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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3 (15:21:18)
가정론은 기독교 신학에서 왜 그리 중요한가?(2)

부제: 하나님 나라와 나/신학과 사회학

 

창조기사(1-2)의 절정은 인간 창조(창1:26-28절)이다. 우리는 단순히 인간 창조라는 관점에서 묵상한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살핀다면 이들의 창조는 남자와 여자의 창조, 아담과 하와라는 인격체의 창조, 남편과 아내의 창조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창조를 각각 또한 의미한다. 창조기사는 4가지 관점들로 인간 창조를 묵상하라고 요구한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이다. 이 점에서 남자와 여자 사이 차이가 없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 대등한 존재들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에 근거를 둔 성경의 인간론이다. 이에 따라 기독교 신학은 항상 인간 즉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은 빈부귀천과 남녀노유에 불구하고 그리고 언어, 관습과 문화와 종교 사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무시되어선 안 된다.

 

창조주 하나님은 인류의 보편적 아버지이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인류를 대하며 선인에게든지 악인에게든지 햇빛, 물과 공기를 동등하게 제공한다. 이 점에서 종교가 다르다고 다른 인종을 무차별하게 학살한 십자군 운동은 절대로 성경적이 아니다. 기독교, 교회와 신자들은 사람들을 외모로 판단하며 차별해선 안 된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성, 기질과 성품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남자는 이성적이라면 여성은 감성적이다. 이 덕분에 사람들은 사물을 이성적으로는 물론 감성적으로 볼 수 있다. 남자는 외향적, 추상적, 적극적, 능동적 그리고 공격적이라면 여자는 내향적, 현실적, 소극적, 수동적 그리고 수비적이다. 가정과 자녀를 돌보려면 여성적 안정은 너무 중요하다.

 

여기서 다름은 전혀 틀린 것이 아니다. 서로의 다름은 동일한 사물을 다른 관점과 국면에서 보도록 돕는다. 이로써 사람들은 더 깊고 넓으며 다양한 지식과 이해를 얻게 된다. 하나님이 하와를 아담의 돕는 배필로 지은 이유였다.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 사이 다름을 이상하게 보거나 무시해선 안 된다. 성경은 이것이 정상이라고 말한다. 신자는 성경의 이런 인간론을 잘 이해해야 한다.

 

남자와 여자는 동시에 아담과 하와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인격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격들.  창조주 하나님 버금가는 인격체.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기능과 은사 면에서 본 것이라면 아담과 하와는 인격 면에서 본 차이이다. 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을 닮은 인격체이다. 인격 면에서도 여자는 절대로 남자들의 무시, 조롱, 멸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인격 면에서 동등하지만 인격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성품과 기질, 기호, 습관, 생각, 가정 환경과 교육, 친구 관계, 학교 교육과 사회 교육 등등 인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주변에 아주 많다. 이들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가 또한 인격 형상에 아주 중요하다. 이 점에서 아담과 하와는 서로 완전히 다른 인격의 소유자들이다. 그러나 이런 다름도 틀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동등한 인격체란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를 두고 인격적 다름을 정상적인 것으로 생각하며 서로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동등한 인격체란 사실은 여자도 남자 못지 않은 지력과 능력의 소유자란 뜻이다. 다만 육체적 힘에서 남자에게 밀릴 뿐이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대등한 반려자로 대해야 한다. 오늘날 사회가 개방될수록 여성의 사회 진출이 더욱 두드러진다. 사회가 선진화되려면 남성의 인력만으로 불가능하다. 그리고 사회 삶이란 남성으로만 구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중매로 이들이 만나 결혼을 하며 부부(夫婦)가 되었다. 아담과 하와의 다른 모습이다. 결혼 전 이들은 서로 모든 면에서 다르다. 그러나 부부가 됨으로 한 몸이 된다. 이로써 서로 이질적인 존재들이 한 몸이 되며 같은 삶과 인생을 공유한다. 동일한 목적을 위해 다름을 극복하며 협력하고 살아야 한다. 이 때 서로의 다름은 결혼 생활과 부부 생활에서 절대로 문제가 되어선 안 된다.

 

서로에 대한 사랑은 다름을 극복하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1보다 1+1 2 이상의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다. 당연히 부부 삶의 근본적 기초는 사랑이다. 여기 사랑은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도록 돕는 힘이다. 이로써 부부는 인생을 더욱 깊고 넓게 맛보며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위기도 손쉽게 극복한다.

 

그러므로 부부 생활은 사랑으로 한편 서로의 다름을 극복하고 다른 한편 시너지 효과를 얻어 인생을 풍요롭게 살도록 노력하는 과정이다. 이것이 바로 남편과 부인이 당연히 누려야 할 행복이다. 가정은 처음 부부만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행복한 부부 생활이 가정 삶의 근본이며 기초라고 성경은 증언한다. 부부 삶이 불행하다면 가정은 세워지지 않고 무너진다.

 

이들로부터 태어날 자녀들이 가정의 또 다른 구성원이 된다. 이 때 남편과 아내는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이름을 얻는다. 남자와 여자의 또 다른 이름이다. 부모가 사랑으로 서로의 다름을 극복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을 어릴 때부터 자녀들은 보고 자란다. 자녀들도 모든 면에서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형제애로 얼마든지 다름이 극복됨을 배우고 체험한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의 건설 역군으로 자란다.

 

​구약 시대 가장은 가족들의 생사 여탈권을 가진 왕, 대제사장과 선지자 역할을 했다. 선지자는 하나님 편에서, 대제사장은 백성 편에서 그리고 왕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 중보자로서 일했다.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알려주고 가르치며 백성을 위해 하나님 앞에 도고 기도하고 왕같은 존재로 가정과 나라를 치리했다. 이것이 남편의 역할이었다, 이에 반해 아내는 자애로운 어머니로서 자녀들을 돌본다. 가정은 공의와 사랑을 겸한 곳이어야 한다.

  

이런 가정에서 잘 훈련 받은 자녀들은 사회 삶에도 잘 적응한다. 옆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위로는 상사들을 존경할 줄 아는 자녀들이 배출된다. 이렇게 인간의 창조가 갖는 신학적 의미는 다양한 사회학적 의미를 또한 갖는다. 남자와 여자, 아담과 하와,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그럼 이들은 모두 무엇을 목표하는가? 물론 하나님 나라와 인류 사회의 건설과 확장이다(1:26-28). 하나님은 인류 사회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인간을 창조했다.

 

아버지는 가정의 가장으로서 외향적이라면 어머니는 집에 남아 가정과 자녀들을 돌본다. 여성은 당연히 내향적이다. 장래 하나님 나라를 건설한 일군을 잘 돌보아야 한다. 아버지의 엄한 가르침과 아머니의 자애로운 돌봄이 자녀들을 행복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돕는다. 이들의 수가 증가할수록 인류 사회와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 더욱 확장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신학적 가르침이 발견된다. 아담과 하와라는 남자와 여자는 개인이지만 종국적으로 항상 인류 사회와 하나님 나라 건설과 연결된다. 이들은 가정을 매개로 인류 사회는 물론 하나님 나라의 건설자로 참여한다. 창조 기사는 단순히 아담과 하와란 개인 인격체의 창조만 말하지 않는다. 이들의 개인적/주관적 입장은 하나님 나라라는 객관적 사실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창조기사의 신학적 가르침은 인간이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회학적 존재가 아니라고 증언한다. 사람은 가정을 구성하고 가정은 최소 단위로서 인류 사회와 하나님 나라의 구성 요소들이다. 국민은 개인적으로 존재하지만 나라와 민족 그리고 사회라는 공동체와 결코 결별될 수 없음과 같다.  이것은 구원 받은 신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신자는 하나님 앞에 개별적 존재로서 구원 받은 자이지만 곧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다. 이 때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들어갈 나라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살아야 할 나라이다. 그러나 헬라 철학의 이원론은 하나님 나라를 초자연적/초월적 나라로 이해하며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고 본다. 신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이 세상에서부터 살아야 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모른다.

 

이런 신자들은 흔히 성화 노력에서 지극히 미약하다. 이 세상에서 나그네처럼 살다가 죽어 천국가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어디에도 이를 증언하지 않는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지음을 받았다. 그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도록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종 되었던 애굽에서 구원했다.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부터 말기까지 계속 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가르쳤는가? 하나님 나라는 눈에 안 보일 뿐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실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자의 삶은 세상 나라의 시민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사는 것이어야 한다. 이 때 성화도 가능하며 신자는 이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은 세상 나라의 법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법으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의 법대로 사는 신자들의 수가 증가할수록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새워지고 그리고 더욱 확장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통해 신자들이 받은 하나님의 소명이며 사명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무엇보다 먼저 자기 인격에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다음 가정에 그리고 사회와 나라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도록 복음을 전해야 한다. 나란 개인, 가정과 사회 그리고 하나님 나라 사이 관계를 성경의 가르침대로 잘 이해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다. 주관적 신앙 삶에 객관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칭의 삶에 성화를 더 하기 위함이다. 이로써 신자는 부끄러운 구원을 피할 수 있다.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56445 홍정길 목사의 회한

http://blog.naver.com/rassvet/220042124736  가정론은 왜 중요한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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