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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8 (17:51:34)

 

굳 잡(Good job)

 

< 박삼열 목사, 송월교회 > 

 

“웃다가 울다가 반복하지만 주님께 칭찬받는 날 바라보며 살아가길”

 

우리는 ‘훌륭하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면서 성장해 왔습니다. 명절에 모두가 모였을 때 어른 중 한 분이 이 말을 해 줄 때면 뿌듯해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듣는 것이란 쉽지 않았습니다. 학교 성적이 좋아야 했고, 아니면 무슨 대회에서 좋은 점수를 얻을 때에야 가능했습니다.

 

결혼을 했더니 아내는 한술 더 뜨는 사람이었습니다. 딸만 넷이 자라는 집에서 아빠와 함께 낚시를 가면 아주 많이 잡아 ‘아들 같다’는 칭찬을 듣고 싶어 했다는 것입니다. 운동회도 좋아했는데, 달리고 싶은 만큼 몸이 따라 주던 아내로서는 쏜살같이 달려서 팔목에 ①이라고 찍힌 시퍼런 도장을 받고 상품으로 공책까지 받은 날이면 집까지 한 숨에 달려갔다는 것입니다.

 

이런 친구가 생각납니다. 평소 명랑하다 못해 너무 부잡스러워서 선생님께 꾸중을 받곤 하던 친구입니다. 그런데 운동회 날 응원단장이 되어 반 전체를 이끌며 마구 뛰어다닐 때면 우리 모두는 그에게 열광하곤 했습니다. 여하튼 우리 모두는 우리에게 매겨지는 점수 때문에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면서 오늘에 이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던 제가 몇 해 전 감동적인 이야기 하나를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오래 산 조카가 자기가 경험한 봉사활동 이야기를 해 준 것입니다.

 

어느 장애아들의 운동회 날 그는 도우미로 봉사했는데 그 역할이란 그들이 마음껏 즐거워할 수 있도록 소소한 심부름을 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는 중 달리기 순서에서는 아이들이 힘껏 달려오면 골인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을 품으로 받아내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드디어 총소리와 함께 아이들은 넘어질 듯 휘청거리면서 달려왔습니다. 도우미들은 정해진 라인 끝에서 자기 아이를 얼른 품에 안아내면서 “굳 잡(Good job), 훌륭해, 정말 잘했어!”라고 말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체 부자유한 아이들을 품에 안으며 “굳 잡, 굳 잡!”을 말하는데 왠지 가슴이 찡해지더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날 그 이야기를 듣는 나 자신도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아마, 우리의 현실이란 힘든 상황의 연속이고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오던 우리 모두의 상황과 어우러져 공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에 우리 모두는 부르신 삶, 주어진 길을 걸어 냈습니다. 목회의 현장이란 움직이는 생물인 것 같습니다. 태어나고 세상 떠나고, 한쪽에서는 즐거운 가정이 생기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방금 찢어지는 슬픔에 휩싸이고, 취직되면 실직하고, 건강한 성도와 암 수술이 시작된 성도, 눈부신 새싹과 같은 성도들 너머로는 부상병들이 실려 오고, 개 교회 목회뿐만 아니라 지역 및 교단적 연합전선에 함께 출정하는 일 등 ‘나이’와 ‘주말’을 잊고 살아오던 것이 어느덧 10년, 20년이 되어 오고, 우리 중에는 30년이 넘어가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한편 언제나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열심히 하고도 좋은 소리 못 들은 날도 정말 적지 않았습니다. 다 우리가 부족해서 그랬겠지요. 그러면 또 기도하면서 정말 수많은 날들을 묵묵히 걸어왔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걸어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그 뜻을 위하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저는 위대한 사도 바울의 마지막 말씀이 좋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딤후 4:7-8).

 

마치 주님이 우리에게 “굳 잡(Good job), 수고하고 잘했다!”라고 말해 주시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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