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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황금시대와 유대인 귀환

 

 

장인수 박사(D.Min, Ph.D)

성지학술연구소장

(Bible Land's Research Institute)

biblelands@paran.com

 

575jang.jpg

“황금기 코스모폴리탄 정책으로 재건된 제2성전”

 

 

고레스(CyrusⅡ The Great, 558-547 BC)는 메대왕국을 정복한 이후(559 BC) 제국을 더욱 확장시켜 나갔다. 그 이후 페르시아 제국을 아케메네즈 왕조(The Achaemenian Empire)라고 불렀다. 이때 고레스 2세는 아나톨리아 지방의 소왕국 리디아(Lydia)를 정복하고 제국의 일부로 편입시켰다(546 BC).

  

리디아는 풍부한 금과 은의 생산지였고 이러한 자원을 기반으로 하여 상업적으로 부요한 재원을 소유한 왕국이었다. 세계 최초로 화폐를 주조한 왕국이기도 하다. 그리이스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텔레스(Thales)의 탄생지이기도 한 이 나라가 고레스 2세에 의해 정복당하였다.

 

리디아가 고레스 대왕에 의해 정복당한 배경은 당시 리디아의 마지막 왕 크로에수스(Croesus, 560-546 BC)가 잘못된 정치적 판단에 의해 페르시아 제국을 침공한 것이 원인이었다. 고레스가 크로에수스를 화형에 처하려고 하자 그는 과거에 철학자 솔론(Solon)과 나누었던 대화를 인용하여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왕이여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이제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오. 솔론이 말하기를 진정한 행복은 이 세상을 떠날 때 가지고 갈 것을 발견하는 사람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였소. 이제 이땅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고 그대의 것이오”라고 하자 고레스 왕은 크로에수스를 살려주고 약탈을 중지하라고 명령을 내렸다는 일화가 있다(G.E. Vean, Aegean Turkey, London : The Bath Press, 1989. p. 220).

 

고레스의 관용 정치(cosmopolitanism)는 바벨론을 정복한 후 신바벨론 제국의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Nabonidus)를 포로로 잡았지만 그 이듬해 그가 사망할 때까지(539 BC) 제왕으로서 극진하게 대접하는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나보니두스가 사망하였을 때에는 국장을 치러주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후 예루살렘이 페허가 된 사실을 직시한 고레스왕은 당시 4만 명 이상의 유대유민(Free Men)들의 귀환 요청을 제가하였으며 압류시켰던 성전 기물들과 그들의 재산들을 가지고 귀환하도록 하였으며 예루살렘 성전 재건까지 허락하였다(538 BC).

 

고레스의 피정복민들에 대한 관용정책은 정치, 경제, 종교, 문화, 사회 전반에 걸쳐 적용되는 정책을 실시하였으며 이로 인해 통합된 제국으로서의 결속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기원전 547년 그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유목 문화의 배경을 가지고 있던 고원국가 페르시아가 제국으로서의 번영을 누리는데 기여한 교통망 확충을 위하여 도로를 건설하였으며 특히 그중 가장 유명한 도로가 ‘왕의 도로’(Royal Road)로서 그 길이가 약 2,600Km에 달하였다.

 

이 도로는 페르시아만 수사(Susa)에서 리디아의 수도 사데(Sardis)까지 뻗어 있었다. 이러한 왕의 도로는 왕의 전령사가 밤낮으로 말을 타고 달리면 일주일 이내에 제국의 전 지역에 칙령을 전달할 수 있게 하였다.

 

고레스 2세와 다리오 1세의 지속적인 관용정책은 후일 로마제국의 황제들을 비롯한 로마의 지도층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로마 전체의 지도층들에게 사상적 영향을 주었다고 E.M 번즈는 주장하였다. 이후 세계의 제국으로서 관용적 사상은 알렉산더 대왕을 비롯하여 제왕들의 정치적 지도자상으로 각인되기에 이르렀다.

 

고레스 대왕 사후 캄비세스(Cambyses Ⅱ, 530-522 BC)의 통치기간은 페르시아 제국이 위기의 기간을 보낸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이집트 정복과 에디오피아 정벌은 많은 군사를 잃은 실패의 전쟁이었다. 결국 그는 원정 기간에 왕의 죽은 형제와 외모가 비슷한 가우마타(또는 Bardiya)의 반란 소식을 듣고 귀국 길에 수리아에서 사망하고 말았다(522. BC) 이 기간은 예루살렘 성전 건축이 중단된 시기였다.

 

그가 계승자 없이 사망하자 아케메네즈 왕조의 궁정 고관이었던 다리오 1세(DariusⅠ, The Great 522-486 BC)가 왕위에 오른다. 가우마타가 제거된 후(522 BC) 그는 즉시 아케메네즈 가문과 결혼하였고 그의 가문은 아케메네즈 가문의 정통성을 물려 받았다고 선언하였다. 즉 캄비세스의 동생으로 추정하는 바르디아의 미망인이었던 아토사(Athosa)와 정략 결혼한 것은 이러한 정통성을 물려받았다는 명분을 얻기 위함이었다.

 

성경에 언급된 다리오 1세는 당시 중단된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라고 칙령을 내린 대왕이다(스 6:1-4). 이때가 기원전 520년 9월 21일(학 1:4-15)이었다. 공사가 재개된 후 완공된 기간은 4년 3개월이었으며, 후일 헤롯 대왕(Herodes Ⅰ, The Great, 37 BC-AD 4)때 스룹바벨에 의해 재건된 두 번째 성전이 완공되었지만, 주후 70년 로마의 티도(Titus) 장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어 지금은 성전 외부의 흔적 잔해들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다리오의 통치 초기에는 제국 전 지역의 속주들의 반란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의 탁월한 통치력으로 제국을 번성되게 부활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제국에 협조하는 속주에게는 관용을 베풀었으나 반란을 일으킬 때에는 가차 없는 보복을 감행하였다. 이때 제국을 향하여 반란을 주도한 지역은 소아시아의 밀레도(Miletos)였다.

 

그러자 다리오는 반란을 주도하였던 밀레도의 지도층 인사들과 용사들을 체포하여 거세를 하였고 페르시아 하렘의 환관들로 만들어 버렸다. 반란 이후 페르시아는 당시의 이오니아 지역인 이곳의 주민들에게는 가혹한 박해를 가하였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리디아의 마지막 왕 크로에수스가 이 지역 신전의 신상들을 향해 사제 계급에게 신탁을 의탁하여 페르시아를 공격하도록 주도한 지역이 이곳 이오니아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사도 요한이 7교회에 보낸 편지에 소개된 지역이기도 하다(계 2:1-3:12).

 

이오니아 지역이 반란의 동기가 되어 이들과 동맹관계 속에 있었던 헬라의 아테네와의 결전을 벌이게 되었다. 즉 페르시아와 아테네와의 마라톤 전쟁(499-386 BC)이 발발한 동기를 제공한 지역이 바로 이오니아였다(M. Lang, “Heoodotus and the lonian Revolt”, Historia, 17(1968), pp. 24-36).

 

아케메네즈 왕조의 정통성을 인정받은 다리오 1세 치세 기간에는 왕의 도로를 통하여 궁전으로 유입되는 수많은 금은 보석과 각종 진귀한 물품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리이스인들은 이러한 페르시아의 풍요를 질투어린 눈으로 바라보았으며, 페르시아 제국의 중심부인 페르세폴리스와 수산궁에서는 신년축제 때에나 다른 축제일이 다가오면 15,000여 명이 넘는 귀빈들과 외국 사절들을 초청하여 큰 연회를 베풀었다.

 

이때가 되면 매일 수천 마리의 가축들을 잡아서 잔치를 배설하였고 엄청난 양의 술을 제공하는 향연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연회가 열릴 때면 귀빈들은 왕을 볼 수 없지만 왕은 연회장에 초대된 귀빈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하였다. 궁전 예절은 엄격하여 왕 앞에 설 수 있는 자들은 지극히 소수였다. 왕은 이러한 귀빈들을 아래로 내려다 볼 수 있도록 높은 왕좌에 앉아 그들의 알현을 받았다.

 

왕의 측근에서 신임을 받는 신하들은 3가지의 무술에 능하여야만 하였는데, 승마와 궁수, 그리고 지략이었다. 즉 지성을 가진 용사들 중에 국가관이 확고한 사람들을 엄격히 조사하여 왕의 측근 신하로 등용하였다. 총독 느혜미야는 이러한 인물중 한 명이었다(느 11: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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