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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3 (14:51:58)
예수님의 자기부정

 

마태복음서를 읽으면 16장을 기준으로 기독론의 내용이 달라짐을 본다.  16장까지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병자들을 고쳤고 이런 과정에서 이적들을 행했다. 이로써 예수님은 자신이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임을 3년 넘게 증거했다. 이 덕분에 16장에서 제자들은 마침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고백했다(16).

 

그러나 이 때부터 예수님은 갑자기 자세를 달리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인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며 비로소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예언하기 시작했다(20-21). 예수님은 자신을 이사야가 예언했던 '고난의 종'(53)으로 제자들에게 새롭게 소개했다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스런 아들 그리스도로서 고난의 종임을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예수님의 초림 목적은 자신의 고난을 통한 인류의 구속에 있었다. 예수님은 이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메시아의 은닉'을 잘 설명한다. 한편 이적들을 통해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증거하면서도 다른 한편 이를 감추는 이상한 처신을 예수님이 보였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예수님을 '영광의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고난의 종'으로도 믿어야 했다.

 

다시 말해 제자들은 예수님이 영광의 그리스도임을 잠시 잊고 고난의 종으로서 십자가에서 죽을 어린양으로 보아야 했다. 이 고난 후에야 비로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을 것이다(1:3-4). 그러므로 초림주인 예수님은 '영광의 그리스도'가 아닌 '고난의 종'으로 끝까지 살아야 했다.


사도 바울은 이를 교리적으로 잘 설명한다"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4:4-6)

 

예수님은 여자에게서 났다. 그리고 그는 율법 아래 살아야 했다. 그 목적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고 그들로 하여금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함에 있다. 구속과 양자란 사역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수행해야 했다. 양자됨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하나님이 창세 전부터 이미 예정했기 때문이다(1:4-5).

 

아버지의 예정에 따라 그리스도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아담의 원죄를 유전적으로 받지 않으려면 그는 여자에게서 출생해야 했다. 출생 후 그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지만 죄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죄인에게만 주어진 율법과 무관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율법 아래 살았다. 그가 인류의 죄를 짊어지려 한다면 율법이 정한 대로 그는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는 철저히 죄인으로 살아야 했다이것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 맺어진 '영원한 구속 언약'에 따랐다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왕궁에서 출생하지 않은 이유였다. 죄인 인간처럼 그도 인생의 모든 고초를 그대로 받으면서 살아야 했다. 그는 목수 요셉의 집에서 자랐지만 가난했다.


예민한 청소년 시기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돌을 금으로 만드는 이적을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다혈기가 왕성한 청년 시기 일년에 3번 예루살렘 성을 정기적으로 방문했다. 그곳에서 행해지는 종교적 불의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았다. 이 때마다 분기탱천하며 종교 지도자들을 지탄하지 않았다.  세상을 개혁하기 위해 이적을 행함으로 자신을 그리스도로 드러내지도 않았다. (참조:  http://blog.naver.com/rassvet/40174308472 30년과 3년 )

 

이것은 오늘날 좌파의 사고방식으로 본다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불의와 죄를 방관함으로 불의에 참여한 잘못된 청년이었다. 좌파 기독인들은 왜 이런 예수님을 비난하지 않는지? 그러나 사도 바울에 따르면 그는 철저히 율법 아래 살아야 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좌파의 사고방식으로 볼 때 30살 되기까지 그는 방관자의 삶을 철저히 살았다.

 

마침내 그는 메시아 사역을 시작했다. 이 때 광야에서 40일 굶주린 후 사단으로부터 시험을 받았다. 유혹의 내용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면 이적을 행하라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사단은 자신에게 절하면 모든 세상 권세를 주겠다고 약속하며 고난 없이 영광에 달할 수 있다고 유혹했다. 사단은 속죄의 고난을 수행하지 말라고 예수님을 유혹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그러나 속량 받은 자들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이를 위해 아들은 고난의 종으로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다. 이를 잘 안 예수님은 모든 시험에서 사단을 단호하게 거절하여 물리쳤다. 그리고 공생애 중 예수님은 공개적으로 이적을 행하여 신적 권세를 보여주며 유대인들을 강제로 굴복시켜 경외 받으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손 쉬운 길을 버리고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부인한 체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어려운 길을 택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붙잡힐 때도 그는 천사들을 보내 대제사장들이 보낸 군졸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붙잡히는 수치와 멸시를 택했다(26:53-54). 모욕적인 심문과 재판 과정에서도 그는 어린양처럼 입을 다물었다(53:7). 그는 결국 십자가에서 죽었다. 고난을 당할 때도 마취제 역할을 하는 쓸개 탄 포도주를 맛보기만 하고 그는 전혀 마시지 않았다(27:34). 그는 죄값으로 온 저주를 철저히 받아야 했다. 물론 인류의 죄값을 지불하기 위함이었다.

 

사도 바울은 이 모두 우리의 구속과 양자를 위함이라고 해석했다. 결국 예수님은 우리에게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3:16) 자기를 부정하고 십자가를 짊어졌다. 그렇게 그도 우리에게 대한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를 사랑하기에 고난의 죽음을 선택했다.

 

이로 보아 아버지의 구속에 대한 작정과 아들이 성취시킨 구속의 원인은 모두 사랑에 있었다. 이 사랑이 아들의 자기부정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아버지의 창세 전 선택 목적이 이를 잘 설명한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1:4)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존재로 마침내 세우게 할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이 결국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은총의 원천이다.

 

 

사도 바울은 구원 받은 신자들에게 이렇게 권한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8:17)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도 기약된 영광에 이르기 위해 먼저 고난에 참여했다. 마찬 가지로 하나님의 후사라면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먼저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신앙 삶의 원리이다.

 

그러나 번영신학과 양적 성장론은 이를 부인하고 먼저 영광에 들어가 그것을 모두 누리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비성경적 신앙고백에 근거를 둔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영광의 그리스도로 드러나는 순간 즉시 자신이 고난의 종임임을 제자들에게 밝혔다예수님은 자신이 영광의 그리스도란 사실에 제자들이 도취되지 말고 정신 차리라고 권면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회들과 신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영광스런 신분과 구원의 영광스런 면에만 도취되어 불필요한 자부심과 자긍심에 바져 교만하기까지 하다. 겸손을 찾을 수 없다. 당연히 이들은 복음과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부인한다. 이런 거짓 복음은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많다. 이런 복음은 모두 자기부정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자기부정이 없는 복음과 신학은 비성경적이다.

 

이렇게 본다면 생명에 이르는 자가 극히 소수라고 말한 예수님의 언급은 정말 맞다(12:32, 13:23-24). 우리 주변에 교회들과 신자들은 많지만 그들 중 과연 얼마나 천국에 이를 것인가? 바다를 짜게 만드는 소금은 겨우 바다 물의 3.5%라고 한다. 아마 나머진 교회 문턱만 닮도록 왔다갔다했지만 천국에 못 이를 것이다. 이 얼마나 억울한가?

 

대부분의 신자들은 구원의 찬란한 면만 기뻐한다. 그러나 그 결과를 가져오게 한 고난의 과정을 묵상하기 싫어한다. 이것은 바른 신앙 자세가 아니다. 예수님이 직접 말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절)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처럼 우리들이 종국적인 영광에 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를 부인하는 번영 복음과 신학이란 사단의 유혹에 넘어져 패배한 결과임을 주시하자!


30년과 3년(1) http://blog.naver.com/rassvet/40174308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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