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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6 (18:33:10)

하나님의 집, 진리의 기둥과 터

딤전 3:15

  오늘의 말씀은, 교회의 의미를 분명하게 해 주며, 목회자의 책임과 사명을 알려 주고, 성도의 신앙생활의 원리를 강조하고 있다.


1.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나님의 집이다.

  흔히 이 본문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거나 축사, 권면을 할 때 ‘하나님의 집’을 예배당에 연결시켜 오용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예배당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다. 입당이나 헌당을 할 때, 예배당이라고 하지 않고 성전이라고 하며 이 성전이 곧 ‘하나님의 집’이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말씀을 들은 교인들은 대개 다 분별하지 못하고 그대로 믿는다. 그래서 우리나라 기독교 선교 역사 130년이 되었음에도 이 부분이 수정되지 않고 오용, 남용되고 있다. 

  건물을 성전이라고 고집하니 여기에서 크게 몇 가지 폐단이 일어난다.

➀예수님을 영접한 성도의 몸을 성전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약화 된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알지 못하느냐?” 강력한 선포이다. 미지근한 설득이 아니다.

  성도의 몸이 성전이므로 성도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통해 더욱 거룩해져야 한다. 건물을 성전이라고 강조하면,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으로 세우신 교회의 의미를 오해하게 만든다. 성도들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온전한 삶에 대한 추구와 애착을 그만큼 약화시킬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고차원적인 교회관이 정립 되지 못하고 성전 자체만을 중요시 했던 구약 백성들 같은 경향을 보이게 된다.

➁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성도들의 먹 보다 검은 죄, 주홍 같이 붉은 더러운 죄를 사해 주신, 보혈의 공로, 구속의 풍성한 은혜가 묻히게 된다. 구약의 성전에서 짐승 잡아 각을 떠서 번제단에서 태워 올리고 피를 뿌렸던 그 제사가 십자가에서 끝났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흘려지고 몸이 번제물이 되어 우리가 사죄의 은총을 입었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성전제사, 짐승의 피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 의미가 바로 성도의 몸을 성전이라고 한 말씀 안에 있다. 우리 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제사가 재현 되었다는 말이다.

➂오순절에 성령님이 불같이 바람같이 강림하셔서 내주 하시는 복음 시대의 영광스러움이 드러나지 않게 된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제자들을 부르시던 예수님, 벳세다 광야에서 말씀을 전하시던 주님,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시던 주 예수님, 골고다를 향하여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시던 우리 주님, 비틀거리다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몇 걸음 가시다가 또 쓰러지신 주님, 마지막 십자가에 높이 달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절규하시던 예수님, “다 이루었다.” 외치시던 주님, 무덤에 들어가신 예수님,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 그 예수님은 지금 우리 곁에 안 계시니 눈으로 볼 수 없다. 그러면 우리는 외롭다. 두렵다. 무기력하다. 소망이 없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바로 그 분의 영, 성령께서 오순절에 강림하셔서 보혜사로 계신다. “이제는 다시 떠나지 않으신다.” 약속 하시며 우리 안에 계신다. 그래서 성도의 몸을 바로 그 성령님을 모셨다 해서 성전이라 한다.

  성도의 몸이 성전이라는 개념은 신비하고 신령하며, 영광스러운 것이다. 어떻게 낮고 천한 인간의 몸에 하나님을 모신단 말인가? 이것이 바로 은혜 중의 은혜요 복 중의 복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몸을 아무리 귀하다고 강조해도, 흔히 말하는 ‘만물의 영장’ 정도 이상은 말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을 모신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은 그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 건물을 성전이라고 고집함으로써 이와 같은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선포가 약화될 뿐 아니라 희미해진다.

➃건물을 성전이라고 고집하니 아직도 참 성전 된 제 몸의 주인이 하나님인 것을 알지 못하고 그 몸을 제 맘대로 해도 된 줄 착각하게 된다. 그래서 종종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고, 새벽기도, 십일조 생활, QT를 비롯한 제자 훈련까지 하고,

교회 활동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한 것처럼 보였던 기독 청년들이 마치 헌신짝을 버리듯이 목숨을 버린다. 수십 년 교회 생활을 하고 교회 중직을 맡았던 중직자 들이 자살한다. 최근에도 모 대형교회 재정을 오랫동안 총괄했던 재정 장로님이 자살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존귀한 ‘그의 집’ 교회를 다스리는 사명을 맡겨주신 청지기들이다. 가장이 가족에 대한 책임을 맡고 있다면 매사에 신중히 주의를 기울이며, 원만하고 성실하게 책임을 감당하기 원한다.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밤낮 없이 가족을 보살피느라 초조하고 분주하게 일한다. 사람들에게도 그 정도의 관심을 가져야 된다면 하물며 하나님께 대해서는 더 말할 것이 없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교회를 가리켜 그의 집으로 부르는 이유가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어 자녀 삼으시고 친히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이다.


2.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이 진리는 무슨 진리인가?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을 위한 구속의 진리이다. 이 진리보다 더 거룩하고 경외의 대상이 되는 것은 없다. 진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요 하나님이시다. 세상의 모든 학문이 동원된다 해도 하나님의 진리, 지혜의 가치와 비교하지 못한다. 이 하나님의 진리, 지혜는 오늘날 교회의 정상적인 사명 감당으로 보존 된다. 따라서 그처럼 측량할 수 없는 존귀한 보화를 간직한 교회, 목회자와 성도의 책임은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 교회가 그 의미의 위대함을 바로 알고 신실하게 경외감을 가지고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교회가 그 직무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 세상의 빛이요, 인간의 구원이며 하나님의 영광인 본래의 사명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경성해야 한다. 자다가 깨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교회가 진리의 기둥인 것은 그 사역을 통해 진리가 보존되고 전파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천하보다 귀한 생명들이 구원 받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천사들에게도 맡기지 않으셨다. 목사와 성도로 구성 되어 있는 교회에 이 일을 맡기셨다. 여기에 교회의 위대함과 존귀함이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미 주님을 영접한 성도들에게 지속적으로  ➀교육하고 ➁격려하며 ➂힘을 주어 ➃사명을 잘 감당 하도록 해야 한다. ➄영화로운 자리까지 이르도록 힘쓰고 애써야 한다. 교회가 힘 있게 사명 감당 하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한다. 하나님의 진리를 보존하고 전하고 가르치고, 생명들을 이 진리로 살려내는 거룩한 일은 쉼 없이 진행 되어야 한다.

  교회가 복음에 대한 정상적이며 정당한 교육을 하고, 전도를 통해서 진리가 흑암의 세력에 묻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신, 이단, 사이비가 대대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마치 알곡을 잘 관리하여 가꾸지 않으면 잡초만 우거진 것과 같다.

  하나님의 진리를 높히고 명백하게 드러내지 않으면 교회가 아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집으로서, 진리의 기둥과 터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한다. 그리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교회들이 반드시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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