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조회 수 : 2345
2011.03.16 (14:28:48)

(부제: 자연 재난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의 일부 목사들은 섣불리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문제 되면 정치인들이 그러듯이 자신의 말을 언론이 왜곡시켰다고 변명한다.  먼저 그런 빌미를 제공한 것을 잊고 나중 남 탓으로 돌리며 빠져 나간다.  잠언에 이런 말이 있다.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28:26)

이들 목회자는 목회 성공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쳐서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대로 말한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대로 지혜에 따라 말해야 한다.  얼마 전 일본이 만난 자연 재난이 이번에도 예외 없이 이들의 설교 재료가 되었다.  설교 시간 재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여의도의 ㅈ목사와 강남의 ㄱ목사가 말했다.

 

이것이 또 다시 사회적인 시비와 비난을 불러 일으켰다.  사실 이들의 언급은 진리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진리는 당시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선지자들이 선민에게 외친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와 관계된다.  예컨대 요나 선지자는 앗수르 제국의 수도인 니느웨 성에 앞으로 발생할 심판을 사전(事前)에 경고하여 회개토록 하라는 사명을 받았다(요나서).

그러나 이들은 그런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사전에 그런 계시를 이들에게 줄 리 없기 때문이다.  자연 재난이 발생한 후 이들은 정통한 시사 평론가처럼 설교 중 말했을 뿐이다.  조심성 없이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다.  성경은 이런 가벼운 행동에 대해 이렇게 경고한다.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이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할 자니라 (17:5)  자연 재난을 통해 가난하게 된 자들을 이들이 조롱한 셈이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일어난 재난이라고 굳게 믿는다면 이들은 더 잠잠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사자(使者)나 되는 것처럼 쉽게 말하며 행동한다.

 

물론 이들도 재난 당한 일본인들을 기뻐할 리 없다.  그러나 이들은 재난의 원인을 불필요할 정도로 자세히 설명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 언급은 일본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들은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일본이 과거에 한국에 행한 수많은 잘못들이 많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일본을 도와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자!

일본인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두 민족을 화해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았어야 했다.  그러나 지혜롭지 못하게 언급을 함으로 그만 기독교를 실추(失墜)시켰을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시비(是非)를 일으켜 한국 사회는 물론 일본 사회의 반기독교 정서만 키웠다.  복음을 전해야 할 목사 스스로 복음에 장애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한류 스타들은 무조건 일본을 돕자고 말한다.  한류 스타들보다 목회자들이 한 수 아래 모습을 보였다.

기독교는 자연 재난에 대해 지혜롭게 말해야 한다.  불신 사회로 나가 복음을 전할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충고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10:16)  만약 교회와 신자들이 이에 실패하면 향후 복음 전파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두 사람이 예수님에게 와서 그 당시 로마 총독인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을 말했다(13:1).  이들이 이를 말한 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동기를 감출 수 있었다.  큰 무리에 의해 메시아로 추종 받는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임을 이들은 알았다.  로마 총독에 의한 동향인의 억울한 죽음을 말함으로 이들은 예수님을 충동질하여 로마 제국과 투쟁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아니면 예수님의 심판에 대한 가르침(12:54-59)을 들은 후 재난이라는 하나님의 심판은 산 사람들의 의로움을 증명한다는 식으로 이들은 주장하고 싶었다.  예수님은 이들의 위선과 외식(外飾)을 알아챈 후 이렇게 답했다.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13:2-3) 

 

갈릴리 인들이 당한 죽음은 나쁜 통치자로 인해 온 재난이었다.  즉 인재(人災)였다.  여기 예수님의 논조 셋이 분명히 발견된다.  죄는 재난을 불러들일 수 있다.  그러나 재난으로 죽임을 당한 자가 산 자들보다 반드시 더 죄가 많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재난은 산 자들에게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경고이다.

이 가르침은 그대로 일본인이 당한 자연 재난에 적용된다.  일본인들이 지은 죄들은 무수하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 큰 죄인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만난 자연 재난은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더 죄가 많아서가 아니라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암시한다.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된 두 목회자의 평론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다.

그럼 한국인과 일본인들 중 누가 더 하나님 앞에 죄가 많은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겉으로 드러난 재난 자체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이 판정은 참 재판장인 하나님의 권세에 속한 것으로 인간 목회자가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일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이 두 목회자는 어느 덧 하나님의 재판 자리에 앉아 일본인을 정죄하는 교만 죄를 범했다.  이런 실수와 잘못을 우린 곧잘 범한다.

 

두 목회자에게 다른 잘못이 발견된다.  예수님의 논조에 따르면 일본인이 만난 자연 재난은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으면 한국인도 멸망 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위에 언급한 두 목회자들처럼 생각한다.  남이 당한 불행을 보면 마치 자신이 의로워서 그런 불행을 당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들은 생각하며 은근히 자랑하고 싶어 한다.

이것이 바로 남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는 죄이다.  그러나 이런 위선적인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동일한 재앙을 만날 수 있다고 성경은 이미 경고한다.  그러므로 이젠 재난을 달리 해석해야 한다.  남의 불행은 곧바로 나 자신을 살피라는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큰 일 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리들도 예외 없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다.  사실 진작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 당했어야 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하나님은 우리를 지금까지 살려두었고 이런 가운데 다른 사람의 불행을 목격하게 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했다.  아마 지금까지 이런 경고가 수도 없이 우리들에게 있었을 것이다.  남의 불행을 통해 하나님은 수없이 자비와 긍휼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었다.  우린 진작 하나님 앞에 회개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거꾸로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자신의 의()를 자랑하려는 악한 종자에 지나지 않는다(1:4).  계속 이런 마음의 완악함을 고집한다면 갑자기 우리들도 재난을 당해 망할 수 있다.  이를 설명하려고 이전과 달리 예수님은 자연 재난(災難)을 예로 들었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13:4-5)  예수님의 논조에 의하면 상기의 두 목회자들을 비롯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어떤 위선자였는지는 분명하다. 

하나님이 이런 위선(僞善)을 언제까지 참을 수 있는지에 대해 비유를 들어 예수님은 설명했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13:6-9)

경계경보는 한없이 울리지 않는다.  예수님이 승천한 후 40년 지난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유대와 예루살렘은 완전히 망해 이 지상에서 사라졌다.  하나님은 40년 동안 예수님을 버린 유대를 긍휼히 보았다.  정말 하나님은 오래 참는 사랑의 신이다.  어떻게 우리가 구원의 공로자가 될 수 있다고 쉽게 주장할 수 있는가?

 

지난 3 11일 일본인들이 만난 엄청난 자연 재해를 보면서 한국 교회도 위에 언급한 두 목회자들처럼 안이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잘못이다.  이런 식으로 한국 교회가 이번에도 하나님 앞에 마음의 완고함과 완악함을 회개하지 않는다면 어떤 식으로든지 하나님의 징계가 반드시 올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에게 나타날까?  물론 안 알려졌다.  그러나 결정적인 마지막 심판까지 하나님은 인내하면서 기다리면서 동시에 마음의 완악함을 계속 고집하는 목회자들을 개별적으로 심판할 것이다.  아직도 한국 교회가 하나님 앞에 수행해야 할 사명이 남아있다는 전제 아래서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스스로 자기 교회를 정결케 해야 한다.

일본의 자연 재난은 한국 교회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야 하며 그리고 고난을 당한 이웃 형제를 돕기에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원수를 사랑으로 품는 넓은 가슴을 보여야 한다.  우리가 잘 나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복음을 전해야 하며 그 결과 우리 주님의 이름만이 드높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이렇게 기도합시다!  하나님이여!  일본이 만난 자연 재난을 통해 한국 교회가 갱생하도록 자비와 긍휼을 베푸소서!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33 사실과 의미로 본 성경 본문(2) 첨부 파일
장창수
2247 2011-05-26
32 자유도 부정할 수 있는 자유
장창수
2447 2011-05-22
31 성공 후에도 자유자가 되라!
장창수
2253 2011-05-22
30 먼저 자유자가 되어라!
장창수
2193 2011-05-20
29 사실과 의미로 본 성경 본문 첨부 파일
장창수
2891 2011-05-08
28 일과 쉼(1)
장창수
2636 2011-04-25
27 성경의 지혜로 살려면 첨부 파일
장창수
2836 2011-04-12
26 무교와 교회 개혁 첨부 파일
장창수
2453 2011-04-08
25 유교와 교회 개혁 첨부 파일
장창수
2554 2011-04-08
24 불교와 교회 개혁 첨부 파일
장창수
2943 2011-04-08
23 지도자가 넘어야 할 시험
장창수
4057 2011-04-02
22 구원은 상실될 수 있는가? 첨부 파일
장창수
3874 2011-03-30
21 죽어야 단 것이…… 첨부 파일
장창수
2484 2011-03-21
Selected 자연 재난은 경고함으로 회개를 요구한다! 첨부 파일
장창수
2345 2011-03-16
19 모세가 경험한 두 문화 첨부 파일
장창수
2556 2011-03-14
18 문제는 교회의 정치 세력화이다. 첨부 파일
장창수
2486 2011-03-05
17 경기서노회 신흥교회 개발로 위기에 처함
유병도
2851 2011-02-28
16 바보야! 교회가 아니라 가정이야! 첨부 파일
장창수
2714 2011-02-19
15 교회 개척을 하신다고요? 첨부 파일
장창수
2900 2011-02-11
14 기초를 다시 쌓자! 첨부 파일
장창수
4531 2011-01-21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