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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 장인수 박사(D.Min., Ph.D.) >

성서역사배경연구학회 소장

(The Biblical-Historical Backgrounds Institute)

biblelands@paran.com

 

 

“아타나시우스는 구원론에 근거해 삼위일체 교리의 체제 구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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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의 알렉산드리아 시내 전경>

 

알렉산드리아에 정착하고 살아가던 유대인들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의해 우대를 받고 있었다. 이 정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철학에 기초한 범세계적(Cosmopilitanism) 헬라세계를 구축하려고 하였던 알렉산더 대왕의 정치철학에 기초한 정책이었다.

 

이러한 기류는 유대적 특수주의(Particularism)라고 하는 유일신앙을 가지고 있는 유대공동체에게는 크나큰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이처럼 알렉산드리아의 사상적 혼란 속에서 아티카 방언에 속하는 코이네 헬라어는 당시의 철학과 유대공동체 속의 신학적 표현을 사용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기원전 250년경 알렉산드리아에 거주하고 있었던 유대인들은 헬레니즘의 영향 속에서 정통적 관습을 잊게 되었고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빈도가 서서히 약화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은 기원전 198년 파네아스(가이사랴빌립보) 전투에서 수리아의 셀레우코스(Seleucid. 198-167 BC) 왕조의 승리로 이들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히브리어와 아람어 대신 헬라어를 상용어로 사용하게 되었다.

 

특별히 알렉산드리아는 인류 최초의 세계도시(Cosmopolis)로서 대단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항해와 무역 그리고 건축분야의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도시의 위치를 선정하고 당시 최고의 건축가 데이노크라테스(Deinokrates)에게 도시 설계를 명령하였다. 그는 이 계획된 도시가 헬레니즘 대제국의 본산으로서 아테네를 능가하는 새로운 문명의 중심지가 될 것을 기대하였다. 대왕의 기대대로 이곳 알렉산드리아는 상업과 교역이 번성하고 학문과 예술이 꽃을 피웠으며 동서 문명이 교차하는 국제적인 도시로 번성하였다.

 

그리스 역사가인 디오도로스(Diodoros Silelos)는 기원전 60년경 이 도시를 방문한 뒤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움과 규모, 부요함과 편리함 그리고 화려함에 있어 알렉산드리아에 견줄 만한 도시는 없다.”

 

이에 앞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270년 동안 15명의 바로를 배출하며 명성을 누렸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바로는 클레오파트라(Cleopatra Ⅶ 69-30 BC)였다.

 

학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유클리트(Euclid)는 기하학의 원론을 집필하였고, 에라스토텔레스는 지구의 둘레를 계산하였으며, 아리스타르고스는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헤로필로스는 인간의 시체를 해부하여 의술을 발전시켰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일식, 월식을 예측하였으며, 알마케스트는 천문학 집대성을 저술하였다. 아르키메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무세이온(Mouseion:왕립학문 연구소)에서 기하학을 발전시켰다. 그리스에서 태어난 이들이 이곳에서 학문적 업적을 쌓은 것만 보아도 이 도시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곳 알렉산드리아는 기독교 교리사에 있어 한 획을 그었던 삼위일체(Trinitas) 논쟁의 주무대였다. 당시 논쟁의 두 당사자는 아리우스(Arius, AD 256?-336)와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AD 296-373)였다. 4세기의 교리논쟁은 알렉산드리아가 중심 무대였으며 삼위일체 논쟁을 언급하지 않고는 초대교회사를 말할 수 없는 중요한 논쟁이었다.

 

거의 50년 동안 아타나시우스의 삶속에서 중요한 신학적 교리를 정립하는데 최대의 적수는 아리우스였는데 아리우스는 기독론의 토대를 그리스의 철학과 연관된 신학을 기초로 하는 성경해석에 그 전제를 두었다.

 

아리우스에 따르면 하나님의 본성은 분할할 수 없는 단일성에 있었다. 그는 분할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이성적으로 볼 때 모순이라고 하였다. 아리우스는 성자를 신학적, 철학적으로 이해하였다.

 

그가 내린 결론에 따르면 아들은 성부와 같은 하나님일 수가 없다. 성자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시작이 있었다. 그는 영원할 수 없으므로 “그분(聖子)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고 하였다. 성자는 성부와의 경계선 상에서 보아야 하며 그 본성에 있어서 창조물 영역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Thomas Marsh. The Triune God : A Biblical. Historical and Theological Study. Mystic Conn.:Twenty-Third Publications 1994. 104).

 

아리우스는 성자를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 가장 높여진 분이라고 주장하였다. 성자는 시간 이전에 창조되었으며 시간 밖에서 태어났다. 성경은 성자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렀지만 성자에게 부여한 이름은 기껏해야 ‘온유’였다. 아들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최고의 창조물로서 차지하는 놀라운 지위를 차지하는 명예였다. 그리고 “아들은 하나님이다”는 “참으로만 아니라 이름으로만 그러하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아리우스의 견해에 아타나시우스는 인간이 죄에서 구원되어야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을 하셔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므로 아리우스와의 논쟁에 불을 지폈다. 아타나시우스의 초점은 구원론에 있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셔야 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어야 했을까?

 

아타나시우스가 아리우스에게 준 대답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만이 구원할 수 있다. 성부는 성자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셨다. 창조물은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

 

아리우스는 성자를 모든 창조물 가운데 가장 높은 존재로 묘사하였다. 반면에 아타나시우스는 성자가 피조물이라면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능력이나 특권을 가지지 못한다고 정의하였다(Discourses Against the Arians).

 

아타나시우스는 296년경 이곳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대교주 알렉산드(Alexander, 재임 312-328)의 비서로서 교회사에 등장한다. 정통 삼위일체 교리논쟁에서 아리우스에게 승리함으로써 교회사에 그의 위치는 무시할 수가 없다.

 

격랑의 4세기 초 아타나시우스는 교리사에 한 획을 그으며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Concilium Nicaenum)에서 그의 주장이 정통교리로 채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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