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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2015년 1월 1일부터 새 홈페이지를 사용합니다.
rpress
9623 2015-01-05
Notice 독자의 소리 게시판 이용 안내
rpress
12715 2010-07-23
5 no image 박윤선 5분 새벽기도 설교를 읽고 (58)
안해근
7909 2012-10-27
먼저, 우리 신앙의 큰 스승이신 박윤선 목사님의 설교를 연재해주시는 편집부에 감사드립니다. 10. 20 자, 다윗의 신앙을 읽었는데 한 가지 아쉬움이 있습니다. 성경을 인용할 때, 개역개정판을 사용하지 말고 개역한글판을 사용해주셨으면 합니다. 박윤선 박사님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찬송가 가사를 꼭 고쳐야 하는가? 부르던 대로 그냥 부른면 안 되는가?" 단, 박윤선 주석에서 성경번역의 오류를 지적하고 이는 개역되어야 한다고 한 부분은 박윤선 박사님의 지적을 수용해도 좋을 것입니다. 합신총회가 개역과 개역개정을 교회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하도록 한 것을 존중해도 그렇습니다. 시131:1 [개역개정]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개역한글]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빌4:12 [개역개정]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개역한글]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박윤선 목사님이 설교하실 때 사용했던 성경을 사용해 달라는 것입니다. 영어번역본을 보십시오. 다른 많은 번역본이 있을지라도 킹 제임스 버전이 여전히 그 권위를 지니고 있습니다. 영어찬송을 보십시오. 그 당시 가사대로 고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 How Great Thou Art
4 no image 로그인 할 때.. (16)
안해근
5761 2012-02-25
3 no image 부임 인터뷰? (15)
박정환
6805 2011-08-28
먼저 죄송하단 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잘 글이 올라오지 않는 게시판에 제 이름이 두 개나 오르니, 왠지 죄송하단 생각이 드네요. 개혁신보를 받아 보았습니다. 사설에서 600호를 기념하는 글이 있더군요. 세 가지로 개혁신보에 바라는 글을 올리셨습니다. 그 중 첫번째가 중심이 바로 선 기사를 주문하셨습니다. 그래서 더욱 생각이 듭니다. 부산 호산나교회에 부임하신 홍민기 목사님께는 축하를 드립니다. 누구신지, 어떤 분이신지 잘은 모르지만 축하는 드려야 마땅하겠지요. 그런데 지난 30주년에서도 굳이 동영상까지 보면서 홍보 아닌 홍보를 보았고, 전에도 부임예배를 드렸다는 기사를 개혁신보에서 보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에는 인터뷰까지 올라왔더군요. 그래서 전에도 다른 교회 담임목사님이 부임할 때 그런 적이 있는가 하여 잠간 둘러보았습니다. 주로 인터뷰는 '박영선 목사님이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소신에 대한 것이라든지, '교단3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와 교단의 나아갈 길'에 대한 것과 같은 경우가 보이는군요. 아마도 후임 담임목사로 부임해서 인터뷰를 한 것은 처음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혹시 있었더라도 그것이 중심이 바로선 기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 듭니다. 그래서 질문 몇가지가 떠오릅니다. 1. 앞에선 없었더라도 이를 계기로 앞으로는 후임 담임목사와의 인터뷰를 계속 가질 계획 가운데 첫 사례로 나온 것인가요?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많은 목사님이 은퇴를 하실 것입니다. 참고로 같은 호에 은급위원회 회의에 대한 기사도 있던데, 그만큼 은퇴와 그 후의 문제가 당면한 큰 문제겠지요? 그러면 은퇴하신 분도 그렇지만, 후임으로 오시는 분들에 대한 인터뷰도 앞으로 지속적으로 하실 건지요? 그래야 균형이 맞지 않겠습니까? 2. 후임으로 서실 때, 인터뷰를 하셔야겠습니까? 임기를 잘 마치시고 돌아보면서 하시는 인터뷰는 모르겠습니다. 그건 잘 마치심이 하나의 교훈이 되고 푯대와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 시작하는데 인터뷰를 하는 것은 무엇을 바라보기 위한 것인가요? 부임하고 세움 받는 것에 의미가 있기 때문인가요? 저는 학교에 다니면서 듣기로, 박윤선 목사님이 소천하실 때 무덤을 장식하거나 참배할 수 있는 어떤 것을 만들지 말라고 부탁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합동신학교 뒷동산에 있는 무덤가는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제자 교수님들이 하나님께로 가신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아 그렇게 만드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아마도 신복윤 교수님께서 1학년 때 학교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들려주시면서 하셨던 이야기 같습니다. 칼빈의 무덤은 지금도 정확히 모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알려진 곳도 평토장 된 곳에 이정표도 없이 발견 된 줄로 압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도 용서해주십시오. 어쨌든 무덤을 만들어 기념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기의 이름을 남겨 후세에 참배하게 하는 일은 개혁자들이 반대해왔던 일인 줄로 압니다. 그런데 시대가 조금 변했다고 우리는 무덤을 대리석으로 꾸며야 합니까? 그래서 인터뷰를 하실 겁니까? 뭐, 저야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인터뷰하자는 말도 안나오겠지만, 저는 그런 기회가 오더라도 하나님과 선진들 앞에서 창피할 것같습니다. 아직 한 것도 없는데...... 있어도 창피할 것같은데...... 뭔가 우리의 모습은 칼빈과 박윤선 목사님과 많은 앞선 목사님들이 바라고 원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고, 달라진 것같아 죄송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적어도 이상하기도 합니다.
2 no image "성범죄와 노출이 심한 옷"이라는 신학단상의 내용에 대하여 [3] (11)
박정환
6827 2011-08-01
조석민 교수님의 인품을 모르지 않는 사람으로서 나쁘게 오해하거나 과도한 생각을 품어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용상 의미를 제가 잘 이해를 못하겠기에 의문을 던집니다. 제목은 시대적 사건 자체를 표현하는 단순하고도 중립적인 제목으로 보입니다. 과거 철학과 이방종교에서 영과 육을 분리하여 육을 더럽게 여기고 영을 소중하게 여긴 이분법적 사고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도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일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게 보는 흑백 논리나, 육신의 일은 영적인 일과 무관하게 여겨 방종하게 되는 이분적 사고나 모두 경계해야 할 것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서...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은 종교적 행위보다 몸으로 살아가는 일상의 삶 속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남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몸으로 드러내는 일상의 삶에서 거룩함을 지켜야 하며, 여성들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을지라도 그것을 탓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몸으로 살아가는 일상의 삶 속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거룩한 삶을 나타내야 한다고 하실 때까지는 별 의문이 들지 않고, 쉽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뒤이어 "그리스도인은 몸으로 드러내는 일상의 삶에서 거룩함을 지켜야 하며, 여성들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을지라도 그것을 탓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하시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결국 삶에서 거룩함을 보여야지 옷을 이렇게 입었느냐 저렇게 입었느냐는 논란의 제목을 삼아서는 안된다는 말씀같습니다. 일견 이해하기로는, 쓸데없는 논란을 만들어 본질을 가리게 해서는 안된다는 의도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끝내고 나면 너무나 뒤끝이 그리 깨끗하지가 않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비록 교수님의 글에서는 이러한 사고도 남성 중심의 사고라 말씀하셨기에 저도 거기에 갇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다는 것을 성적 호기심과 흥분을 자극하는 일이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요즘 말하는 "하의실종", "꿀벅지", "베이글녀", "S라인", "Sexy"라는 말 자체가 의도하고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의를 입었는지 벗었는지 의심이 가게 입는 것이나, 다리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소위 "킬힐"을 신는 것이나, 몸매는 글래머러스하나 얼굴은 청순미를 지닌 남성선호적 표현이나, 단지 마르기만 하지 않고 근육으로 다져진 다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나... 특히 Sexy라는 단어는 굳이 사전적 의미를 찾지 않더라도 이는 성적 호감을 나타내는 표현으로서 나이와 성별을 따지지 않고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짧은 옷을 입습니까? 오직 자기 만족을 위해, 즉 자기가 거울보고 스스로 좋아하고 만족하기 위해서 각종 성형수술을 하고 자기 몸을 다지는가요? 결국 2차적으로 내포한 목적, 혹은 1차적 의도는, 이성에게 성적 호감을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이,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거부하지만 실제적으로 가지고 있는 의도와 목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의도와 목적 속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패션,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 물질의 사용에 대한 중점요인 등은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은... 몸으로 살아가는 일상의 삶 속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남"이라고 하신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타인이, 내가 아니라면, 그렇게 입는 것은 탓하지 말라고 한다면 위에서 말한 "드러남"은 개인적 차원이 되고 사회적 윤리와 종교적 도덕 기준으로는 제시할 수 없는 것이 되는 것같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이런 표현을 잘 쓰는데 적절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소승불교처럼 혼자 거룩하고 혼자 명상하며 해탈에 이르는 것에 머무르는 것과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결국 우리는 세상을 떠나 혼자 살아야할 것 같습니다. 요즘은 교회를 보면, 제 개인적으로는 10여년 전에는 제 교회에서 생각할 수도 없었는데, 집사님과 권사님들도 머리를 염색(새치 가리는 염색말고...)하고, 이른바 각종 "ㅇㅇ룩"을 입고 오시고, 당연히 중고등부 애들부터 청년들도 유행하는 하의실종 패션을 하고 교회에 옵니다. 이거 탓하지 말아야 하는 건지 잠시 머뭇거리게 됩니다. 자칫 오해의 소지와 혼돈의 여지가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1 no image 5월 25일 사설에 대한 유감 (41)
김훈
6036 2011-05-27
5월 25일에 등록된 사설 내용 중 다음과 같은 표현은 재고했어야 했습니다. 내용으로 볼 때, 사설자는 웨스트민스터 헌법의 숲을 볼수 있고, 그 원문과 번역문을 대조할 정도의 능력을 갖춘 분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하여도 총회에서 선출받은 신학교의 유력한 교수들과 교단의 유력한 목사들이 함께 번역하고, 그들이 그들의 경험과 3백년이 훨씬 지난 현대의 우리나라 교회의 현실에 맞게 수정하여 총회에 보고하고 총회에서 회원의 3분의 2 이상이 옳다고 찬성하고, 전국 노회와 노회원들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여 채택된 현재의 장로회 헌법을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격이 되어 땜질식 또는 짜집기식 수정본이 되었고 이제는 누더기 옷처럼 뒤틀리고 조화와 통일을 잃어버리거나 애매모호하고 상충과 모순되는 조문들이 속출하고 있다. 우리 교단 헌법도 예외가 아니라 하겠다."고 비하한 글에서는 사설자의 독선 혹은 편견이 엿보이는 것 같아서 우려가 됩니다. 사설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절대적인 법을 중심에 두지 않는 인본주의의 영향으로 크게 바뀌어 버린 내용들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는 법으로 전락되어 우리를 혼란하게 하는 거치는 돌이 되지 않았는지 염려가 될 정도이다."라고 하므로 교단 헌법을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비하한 것도 교단 신문의 사설자로서는 사용할 수 없는 표현입니다. 또한 "우리는 교회 정치문답조례를 헌법을 해석하는 유일한 공인참고서로 인정하고 있다. 이 교회 정치문답 조례는 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를 축조 해석하되 만국 장로회의 해석 조문을 모두 참작하여 문답식으로 해설 편성한 치리상의 지침서로 오늘에 이른 치리모범서이다. 그러므로 법 해석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을 때는 공인된 이 참고서를 활용하는 것이 동일한 법을 다르게 해석하는 누를 범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공인된 참고서이기 때문에 참고하여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과 "정문"에는 현대 우리 나라 장로회 헌법과는 다른 부분들(심지어 배치되는 부분도)이 적지 않다는 것도 간과하면 안 될 것으로 압니다. 사설자가 말한대로 우리 헌법이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고, 땜질식이고, 상충 충돌하는 곳이 속출하고, 무가치하고, 거치는 돌이 된 것 같다"고 생각되면 매우 심각한 일이니만큼, 노회를 통하여 총회에 헌의를 하든지,그럴 입장에 있지 않다면 다른 분들처럼 기고와 제언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제안하여 동감하는 분들이 노회와 총회에 헌의할 수 있도록 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설자와 편집위원회에서 참고하여 주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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