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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6 (20:54:44)

 

하나님의 질서와 동성애 문제

 

< 한병수 전도사, Calvin Theological Seminary 재학 >

 

교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근원적인 질서 회복에 앞장서야

 

작금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동성애 관련 이슈가 날로 그 정도를 더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성적소수자들도 인간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며 동정을 표하거나 혹은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기며 애써 외면하는 것 같다. 이에 대해 우리 교회는 분명한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여자가 여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행하는 것은 성경이 규정하는 명시적 죄이기도 하지만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응하는 보응을 그 자신에게 받았도다”(1:27)라고 하면서 바울 사도가 '저희의 그릇됨에 상응하는 보응'이라는 언급에서 지적한 것처럼 하나님의 형벌이요 신적인 진노의 결과라고 봄이 더 타당하다.

 

이 진노와 형벌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맞바꾸는 인간의 우둔하고 어두운 마음이 그 원인인 샘이다. 당연히 동성애 이해의 주안점은 동성애 자체가 아니라 그 배후의 원인에 주어져야 하겠다.

 

인간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결국 조물주가 아니라 피조물을 경배와 섬김의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질서의 전복과 혼동대로 그들을 그들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신 결과이다.

 

이로써 짐승들 중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무한한 색정과 성적인 역리가 개인의 고유한 권리라는 주장을 넘어 제도적 보편성과 법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다양한 방편을 동원하는 단계까지 이르도록 내버려 두셨다. 결과인 동성애의 심각성을 알면 원인인 하나님의 영광 박탈의 심각성도 얼추 가늠될 것이다.

 

칼빈은 이 본문을 주석하면서, 성적인 도착과 동성애는 모든 시대에 존재했던 악(vitia quae quum saeculis omnibus exstiterunt)이며, 짐승적인 정욕에(in beluinas cupiditates) 스스로를 내던지고, 나아가 짐승보다 더 하등한(infra bestias) 그런 비속함의 심연으로 추락한 이유가 본성의 총체적인 질서(totum naturae ordinem)의 전복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서 총체적 질서의 전복은 그 자체로 발생하는 독립적인 현상이 아니라 조물주와 피조물 사이에서 발생한 질서의 전복에 상응하는 형벌의 결과로 수반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동성애 문제는 오늘날의 갑작스런 일처럼 떠들썩거릴 필요 없다. 게다가 본성이 더러운 인간들은 하나님의 영광마저도 버러지와 손쉽게 바꾸는데 남성과 여성 사이의 정상적인 질서를 뒤집어서 부끄러운 욕심으로 서로를 욕되게 하는 건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이 고상한 명분을 가지고 법적인 합의라는 형식으로 머리 둘 곳을 물색하는 상황에 거부감을 느끼고 보다 근원적인 질서의 전복을 정직하게 성찰하고 돌이키는 계기로 삼으면서, 동시에 이러한 상황을 좌시하지 않고 오해와 불이익을 감수하고 목소리를 내시는 분들이 있다는 건 아직도 하나님의 은혜와 회복의 소망이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된다.

 

교회가 보다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건 바로 이 대목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입술로는 존경하나 마음으로는 하나님이 아닌 버러지를 방불하는 우상과 맞바꾼 교회가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철저히 회개하는 것이 우선이다.

 

먼저 우리가 돌이킨 이후에 사랑과 자비를 따라 애통하는 마음으로 가감되지 않은 진리 그대로를 분명하게 증거해야 하겠다. 즉 각자의 성적 취향과 기호를 따라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여자가 여자와 더불어, 아비가 자녀와 더불어, 어미가 자녀와 더불어, 자녀가 자녀와 더불어, 할아비가 손주와 더불어, 인간이 짐승과 더불어 부끄러운 일 저지르는 것은 하나님과 피조물 전체에 죄짓는 것이라고 말이다.

 

바울은 동성애 문제만 꼬집어서 그 사안에 과도한 핏대를 올리지는 않았다. 문제의 해결이 현상 자체의 완화나 변경에 있지 않고,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 할 하나님의 전복된 영광을 회복하는 것에 열쇠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교회가 세상과 자연을 섬기고 돌보는 가장 우선적인 책무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근원적인 질서의 회복에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불거진 동성애 문제에 대한 일차적인 관심의 눈길은 교회로 향할 수밖에 없다.

    

교회의 돌이킴이 무엇보다 우선이고 핵심이다. 이는 교회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리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인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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