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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4607
2012.03.06 (20:32:17)

성경의 항존성과 영원성

 

김영규목사

·남포교회 협동목사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계시 자체가 모든 기적들 중 가장 대표적 기적이며 기적의 전부”

 

자연질서와 안에서 밖을 보는 공간이 있는 모든 생명체에 있어서 근본적 오류들은 의식과 행동에 방향이 있다는 것과, 그 방향 자체가 외부 정보들을 자신에게로 모으는 판명성의 방향에 있다고 자주 지적한 바 있다.

 

마지막 빈 공간들을 가득 채운 큰 에너지를 가진 원소들이 한 세포라는 질서들을 이루든, 그런 세포들이 큰 질서의 정보들을 이미 가지고 자라서 독립적인 생명체가 되든, 그 생명체의 존속기간 동안 외부 정보들을 모으는 중심이 있고 그 정반대로 행동의 방향이 있는 그런 생명체의 근본적 틀 자체가 생명체의 기본 인자들 곧 가장 근본적인 인간 인자들로 있다는 것은 창조자 하나님이나 창조된 피조물 자체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큰 장애가 되고 있다.

 

그런 비밀이 풀리지 않는 이상 우리의 지각적 직관들이나 의식생활 그리고 언어생활 및 사고, 그런 행위들에 의해서 생산되는 사회 문화적 생산물들은 모두 오류 덩어리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기본 틀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모르고서 자연의 신비나 생명의 모든 현장들의 신비는 기본적으로 풀리지 않는다.

 

우리가 그런 비약을 물리학과 생물학의 경계선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지구 밖에 어디에서도 지금 현재까지 다른 예를 발견하지 못하여 상대적으로 그런 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지구의 역사와 우주의 역사가 진행되어 왔지만 그런 기본 틀을 벗어난 생명체의 아이디어는 아직도 증명되지 못하고 점점 더 인간이 그런 아이디어의 마지막 꽃처럼 증명되고 있을 뿐이다. 창조자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도 그런 틀의 진리성은 뒤집어지지 않고 창조자마저도 그런 틀을 가진 것처럼 증명되고 있을 뿐이다.

 

정보라는 개념을 시간이나 공간으로부터 독립시켜보려고 해도 그런 기본 인자들이 우리의 의식이나 표상이나 논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이상 그들 사이를 분리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우리에게 아직 없다.

 

수학적 개념에는 그런 오류가 없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극히 현명한 진짜 바보이다.

 

실로 잠재 에너지가 가장 크면서 가장 작은 정보 입자로서 지금 물질세계의 빛보다 무한히 빠른 절대 운동이 어떤 차원을 열면서 한 입자로 수축과 동시에 그런 절대운동을 시작하는 어떤 정보입자를 우리가 상상한다고 해도,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정보입자의 개념의 경우에도 인간인자로서 그런 근본적 오류들을 피할 길은 없다.

 

그러나 그런 오류들이 없는 무(無)는 의식이 없는 잠에서만 경험할 수 있듯이 아담이나 아브라함 등과 같은 인간들이 있기 전에도 ‘우리’(창 1:26)로 존재하는 자이시고 빛과 같은 첫 정보입자가 있기 전에도 존재하시며 그 첫 정보입자의 운동 이전에 운동하는 자로 계신 ‘하나님의 영’(창 1:2)이시며, 피조물이나 인간이 표상할 수 있는 어떤 표상으로도 서술할 수 없는 ‘여호와’이시며(출 3:14), 피조물이 듣도록 하신 귀를 지으시기 전에 들을 수 있는 자로 계시고, 인간이 말할 수 있도록 하신 입을 지으시기 전에 말할 수 있는 자로 계시며, 빛과 같은 정보 입자가 없이도 인간에게 눈이나 뇌 및 영혼을 지으시기 전에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아시며 가르치는 자로 계신다(출 4: 10-15)는 것이다. 오히려 기독교 신앙의 경우, 그런 무는 죽은 이후에는 경험할 수 없다고 한다.

 

이 칼럼의 글에서 여러 번 강조하였지만, 지각 자체는 물질 세계가 아니라 아마 딴 세계일 수 있다고 했다. 지각 자체는 우리 주변 세계의 정보들이 우리의 감각기관들과 뇌를 통하여 다른 세계로 펼쳐지는 다른 세계로의 어떤 전환 형태일 수 있고 기억의 한 형태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전환 형태의 정보 자체의 속도가 만약 빛보다 빠르다는 사실을 증명만 할 수 있다면,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이 증명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거기에도 창조자 하나님이 곁에 보고 계시고 거기에 편재하실 수 있으며 거기에서도 명령에 의한 창조자로 계시면서도 ‘모세야, 모세야’라고 부르신 대로 거시정보의 전달방식인데도 우리 이름을 부르시는 자(출 3:4; 33:12)로 계실 수 있기 때문이다. ‘계시’ 자체가 모든 기적들 중 가장 대표적 기적이요 기적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앉아 있고 잠자며 서 있는 것 자체가 부분에 있어서나 전체에 있어서나 어디에서나 명령에 의해서 무로부터 존재하도록 하시는 현장이요, 은혜와 자비로 충만한 자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나누는 것 자체가 무례한 짓이요 은혜를 모르는 불충한 짓이며 하나님에 대한 극히 무지한 소치이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일이나 피조물의 일이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곳에서는 오류라는 말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성경의 항존성과 영원성 및 그 권위는 그런 하나님의 살아 계시고 영원한 품성들을 가진 자가 그 기초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칭하는 것(히 1:1-2)이 가장 바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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