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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2 (17:36:13)
 

 

 

(부제: 헤브론과 예루살렘) 

 

성경은 다윗의 왕정(王政)에 대해 말한다. “다윗이 삼십 세에 위에 나아가서 사십 년을 다스렸으되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삼하5:4-5)  다윗이 죽고 왕위가 솔로몬에게 이양(移讓)된 후에도 비슷한 기록이 남아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치리한 날짜는 사십 년이라. 헤브론에서 칠 년을 치리하였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을 치리하였더라. 저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매 그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대상29:26-28)  이들 기록에서 두 장소 헤브론과 예루살렘이 대조되며 7년과 33년도 또한 비교된다.

 

사울 왕은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죽었다(삼하1:1).  그의 아들 이스보셋이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다스렸다(삼하2:8-10).  이 때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사울을 대신하여 왕이 되도록 사무엘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에게 공개된 비밀이었다(삼하3:9-10, 17-18, 5:2).

이스보셋을 강제로 밀어내고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었다.  다윗이 이스보셋의 비정통성을 주장하며 자신의 정통성을 말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다윗은 아주 조심스럽게 처신했다(삼하2:1).  이스라엘의 참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었기 때문이다.  시글락에서 다윗이 묻자 하나님은 헤브론에 가서 유다 지파의 왕이 될 것을 허락했다. 

아무 말 없이 다윗은 순종했다(삼하2:2-4).  시간이 지나면서 사울의 집은 서서히 망해 갔지만 다윗의 집은 날로 흥해갔다(삼하3:1).  모든 이스라엘도 이를 보았다.  얼마 후 이스보셋 정권의 후원자인 아브넬이 죽임을 당하고 그 뒤 이스보셋도 암살 당했다(삼하4:8).  이스보셋은 겨우 2년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한 왕이었다(삼하2:10).

그 후 5년 동안 통치자 즉 왕이 없이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사사 시대처럼 살았다.  이상하게도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다윗을 왕으로 초청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 때도 다윗은 조심스럽게 처신하며 잠잠히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다.

헤브론에서 마지막 7년째 통치할 때 마침내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이 모여와 다윗에게 왕이 되어 줄 것을 요청했다(삼하5:1-2).  이 때부터 선민의 공식적인 왕으로 유다와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을 33년간 다윗은 통치했다.

 

만약 사울처럼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참 주인으로 믿지 않았다면 세 번이나 스스로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다윗에게 있었다.  시글락에서 헤브론으로 가기 직전, 헤브론에서 첫 2년 동안 그리고 그 다음 5년 동안.  그러나 다윗은 이들 기회를 전혀 이용하지 않았다.

첫 기회 때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헤브론으로 갔다.  그러나 두 번째와 세 번째에선 그냥 참으며 조용히 기다렸다.  누가 보아도 바보 멍청이같았다.  이 정도로 그의 경건은 참으로 탁월했다.  그러나 이것이 다윗에게도 그리 쉽지 않았을 것이다.  2년 기간보다 다음 5년 기간 동안 특히 더 어려웠을 것이다.

마지막 5년 동안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그에게 찾아와 왕이 되라고 권하며 얼마나 많이 그를 유혹했을까는 넉넉히 짐작된다.  이런 권면으로 차기 왕의 호의를 얻고자 아부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으리라!  이 점에서 선민 사회라고 이방인 사회와 별 다르지 않다.  이를 감안하면 다윗의 자제와 절제 그리고 자기부정은 참으로 놀라웠다.  다윗은 진실로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인 하나님께만 충성하는 종이었다(왕상9:4절 참조).

 

다윗의 충성은 조직 신학의 내외적(內外的) 소명(召命)을 잘 설명한다.  사무엘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음으로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내적 소명을 받았다.  내적 소명은 외적 소명을 받기까지 사명을 준비해야 함을 뜻한다.  달리 말한다면 이 때까지 하나님으로부터 혹독한 연단을 받아야 한다.  이 동안 다윗은 믿음으로 참고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의 외적 소명은 주변 환경을 통해 드러난다.  다윗의 경우 두 번 외적 소명이 나타났다.  첫 소명에 따라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둘째 소명에 따라 예루살렘에서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첫 소명 이후 둘째 소명을 받기까지 그에게 정말 어려운 시험 기안이었다.  자기 마음대로 왕이 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확실한 소명이 있기까지 기다릴 것인가?

마음대로 왕이 되어도 어느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를 단호히 거절함으로 시험에 승리했다.  두 번째 외적 소명이 확인되자 다윗은 주저 없이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고 기름 부음을 받은 후 공식적인 왕이 되었다(삼하5:3).  그러므로 그의 즉위식은 내적 소명부터 둘째 외적 소명까지 모든 시험과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했다는 분명한 증거였다.  이후 33년 동안 다윗은 내외치(內外治)에 성공했고 그 결과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다.  헤브론의 7년이 있었기에 예루살렘의 33년이 가능했다.

 

모든 지도자들은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내적 소명을 받는다.  젊은 시기에 비죤을 품든지 혹은 소명을 확신하며......  이 후 외적 소명을 받을 때까지 다윗처럼 자신을 준비하는데 진력해야 한다.  이 기간 동안 연단을 목적하며 다가오는 하나님의 시험은 힘들 수 있다.  사실 연단이 힘들수록 보다 성숙한 지도자가 될 것이다.  

향후 언젠가 그에게 선거나 임명을 통해 외적 소명이 나타난다.  목회자의 경우 노회의 안수례로 드러난다.  안수례는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외적 소명의 증거이다.  이런 외적 소명을 확인하기 위해 교회와 노회는 내적 소명을 받은 예비 목회자들을 잘 관찰해야 한다.

그러나 외적 소명을 받은 후에도 지도자와 목회자는 한 동안 참으로 힘들고 외로운 시험에 노출된다.  주어진 권력을 자기를 위해 또는 교회와 나라를 위해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시험이 자주 온다.  여기서 승리한 지도자만이 나머지 기간 동안 승리자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다윗의 경우와 같이 사회 활동이나 목회 활동에서도 이런 시험은 얼마든지 나타난다.  말씀 묵상과 기도를 하며 또는 자기 확신에서 지도자는 계획을 세운다.  이 때 그 계획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는 지도자일수록 인내력을 잃고  자신의 야망을 강압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다윗의 경우처럼 지도자와 목회자는 하나님의 뜻이 주변 사람들의 의지(意志)를 통해 나타나기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주변 사람들의 동의를 얻으려면 그 만큼 그 계획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반대에 부딪힐 경우 계획을 좀 더 검토할 기회로 삼는 지혜를 지도자와 목회자는 가져야 한다.  이 때까지 목회자와 지도자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시험을 받는다.  믿음으로 참고 기다리느냐 아니면 강압적으로 관철시키느냐?

전자의 경우 지도자는 무능력하게 보인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카리스마가 넘치는 지도자처럼 보인다.  대부분 후자의 유혹에 잘 빠진다.  그러나 이 때 외적 소명의 목적이 교회나 하나님 나라 또는 민족과 나라를 위한 것임을 깨닫는다면 후자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누가 하나님 앞에서 참 승리자가 될 것인가가 드러난다.

 

유교의 가부장적(家父長的)인 권위의식에 익숙한 지도자는 이런 시험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목회자도 부패한 마음에서 나오는 출세욕과 권세욕을 억제하기가 쉽지 않다.  자기부정은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다윗의 예는 큰 도움이 된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참 주인이라는 믿음에 따라 다윗처럼 처신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목회자를 비롯한 모든 성도들은 이 세상과 교회의 주인이 부활한 예수님임을 믿고 바르게 처신해야 한다.  예수님은 구원주와 만유의 주님이다.  흔히 전자만 고백하지만 성화를 위해 신자들은 자신의 삶에서 후자도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믿음만이 자기부정과 인내를 가능하게 한다.

교회에서 민주주의는 비성경적이라고 일부 목회자들이 말하지만 참으로 허무한 주장이다.  다윗의 모범은 오늘도 자기부정이 성화와 목회의 최절정임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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