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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no image 노회의 조직과 분립/ 김상도 목사
rpress
3965 2001-03-30
http://www.rpress.or.kr/files/column/277ca.hwp노회의 조직과 분립 김상도 목사 / 평화교회 원로목사 루터는 교회를 성도의 모임만으로 생각하였으며 여기에서 루터교회는 카톨릭 의 감독제도를 답습하고 예배의식도 소극적으로 개혁하였다. 그러나 칼빈은 교회를 인류구원을 위하여 세운 조직과 제도로 보았다. 그리하여 성경에 근거 하여 우리 장로교회를 세운 것이다. 장로교회의 치리는 개인이 하지 않고 치리회(당회 노회총회)가 하는 것이다. 교회정치 제14장 교회치리와 치리회의 서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교회를 운영함에는 명백한 정치와 조직이 있어야 한다(고전14:40). 자연계시의 정당 한 사리와 성경교훈과 사도시대 교회의 모본(행15:6)에 의하면 교회의 치리권 은 개인에게 있지 않고 당회, 노회, 총회 등의 치리회에 있다.” 그러나 선교 사와 미조직 교회의 당회장에게는 당회권(치리권)을 부여하고 있다. 정치 제 15장 제3조 당회장의 제4항은 “미조직교회의 당회권은 당회장이 시행한다” 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나뉘어 여러 지교회가 되었 기 때문에 교리의 순전을 보전하며 권징을 동일하게 하며 복음을 전파하며 배도와 부도덕을 금지하기 위하여 노회와 같은 치리회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노회가 생기게 되었다(제16 장 노회, 제1조 노회의 성경적 배경). 그런데 노회의 직무중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지교회의 지도 감독과 목사 의 지도 감독이다(제16장 노회, 제6조 노회의 직무, 제1,2항). 그런고로 지교 회가 있는 곳에는 속히 노회가 조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고로 노회조직은 최소한의 회원수로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제16장 노회, 제2조 노회조직과 제5조 노회성수를 볼 때 “지교회를 시무하는 목사 5인 이상과 총 대장로”로 조직하는데 노회성수에서 “다른 지교회 목사 장로 각 3인 이상” 으로 규정한 것을 보면 노회를 조직하려면 최소한 조직교회 세 곳과 미조직교 회 시무목사 2인 이상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최소한의 회원수로 노회 를 조직하도록 한 것은 지교회와 목사의 감독 지도가 시급하고 중요하기 때 문이다. 노회의 설립도 총회의 지도와 허락을 받아야 하며, 노회의 분립 역 시 총회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정치 제17장 총 회, 제6조 총회의 직무 중 제9 항은 “총회는 노회를 설립 분할 합병하며 노회의 구역을 정하는 일에 봉사하 되 해당 노회와 합의해야 한다”로 규정하고 있다. 노회가 장성 발전하여 분 립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노회 전체의 의견이 될 때 노회는 총회에 노회 분립을 청원하여 허락을 받아 분립하는 것이다. 혹 노회가 크게 발전하지 않 았어도 어떠한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분립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노 회안의 의견이 통일이 되어 은혜롭게 분립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3 no image 사람을 세우는 일/손종국목사(염광교회협동목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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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0 1999-10-26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부상을 당했다가 회복기에 접어든 한 청년이 1919년 시카고에 있는 작은 아파트 하나를 빌렸다. 그가 그 집을 고른 것은 근처에 유명한 작가 셔우드 앤더슨의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앤 더슨은 널리 격찬을 받은 소설 「윈저버그, 오하이오」를 집필했으며 젊은 작가들을 잘 돕는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다. 두 사람은 금방 가까워졌으며 2년 동안 거의 매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 들은 함께 식사를 하고 멀리 산보도 나갔으며 기교에 대해서 밤늦게까지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젊은이는 자기의 습작들을 종종 앤더슨에게 가져갔 으며 그 노련한 작가는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비평을 가했다. 그러나 그 젊은 작가는 결코 낙심하지 않았다. 매번 그는 경청하면서 조심스럽게 노 트에 메모해 갔으며 그런 다음 원고를 향상시키기 위해 타자기와 함께 살 다시피 하였다. 그는 자신을 방어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후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셔우드 앤더슨을 만날 때까지는 어떻게 글을 쓰는지 조차 몰랐다.” 이 청년은 헤밍웨이였다. 그 후에 앤더슨은 뉴 올리온즈로 이사가서 거기서 또 한 청년을 도왔다. 그는 윌리엄 포크너였 다…그리고 극작가 토마스 울프와 존 스타인백이라는 젊은이와 함께 작품 활동을 했다. 앤더슨의 문하생 중 세 명이 노벨 문학상을, 네 명이 퓰리처 문학상을 탔다. 유명한 문학 평론가 말콤 카울리는 앤더슨을 평하기를 「다음 세대의 문체와 비전에 자신의 자취를 남긴 그 세대의 유일한 작 가」라고 했다』(「사람을 세우는 사람」, 하워드 핸드릭스, 117-9쪽). 나에게는 많은 스승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혼자서 성경공부를 할 수 있 는 힘을 갖게 하신 강도사님과 본문의 재창조를 알게 해준 성경학자, 학문 의 길을 소원하게 하셨던 목사님과 전도사님, 예수님을 소개해준 친구와 목사님. 그리고 대학시절에는 영적 성장에 눈을 뜨게 한 선배와 철학하는 재미와 깊이를 알게 하셨던 교수님, 사회과학자들에 대한 갈증을 갖게 도 전하셨던 교수님. 이제는 사회인이 되어서 나의 길을 개척하며 걸어갈 때 전문성에 대한 강한 자의식을 도전하였던 기업과 전문직업의 선각자들, 세 상을 관조할 수 도 있음을 알게 해 준 여러 시인과 수필가들, 사람을 사랑 하는 것의 아름다움과 진지한 노력을 가르쳐준 형제와 자매들. 이 모든 사 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만났기에 오늘의 내가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합력 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께 늘 감사를 드린다. 그런데 이제는 스승을 선택하기 보다는 제자를 선택하는 자리에 있게 되었 다. ‘목사님 같은 스승을 만나기 위해 33년을 기다렸나 봅니다’라는 고 백에서부터 ‘목사님은 내 가슴에 파문을 일으키셨습니다’라는 감사와 ‘목사님과 편지를 하다보니 제 책상에는 편지봉투가 쌓여갑니다’라며 교 제를 기뻐했던 제자들. 이제는 선교사가 되고, 목회자가 되며, 대학교수가 된 이들이나 가정주부가 되어서 아이들을 잘 기르고 있다는 소식들을 접하 면서 나의 자랑, 기쁨, 소망이 된 그들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다시금 다짐해 본다. ‘지금 나에게 연결된 이들에게 더욱 마음을 쏟자. 그 리하여 그들에게 성장이라는 변화를 만들어 주자.’ 모든 것을 거두는 결실의 계절에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거둘 수 있는 열매 가 무엇이 있는가? 혹은 물질이나 명예일 수도 있겠지만 그 보다 나로 인하 여 바로 서고 나의 눈물과 땀을 인해 자신의 길을 씩씩하게 살아내는 제자 들이 얼마나 있는가? 주변을 둘러보고 사람에게 관심을 갖자. 그리고 그들 에게 나의 물질과 시간과 경험을 투자하여 충성된 사람으로 만들어 보자.
2 no image 質이냐 量이냐/김훈(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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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01 1999-09-17
-예배당 건물 하나 짓는 데만 7백년 가까이 걸렸다는 독일 쾰른대성당. 쾰 른 중앙역을 유레일로 통과했거나 그곳에 가 본 사람이라면 우선 그 엄청 난 규모에 압도되고, 내부의 화려한 장식에 벌어진 입을 다물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직도 한쪽에서는 신축과 보수 공사가 계속되고 있는 이 어마어 마한 교회가,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전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의 사진 뒷 배경으로 활용되거나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고적 취급을 받는 것으 로 그치고 있음은 이방 순례객의 마음을 여간 씁쓸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 다. 유적 취급받는 교회 서구교회가 이미 오랫동안 퇴락의 길을 걸어왔고, 그나마 교회에 나오는 사람도 대부분 노인층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유명한 몇 교회에만 가 봐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 거대한 예배당들이 장엄한 파이프오르간 소리만큼이나 무거운 역사에 눌려 있고, 그래서 예배당 안에 들어서면 겹 겹이 쌓인 세월의 흔적을 공기에서부터 감지할 수 있음을. 사람이 살아서 숨쉬지 않는 교회, 호화스러운 각종 성물로 가득 장식돼 있으면서 텅빈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교회, 그저 한바퀴 둘러보고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교회란 한낱 거대한 기념비적 유물일 뿐이다. 관광 입장료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현실은 모이기에 열심인 것 외에 마땅히 보여줄 게 없는 우리에게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또 다른 자화상이기도 하 다. 우리의 자화상 서구교회가 교인없는 텅빈 유적지로 변해 가고 있다면 우리의 교회들은 기 복주의와 개교회주의의 병이 점점 깊어만 가고 있다. 교인들로 넘쳐나는 대형 교회들 상당수가 개교회주의에 안주하고 있는 증거는 세계 50대 교회 가운데 한국교회가 무려 23개나 포진하는 초대형화 현상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선교 2세기에 접어든 한국교회가 전체 기독교회를 아우를 수 있는 문화 형 성에 실패하고 사회적 고립 마저 자초하고 있는 것은 ‘구원’의 문제보다 사사로운 복락에 봉사하는 기복주의 신앙으로 변질되는 데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기복주의’라는 병 그는 이 논문에서 한국교회의 잘못된 기복주의를 대표하는 경향으로 △교 회 신축을 위한 부흥회 등 교회의 내적 필요에 의해 열리는 특별의례, △ 대학입시를 위한 기도회 등과 같은 내 교회 식구들의 복락을 비는 행사의 성행, △복받기 위한 헌금을 부추기는 행태와 직분에 따른 헌금액 배분, △ 목회자에 의존해 복을 비는 현상의 심화, △기도원에 의한 치유와 축귀(逐 鬼) 등 귀신에 대한 과도한 관심 등 다섯 가지를 들었다. 물론 한국교회, 특히 대형 교회 전체를 이 같은 잣대로 잴 수는 없다. 대부 분의 교회들은 선교와 교육, 봉사의 조화 속에 균형있는 튼튼한 성장을 계 속하면서 한국과 세계를 ‘하나의 교구’로 삼아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 유럽의 대표적인 교회인 독일 교회의 경우도 텅빈 교회당 안과는 대조적으 로 밖의 풍경은 너무나 딴판이다. 1백년이 넘게 매 2년마다 도시를 순회하 며 열리고 있는 ‘독일교회의 날(Kirchentag)’ 행사만 봐도 독일교회 아 니 서구교회가 가진 또 다른 얼굴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그들의 자유분방 함은 가끔 우리의 상식선을 뛰어넘기도 하지만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 초점 을 맞춘 정연한 질서가 자연스럽게 우러나오고, 개회예배가 열리는 광장에 아침부터 모여 들기 시작하는 수 십 만명의 개신교인 들의 모습을 보고 나 면 유난히 수(數)에 민감한 한국교회도 할 말을 잃게 된다. 서구 사회와 문화 전반에 깔린 기독교회의 저력은 이제 수 백년된 교회 건 물을 빠져 나와 자유와 평화, 검약과 질서의 든든한 디딤돌로 제 몫을 하 고 있다. 교회 안에서는 파워가 넘쳐나나 사회를 향해서는 힘을 쓰지 못하 고 조롱거리가 되기 십상인 우리 교회와는 너무나 대비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1 no image 진정한 권위-최희용 목사(개혁신문편집국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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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72 1999-08-23
-대영제국의 국민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엄청난 혼란과 절망속에 빠 져들어갔다.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평화를 사 랑했던 그들의 원초적인 욕구가 도전에 직면했기 때문이었다. 일순간에 전쟁 의 공포로 웅성대기 시작했으며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우왕좌왕하는 현상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이때 영국 국민들의 귀를 사로잡았던 두 사람의 연 설이 라디오를 통해 울려퍼지기 시작하더니 이튿날 이 연설을 청취한 국민들 이 마치 무엇엔가 항의하는 데모를 하듯 같은 시각에 일제히 교회의 종소리 를 울리게 했고 종소리를 들은 국민들 대부분이 교회로 몰려가 하나님께 예배 하므로 혼란을 종식시켰는가 하면 전쟁에 대한 새로운 용기를 얻었다는 것이 다.진정한 권위를 가지고 국민들을 압도하는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 던 이 두 사람은 다름아닌 존경받는 종교지도자 윌리엄 템플 주교와 탁월한 정치가 윈스턴 처칠 경이었다. 그 혼란의 와중 속에서 영국에는 온 국민의 신 뢰를 받는 두 사람이 있었으며 대영제국의 여왕은 이 두 사람에게 국민들로 하여금 평안을 되찾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연설을 의뢰한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서로 입을 맞춘 듯 연설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했다고 한다. “여러 분,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입니다. 우리 모두 경건히 무릎 꿇어 하나님을 바라봅시다”라고.그들에게서의 복(福)은 전쟁의 혼란 가운데 서도 온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존경받는 지도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며, 이 지도자의 권위있는 연설로 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는 사실이다.권위는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러나오는 것이다. 템플 주교와 처 칠 경의 영향력과 권위가 바로 그것이다. 평소의 말과 삶에서 기초한 권위, 우격다짐으로 강요하는 권위가 아니라 일상의 성품에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의 삶속에 파고들면서 세워졌던 권위가 진정한 권위라는 사실이다. 총칼 을 앞세워 굴종을 요구할 때 권위는 사라지며 오히려 반목과 대립만 양산될 뿐이다.예수 그리스도의 권위, 그것은 십자가의 권위이며 십자가의 권위는 모 두를 살리는 승리의 원천이다. 겸허히 섬김으로, 나를 희생하며 타 인을 위로 하므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권위가 진정한 권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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