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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9 (00:00:00)
http://www.rpress.or.kr/files/culture/539jang.jpg성경시대 역사탐방<11>

바빌론(Babylon) 유적지를 가다(2)



사진_이쉬타르 성문 복원

장인수 박사
성지학술연구소장(Bible Land's Research Institute)


“바빌론 기록은 20세기 초에 역사적 신빙성 얻어”

고대 그리이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os Historiai)의 기록과 성경에
서만 언급되어 있는 바빌로니아 제국은 우르 제3왕조의 멸망 직후인 기원전
19세기 족장 스무아붐(Sumuabum)에 의해 건국되었다.

스무아붐에 의해 건국된 바빌로니아

강대한 권력을 자랑하였던 바빌로니아 제국 시기는 하무라비(Hammurabi
1792-1750 B.C)왕의 제위 때였다. 하무라비는 바빌론에 화려한 궁전과 신전
(神殿) 그리고 신탑(神塔) 등을 건축하였다. 그의 제국은 페르시아 만에서
오늘날 아나톨리아 국경지역에 이르는 방대한 영토를 다스렸던 제왕이었다.
저 유명한 하무라비 법전도 이때 편찬되었다.
“정의(正義)를
나라 안에 빛내기 위하여”라고 시작된 이 비문은 정의가 당
대 윤리의 최고 가치였으며, 동시에 정의가 부패한 인간의 죄의 습성으로 인
하여 시련을 받고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높이 2.25m의 검은
섬록암에 아카드어로 기록된 이 비문은 구약성경의 율법(Torah)과 함께 로마
의 법전, 나폴레옹의 법전과 함께 유명한 법전으로 알려져 있다.
바빌론에 관한 기록은 19세기 말까지는 그 역사적 의미의 신빙성이 의심되어
져 왔으나, 20세기 초 독일의 고고학자 콜데바이(Robert, Koldewey)에 의해
광택 벽돌로 장식된 성문(城門) 발굴로 인하여 세계 고고학계를 흥분속으로
몰아넣었다.
콜데바이는 성경에 기록된 근거를 기초로 하여 바빌론 발굴 계획에 착수하였
고, 유프라테스 강 동쪽 가르스 구릉에서 발굴을 하기 시작하여 길이
2.5km, 너비 1.5km의 옛 바빌론 도성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 가운데 가
장 완벽한 형태로 발굴한 이 유물이 이쉬타르(Ishtar) 성문이었다.
이쉬타르 성문을 중심하여 경내로 계속 발굴을 시도하여 판석 위로 깔린 20m
내의 대로(大路)가 나타났고 이곳에서 발견된 석판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

n었다. “바빌로니아 왕 나보폴라살의 아들 바빌로니아의 왕 느부갓네사르인
짐은 바빌론 도로를 마르둑(Marduk)신의 행렬을 위하여 사각 판석으로 포장
하였느니라. 신이여! 마르둑신이여! 영원한 생명을 주옵소서.” 그리고 길
왼쪽으로 황토색 벽돌로 쌓아올려 지은 거대한 남 궁전(宮殿)을 발굴했다.
느부갓네살 왕의 통치 때에는 500개의 방을 보유한 정궁(正宮)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방을 구획하는 내벽은 없고 단지 전체를 표시하는 외벽만 허물
어진 채 발견되어 지금은 그 외벽을 복원하여 놓고 있다.
그후 페르시아 군에 의해 파괴된 지 20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마케도니아의
영웅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정복 길에 올랐다. 바빌로니아에 도착한 알
렉산더는 이곳 폐허를 바라보고 감회에 젖었으며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렀다
고 한다. 인도와 힌두쿠쉬를 정복하고 돌아온 대왕은 이곳 남 궁전에 머무르
다 열병에 걸려 사망한 지역이기도 하다. 그때 그의 나이는 약관 33세였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곳에 있었던 공중정원(hanging garden)을 사랑하였는데
이 공중정원은 온통 푸른 수목으로 뒤덮인 5층 구조의 건축물이었다. 대왕

은 이집트 신전에서는 볼 수 없는 기둥과 높은 계단이 정면을 장식하고 있
는 빼어난 건축미를 감탄하며 감상하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다.
바빌론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부정적인 표현들로 가득하다(대상 9:1; 대하
32:31; 사13:1-4; 행7:43; 계14:8). 열왕기하 24:13-14에 보면 “저가 여호
와의 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만
든 것 곧 여호와의 전의 금기명을 다 훼파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
었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바빌로니아에 포로(Free Man)로 잡혀간 유다인들은 노예의 삶을 산 것
이 아니었다. 포로 중의 한 사람이었던 다니엘은 왕궁에서 왕과 귀족들과 함
께 생활하였고 바빌로니아 제국의 학문과 문물을 연구하고 배우는 것을 허락
받았으며 이곳에서 높은 신분과 직위도 누렸던 인물이었다(단 1:1-4, 17-
21).

알렉산더 대왕도 감탄한 공중정원

다니엘은 도서관에 있는 방대한 메소포타미아의 문서들을 볼 수 있는 특권
을 누리기도 하였으며 왕의 총애도 받았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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