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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 시대의 성경적 연대기 설

 

장인수 박사(D.Min., Ph.D.)

성서역사배경연구학회 소장

(The Biblical-Historical Backgrounds Institute)

biblelands@paran.com

 

“성경은 15세기 출애굽 사건 연대기를 확고하게 보여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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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와 전통적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출애굽기의 저자는 모세이며 시내산 언약체결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출 17:14; 24:4; 34:27).

 

이러한 전통적 견해를 뒤집은 사람이 벨하우젠(J. Wellhausen, 1844-1918)이다. 그에 의하면 “족장시대의 역사적 지식은 전혀 얻을 수 없는 족장들의 이야기며, 이스라엘 민족들에 의해 후대에 기록된 전승(Tradition)일 뿐이며, 족장기사는 허구일 뿐이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는 “아브라함의 사건은 무의식 예술의 자작 창작으로 취급하여야 할 문학이다”라고 하였다(J. Wellhausen, Prolegomena to the History of Israel, New York:Meridian, Library, 1957, 318-320). 소위 역사 비평(Historical Criticism) 혹은 고등비평(Higher Criticism)이라고 부르는 학설의 이론을 제공한 인물이다.

 

문서설로 일컫는 이 학설은 모세오경이 익명의 제사장 계열의 편집자들에 의하여 다듬어진 문서들로 포로기 혹은 그 이후인 BC 600-400년경 작품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기록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그 권위를 증거하고 있다(딤후 3:16).

 

이러한 역사비평으로 일컫는 자유주의자들을 향해 성경의 무오성을 주장하는 학자가 있었다. 바로 존 그레샴 메첸(J.G. Machen)이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이라는 교리가 권위 있는 가르침과 도덕성을 상술함에 있어 불완전성을 막아 준다고 확신하였다(J.G. Machen, Christianity and Liberalism, 1976).

 

율법서인 모세오경은 정경(Canon)으로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선포하였을 때(출 24:7), 대제사장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서를 서기관 사반에 의해 요시아 왕에게 그리고 회중에게 읽어 낭독하였을 때(왕하 22:8-9; 대하 34:14), 학사 에스라가 율법서를 낭독하였을 때(느 8:9; 14-17; 10:28-39; 13:1-3)에도 언제나 모세오경이었다.

 

구약성경은 시대별로 영감받은 자들에 의해 오경을 언급하였다(수 7:11; 8:31; 23:6-8; 왕상 2:3; 왕하 14:6; 17:37; 대상 16:40; 대하 17:9; 23:18; 30:5,18; 31:3; 35:26 등). 오경 속에는 저자로서 모세의 활동을 언급한다(출 17:14; 24:4-7; 34:27; 민 33:2; 신 28:58-61; 29:20-27; 30:10; 31:9-13 등).

 

또한 역사적으로 모세오경은 기원전 3세기경 헬라어로 번역되어 70인역의 첫 부분을 정경으로 그 권위를 인정하였다. 이 시기에 이미 창세기를 비롯하여 모세오경이 모세의 기록으로 인정되었음을 볼 수 있다(Eusebius, Preparation for the Gospel, 13:12). 사마리아 오경에서도 모세오경을 보존하였다는 사실 또한 이를 증거하고 있다(Proto-Samaritan text type).

 

신약성경에도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로 된 언급이 12회나 기록하고 있다. 더구나 예수께서 율법과 선지자를 역사적 사실로 말씀하셨다(눅 16:16, 29-31). 사도 바울 또한 다 믿는다고 확신하였다(행 24:14; 26:22).

 

이와 같이 성경의 정경성을 인정한다면 출애굽 연대는 초기 연대설(Early Date)로 주장하는 15세기 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출애굽 15세기설의 근거는 열왕기상 6장 1절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땅에서 나온지 사백 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학자들에 의하면 출애굽이 솔로몬 즉위 4년보다 480년 전에 있었다는 기사를 바탕으로 산정하고, 성전 건축 연대가 기원전 966, 960, 957년경으로 추정됨에 따라 출애굽 연도는 기원전 1446/1440/1437년이 된다.

 

또한 사사기 11장 26절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한 사사 시대의 300년 전을 거론하고 있는데 입다의 활동시기를 기원전 1100년 또는 1050년 시기로 볼 때 출애굽 년도는 BC 1440년-1390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람세스 2세(RamsesⅡ, 1279-1212 BC)의 아들 메르넵타(Merneptah, 1212-1202 BC) 석비는 당시의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고 있었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13세기설을 주장하고 있는 학설은 성경의 정경성보다는 고고학적 배경을 근거로 출애굽 연대기를 설정하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소위 열왕기상 6장 1절의 480년이란 12세대×40년에서 나온 상징적인 숫자라고 말한다(J.Maxwell Miller, J.H. Hayes, A History of Ancient Israel and Judah, 「고대 이스라엘 역사」 박문재 역, 서울: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6, 85).

 

또한 비돔과 람세스 성의 건축에 이스라엘 백성이 동원되었다고 하는데 비돔과 람세스는 제19왕조 시대 이전에도 존재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F. Albright, From Stone Age to christianity, 2nd ed., Garden City:Doubleday, Anchor Books, 1957, 233). 존브라이트(J.Albright)는 고대 이집트 왕조사에 이스라엘이 노예생활을 하였다는 역사적 증거가 없었다고 말한다(J. Bright, Early Israel in Recent History Writing, London, SCM, 1956, 27).

 

이처럼 그들이 추정하는 출애굽 연대기는 두 학설 모두 켐브리지 연대기(Cambridge Ancient History)를 사용한다. 그리고 그들은 초자연적 재난과 이적들은 이집트의 바로가 수백만 명의 히브리인들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는 성경기록이 성경에만 나온다고 제한한다. 단지 이 기사는 신앙적 고백으로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출애굽이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다고 가정할 때 이스라엘 민족이 단순히 전설을 사실(fact)로 받아들여 수천 년 동안 거짓된 사건을 매년 지켰던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이라고 하는 출애굽시 제정된 3대 절기를 어떻게 지킬 수 있었겠는가?

 

이스라엘의 그 어떤 지도자가 아무런 조건도 없이 출애굽 사건을 지어내어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처럼 거짓말로 백성들을 설득시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월절을 지키도록 할 수 있었겠는가?

 

다음 호부터는 15세기 설에 근거한 시대적 배경을 더듬어 보며 출애굽 역사를 일반 역사적 사실과 함께 입체적으로 추적해 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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