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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4 (18:43:58)

누구 때문에 대접을 받는가?

 

< 안두익 목사, 동성교회 >

 

 

“그 경험은 나를 철들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

 

 

제가 전도사 시절 때입니다. 그 동안 섬기던 교회에서 사임을 하고 새로운 임지를 위해 기도하던 차에 경기도 광주 쪽에 목회자가 없는 교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요즈음으로 말하면 선(?)을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 교회의 재정을 담당하시던 집사님 내외분이 버스정거장까지 마중을 나오셨습니다. 그분들과 함께 한참이나 신작로를 걸어서 그 집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들어서는 순간 도살장에서 나는 역겨운 비린내가 바람에 실려 저의 코끝을 스칠 때 구역질이 갑자기 나는데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내외분은 소, 돼지를 잡는 도살장을 경영하셨는데 그분들이 거주하는 방을 그 도살장 맞은편에 고기를 저장하는 창고 같은 집 위에 2층 베란다에 살고 있었습니다. 가뜩이나 비위가 약했던 나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고, 억지로 구역질을 참아내며 베란다에 있는 방으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마침 점심시간이었고, 또 목회자가 자신의 가정을 심방 온다 하니까 오늘 아침 잡은 고기를 가지고 대접한다고 부산을 떨고 있었습니다. 갖은 정성을 다한 음식이 나왔지만, 문에 들어설 때부터 비위가 상한 저는 도무지 상에 올라온 고기를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못해 한 숟갈을 입에 넣었지만 그게 넘어가겠습니까? 식은땀은 나고 한 숟갈 넣은 음식물이 자꾸 나오려는 것을 참는데 넘어 올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이런 모습을 보던 그분들도 당황했습니다.

 

땀은 나지요, 밥은 안 들어가지요 숟가락만 대면 구역질이 나지요, 정성스럽게 준비한 분들의 성의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맞은편 도살장에서 소를 잡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울음소리가 얼마나 처절하고 슬프게 들리든지, 그런데 그 소의 울음이 마치 저의 귀에 하나님 음성처럼 들려 왔습니다. 저 처절한 도살장에서 죽어 가는 한 마리 소의 죽음이 주님께서 어린양으로 이 땅에 오셔서 갖은 고난을 다 당하시다 도수장에 끌려가듯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어린양 예수의 부르짖는 음성으로 저의 귀에 들려왔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 한동안 구토가 나는 것도 잊은 체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그 예수님이 나 때문에, 내 죄 때문에 도수장에 끌려가는 그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내 마음에 울리고 있었습니다.

 

“안 전도사, 네가 지금 대접받는 것이 누구 때문인가?” 도대체 내가 누구이기에 이처럼 귀한 식탁에 앉아 주인행세하며 대접을 받는가 하는 마음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뭐가 복에 겨워 구역질을 하는가?” 하며 막 따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도저히 눈물이 앞을 가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시간 나는 그렇게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던 그 시뻘건 육개장을 어떻게 다 먹었는지 모릅니다.

 

비록 제가 그 교회에서 사역을 하지는 못했지만, 사실 그때 그 사건이 없었다면, 저의 오늘의 모습은 없었을 것입니다. 목회에 권태가 오고, 때로는 내가 드러나려고 하는 순간마다 여지없이 내 마음에 비수처럼 꽂히는 게 “네가 지금 대접받는 것이 누구 때문인가?”입니다. 이 음성은 나로 철들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과도 같습니다.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났을 때, 그가 깨달은 진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바울은 예수님을 알고 나서 죽는지 사는지 모르게 일했습니다. 마치 하루 종일 놀다가 오후 5시에 일당 받기로 하고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게 된 노무자의 심정으로 헌신했습니다. 감지덕지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것까지도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합니다.

 

그가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실토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한 위기를 넘겼다면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앞에 고개를 쳐들고 자기 공로를 이야기할 만도 한데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수고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합니다.

 

이제 가을이 성큼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이 결실의 계절에 “내가 누구 때문에 대접을 받는가?”라는 겸손한 마음으로 주의 일을 섬겨야겠습니다. 내가 고작 이것밖에 안되는가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내려놓고 묵묵히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보며 목양에 전념을 다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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