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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5 (02:17:51)

(부제: 정교분리는 지켜져야 한다)

 

예전 보수주의에 속하는 교회들이 진보주의에 속하는 교회들로부터 호된 비난을 받았다.  보수 교회들이 현실도피주의적 신앙 자세로 인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 하지 못했고 국가를 위해 정기적으로 기도회를 주관함으로 독재 정권을 오히려 옹호했다고 진보 교회들은 그 동안 주장했다.

그래서인가 요즘 한국의 보수적인 교회들이 지나치게 정치에 참여한다.  참여가 활동적이다 보니 기독교 나라인 미국에서도 잘 지켜지는 정교분리(政敎分離)가 최근 지켜지지 않는다.  이들 목회자는 기독교 단체를 만들어 놓았고 기독교 교리에 안 맞는다면 공개적으로 정권과 통수권자를 비난하기도 한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는 망한다는 폭언도 강대상에서 서슴지 않고 한다.  과연 이것이 맞는가?  물론 상식적으로도 틀렸다.  우선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정교 분리를 위배했기 때문이다.  정교 분리는 초대 교회 시절부터 철저히 지켜졌다.  이 당시 기독교 신자들은 사방에서 온갖 위협을 받았지만 정치 세력화하여 로마 제국에 전혀 저항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목회자는 목회 성공 후 뭔가 부족한지 정치에 참여하려 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납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비난한다.  대한민국 속담대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보고 뭐라 한다는 식으로 국민은 이해한다.  유감스럽지만 지금 한국 기독교는 더 이상 빠져 나오지 못할 정도로 더러운 시궁창에 빠져있다.  새삼스럽게 일일이 이를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7:3-5)

지금 한국 기독교가 해야 할 일은 남을 비판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부정, 불의와 부패를 청결 시킴으로 자신을 개혁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급선무임에도 불구하고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성경이 금하는 바를 하려고 대든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루살이를 걸러내고 낙타를 억지로 삼키려고 무리수를 이들은 두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한국 교회는 한 발 물러나 자기 입장을 털고 좀 더 먼 곳에서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보다 큰 그림이 보이면서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먼저 해야 할 것인지가 분명해 질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보아야 한다.

한국의 기독교는 지난 백 년 동안 놀랍게 성장했다.  이런 성장을 이룬 나라와 국가는 이 세상에 없다.  그러나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복음 전파가 필요하다.  전체 개신교 인구가 크게 잡아 7백만으로 본다면 전체 국민의 1/7만 기독교로 개종했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기독교 나라가 아니다.

달리 말한다면 기독교 이외 다른 종교들이 아직도 사회 곳곳에 퍼져 있다.  이들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기독교인들과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그렇다면 특정 정치적 안건은 기독교에만 관련되지 않는다.  기독교 이외의 사람들의 이해에도 관계된다.  한국 기독교가 몰아붙이듯이 자기 주장만 하며 다른 이들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무시하면 안 된다.

이런 과정에서 기독교가 무례하다는 인상을 한국 사회에 준다면 어떤 결과가 오는가?  교회는 더욱 수적으로 위축될 것이며 복음 전파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럼 정치적인 사안 때문에 복음 전파를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면 계속적인 복음 전파를 위해 정치적인 이익을 버려야 하는가?

그 답은 분명하다.  왜 기독교가 정치에 초연해야 하는가도 분명하다.  그리고 예수님이 로마 제국을 상대로 왜 정치적인 투쟁을 하지 않았는가도 여기 밝혀진다.  물론 정치 문제보다 영혼 구원 문제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고 정치에 참여할 경우 영혼 구원 문제가 소홀해 질 수 있음을 예수님과 사도들 그리고 초대 교회는 잘 알았다.

그리고 이제 1/7 밖에 안 되는 한국 기독교가 무리하게 전체 판을 흔들려 한다면 이것은 예수님이 명한 이웃 사랑 실천도 아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이웃의 인격을 존중해 주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원수가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도 주라고까지 명했다.  이렇게 이타적이어야 할 기독교가 특정 정치 사안에 이기적인 자세를 보인다면 상식 있는 불신자들이 비웃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은 종교에 무관하게 모든 국민을 품에 안는 국부(國父) 같은 존재여야 한다.  왜 그가 기독교 조찬 기도 모임에 참석해야 하는가?  왜 그렇게 자신은 대통령으로서 기독교 신자임을 과시해야 하는가?  이것은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아마 뜨거운 신앙심과 사명감이 그로 하여금 대한민국 모든 국민을 품어야 할 아버지 같은 존재임을 잊게 만든 모양이다.

대한민국의 최고통수권자라면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종교적인 모임에 참석하면 안 된다.  그리고 한국 기독교도 그를 초청하여 함께 기도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면 안 된다.  왜 그를 기도회에 참석시켜 기독교는 세를 과시하려 하는가?  이 때 다른 종교인들과 불신자들이 이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생각해야 했다.  상식적으로도 이해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 대통령이 나왔다면 뒤에서 기도만 해주고 대외적으로 기독교는 숨을 죽여야 한다.  불필요한 오해를 줄여 복음 전파에 방해가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기독교의 섣부른 정치적 언급이 기독교 출신인 대통령의 통치 행위에 누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상식이며 기독교 교회가 보여야 할 겸손이다.

그러나 세를 과시하듯이 그를 기도 모임에 초청했고 그로 하여금 무릎 꿇고 기도하도록 한국 교회는 요구했다.  마치 기독교가 중세의 카도릭처럼 모든 세속 권세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주었고 일국의 대통령인 이명박씨가 이런 기독교의 영향 아래 있음을 애써 강조하려 했다.  물론 초청에 응한 이명박씨에게도 잘못은 있다.

그러나 이 모두 다종교 사회인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염두에 두지 못한 결과였다.  기독교 밖 사람들의 눈에는 1/7이 무례하게도 대한민국 주인 노릇 하려 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것은 예수님이 말한 이웃 사랑도 아니면 그 사랑에서 나오는 겸손도 물론 아니다.   보이지 말아야 할 우월감과 교만으로 오해 받을 수 있다.

MB정권은 기독교의 신세를 지고 출생했기에 기독교의 눈치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닌 것은 아니다.  기독교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기독교 밖의 국민의 이해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  지금도 때는 늦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 조심할 것이 있다.

뜨거운 신앙심 때문에 자신의 정권과 권세를 이용하여 이 땅에 기독교를 더욱 진흥시키겠다는 결단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은 온 국민의 아버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료 선임은 신앙이 아니라 철저히 능력 본위여야 한다.  신앙인 각료의 실정(失政)은 곧바로 기독교에 욕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일에 잘못하면 대한민국은 자칫 레바논 같은 종교적 분쟁지가 될 수 있다.  사회가 통합되지 않은 가운데 이런 종교적 분쟁이 발생한다면 나라와 민족은 망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종교간 평화가 잘 유지된 모범적인 나라였고 세계인들은 이를 칭찬했다.  이것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이것은 기독교에게 유익하다.  나라가 혼란하면 복음을 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도 해를 받는다.  초대 기독교가 다른 종교에 불필요한 비난과 비판을 가하지 않은 이유이다.  그러므로 한국 기독교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관점에서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 나라라는 공동체를 보아야 한다.

왜 그런가?  설사 수쿠크라는 경제 법안이 앞으로 한국에 해를 끼칠 여지가 있다 해도 한국 교회는 이 법안을 정치권에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  그 이유는 세계 선교를 위해서이다.  달리 말한다면 하나님 나라가 인종을 초월하여 이 세상에 세워지고 확장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만약 한국 기독교가 교리 관점에서 회교의 수쿠크를 극렬하게 반대한다면 세계 선교와 하나님 나라 건설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회교권도 자기의 교리에 근거를 두고 자기 나라 안의 기독교 선교 행위를 반대할 수 있는 핑계를 얻는다.  이 때문에 한국 기독교는 공개적으로 이 법을 반대하면 안 된다.

우선 선진국들도 경제 논리에 따라 회교의 수쿠크를 받아드려 중동의 석유기금을 사용하고 있다.  만약 이 자금이 테러와 연결되었다면 이들 나라가 이를 받아들일 리 없다.  이웃 나라 일본도 받아들였다.  막연한 두려움으로 그리고 정확한 정보도 없이 이 법안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그렇고 이들 선진국이 속으로 우스워할 것이다.

그리고 세상 나라의 세속화(世俗化)는 당연한 것이다.  온갖 세속화 과정은 구약 시대부터 있었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나라도 아니다.  거침없이 몰려오는 세속화 과정을 어떻게 강압적으로 반대할 수 있는가?  그리고 수쿠크 때문에 세속화가 더 앞당겨지는 것도 아니다.

기독교는 다른 차원에서 이를 막아야 한다.  대한민국 전체 국민을 상대하지 않고 교회에 적을 둔 신자들을 대상해서 말이다.  왜 그런가?  구약 시대와 달리 신약 시대 하나님 나라는 영적(靈的)인 차원에서 이 세상에 세워지기 때문이다.  달리 말한다면 기독교 윤리에 근거를 두고 하나님 나라(통치)는 눈에 안 보이는 형태로 이 세상에 확장될 것이다.  기독교가 복음을 열심히 전해야 할 이유이다. 

복음으로 사람들이 구원을 얻어 새사람이 된다면 새로운 윤리(기독교 윤리)에 따라 살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수가 증가한다면 그 만큼 불신 사회에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며 하나님 나라가 저절로 세워지고 확장될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의 싸움은 혈육(血肉)이 아닌 영()에서 벌어진다.

그러나 수쿠크에 직접 반대하는 것은 혈과 육의 방법에 속한다.  만약 이 법안이 마음에 안 든다면 교회는 가르침을 통해 신자들이 회교의 석유 자금을 사용하지 않도록 단속하면 된다.  하나님 나라와 세계 선교를 염두에 둔다면 수쿠크 법안은 지극히 작은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이 법안이 승인된다면 한국 기독교는 회교권 나라에 대해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헌법적으로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간접적으로 요청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교회 스스로 회교 선교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요즘 정치적 발언을 하는 목회자들은 모두 큰 교회 목회자들로서 세계 선교에도 헌신한다.  그러므로 수쿠크로 인해 세계 선교에 장해 요소가 생기는 것도 이들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도 그리고 성경도 지지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선지자들은 조국이 멸망해야 비로소 새로운 이스라엘이 나타날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이들은 동족이 싫어하고 미워해도 조국에 대한 비관적인 예언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한국 기독교도 국지적이며 소아적인 입장을 버리고 조국과 민족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며 대국적으로 보아야 한다.  나라가 사회적으로 안정되어야 교회도 계속 존재하며 예수님이 맡긴 복음 사역을 계속 수행할 수 있다.

다른 고려 사항이 있다.  지금도 이북의 공산당은 계속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협하며 사회적 혼란과 분열을 책동하고 있다.  이런 때 한국 기독교가 정치 세력화하여 사회적 혼란을 부추긴다면 누구에게 유익인가?  아직도 이북을 추종하는 좌파 정치인들이 우리 가운데 있다.  이들이 보수 층의 분열을 이용한다면 또 다시 좌파 정권이 들어설 수 있다.

진정 기독교 대통령을 사랑한다면 기도만 하고 그가 마음대로 민족을 위해 일하도록 맡기자!  반면 한국 기독교는 아직도 소수임을 명심하고 그 동안 교회 성장이 준 헛된 자만감을 버리고 자정(自淨)을 통한 교회 개혁에 더욱 힘써야 한다.  그 후 기독교의 현실 참여도 목회자가 아니라 신자들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개인적인 삶 활동을 통한 신자들의 현실 참여는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목회자의 참여는 사회적인 분열과 혼란을 초래시키기 때문이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란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 점에서 영원한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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