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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1 (17:34:17)

(부제: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요즘 인문학(人文學)의 인기가 높아 문학(文學), 역사(歷史)와 철학(哲學)에 관련된 책들이 잘 읽힌다.  20세기까지 과학과 그에서 나오는 기술의 개발에서 앞장 선 나라와 기업이 세계를 지배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고객들은 단순히 기술 좋은 제품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제품들은 다른 기술들과의 융합에서 나오고 이 위에 사용자의 문화, 관습과 정신까지도 감안해야 한다.  21세기 들어 그 동안 무시당했던 인문학이 더 중요해졌다.

요즘 나오는 신약(新藥)들의 70% 이상은 물리, 화학 그리고 생물이라는 기초 과학에서 나온다.  자연을 연구하는 것 자체가 원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도록 돕는다.  비행 원리도 새의 비행 원리를 이해함으로 가능했다.  결국 획기적인 신제품들은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 자체에서 나온다.  21세기 들어 응용 과학보다 기초 과학이 더욱 중요해졌다.

 

목회와 신학의 기초

모든 학문에서도 기초가 대단히 중요하다.  기초를 무시한다면 더 이상 성장과 발전은 없다.  이것은 목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요즘 목회도 응용적인 또는 은사적인 면으로 지나치게 치우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란 진리 자체가 무시되거나 신앙 인격 양성에 소홀하다.  겉으로는 교회와 목회 현장이 대단히 활발한데 뭔가 근본적인 것을 상실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세계의 대형교회들 중 50% 이상이 한국에 소재하지만 그에 맞게 진실한 목회자들의 수는 지극히 적다는 사실이 이를 잘 증언한다.  빛 좋은 개살구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12 제자들을 부른 목적에서 찾아진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3:13-15)  여기 두 가지 목적들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짝과 같다.  이들은 먼저와 나중이라는 유기적(有機的)인 이분법(二分法)에 속한다.  즉 둘 중 어느 하나를 버리게 하는 대립적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다.

분명히 제자들의 사역은 예수님의 권세에 힘입어 전도도 하고 귀신을 내어쫓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이 제자 소명의 유일한 목적은 아니다.  이에 앞서 제자들은 예수님과 늘 함께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먼저 스승 예수님을 알고 배우는 체험이 은사적 목회보다 앞서야 한다.  이 점에서 전자는 후자 즉 은사적인 목회에 반드시 필요한 기초와 같다.  그렇지 않으면 목회 활동은 자기만족으로 끝난다.  이 기초를 무시하면 목회는 그만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된다.

신앙 삶과 신학에도 이런 기초가 있다.  시편이 이를 잘 알려준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1:1-2)  여기 악인(惡人)은 하나님을 가볍게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사는 사람이다.  죄인은 그런 것이 삶의 관습이 된 사람이다.  그리고 오만한 자는 어떤 징벌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심판주 하나님을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10:4, 14)이다.  시편은 신자들을 비롯한 사람들이 어떻게 오만한 자가 되어가는가를 잘 설명한다.  처음 악인의 꾀를 따르고 그 다음 죄인의 길에 선다.  그리고 마침내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다.  그러므로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살잔5:22).

 

언약의 다른 표현인 하나님의 율법

이를 피하려면 하나님의 율법을 읽고 주야(晝夜)로 묵상해야 한다고 시편은 주장한다.  그럼 하나님의 율법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준 가르침(토라)이다.  이런 가르침들은 구약 성경에 많이 기록된다.  그러나 이 가르침들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그리고 신 명기라는 다섯 책들에 집중적으로 기록된다.  이들은 모세오경이라 불린다(24:44).  모세가 기록한 하나님의 율법이다.

모세오경 즉 하나님의 율법은 십계명과 시민법으로 구성된 시내산 율법(20-23)만 뜻하지 않는다.  시내산 율법은 하나님의 율법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모세오경은 하나님의 구속사(救贖史: redemptive history)를 기록한다.  역사적인 사실(fact)에 근거를 두고 신학적인 의미(meaning) 즉 하나님의 가르침(teachings, 토라)이 주어진다.  이 덕분에 하나님의 율법은 역사적이며 대단히 실천적이다.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 또 있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언제나 언약(言約: covenent)에 근거를 둔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율법이 바로 언약의 다른 면이란 것이다(31:16, 34:28, 4:13, 9:9, 10:3, 78:10, 8:1).  이사야 선지자가 잘 설명한다.  땅이 또한 그 거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음이라(24:5)  율법의 준수는 바로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것이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언약을 지키는 것은 바로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약 성경에는 6개의 중요한 언약들이 있다.  이들은 구속사의 무대가 달라질 때마다 새롭게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참조 글: 혼란의 가장자리  http://blog.naver.com/rassvet/40115347541 ) .  아담의 창조 언약(2:17), 아담의 구속 언약(3:15), 노아의 보존 언약(9:11-16), 아브라함의 약속 언약(12:1-3), 모세의 율법 언약(19-24) 그리고 다윗과 맺은 왕국 언약(삼하7), 이들이 그들이다.  

놀랍게도 마지막 왕국 언약을 제외하고 모든 언약들이 모세오경에 기록된다.  다윗 언약은 앞선 언약들의 역사적 성취이기 때문이다.  또 다시 놀랄 일은 모세의 율법 언약을 제외하고 나머지 언약들이 창세기 한 권에 모두 기록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세오경과 그 중에서도 창세기는 구약과 신약의 기초이다.

시편 기자가 모세오경을 읽고 묵상하라는 이유가 여기 또 발견된다.  그러므로 구속사에서 중요한 시기마다 하나님 앞에서 이 언약들은 갱신(更新)되어야 했다(24:25-28, 왕하11:4-17, 23:3, 대하15:10-12, 29:2-10, 10:3).  신명기도 요단 강 건너편에서 갱신된 언약에 대한 기록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잊지 않고 율법을 준수하도록 이스라엘을 돕기 위함이었다.

 

모세오경의 가르침

하나님의 율법을 말하는 모세오경은 창조(창세기)로부터 가나안 입성 전(신명기)까지 기록한다.  그럼 모세오경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창세기는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의 창조(1)와 인간과 맺은 언약(2:17)에 대해 기록한다. 우주에서 창조주 하나님 이외 다른 신이 없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그리고 인간의 창조 목적(1:26)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무엇인지도 암시된다.이로써 인간 존재의 목적과 의미가 무엇인지도 가르친다.  이런 가르침은 인류의 존재와 삶의 기초로 아주 근본적이며 기본적이다.  이 가르침은 인간 삶의 원리여야 한다.  성경의 창세기 이외 어디에서 이런 가르침을 찾을 수 없다.  하나님의 율법을 읽고 매일 묵상해야 하는 중요성이 강조된 이유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과 인류는 모든 면에서 기초와 근본을 잃게 된다.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1:7, 9:10)이기 때문이다.

창세기의 나머지 기록은 인류의 반복된 불순종과 아울러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거듭된 노력을 말한다.  이런 기록들은 성경이 말하는 신론(神論: theology), 인간론(人間論: anthropology), 기독론(基督論: Christology), 구원론(救援論: soteriology)과 신국론(神國論: theology of Gods kingdom)을 잘 설명한다.  이런 가르침들은 바로 신앙 삶의 근본적인 기초와 원리를 제공한다.

홍수 심판 이후 하나님은 전체 인류가 아니라 한 민족을 구원의 대상으로 삼아 자신의 구속사를 전개해 나갔다고 기록한다(12:1-3).  결국 선민의 부름은 인류 구원을 목표한 하나님의 전략적인 변경 또는 후퇴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출애굽 사건(12)으로 선민은 애굽을 탈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에 복락의 땅을 세우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세우기 위함이었다(19:4-6).  가나안을 기점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구속사를 전세계로 펼쳐나갈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먼저 이스라엘을 가르치고 훈련시켜야 했다.  시내산에서 율법(20-23)이 주어진 이유였다.  그 후 광야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훈련시켰다(민수기).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일이 그리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마침내 광야 삶이 끝났을 때 모세는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목적을 또 다시 알려주어야 했다.  이를 위해 모압 평지 즉 가나안 동편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재해석해 주었다(신명기).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이 율법을 준수해야 함을 모세는 가르쳤다.  가나안은 낙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근거를 둔 하나님의 법치(法治) 즉 하나님 나라가 실현될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세 오경은 이미 현세적인 신국론(神國論)을 주장한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려면 이스라엘은 구속주 하나님(출애굽기)을 늘 기억해야 했다(5:15, 7:19, 8:2, 8:18, 9:7, 15:15, 24:18, 24:22, 25:17, 32:7).  이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으며 열심히 하나님의 언약인 율법을 준수할 것이다.  그렇게 신국(神國)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세워질 것이다.

 

성경의 두 기둥들

이렇게 본다면 모세오경의 가르침은 창조와 구원이라는 두 기둥에 근거를 둔다.  이 기둥들이 없다면 신앙의 집은 더 이상 세워질 수 없다.  이렇게 모세오경은 선민이 여호와를 창조주와 구속주 하나님으로 동시에 경외해야 함을 가르친다.  그리고 이 가르침에 따라 인류와 선민이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도 가르친다.  이 모든 가르침은 인류 사회와 기독교에게 가장 근본적이며 기본적인 가르침을 제공한다.  이 기초를 잃는다면 인류 사회와 기독교는 존재의 목적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오경을 읽고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복된 자이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1:3)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이런 복된 삶을 살아야 했다.  다시 말해 악인과 죄인 그리고 오만한 자의 삶을 살지 말아야 했다.  이를 위한 모세는 이렇게 명했다.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 저주를 받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11:26-29)

가나안 땅에서 이루어질 신앙 삶의 기초도 하나님의 율법인 모세오경에 있었다.  여호수아서부터 구약 성경 마지막 책인 말라기는 이를 잘 증언한다.  하나님의 율법을 잘 준수할 때만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거룩한 백성으로서 제사장 나라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에 실패했고 그 결과 가나안 땅에서 망했다.

 

부활 후 승천 직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명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18-20)

창조 사역을 마친 후 창조주 하나님은 문화 명령을 주었다(1:28).  마찬 가지로 인류의 구원을 성취한 후 만유의 주가 된 예수님도 선교 명령을 남겼다.  이 명령에 따르면 제자들은 복음을 전해 모든 열방들에게 세례를 주어 제자를 삼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도록 해야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이다.  이런 삶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아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고 확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다면 선교 명령은 내용 면에서 문화 명령과 전혀 다르지 않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1:28)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류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해질수록 하나님의 통치 즉 하나님 나라는 그 만큼 이 지상에 실현될 것이다.  그러나 신구약 사이 차이가 있다.  구약 시대는 혈통에 근거를 둔 하나님 나라를 그러나 신약 시대는 혈통을 초월한 하나님 나라의 성장과 확장을 주장한다.

 

구약 시대 하나님의 율법을 읽고 주야로 묵상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했다.  모세오경은 모든 성경 책들의 기초와 근본을 제공한다.  그 기초가 튼튼하다면 그 위에 얼마든지 높은 층을 쌓을 수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율법은 신앙 삶을 위해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시편은 하나님의 율법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인 모세오경은 구원이 믿음으로 가능함을 늘 말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통해 아담은 이미 에덴에 살고 있었다.  그 안에서 계속 살기 위해 아담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선악과(2:17)를 따먹지 말았어야 했다.  시내산 율법도 출애굽 사건 이후 주어졌다.  구원의 은총을 계속 누리기 위해 이스라엘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율법을 준수해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선민 이스라엘은 율법을 잘못 이해했다.  율법은 이행득구(以行得求: justification by law)의 수단으로 여겨졌다.  율법이 복음이나 하나님의 은혜와 대치되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율법을 정기적으로 읽고 묵상할 것을 강조했다.  모세오경 이외 어디서도 신앙 삶의 기초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론

오늘날 사람의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고전2:1-2)이 한국 교회의 강대상을 지배하고 있다.  세상 지혜와 상식이 설교의 주내용이다.  신학의 기초 또는 복음의 기본적인 내용을 상실한 까닭이다.  이를 피하려면 하나님의 율법인 모세오경을 읽고 주야로 묵상하라고 시편은 권한다.  하나님의 율법인 모세오경도 결국 메시아의 강림을 예언하기 때문이다(24:27).

그리고 신약 성경도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과 함께 하는 노력에 힘쓰라고 충고한다.  예수님만이 율법 아래 살면서 어떻게 율법을 성취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율법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하나님의 율법인 모세 오경의 핵심도 마찬 가지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0:28)

율법의 핵심을 실천하기 위해 그는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려 했다.  예수님의 이런 삶을 배우는 것은 그대로 신앙 삶의 기초가 된다.  이 기초 위에서만 성화 과정은 열매로 연결될 것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15:5)

마태도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7:24-27)

한국 교회의 영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오로지 예수님에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새롭게 배워야 한다.  그렇게 기초를 다시 쌓아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먼저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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