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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4 (04:37:07)

(부제: 타락한 세상 문화에 휘둘린 한국 목회)

 

모세는 히브리 인이었지만 애굽의 바로 궁에서 공주의 아들로 자랐다.  40 세가 되었을 때 그는 말과 일에 능한 왕자였다(7:22).  유대인의 전설에 의하면 이 때 모세는 원정에서 돌아온 승전 장군으로 바로의 후계자였다고 한다.  그는 만인(萬人)의 지배자였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이 모든 것들을 잃고 애굽이 아닌 미디안 광야에서 그는 살아야 했다.

미디안 광야는 당시 최고의 문명국이며 선진국이었던 애굽과는 완전히 달랐다광야는 인간 문명을 거부하는 죽음의 땅이다.  애굽에서 천군만마를 지휘했던 모세는 이곳에서 말 못하는 양들의 목자가 되었다.  40년 동안 살면서 모세는 말에 어눌한 사람이 되었다(4:10).

이렇게 모세는 80년을 전, 후반기로 나누며 완전히 상반된 삶을 살았다.  그의 삶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애굽과 광야 사이 차이를 이해하여야 한다.

 

애굽은 오늘날 미국 같은 최고 문명국이었다.  매년 반복되는 나일강의 범람 덕분에(46:7-8) 물과 자연 비료가 풍부했다.  애굽 인들은 힘들이지 않고(11:10)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매년 대풍(大豊)을 맞으며 애굽은 낙원 같은(13:10) 곳이었다애굽은 농경(農耕) 문화의 최절정에 달한 정착(定着) 사회였다.

농경 문화는 인간의 힘으로 자연의 한계를 조금이나마 극복한다.  그리고 인류의 과학과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만큼 농경 문화는 자연보다 인력(人力)에 더 의존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인류는 신의 도움이 없어도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종교(宗敎)는 농경적인 정착 사회에서 그 힘을 점점 잃고 인본주의(人本主義) 사회로 바뀐다.  산업 사회와 정보 사회로 넘어갈수록 이런 무신론적 성향은 인류 사회에서 더 분명해진다.  이렇게 농경 사회에서 신()보다 인간이 더 주목을 받는다.  지혜와 힘과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 영웅 또는 왕으로 숭배되며 그를 중심으로 정착 사회가 형성된다(10:8-9).

농경 문화가 특색인 정착 사회는 당연히 공간(空間) 개념에 의해 다스려진다.  이곳에서 토지(土地)와 그 산물(産物)들은 생존(生存)에 절대적이다.  사람들은 가능하다면 많이 소유하려 한다.  정착 사회에서 사람들의 소유(所有)에 대한 집착은 대단히 크다.  자연스럽게 현세적이며 물질적인 복()이 강조되고 인간의 이런 탐심을 채워주는 기복적(祈福的)인 종교가 농경 사회에서 발전한다.

농경 사회에서 많이 가진 자와 적게 가진 자 사이 자연스럽게 계급이 형성된다.  최고의 권력자인 왕을 중심으로 중앙 집권적인 통치가 나타난다.  그의 통치력에 의해 제국이 번성하고 확장되면 그는 신()이 된다.  이렇게 전재 정치나 독재 정치는 농경 사회의 산물이다그리고 불교, 유교와 무교도 농경 사회의 산물이다.

농경 문화는 사상적으로는 인본주의(人本主義: humanism), 정치적으로는 전재 정치를 그리고 종교적으로는 물신주의(物神主義: mammonizm)를 만들어 냈다.  이로써 정착 사회의 특징과 성격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고대 바빌론의 바벨탑(11)이나 애굽의 피라미드는 이에 대해 잘 설명해 준다.

 

그러나 40년 동안 모세가 살았던 미디안 광야는 죽음의 땅이었다.  그곳은 인간의 힘이나 지혜를 거부한다.  생존을 위해 유목민들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  이들은 자연 앞에서 자신의 무력감을 깨닫고 신()의 존재를 더 생각한다.  종교 사학자들은 이런 환경 아래 유일 신을 섬기는 유대교와 회교가 나왔다고 말한다.

광야에서 유목민들은 계절의 변화에 민감해야 한다.  때를 놓쳐 풀을 얻지 못하면 모두 잃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유목민들은 이동(移動)하기 쉬운 방법으로 광야 삶을 살아야 한다.  정착민처럼 땅에 집착하면 이동(移動) 시기를 놓칠 수 있다.  이 때문에 유목민들은 꼭 필요한 재산(財産)만 소유하려 한다.  소유(所有)에 대한 집착력이 약하다.

이렇게 유목 사회는 공간 개념보다 시간(時間) 개념에 의해 지배 당한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은 광야 같은 곳에서 유목민처럼 살았다(46:32, 47:3).  이 사실은 이들의 삶과 신앙이 공간 개념보다 시간 개념에 따라 살았음을 증언한다.  겉으로 보아 재물을 많이 소유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광야의 유목 사회에서 사람들은 가족처럼 귀한 존재들이다.  농경 사회와 달리 인력(人力)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인 하나를 형제들이 공유하며 이렇게 낳은 자식을 구별치 않고 함께 양육한다.  그리고 광야에선 목축도 한 가족처럼 대단히 귀중하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의식주(衣食住)문제가 목축으로 해결된다.  짐승의 배설물조차 땔감으로 사용될 정도로 매우 유용하다.

농경 사회에 비한다면 유목 사회는 훨씬 더 민주적이다.  유목 사회의 통치술은 정착 사회의 종속적인 ruler-ship과 달리 평등성과 개별성이 강조되는 pastor-ship 즉 목양술에 있다.  광야라는 환경이 만들어낸 독특한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광야에선 낮과 밤의 기온 차가 극히 심하다낮은 아주 뜨겁지만 밤은 매우 춥다삶 자체가 이들에겐 훈련이며 연단이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어릴 때부터 이들은 어떻게든지 살아남는 훈련을 배운다.  유목민들이 농경 사회의 정착민 들보다 훨씬 강한 이유이다.

자연 환경과 정치적 변화로 생존에 위협을 느낄 때 유목민들은 농경 사회를 침략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민족들이 멸망했고 정착지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역사상 스키타이족과 훈족과 몽골족의 이동이 이를 설명한다.  여러 가지 면에서 비정착적인 유목 사회는 정착적인 농경 사회와 완전히 다르다.

 

모세는 애굽의 농경 문화와 광야의 유목 문화를 모두 경험했다.  하나님은 모세가 두 문화에서 40년씩 살게 하여 두 세계를 철저히 경험하도록 했다.  이 덕분에 모세는 두 세계, 두 문화 그리고 두 사회를 모두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애굽의 지도자 훈련만으로 부족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성격상 비정착적인 유목 사회의 지도자와 비슷하다.  모세 이전 족장들이 왜 정착 사회를 떠나 광야에서 장막 삶을 살았는지 이해된다(11:9-10).  그리고 왜 이스라엘이 정착 사회인 애굽을 떠나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 정착 사회를 세웠는지에 대해서도 이해된다.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은 정착민으로 살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도 비정착민들처럼 살아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와 선민 이스라엘은 상이한 문화와 사회를 모두 경험했다.  이들의 경험은 신약 시대를 사는 오늘날의 기독교의 목회자와 신자들이 어떻게 신앙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잘 설명해 준다.  기독인들에게 농경적인 정착 사회의 삶 양식보다 유목적인 비정착 사회의 그것이 더 잘 맞는다.

성도는 이 세상의 순례자이기 때문이다(25:23, 벧전2:11).  또한 영적(靈的) 관점에서 이 세상은 성도들에게 광야와 같다(17:14-16).  그리고 출애굽 사건 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품꾼으로 불렸다(25:55).  품꾼은 시간 단위로 일하는 노동자로 계약된 시간이 지나면 일을 잃는다.  성경은 이 세상이 신약 성도가 영원히 행복하게 살 곳이 아니며 곧 역사적인 종말(終末)을 맞을 곳이라고 말한다(고전10:11).

이를 안다면 성도는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 안과 밖에서 목회자들을 비롯한 성도의 사고 방식은 공간 개념이 아닌 시간 개념에 의해 철저히 지배 당해야 한다.  그렇다면 목회자들을 비롯한 성도들은 소유(所有)보다 나눔에 힘쓰고 그리고 축재의 삶보다 청지기의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탐심 많은 신자로 드러나 나중 수치를 당할 것이다(12:16-21, 딤전6:9-10, 5:1-5).  이것을 피하려면 땅에 것을 부인하고 위에 것을 더 소망해야 한다(3:1-5, 딤전6:17-18, 12:1).  이렇게 자기부정은 성화와 목회의 최절정에 달하게 한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도 자신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말했듯이 기독인들은 재산, 지식,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소유한 후 그것에 안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능력을 능동적으로 발휘하며 삶의 희열을 확신하는 인간이다.

 

목회에 성공한 목회자들은 성공을 위해 노력한 만큼 그 성공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자세와 노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 노력이 부족하여 한국 교회가 혼란에 빠져있다.  성경이 말하는 목회학이 정착 사회의 leader-ship이나 ruler-ship이 아니라 유목 사회의 pastor-ship임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예수님도 이렇게 경고했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마 23:8-10절)  이 가르침을 따르지 않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에게 7가지 저주가 내려졌다

이 저주들은 그대로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에게도 적용된다.  하나님의 경고는 이미 충분히 이들에게 내려졌다.  열매로 나무를 알 수 있듯이 이들이 보여주는 말과 행위는 이미 그들이 누구인지 잘 증명한다.  이들의 불의와 부패로 인해 지나치게 불평,불만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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