 충격은 신비
감에 가까왔다. `그렇구나 교회의 회의는 세상 회의법과 이렇
게 다르구나!'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나 "법이요!"를 외칠 수 있
는 것은 아니다. 장로교회 헌법과 권징 조례와, 예배모범과, 과거의 교단 역
사와, 지난 회의록들을 꿰뚫고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법이요!"를
자주 외치는 사람을 `법통'이라 부른다. `법통'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대
개 교회 법에 통달했거나, 교단의 원로가 되야만 비로소 `법통'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속한 노회는 우리 교단 내에서도 `법통 노회'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소위 `법통'들이 많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법에 통달했다'는 의미로 불리
던 `법통' 이, `법만 내세우는 통속'이란 의미로 변질된 채 불리고 있는 실정
이다. 이는 "법이요!"가 교회 회의법에서 남용되거나 오용되고 있다는 반증이
다.

오늘날 노회나 총회에서 "법이요!" 이 한 마디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
럼 위력이 대단하다. 모든 총대들이 "법이요!"란 발언이 나올까봐 전전긍긍하
고 있다. 교회 회의법에서 독특하게 "
법이요!"란 규정이 있는 것은 하나님 나
라와 세상 나라의 차이점을 확연히 드러내는 독특성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교
회 회의에서 "법이요!"란 말이 많이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
것이 진리를 파수하기 위한 싸움이라면 말이다.

세상 모두가 다수결로 달려든다 해도 `다수결로 진리를 거스릴 수는 없음'을
보여주는 게 바로 "법이요!" 정신이다. 그래서 교회가 악한 자들에게 둘러싸
여 성경의 진리를 대적하는 결의를 한다든지, 불의한 세력이 악을 도모할 때
소수의 회원이 아니, 단 혼자라도 "법이요!"를 외쳐야만 한다. "법이요!"는
이토록 진리와 의를 파수 할 수 있도록 만든 조처이니 얼마나 귀한 교회법만
의 독특성인가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노회나 교단 총회에서 "법이요!"만큼 남용되거나 오용되는 발
언이 또 있을까? 필자는 이에 대한 원인을 먼저 목회자들의 잘못된 인식(무
지)에서 비롯된 법의 남용이라 생각한다. "법이요!"란 말을 글자 그대로 “법
규정 사항" 임을 통보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이미 법에 규
정되어 있은 즉 손대지
말라'는 의미로 "법이요!"를 남용한다. 소위 법통들
은 `나 혼자서라도 이 법을 지킨다'는 `법 수호자로서의 신성한 사명감'까지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법이란게 대개는 교회 헌법도 아니다. 규칙사항을 갖고 법에 호소하며, 법
의 이름으로 회의를 숨막히게 한다. 규칙사항은 다수결로 고치면 그뿐이다.
그러나 작금의 교회 풍토는 규칙 사항만 되도 국가의 헌법 이상으로 개폐가
힘들다. 헌법은 재적 국회의원 3분지 2면 국회를 통과하지만 교회 규칙은 한
사람이라도 “법이요!" 하면 개정이 불가하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법이
요!"를 사용하지 않을 때 비로소 가부 투표를 물을 수 있는 것이다. 이토록
성경의 진리를 파수하도록 마련된 “법이요!"란 제도가 지금은 무조건 법 조
항을 파수하는데 남용되고 있으니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법이요!"가 파수할 진정한 법은 제정된 인간의 법이 아니라 전해 받은 진리
의 법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법이요!"란 나의 한마디 발언이, 단순히 규
칙 조항을 파수하거나, 교회 행정 서식에 미비한 상대방을 몰아 세우는데 쓰
이는 것으로 오해받지
않도록 해야겠다. 그토록 듣기싫은 "법이요!"가, 모두
가 환호하는 "법이요!"로 바뀔 때 한국 교회는 성큼 성장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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