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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실력이 늘었다는 소리입니다

 

< 최광희 목사, 행복한 교회 >

 

 

“불평과 불만이 늘었다는 것은 구별할 수 있는 실력이 늘어난 것”

 

 지난주에 끝난 2012 런던 올림픽, 예전과는 달리 우리나라 선수들이 전에는 명함도 못 내밀던 여러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는 모습은 너무나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웠다.

 

지난 주말에는 어린 손연재 선수가 나와서 리듬체조를 한다고 해서 바쁜 중에도 틈틈이 TV를 봤다. 옛날에는 리듬체조에 주로 러시아 선수들이 나와서 환상적인 연기를 펼쳤는데 올림픽 때마다 나는 감탄하며 보곤 했다. 그런 곳에 우리나라 선수가 도전하였고 본선진출(10위)이 목표라더니 무려 5위까지 했으니 얼마나 장한지 모른다.

 

리듬체조를 보면서 나는 고민 아닌 고민이 생겼다. 저렇게 하나같이 다 예쁘게 연기를 잘하는데 도대체 심사위원들은 어떻게 우열을 가려서 점수를 줄까 싶어서이다. 내가 이런 고민을 말하자 리듬체조를 계속 지켜보고 있던 아내가 하는 말이 계속해서 보면 조금씩 차이가 보인다고 한다. 아하, 그러니까 보는 사람의 실력이 늘면 잘하는 선수와 못하는 선수가 가려진다는 말이다.

 

지난 주말에는 주일 예배에 특송을 할 자매가 찬양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노래가 너무나 아름다워 노래 끝나면 박수를 쳐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노래를 끝내자마자 박수를 칠 틈도 없이 반주자에게 박자가 잘 안 맞는다고 다시 맞춰봐야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박수칠 순간을 놓쳐버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다 좋은데 뭐가 안 맞는다는 거지?”

 

또 자매는 보컬 전용 마이크가 없어서 노래 부르기가 힘이 든다는 말도 했다. 그 전에 아들 예찬이도 보컬 전용 마이크가 필요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두 사람이나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필요한 것이 확실한 모양이다. 내가 담임목사니까 보컬용 마이크를 구입할 돈을 달라고 기도해야겠다. 그런데 한편으로, 내 귀에는 노래가 잘만 들리는데 왜 노래하기가 힘들다고 하는가 싶다. 한 마디로 내 귀가 음악 듣는 실력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어떤 남자들은 부인이 해주는 음식이 다 맛있다고 한다. 개그맨 김준현은 음식의 맛은 두 가지라고 한다. 맛있다와 정말 맛있다. 그런데 내 입에는 맛있는 음식이 분명하게 구별된다. 누가 나에게 무슨 음식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서슴없이 대답한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고.

 

체조건 노래건 음식이건 내가 좋은 것과 안 좋은 것을 구별할 수 있다면 내가 실력이 늘었다는 소리이다.

 

연기를 볼 수 있는 감각, 음식 맛을 구별할 미각, 노래를 평가할 청각, 예쁜 옷을 구별할 시각을 가졌다는 뜻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불편하거나 불만족스러운 것을 느끼는 것은 내가 불평과 불만이 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별할 수 있는 실력이 늘었다는 소리이다.

 

또 설교를 들으며 은혜가 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설교가 형편없거나 내 영성이 떨어졌다기보다는 내가 더 좋은 설교를 사모하는 믿음이 생겼다는 뜻이다. 교회에서나 집안에서나 직장에서 불만이 느껴지면 그것은 우리 교회, 우리 집안, 우리 회사가 문제가 많아졌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좋은 방법과 시스템을 구별할 줄 아는 안목이 늘었다는 뜻이다.

 

그러면 누가 그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인가?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실력이 없거나 이미 적응해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실력이 생긴 당신이 그 단체를 위해 공헌하고 개선하는데 헌신해야 한다.

 

 

 

지적하고 불평하기보다 개선안을 내어놓고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실력 있는 당신으로 인해 당신이 속한 단체가 더욱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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