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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

 

< 장인수 박사(D.Min., Ph.D.) >

성서역사배경연구학회 소장

(The Biblical-Historical Backgrounds Institute)

biblelands@paran.com

 

 

623-8.jpg

                                                               새로 건립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전경

 

 

“헬리니즘 사회의 인본주의적 사고가 유대인의 가치관에 혼란 불러와”

 

하 이집트의 델타지역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최초로 외국에서 형성된 유대공동체(Diaspora)의 현장이다. 야곱(이스라엘)의 11번째 아들 요셉을 통하여 그의 아버지와 이복형제들이 전 가족을 이끌고 이곳에 정착했다.

 

그후 이집트의 제26왕조 프삼티크 1세(Psamtik Ⅰ, 664-610 BC)의 통치 당시 외국인 용병들을 고용하여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게 되었다. 그가 통치하기 이전 이집트로 이주하여온 유대인들은 나일강 지역의 한 섬인 엘레판틴(Elephantine)에 정착하고 있었다. 이곳에 정착했던 유대인들은 많은 문서들을 남겼다. 이 문서들에 따르면 그들은 그곳에 성전을 세우기도 했다.

 

남 왕국 유다가 멸망했을 때(586 BC) 일부는 예레미야 선지자와 함께 이집트로 갔다. 그후 BC 332년에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하고 프톨레마이오스 왕가(Ptotcmaeos Dynasty, 305-30 BC)가 들어선 이후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는 엘레판틴은 매력적인 거주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곳에 정착한 유대인들은 상인, 농부, 용병, 관리들과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특별히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유대인 관용 정책에 힘입어 유대인들이 이곳에서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이곳에서 70인역(LXX)이 번역되었고, 이 70인역 헬라어 성경은 이방 세계에 언약의 백성, 곧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를 세계에 알리게 되었다.

 

그러나 헬레니즘 사회의 인본주의적 사고는 헤브라이즘(Hebraism) 사상의 절대 가치관 중심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은 유대사회의 분열을 야기하는 동기가 되었다.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 다원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던 헬레니즘은 유대 지도자들에게 위협적인 사상이 아닐 수가 없었다.

 

특히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은 이로 인하여 공동체가 이완되는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정황 가운데 등장한 사상가가 필로(Philo in Alexandria)였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 사상가인 필로의 출생과 사망에 대해서는 정확한 자료가 없다. 대략 주전 20년경에 출생하여 50년경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필로는 헬레니즘(Hellenism)의 가치관인 헬라 세계에서 유대교를 체계적으로 변증하고 더 나아가 유대인들의 신앙과 사상의 정체성을 알리는데 최대한 노력을 기울였다(E. R Goodenough, An Introduction to philo Judaeus, New Haven:Yale Univ Press 1980, 11-12).

 

주후 37년 로마제국의 3대 황제 칼리쿨라(Caligula, AD 37-41)로부터 팔레스타인 북부지역의 왕으로 임명받은 헤롯 아그립바(Herod Agrippa Ⅰ, AD 37-44)는 자기가 통치할 유대 왕국을 로마의 원로원으로부터 인준을 받기 위하여 알렉산드리아 항구를 경유하여 출항 계획을 세우고 이 도시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때 이곳 유대인들이 존경의 표시로 그를 위한 환영 연회를 베풀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반 유대시민들은 유대인들의 환영 연회가 끝난 다음날 알렉산드리아의 거리에서 배회하고 있는 정신 이상자를 데리고 원형극장으로 가서 시민들을 모아놓고 유대 왕처럼 옷을 입히고는 그 앞에 절을 하는 조롱을 하면서 유대인들과 아그립바 왕을 비하하는 사건을 벌였다.

 

이때 주동자가 아피온(Apion)이라는 그리스계 이집트인이었다. 후일 아피온은 아그립바가 카리쿨라 황제의 절친한 친구임을 뒤늦게 깨닫고 그 불똥이 자기에게 떨어질 것을 염려한 나머지 계략을 꾸미게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그립바 왕을 조롱한 이유는 유대인들이 황제를 모독하기 위함이었다’는 거짓말이었다.

 

그는 당시 이집트의 로마총독 아빌리우스 플라쿠스(Avbilius Flaccus)에게 찾아가서 유대인 회당 안에 황제의 흉상을 세우고 황제를 숭배하게 건의하라고 제의했다. 다시 말해서 유대인들의 충성도를 시험해보라는 것이다. 총독은 당시 유대인들의 우상숭배를 철저하게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폭도들이 두려워 아피온의 말을 듣기로 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총독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총독은 유대지도자들 체포구금하고 고문까지 자행하였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외곽의 유대인들을 체포하여 재산을 박탈하고 인권을 모독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대지도자들은 필로를 단장으로 하여 로마 원로원에 사절단을 파견한다. 그러자 이 정황을 파악한 아피온과 반 유대세력들은 동일하게 로마에 사절단을 파견하게 되었다.

 

칼라쿨라 황제는 아그립바의 친구였지만 반 유대인 정서에 동조하고 말았다. 이로써 알렉산드리아 유대인들과 반 유대 세력들과의 긴장 상태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대결 구도가 계속 되었다.

 

세월이 흘러 AD 70년에 유대 열심당(Zealots)들의 반란에 의한 로마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가 발생했다. 이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유대인들이 알렉산드리아로 유입하여 들어와 알렉산드리아 유대인들과 연합하여 반 로마 투쟁을 선동하게 되었다.

 

이때 알렉산드리아 유대 지도층들은 이들의 선동을 반대하였으나 하층민 유대인들은 지도층들의 설득을 뿌리치고 소규모의 폭동을 일으켰다. 이 폭동은 곧바로 진압되고 말았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총독은 헬리오폴리스(Heliopolys)에 있던 오니아스(Onias) 성전을 폐쇄하여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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