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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시한 일들은 예언하지 않습니다!

 

< 김원광 목사, 충계충성교회 >

 

“미래를 궁금해 하는 심리 이용한 교묘한 상술에 빠지지 말아야”

 

 

지난 11월 8일 대학수능시험이 끝났다. 마음 졸이며 시험을 준비했을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기도하게 된다.

 

“주님! 이 젊은이들의 앞길을 열어 주시고, 자녀들을 위한 부모님들의 간곡한 마음에 주께서 가장 좋은 것들로 응답해 주시옵소서.”

 

어느 날 성도 한 분이 찾아왔다. 그분은 자녀의 대학입학시험을 놓고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아이를 위해 기도를 부탁하면서 나에게 물었다.

 

“목사님 우리 아이가 시험에 붙을까요?”

 

나는 “집사님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며 웃었다.

 

요즘 우리 사회 안에 온갖 점술이 만연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점집들을 아무런 죄책감이나 부담감 없이 출입하는 타락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한 때는 미신이라고 무시당하던 것들이 다시 사람들의 마음을 교묘히 미혹시키며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람들이 미래를 궁금해 하는 심리를 잘 이용한 교묘한 상술이며 또한 마귀의 술수라 할 것이다.

 

기독교인들도 미래사에 관심이 많다. 상당수 기독교인들이 ‘예언기도’라는 것을 좋아한다. ‘예언기도’해 준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느낀다. 약한 존재인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사에 대해 궁금증이 클 수밖에 없다.

 

1970년대에 우리나라 도처에는 소위 ‘가정 제단’이라는 예배처소들이 있었다. 거기서는 주로 예언기도를 많이 해 주었다. 그 시절에 나도 몇 차례 ‘예언 기도’를 받아본 기억들이 난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계속하면서 알게 된 사실들이 있다. 그것은 그 예언기도가 상당수 맞지 않더라는 것이다.

 

부흥회에서 어느 유명한 부흥강사가 예언했다. 자신의 꿈에 하나님이 남북을 나누고 있는 붉은 줄을 다 지우고 하나가 되게 하셨는데, 이제 10년 안에 통일이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가 당시 통일이 되리라고 제시했던 10년이 훨씬 넘었으나 통일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부흥사로 잘 활동하고 있다.

 

사람들은 미래사를 이야기해 주는 것을 예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에서 예언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실제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들은 예언이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씀은 곧 바로 예언이 되는 것이다.

 

나는 우리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도 예언을 좀 합니다. 그런데 나는 시시한 예언은 하지 않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자녀들이 대학에 합격할지 떨어질지 모릅니다. 나는 여러분이 이번에 집을 사야 할지 팔아야 할지 모릅니다. 나는 여러분의 건강이 나아질지 더 악화될지 잘 모릅니다. 내가 예언하는 것은 좀 더 큰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운명에 대하여 주로 예언을 합니다. 내가 해 주는 이 예언대로 반드시 될 것입니다.“

 

“목사님! 그 예언이 뭔가요?”

“예수를 믿으면 천당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

 

실제로 복음은 예언이다.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사람들의 미래 운명에 대하여 예언해 주는 것이 된다. 우리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믿는다면 나머지 일들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녀들이 당장 대학에 붙거나 떨어지거나 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 것인가? 정말로 하나님이 행하실 말씀의 약속들을 믿는다면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저 믿고 맡기면 된다.

 

미래 일이 걱정된다면 다시 한번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당신 자신이 이미 말씀의 예언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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