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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3924
2010.06.28 (19:33:08)

홍수처럼 밀려온 정보의 바다에 빠져 사는 오늘의 수 많은 사람들,
그 많은 정보로 인하여 내 영혼이 파괴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타락한 이 세상이야 썩고 부패하여 멸망으로 치달려 죽음으로 끝나는 곳이 세상이다.
그런 반면 교회는 물에 빠져 멸망하는 저들을 건져내려 발버둥치는 곳이다.
그리고 교회와 같이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곳이 또 하나 있는데 기독교 방송사이다.
기독교 방송은 모든 신자에게 유익하고 또한 고통과 절망속에서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들
즉,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간절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는 곳이다.

절박한 심정은 가난한 마음이요 빈 마음이기에 은혜를 받고 위로를 받는다.
가난한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만을 사모하는 심령이 되기에 부정한 것은 받지 않는다.
위로를 받아야 할 절박한 심정이 다른 정보나 나쁜 지식에 끌리겠는가?
나에게 유익되는 필요한 말씀만 받게 되기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교회를 오래 다녀 양심이 굳어졌거나 본래적으로 귀가 큰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기의 영혼의 유익을 위함이 아니고 단지 말하기 위한 요란한 사람이다.
혀는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고 약 3장 6절에 말씀하셨듯이 조심성이라고는 전혀 없다.
정제되지 않은 지식 정보로 공동체나 남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는 영적 미숙자들이다.

어느 한 권사를 통해 들은 말이 떠나지 않고 되뇌어 이 글을 작성한다.
어느 목사님이 세미나 강사로 나와 교회가 부흥하는 것을 시기하는 목사님들한테,
그러면 교회가 부흥 안되는 것이 성경적이냐?
교회가 부흥되면 질이 나쁘고 교회가 부흥 안되면 질이 좋은 것이냐?
교회를 크게 지면 나쁜 교회고 교회가 작으면 좋은 교회냐? 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들을 성도들이 할 때는 교회나 자기 영혼에 해악을 주는 말이다.

목회자들도 조심해야 함은 신학적이냐 아니면 목회적 측면이냐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름으로 인하여 상처가 되고 다툼이 되어 교회 전체에 해가 된다.
구분이 안되는 목회자들도 문제가 되는데 하물며 일반 성도들이야 더 ....

모든 사람들은 육신의 나이로 구분 한다. 이것을 간과할 수도 간과해서도 안 된다.
또 신자들에게는 영적 나이가 있고 신앙의 수 많은 단계가 있다. 이것이 경륜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어린아이로 젖을 먹는 미숙한 어린아이가 있다. 
그리고 교회에서 봉사하는 청년이냐 아니면 성숙한 자로 장성했느냐를 구분해야 한다.
구분이 안되는 지도자나 리더자는 성경 하나님 말씀을 분별함은 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 하나님 말씀을 분별해야 신앙의 단계도 분별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방송사가 특별히 선별해서 교회의 좋은 모습만이 세상에 비쳐졌으면 좋겠다.

지식정보 매체가 활짝 열린 시대이기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하지만,
목회자들끼리 함께 웃을 수 있는 이야기가 외부로 흘러 나가면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성도들에게는 나쁜 지식으로 교회에 해악을 주고 내면 세계는 곤고해지는 경우가 있다.  
반 기독교인들에게는 한국교회의 부정적 모습으로 비쳐져 교회를 허무는 여우가 된다.  
그래서 교회나 기독교 방송국에서 조심하지 않으면 한국교회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기독교 방송사의 좋은 프로그램들로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있다. 
그러나 지나친 보여줌으로 반 기독자들에게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될 것이다.

예를 들어 목회자 세미나는 일반 성도들에게는 영적 유익이 안되는 것이 많다.
신학적이면 영적 미숙아들에게는 소화가 안되어 설사하게 되고,
목회적 측면이라면 목회자의 약점을 발견 누리꾼들의 말장난의 빌미를 준다.
교회를 오래 다니면서 신앙이 성숙되지 않았다면 목회자의 약점만 들추려고 한다.
열린 사회라 해서 구별을 시키지 않는다면 교회와 신자의 삶에 해를 주게 된다.

그것은 방송 시청자의 규제와 구별이 없어서이다.
세상은 돈으로 규제를 삼지만 기독교는 돈이 아닌 간단한 양식으로 구별할 수 있다.
세상에도 규제가 있고 듣고 볼 수 있는 등급이 있는데 왜 기독교 방송은 없는가?
초대교회는 다 열어 놓고 시작하지만 오늘 한국교회는 내일을 위해 세밀해야 한다.
종말에 대비해 서로 가르치고 세워주고 이끌어 주는 리더자들이 다 되어야 한다.
그것은 두리뭉실 신앙으로 인도함이 아니라 수 많은 신앙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것을 기독교 방송이 먼저 실천하기 위해 철저한 등급과 규제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구원 받은 백성이 되었다고 세상을 잊어버리거나 등질 수가 없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아래 있다고 세상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속을 다 보이면 안된다.
히스기야가 생을 연장 받았다고 적에게 무기창고를 보여주고 나서 다 빼앗기고 말았다.
영적 전쟁터임을 실감하고 깨어 있어 영적 분별력을 키우며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
집으로 비유하면 울타리를 만들고 첨단의 비상 장치들을 장착해 놓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방송 등급을 철저히 만들고 무엇보다 방송사가 깨어 있어야 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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