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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3 (20:04:19)

이 글은 신앙간증의 경우와 같이  사실에 대한 주관적 판단에 의한 것이다.


평생을 돌이켜 보니 어느 교회교인으로 신앙생활 했는가 하는 것은  개인의 구원과 그 구원으로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어 그 나라와 그 구원을 이 땅에서 충족되게 이루어 가는 반열에 동참했는가 하는, 신앙의 본질, 결과 직결 중차대한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천주교회나 통일교로는 예수교의 구원이 없다면  그 교회들로는 즉, 그 교회의 교인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천주교회 간판이 아니고 ‘하나님의 교회’ ‘전능하신하나님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간판을 달았어도  그 강단에서 진리가 없는 사랑이나 화평, 기쁨이 말해지고 있다면  그 교회를 통하여는 구원의 길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내가 어느 길에 서 있는가는  구원자의 은혜적 전권이다. 하늘의 전권자께서 누구를 구원하시려 한다면 그를 진리 없는 사랑과 평화(화평),  다원론적 -실체 없는 막연한 하느님 구원을 말하는 천주교, 통일교, 하나님의교회, 급진 신교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 간판을 걸은 어떤 그런 교회들에서 나오게 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요즘 세상의 대다수)에게는  본질적으로 종의 구분이 큰 의미가 없다.  즉, 원숭이가 진화하여 사람이 되었다 하니  굳이 어떤 것이 사람이냐 원숭이냐를 구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과 가장 흡사한 머리 모양과 어린 아이 정도의 지능, 앞다리와 발을 사람의 팔과 손처럼 사용하는 침팬지를  원숭이류보다는 사람에 가깝다 하여 유인원이라 하는 그들은  어떤 존재가 굳이 사람이냐 아니냐를 따지려 않고  그냥  머리가 더 좋고 나쁘거나  또는 몸을 더 잘 쓰고 아니고만 구별한다는 것이다.


이 속사정은  기독교 간판아래 교회를 하지마는 그들 대다수가  결국 예수의 부활이나 전능자의 천지창조를 믿지 않는 부류들도 똑같다는 것이다. 사람이냐 아니냐를 굳이 분별하지 않으려는데  영혼이 있느냐 없느냐는  더욱 무의미한 것일 뿐이다. 진보 자유주의신학, 해방신학을 기반으로 교회를 하는 자들이 대부분 다 그렇다.  이들이 우리와 다름은  얼굴 생김이 다른 것이 아니라  근본 種이 다른 것임인데도  누구도, 스스로 신학자라고 하는 이들까지도 이를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믿기는  태초에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다. 우리가 種(씨)으로서 어떤 것이 사람이냐 아니냐를 분별하는 하는 직감적 분별력을 주셨다. 얼굴과 몸의 모양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사람이냐 아니냐 하는 직감적 분별력은  본능에 주신 진리 직감의 분별력이다.


시대나 지역 상황에 따라 교회의 모습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그것이 예수교회냐 아니냐는  강단에서 진리가 선포되며 교회에 그 행함이 있는 교회냐로  직감적으로 분별이 되는 것이다.


평생에 몇 번은 이사를 가거나 또 다른 이유로도 부득이 교회를 옮기기도 한다.  우리 가족이 같이 한번 교회를 옮겨야 했을 때에  가장 가까운 곳에  (칼빈주의에 입각한)개혁적 바른교회, 즉 바른 설교와 행함이 있는가를 기준하여 잠시 살핀 후에 등록하였다.


여기저기 기웃거림이 없이  이 교회로 바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 교회 통하여 나와 내 가족, 자녀들이 그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받으며  이땅에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일에 동참해 왔다.  교회를 옮길 당시에  담임목사에 의해  오실 예수와 오신 예수, 그리고 그의 피의 속죄가 구원의 도리로  강하게 지속적으로 선포되고 있었다.



70년대 말로부터 대한나라에 강하게 몰아부친  미국발 신복음,  여의도발 순복음 성장주의 교회마다 버스를 경쟁적으로 구입하고(그때 급성장한 교회들 중에 안 그런 교회 있었는가?) 심지어 임차운영까지 하며 전국(?)의 우리교인들을 모셔오기 시합하는 때에

 “이사가면  버스타고 이 교회 올 생각 말고  이사 간 곳의 가까운 교회로 가라 ”

 “집을 두채 갖고 있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집값을 올리는 일이고  집값을 올려 자기가 이익보는 그 액수만큼   집한채 사야 하는  없는 이들을 손해보고 어렵게 하는 것이니  회개하고 살집만 남기고 즉시 처분하라”

 “교회의 모든 직분자는 다 각기 직분에 따른  (작은)목회자이다”

 " 예배당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구제, 협력등의 명목으로 사업장화 되면 안된다 - 구체적으로,  삼일 밤등에 지하

                                                    교육관 등에서 행하라- 예배당이 공연장, 친교장이 되면 안되는 뜻도) 


그리고 위 말씀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담임목사, 당회, 제직회와 교회 전체가 실천하는 모본을 모든 성도가 보며 알았고 그렇게 배우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로 성장해 왔다.  특히 이 교회를 통해 예수 믿고 인가귀도 되어 대를 잇는 교인들은 교회란 다 이런 줄로 아는 교인들로 굳게 성장해 왔다. (물론 위 내용들에 별 관심도 없는  친목 교인들도 꽤 있다)


주보 앞면에 기재 된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생활이  그냥 구호가 아닌 이 교회 존립의 근간이 되는 실천 과제로 목회 되고 있음을   개혁적 교회를 찾아 이곳에 온 이들이나  이 교회에서 예수 믿고 성장한 성도들이 다 알고 있었다.  


나에게도   이 교회가 모본 교회로, 바른 교회로 지각이 되고 있을 때에  설교등으로 방문한 여러 목사님들이 주저 없이   이 교회는 모범, 모델교회라 하는 말을 들으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받았다. 그리고 사역의 일로  잠시 다른 교회에 봉직할 때에도  복귀 할 날 만을 기다렸다.

 

예배당에 꽉 차는 주일찬양예배, 힘있는 찬송소리, 세례.입교하는 꾸준한 숫자,  세대간 연령대가 균형 있고  또 예배참석 성도의 남녀간 비율이  4.5 : 5.5 정도를 계속 유지(성가대의 남녀비율과 동일) 하는 것을 확인하면서   이 모본 교회의 틀에 나도 일부가 되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이교회의 특정 사역을 담당하는 동안에  당연히 나도 작은 목회자라는 사명감으로  교회의 목회에 맞추는 것에 집중력을 가졌다.

  

바른 개혁교회를 찾아 수평 이동해 온 교인들도 있었지마는

‘교회는 카톨릭 - 공동교회다’ 라는 정신으로    다른 교회에서 온 교인들도 그 경력에 따라 바로 교회의 사역들을 맡기는 목회의 소문을 듣고  바르지 못한 나쁜 생각으로   자기가 속한 교회를 맘에 안든다고 쉽게 떠나  이동해 온 자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런 교인들은 상당히 재주도 있고  아주 능동(?)적이며 활발하여  어느새 교회의 새 중추 세력들로 자리 잡게까지 되었다.


그러면서 장로들도 된 일부  그 세력은 그룹을 형성하며  미래의 이 교회의 주인의식으로 충만하여  여전히 개척목사님의 목회 중인데도  주일낮, 오후 등에 다른 교회의 소위 열린예배를 순회 참관해 가며 새교회로 대 변혁모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때가 오자 ‘나는 평생의 목회를 실패했다’고 선언(?)한 원로인 어느 사업목사와   또 목사의 인간적 겉모습만 보는 또 다른 어느 원로의 강력 추천으로 새 후임목사를 전격적으로 부임케 하여 불과 일년만에 교회를 360도 엎어 놓았다.


오로지 바른교회와 바른생활 교인들로 훈련된 이들은  대책 없이 마치 그냥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이 이 일들을 보고만 있게 되었으나  결국은 후임자와 그 세속적 세력의 교만이  교단의 정체성에 도전하는 데까지 이르니  결국은 간섭하시는 하나님께서 노회의 주의 종 된 이들을 통하여  두 번이나 연거푸 이 일들을 정리하여주셨다.


이 교회가 연거푸 어지러운 일을 당할 때에는  이 교회에 남아 있는 정신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으나  위와 같이 개척 초임 목회자에 의해  뿌리 깊게, 확신 있게 심겨져  교회의 주춧돌 같이 된  바른교회 정신은  앞으로도 이 교회를 주님 오실 때까지 대를 이어 이어 갈,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굳건한 주류정신으로 건재할 것이다. 생각지도 알지도 못했던  두번의 일을 연거푸 겪으면서  이 교회의 평신도들은  박윤선의 교회헌법 주석을 공부하게까지 되었다.


우리가 어떤 이들의 입은 옷이나 모습은 좀 달라도 금방 건강한 사람임을 아는 것처럼   이 교회가 완벽할 수는 결코 없겠으나  그런대로 제법 건강한 모습의 교회로  자녀, 후손들이 믿고 대를 이어 신앙생활을 해야 할 교회로 세우심을 소망하게 하는 교회이다.



이교회와는  좀 다른 모습이었던  

예수의 군병과 같이 씩씩한 모습으로  하나님나라를 지켜 나가는 어느 교회.


17년쯤 전이다. 성가대 사역으로  잠시 합동측 어느 교회를 섬기는데  밤7시 찬양예배를 마치고 2차 성가연습을 10시에 마치던 때의 일이다.  소천되신 전임목사님 후임으로  좀 젊은 분이 담임목사로 있을 때였다.


전임목사님은 빈주의 정통 신앙, 신학에 입각한 책도 몇권 출간하셨지마는  그야말로 같은 분이어서 교리적으로는 두말할 것도 없고  교인 간의 교제에서도 교회의 직분을 따라 말하는 것 외에는 교회와 성경에 대하여 일체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지 않도록  책에 쓴 내용대로 교인을 훈련시키셨다 하였다.


급작히 소천되시면서,  전임 목사님의 칼같은 훈련에 힘들어 하던  대다수 장로와 직분자들의 의견으로  후임자는 그 교회에 부교역자를 거쳐 간 이 중에서  인품이 가장 온화하였던 이를 기억하여 수소문하여 택하여 세웠다. 신학박사 과정도 하며  누가 보아도 참 드물다고 할 만한 훤칠한 키와 신사적 기품과 온유한 인품의 소유자임이 분명하였다.

 

그런데 전임목사의 영향인지  서울의 먼 외곽이면서도 교인의 주류가 상당한 지식층이었는데  위 부교역자이었던 이가 새 담임목사로 부임 얼마 후에  부근에 원어로 성경을 연구한다는(전단지) 평신도신학연구원에 이 교회의 일부 교인들이 등록을 하고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작은 파장이 일게 되었다.


장로 부인이 포함 된 4명이 등록하여 공부하였는데  이들 중 둘은 주일예배 때마다 설교를 영어, 독일어로 동시 번역하여 기록하고 있었다.  장로 부인 외 셋은  성가대원, 대장이며 구역장이며 강단 꽃꽂이 담당 등등으로  출석교인 400여명의 교회에서 한창 나이로 가장 열심 있는 이들로  거의 30년만의 새 교회당 건축을 앞두고 미래의 교회의 기둥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평신도신학연구원에 등록하여 공부하면서 몇 개월이 지나자  한없이 온유하지만 교리에 정통한 담임목사의 설교에 대한 비평을 사석에서 하는 것들이 교회에 알려지게 되었으나   참 신사적 인품인 담임목사는 이 사실을 장로들에게서 상세히 보고 받고도  언급 자체를 피하였다. (설교와 행함의 불일치- 당회장 직무유기)


참다못한 장로들(여덟 중 여섯)이 담임목사에게 연이어 강력하게 요구하여  당회 이름으로 그들에게 평신도신학연구원을 자퇴 하도록 권면하였으나  장로 부인만 최종 권면에 돌이키고 나머지는 받지 않으므로  결국 출교조치를 취하고 교회에 공포하여  변두리인 그  지역의 교회들이 다 알게 되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 교회는  신천지 등은 얼굴도 비치지 못할 교회로 소문이 자자하며  새 교회당을 잘 건축하였다. 이 교회의 주류 정신은 따로 말하지 않아도 전임 목사에 의해 십수년간, 장로와 교인들에게 강력하게 전수된  바른신학, 바른교회로  당대에서는 결코 흔들리지 않을 정신임이 분명하다. 이 정신의 소유자들이  숫자와 상관없이 이 교회의 참 주류된 자들이다.


이들은  전임 목사님의 생전에 그 훈련에 힘들어 하고 불평을 하였으면서도  이일로 더욱 전임목사를 존귀히 여기는 마음들이 되었으며  급작히 홀로 된 사모와 자녀의 생활, 교육을 전적으로 감당해 나가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교회전통으로 세워졌다.(지금도 내 안에, 내 정신에  그 교회의 감동들이 나를 움직이고 있다) 

 

이런 모본적 교회와 교인들은  무슨 이론 없이 직감적으로  

노략자와 / 거짓 선지자와 / 삯군을 분별하도록 훈련되었다.   개혁교회의 제자들로 훈련되었다.


가르친 이들은   세월이 지나며 교회가 커지거나  교회적 여러 상황이 달라지면서  자기 욕심에  그동안의 가르침과 달라지는지 모르겠으나  순종하는 신도로, 어려서부터 배워 익혀  바른교회 신자로서의 체질이 된 이들은  그리 쉽게 그 배운 정신을 놓지 못한다.  후임자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거나 쉽게 생각하는 만큼,  그 교회에서의 후임자로서의 목회는 결국 실패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소위 큰교회 목사들은 하나같이 변질되었다.

수십년 간이나  온나라 교회들에 그렇게 영웅목사로 자신을 띄워 놓고는  이제 와서 세상 언론에 대고   “나는 평생의 목회를 실패했다” ....?      이것이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합신의 수준. 기준 / 바른교회가  기껏 이런 것이었는가?   


분당의 어느 교회 이목사는  수차례나 세상 언론에도 드러나는 독단적인 교회운영 말썽을 내놓고는  갑자기 세상 언론에 대고 회개한다 고 하며 교회에 욕칠을 하더니    또 어느 날 갑자기 세상 언론들을 불러


아직 당회에도 말하지 않은 것인데  나는 교회를 더 이상 키우지 않고 축소하려고 교회의 이런 저런 건물을 팔려고 한다

 ......?  자기가 키웠으니 자기 맘대로 판다? 그러면 당회,제직회,교회, 회중은 다 자기의 예속물 ?  하나님의 것은 어디에?

이 사람이 정통장로교단이라는  합동측 교회 담임목사이다.  자기 영웅주의, 자기가 하나님 됨에 함몰된 자임이 분명하다.  이런 것을 우상시 하는 그 교회와 교인은  최소한 바른교회, 바른 교인들은 아니다!   합동측의 많은 여러분들이 이 교회를  정통 교회로 인정하지 않는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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