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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 왕가의 골짜기(Valley of the Kings)

 

< 장인수 박사(D.Min., Ph.D.) >

성서역사배경연구학회 소장

(The Biblical-Historical Backgrounds Institute)

biblelands@hanmail.net

 

630-8.jpg

                                                                                       룩소에 있는 왕가의 골짜기 입구 전경

 

 

“애굽 왕들은 무덤을 건설하여 영생의 가치를 통치 이념으로 삼기도”

 

고대 그리스의 시인이었던 호머(Homeros, 800-750 BC)는 그의 저서 일리아드(Iliad)에서 지금의 룩소(고대명 테베)를 가리켜 “황금이 산처럼 쌓여있고 100개의 문이 있는 호화찬란한 고도(古都)를 테베(Thebes)”라고 노래 불렀다.

 

테베라는 이름은 그리스식 이름인데 아문의 도시(City of Amun)라는 뜻이다. 그러나 히브리식의 이름은 ‘노아몬’인데 구약 성경 나홈서 3장8절에 나온다. “네가 어찌 노아몬보다 낫겠느냐 그는 강들 사이에 있으므로 물이 둘렀으며, 바다가 성루가 되었고 바다가 방어벽이 되었으며.” 70인역(LXX)에는 ‘데베’로 번역되어있다.

 

데베, 즉 지금의 룩소(Luxor)는 고대 이집트의 수도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7왕조(1633-1555 BC)에서 20왕조(1185-1070 BC)까지 이어지는 정치, 문화, 종교의 중심지였다. 원래 수도로 정해진 것은 중 왕국시대였던 12왕조의 창시자 아메넴헤트 1세(Amenemhet Ⅰ, 1991-1926 BC) 통치 시기였다.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의 의문이 남는다. 룩소가 상 이집트에 위치하고 있는 당시 수도였는데 어떻게 출애굽시대 사건의 현장이 하 이집트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이 룩소는 오늘날 카이로(Cairo)에서 750km 남부에 위치하고 있어서 기차로는 약 11시간이 소요되며 비행기로는 한 시간이 채 못 되는 거리이다. 그런데 이러한 의문은 출애굽시대(1446 B.C)의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면 곧 풀린다.

 

모세의 양모로 추정하는 하셉슈트 통치 시기(1498-1483 BC)에 그녀는 과거 힉소스 통치시기에 파괴되었던 하 이집트의 신전들을 복구하며 파괴된 도시들을 제건 하였다. 다시 한 번 정치, 종교, 문화의 중심지로 고센 지역을 부활시켰던 시기였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모세의 출생년도를 기원전 1520년경에 헬리오 폴리스에서 출생하였다고 기록하였다. 헬리오 폴리스(Heliopolis)란 뜻은 ‘태양의 도시’라는 뜻으로 구약성경에는 ‘벧세메스’(태양의 집)로 등장한다(렘 43:13). 지금의 위치는 카이로 동북부 공항에서 카이로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은 요셉의 통치 지역인 온(On)이란 지명도 가지고 있다(창41:50). 후일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n)도 이곳에서 학문을 배웠다.

 

이제 다시 고대 이집트 영광의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는 룩소를 조명하여 보자. 중 왕국시대 이전까지는 소위 피라미드 시대로 일컫는 피라미드와 하안신전, 장재전 등이 한 지역에 건축되었다. 그러나 신 왕국시대 이후부터는 왕가의 골짜기(Valley of the Kings)와 같은 암굴 분묘와 하셉슈트 여왕의 장재전같이 대표적인 신전으로 나뉘어져 건축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태양이 지는 나일강 서안은 사막지대이며,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는 사후 세계가 있는 장소이며 무덤이었다.

 

신 왕국시대가 도래하자 바로들은 자신들의 무덤 도굴을 방지하기 위하여 룩소 서안의 깊숙한 골짜기에 무덤군을 만들고 사후세계에서 영생할 희망을 꿈꾸며 생전에 자신의 무덤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였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고대 제왕들은 살아 생전의 삶을 소중한 인생의 시기로 생각한 반면, 고대 이집트의 제왕들은 사후세계를 위하여 무덤을 건설하며 영생의 가치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건 것이다. 그러한 흔적들을 바라볼 수 있는 지역이 왕가의 골짜기이다.

 

그러나 금은보화의 각종 귀중한 유물들을 노리는 도굴꾼들은 이러한 바로들의 무덤을 그냥 둘 리 없었다.

 

왕들의 사후 대부분의 무덤들은 도굴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럼에도 무명에 가까웠던 제18왕조 시대의 젊은 바로였던 투탕카멘(Tutankhamen, 1334-1352 BC)의 무덤이 수천 년의 침묵을 깨고 1922년 11월 왕가의 골짜기에서 도굴을 당하지 않은 채 발굴되었다. 그는 기원전 1361년 9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9년 동안 짧은 통치를 한 후 세상을 떠난 소년 왕이다. 출애굽 사건 약 100년 후 이집트를 다스린 바로였다.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한 영국인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 1873-1930)였다. 그가 무덤을 발굴하기 전까지는 투탕카멘의 이름은 무명에 가까웠다. 사관 마네토의 이집트사 그 어느 왕명록에도 그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카터는 당시 유명한 고고학자에게 8년간 학문적인 수업을 쌓았다. 특별히 페트리에게 수학하며 독학으로 히에로글리프(Heiroglyphe:이집트 민용문자)를 읽는 법을 습득하였다. 그는 체계적인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한 가운데 유년 시절을 보내었다. 그러나 그의 일생에 잊을 수 없는 고고학 발굴의 동지를 만나게 된다. 다름 아닌 당시의 부호이며 귀족이었던 카나본 경(Lord Canarvon)이었다.

 

그와 인연을 맺게 된 동기는 숙명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그가 자가용으로 여행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몸져눕게 되었을 때 담당의사가 이렇게 권고하였다. “계절적으로 따뜻한 나라로 가서 요양을 하면 몸의 건강을 회복할 것입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이집트에 요양지를 정하고 이집트로 향한다. 그가 아스완에 도착하여 필레의 이시스 신전을 돌아보다가 발굴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카터를 만난 것이 인연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의 화려한 문화와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러한 위대한 발굴도 영원을 갈망하는 인생의 해답은 되지 못한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못하였느니라”(마 6: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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