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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3 (14:53:47)
복음은 항상 위대한 능력을 발휘하는가?

 

얼마 전 본인이 사역하는 교회가 러시아 침례 교단(공인)에 가입했다. 그 후 흑해 지역의 목회자 모임에 참석했다. 이들이 토론한 주제는 영적 각성운동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였다. 러시아에서도 복음의 열정이 식은 지 이미 오래다. 신자들도 그냥 전통적으로 또는 형식적으로 교회에 출석한다. 교회 성장도 거의 없다.

 

시베리아에서 흑해로 선교지를 이전한 후 '크라스노다르스키 끄라이'주에 속하는 '베르흐니바깐스키' 읍의 조그만 교회에서 5년째 사역하고 있다. 뭔가 활발하게 교회가 움직이는 듯 하지만 눈에 보이는 성장은 없다. 러시아 어디를 가나 마찬 가지다. 이것은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이들의 고민만은 아니다.

 

선교 초기 즉 1997년 경 제 1차 사역 교회에서 사역할 때 주일마다 50여명 정도 회집했다. 삼일 저녁 예배도 그랬다. 일년 동안 사역하고 나니 120명으로 늘어났다. 이 때만해도 개방과 개혁 후 러시아 인들의 마음에 영적 갈증이 있어 전도하기 쉬웠다. 말씀을 사모하며 삼일 예배도 열심히 참석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은 돈 버는 일에만 관심을 두었다. 지금까지 그렇다.

이런 문제로 본인도 고민했다. 이들의 고민을 이해하기에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한 때 하나님은 복음 전도가 잘 되도록 사람들의 마음 문을 열지만 다른 때는 사람의 마음을 완악하게 놔둔다. 영적 어둠이다한 때 사역은 너무나 수월하지만 다른 때 너무나 어렵다. 어려울 때 사역자들은 절망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인가라고 생각하며 자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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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목회자들은 대부분 알미니안 목회자들이다이들은 인간의 노력이 부족해서 영적 침체 현상이 온 것은 아닌지 그리고 돌파구는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관점에서 이 문제를 살펴야 했다.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을 생각해 보자고 제안했다. 이사야 출현 이후 다니엘까지 250년 동안 하나님은 수많은 선지자들을 이스라엘과 유다에 보내 예언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시대 사람들은 선지자들의 계시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이미 말했다. 선민이 완전히 망해 그루터기만 남을 때까지 선민의 마음은 완악할 것이다(6:9-13). 하나님의 작정 때문에 당시 선지자들은 인기 없는 사역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계속 열심히 예언 활동을 했다이 때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분명히 이해한다면 하박국 선지자처럼 절망 대신 기뻐할 것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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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들이 절망을 극복하고 계속 사역해야 할 목적은 무엇인가하나는 당시 남은 자들인 소수의 진실한 신자들이 계속 신앙으로 살도록 돕고 보호해야 했다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나중 행할 악인과 불의한 자들에 대한 심판에서 자신의 공의를 마련해야 했다. 이사야에게 주어진 예언은 예수님 당시에도 적용되었다(13:15). 결국 7백년 넘게 선민 유다의 마음은 완악한 상태에 있었다. 이런 시기 사역은 너무나 힘들다. 결국 선민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했고 십자가에 죽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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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도 스승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들은 3년 넘게 스승 예수님을 따랐다. 이 세상에서 그리고 역사상 가장 훌륭한 스승 밑에서 배웠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당시 바리새인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계속 이들에게 말씀을 전했다. 나중 이렇게 말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14:26)

 

예수님도 하나님의 정한 때가 되기까지 하나님이 제자들의 눈을 어둡게 한 것을 알았다. 그러나 성령이 강림한다면 그 때 진리를 깨달을 것을 알았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정한 때와 앞으로 올 성령의 사역에 맡기고 제자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사역에만 몰두했다. 승천 후 이들이 예수님을 대신해서 사역할 것이고 이를 위해 하나님은 성령을 꼭 보낼 것이다(2).

 

선지자들과 예수님의 사역 자세는 오늘을 사는 목회자들에게 가르치는 바가 크다. 목회자는 설교나 목회의 결과에 관심을 두지 말고 열심히 해라! 그냥 열심만 아니라 설교를 잘 준비하라! 말씀만이 사람을 살리기 때문이다. 먼저 목회자가 말씀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잘 먹여야 한다. 이 덕분에 힘을 얻게 되고 그리고 그 힘과 능력으로 설교해야 한다.

 

몸이 뜨거운 암탉만이 알을 품고 병아리를 낳게 한다. 마찬 가지로 먼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을 맛본 목회자만이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신자들과 나눌 수 있다. 그 다음 설교나 목회의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라! 목회자는 말씀을 심거나 심어진 말씀이 잘 자도록 물을 주는 역할로 끝이다. 자라게 하는 이는 오로지 하나님이다. (참조: http://blog.naver.com/rassvet/40200611828 농학으로 본 설교 행위)

 

이렇게 본다면 목회나 설교의 결과로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것은 목회자의 마땅한 자세가 아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뜨겁게 말씀을 전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라! 교회는 하나님이 친히 돌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양적 성장론은 크게 잘못되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4밭들 중 오로지 한 밭만이 열매를 냈다. 100명의 신자들 중 겨우 25명만이 진실하다는 뜻이다. 이것도 많은지 모른다. 예수님은 신자들을 소금에 비교했다. 바닷물은 3.5%의 소금 덕분에 짠 맛을 유지한다. 그렇다면 진실한 신자의 수는 겨우 3.5%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도 좁은 길로 끝까지 가는 신자가 극히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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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가 맞다는 뜻이다. 천 명의 신자가 있는 교회에서 경우 35명만이 진실한 신자들일 수 있다좁은 길을 끝까지 가는 신자는 그 만큼 적다. 3.5%의 진실한 신자들 때문에 다른 신자들도 좋은 영향을 받고 이 결과 교회와 목회가 사는 것처럼 보인다. 3,5%가 더 성경의 가르침에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이 수에 낙망할 것 없다. 3,5%의 신자들이 언젠가 맺는 열매는 30, 60배 그리고 100배의 확률을 보인다. 그 동안 하나님 나라가 잃은 손실이 모두 복구된다. 그렇다면 목회자는 누구를 보고 목회할 것인가? 1000명의 신자들인가 아니면 35명의 신자들인가? 물론 후자의 성도들을 대상으로 절망치 말고 사역을 계속해야 한다. 그 열매가 언제 나타날 지는 전혀 모르지만....

 

그러나 문제는 1000명의 신자들 중 누가 3.5%에 속하는 신자들인가를 목회자는 절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아신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결국 어느 누구를 상대하든지 진실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목회와 설교 활동을 해야 한다. 마태복음 25장의 탈란트 비유가 말하듯이 진실성과 성실성만 그가 받을 상급을 결정할 것이다. 이를 결정하는 것은 목회자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결론적으로 목회자는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성실하게 목회에 임해야 한다. 이런 목회는 대형 교회보다 중소형 교회에 더 적합하다. 대형 교회는 그냥 대중적 목회와 설교 방식을 택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중소형 교회에서 인격적 만남과 접촉을 통한 목회가 가능할 것이다. 신자들은 인격적 만남을 통해서만 성장한다. (참조: http://blog.naver.com/rassvet/220031555786 사도 바울의 목회 )

 

그리고 대형 교회의 위험은 목회자에게 불필요한 자부심, 자긍심 그리고 교만을 준다.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목회 성공에 서서히 영적으로 타락한다. 한국의 성공한 목회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처신이 비성경적 그리고 비상식적인 이유이다. 대형 목회는 피해야 한다. 다른 한편 진실한 신앙 삶을 원한다면 신자들도 대형 교회에서 손쉬운 신앙 삶을 하려 하지 말고 중소형 교회에서 존경할 수 있는 목회자와 인격적 교제를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http://blog.naver.com/rassvet/40181810102 복음은 항상 위력적인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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