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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잔의 실수: 사자는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나

 

< 정요석 목사, 세움교회 >

 

사람들이 이 땅에서 해보는 모든 시도들은 한계 있기 마련

 

 

제가 어렸을 때 타잔이라는 프로그램이 한창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타잔이 초식동물을 잡아먹으려는 사자를 제압하면서 다시 한 번 약한 동물들을 잡아먹으면 그냥 두지 않겠다고 경고를 했습니다.

 

그 때는 타잔이 참으로 멋있다고 여겼는데, 커가면서 사자는 그럼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눈에 사자와 표범과 하이에나와 같은 포식자들이 누우와 얼룩말과 영양 같은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것이 잔인하게 보인다고 하여 이들을 한마디로 욕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초식동물과 같이 온순하기를 바란다면 먼저 그들의 소화기관과 장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들이 풀과 잎사귀를 뜯어 먹어도 맛있게 소화시킬 수 있는 구조를 만든 후에야 육식동물에게 잡아먹지 말라고 경고할 수 있습니다.

 

타잔이 동물을 잡아먹지 못하게 해서 끝내 포식자들은 모두 굶어 죽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초식동물들은 무수하게 번식합니다. 너무나 번식되어 풀과 잎사귀들은 모두 뜯기어 없어지고, 환경은 고갈되고 오염되고, 전염병이 번지면서, 끝내는 초식동물도 대부분 죽게 됩니다. 타잔의 값싼 동정이 전 생태계의 파괴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요? 이사야 11장은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자를 소처럼 풀을 먹게 만들어 버리십니다.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데, 소를 잡아먹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포식자들이 부상의 위험을 무릎 쓰고 사냥을 하는 것은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제 풀이 고기보다 훨씬 맛있으니 위험한 사냥을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 순간부터 사자는 소와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육식 동물의 신체 구조가 바뀌어 버리는 그 순간에 모든 짐승은 서로 친구가 됩니다.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입니다. 그래도 아무 손상을 입지 않습니다. 짐승들은 소화 기구만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적대감과 공격성도 변화하여 그 마음에 평화가 가득합니다.

 

그 날이 되면 사람 또한 변화를 받습니다. 사람 또한 인체 구조가 변하고, 그 마음이 변화합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여 아무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세상 법률로 악인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이십니다.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세상에는 변화가 가능합니다.

 

더 훌륭한 대통령이 나온다고 세상에 본질적인 변화는 없습니다. 대통령이 아무리 훌륭해도 우리 주변에 발생하는 부정부패와 사건사고와 공갈과 사기와 미워함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20세기에 소련과 중국을 비롯하여 공산주의 열풍이 불었습니다. 차별이 없는 인간 사회가 탄생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반대로 확인되었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은 교육을 시켜도 그 마음속에 있는 죄성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생산력이 발달하여 풍성한 생산이 이루어지고, 자아비판과 타아비판과 엄청난 사상 학습을 받으면 사람의 내면이 바뀌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그런 고귀한 내면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필요는 끝이 없었고, 사적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 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설령 생산력이 발달하여 갖고 싶은 것을 무한정 갖게 된다고 해도 사람에게는 행복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열심히 살아야 할 의미가 없어지므로 게을러지고 무기력해지고 허무에 빠져 자살이 속출할지 모릅니다. 사람 자체도 변화해야 합니다. 선이 무엇인 줄 아는 지식과 지혜가 있어야 하고, 이것을 추구하는 삶을 최대의 덕으로 아는 정신과 마음가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사람들이 이 땅에서 해보는 모든 시도들은 한계가 있습니다. 땅 자체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사람의 내면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대부분은 타잔과 같이 죄 없는 사자만을 족치는 경우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일하셔서 본질적인 변화를 주셔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만드시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만드는 사람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시는 하나님 나라가 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습니다. 하나님은 몸소 우리에게 어떻게 기도하여야 하는지 가르쳐주셨습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오직 이 나라만이 임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큰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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