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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8 (17:50:29)

 

  

(부제: 전통 종교에 뿌리 한 교회 개혁1)

 

헬라 인들은 이원론(二元論)에 바탕을 둔 철학을 말했다종교 면에서 순수한 영적 존재로서 물질을 초월하여 초연하게 존재하는 선한 신()과 물질을 창조한 저급(低級)한 악한 신을 말한다두 신()들은 영원히 대립한다이들 선한 신과 악한 신 사이 대립이 인류 역사에 반영되고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이에 따라 인류 역사가 영원히 순환한다는 원형적(圓形的)인 역사관을 견지한다.

인간론에서 이들은 영()과 육()이 항상 대립(對立)한다고 말한다그 결과 금욕주의(禁慾主義)와 쾌락주의(快樂主義)라는 극단적인 철학(哲學)이 헬라 사상에 모두 나타났다헬라의 이런 사상이 초기 기독교에 영향을 미쳐 영지주의 (靈知主義)나 기독교 신비주의(神秘主義)로 나타났다.  그리고 헬라파 유대인들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 편입됨으로 자연스럽게 헬라 철학의 이원론과 금욕주의(禁慾主義)가 기독교 교회(敎會)에 파고 들어왔다.

사도 바울이 서신(書信)들을 쓴 목적 중 하나는 이런 헬라 철학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었다(2:6-23, 딤전4:1-8).  사도 바울은 구약에 바탕을 둔 헤브라이즘을 헬레니즘과 비교하며 차이를 지적해야 했다.

 

한 사람이나 한 민족이 기독교로 개종할 때 예전의 종교적인 관행(慣行)이나 사상(思想)이 개종 이후의 신앙 삶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이런 현상은 한 민족이 예전 가졌던 종교적 정서가 새로 도입된 기독교 교회의 형성에 다각도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말한다.

서구 유럽의 기독교 역사는 거의 2천 년에 가깝다.  이 동안 교회가 배출한 위대한 설교가들이나 사상가에 의해 서구인의 잘못된 종교 정서나 그에 바탕을 둔 의식구조 (意識構造)가 서서히 개조(改造)되었다물론 지금도 헬라 철학의 영향이 로마 카도릭과 그 외 사상가 (思想家)들에게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본다. 

그러나 개신교(改新敎) 교회들은 끊임없이 헬라 철학에서 벗어나고자 성경(聖經)을 깊이 연구해야 했다.  이 덕분에 헬라의 잘못된 사상들이나 철학에서 벗어났고 성경의 가치관에 의해 세워진 개신교 국가들이 세워졌다.  이들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보다 더 잘 발달했다오늘날 세계 역사(歷史)를 이끄는 나라들이 개신교 국가들임을 우리는 본다.

여기서 이런 가정(假定)이 나온다.  한 민족의 발전은 이방(異邦) 종교의 틀에서 벗어나 기독교적인 가치관(價値觀)에 의해 그 나라 국민의 의식(意識)이 얼마나 개조되느냐 여부에 달린다성경의 하나님 여호와만을 섬기면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을 것이란 신명기의 주장(28:13-14)은 이 가정의 정당성(正當性)을 증명해 준다.

그러므로 특정 민족의 종교 정서가 그 민족의 장래와 미래를 결정한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니다종교 정서는 하나의 틀을 제공하며 이 틀에 준거(準據)하여 한 민족의 가치관이 형성되고 이 가치관에 의해 사회의 모든 것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130년 전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왔다.  그 이전 한국 사람의 종교 정서는 불교(佛敎), 유교(儒敎) 그리고 샤마니즘인 무교(巫敎)에 바탕을 둔다무엇보다도 샤머니즘이 한국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종교 정서라고 말한다나중 들어온 불교나 유교도 샤머니즘을 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흡수되었다.  그렇다면 한국 기독교는 과연 한국인의 이런 종교 정서를 극복하고 한국 국민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는가어떤 점에선 극복했지만 다른 점에선 극복 당하기도 했다.

달리 생각한다면 기독교가 한국 민족의 종교 정서(情緖)를 극복하고 개조하기에는 아마 130여 년의 세월이 짧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 고유의 종교적 정서가 한국 기독교 교회에 어떤 식으로든지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이런 점에서 한국의 예전 종교들이 한국 기독교에 준 영향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내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한국 사회와 교회가 어느 면에서 개혁(改革)되어야 할 것인가도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

 

불교의 성속 개념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 한국의 불교는 산 속이 아니라 도시 속에 위치하고자 한다그러나 불교는 이원론에 바탕을 둔 해탈(解脫)을 목적하므로 근본적으로 금욕주의적이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려고 세상을 등지는 수행(修行) 방법을 택한다불교 철학은 보이는 현상 세계를 허상(虛像)으로 보며 종국적으로 이 세계를 부정(否定)함으로 해탈이 가능하다고 말한다그래서 불교의 철학은 ‘무()의 철학’ 또는 ‘부정(否定)의 철학’이라고 불린다.

자연스럽게 불교는 한국인에게 성속(聖俗)의 개념을 극단적으로 대립시키는 생각과 사상을 제공한다한국인에게도 쾌락주의와 금욕주의가 극단적으로 나타난다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속세(俗世)를 떠난 거룩한 사람들과 다르다.  세속인 들은 세상을 즐기며 사는 것이 당연하다한국인들이 보여주는 퇴폐적(頹廢的)이며 허무적(虛無的)인 쾌락주의가 이를 잘 증명한다.  그러나 중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세상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속세의 모든 인연을 끊어버리는 금욕주의적인 삶의 자세를 택한다.

이 둘 사이 중립(中立)이나 타협(妥協)은 거의 불가능하다이 때문에 기독교가 말하는 이웃 사랑이 한국인에겐 쉽지 않다이웃을 사랑한다면서 진리에 근거하지 않는 맹목적인 사랑을 할 수 있고 아니면 이웃에 무관심한 체 자기 수양(修養)에만 전념할 수 있다.

 

이런 금욕적인 종교 심성(心性)은 한국 교인들에게도 금욕적 또는 쾌락적인 신앙 양태를 갖도록 영향을 준다대부분의 한국 목회자들은‘보내는 목회(牧會)’ 보다는‘모으는 목회’에 치중한다속세(俗世)의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들여 개종(改宗) 시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세상(世上)으로 다시 보내기보다 교회 안에 신자(信者)들을 모아두기를 더 좋아한다교회는 세상과 비교할 때 거룩한 곳이기 때문이다.

제자 훈련은 예수님의 선교 명령(28:19-20)에 근거를 두고 신자를 그리스도의 제자(弟子)로 만드는 양육 프로그램이다제자 훈련의 목적은 그리스도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데 있다다시 말해 그리스도에게 충성하는 제자로 만드는 것이 제자 훈련의 근본 목적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제자 훈련은 개인 목회자에게 충성케 함으로 개교회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전락한다.  근본적으로 양육 목적이 왜곡(歪曲)되었다부활주 예수님의 선교 명령(28:18-20)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 세우고자 함에 있다.  이 목적은 모든 민족에게 복음(福音)을 전해 세례를 주어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분부한 모든 것을 지켜 행하게 함으로 가능하다.

‘모으는 목회’경향은 불교의 이원론적인 영향이 무의식적으로 목회자에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은 신자들을 위험한 세상으로 보내기보다 교회 안에 남아 세상을 잊고 안전하게 예배(禮拜)와 기도(祈禱) 또는 교회 일에 힘쓰기를 바란다그리고 강대상에서 세상 것을 버리라고 잘못 강조한다.  한국 교인들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도피적인 그래서 미성숙한 사람들이 된다.

 

그러나 기독교 성경은 이원론(二元論)이나 금욕주의(禁慾主義) 철학에 바탕을 두고 이 세상을 보지 않는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짐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하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쳤다(6:10).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제자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다.

나는 세상에 더 이상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17:11 상반절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존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17:15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17:18) 

부활 후 예수님도 이렇게 말했다.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0:21)  승천 이전 예수님은 강림할 성령의 사역이 무엇인지도 설명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기독교 국가에서 교회가 왜 마을 한 가운데 위치하는가교회는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나라에서 신자들은 눈을 감지 않고 기도한다그러나 동양인 신자들은 의식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야 비로소 영적(靈的) 일에 몰두할 수 있다동양인들에게 현실과 신앙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실한 신앙인일수록 종교적 삶을 위해 현실을 떠나야 한다는 충동을 늘 받는다.

외국의 유명한 목회자들은 한국 신자들의 이런 신앙 성향을 보고 예배와 기도에는 뜨겁지만 세상에서 빛과 소금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늘 지적한다한국 교회가 수()에서 우월하고 종교적 열심(熱心)에서 탁월하지만 질()에선 떨어진다는 뜻이다어찌 보면 이 결과는 당연하다.  한국 교회에 만연된 교회 성장론은‘보내는 목회’보다는‘모으는 목회’를 위한 성장 전략(戰略)에 지나지 않는다.  이 모두 불교의 종교적(宗敎的) 정서(情緖)가 한국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무의식적(無意識的)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불교의 주관적 성향

불교의 종교적 정서에 따르면 진리(眞理)는 늘 상대적(相對的)이며 지극히 주관적(主觀的)이다내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진리가 결정된다

신라 시대의 고승인 원효 대사가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어느 날 밤 산에서 오랜 여행으로 곤히 잠 들었다밤 중 갈증을 느낀 그는 일어나 물을 찾았다.  옆에 물이 가득한 바가지를 발견하고 흡족하게 마셨다.  그리고 다시 잠 들었다.  아침 일어나 보니 물 바가지는 없었고 놀랍게도 해골이 하나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는 밤에 자신이 마신 물이 해골에 고인 물이었음을 알았다해골에 괸 물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는 사실은  "모든 깨달음은 마음속에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했다.  즉시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와 참선을 계속하면서, 그가 깨달은 진리를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려고 애썼다.

이 일화는 한국 불교가 객관적인 진리보다 주관적인 인식에서 더 강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그리고 불교의‘무의 철학’이나‘부정의 철학’자체가 절대 진리를 포기(抛棄) 한다불교의 이런 종교적 심성(心性)은 오랜 동안 한국인의 정서를 지배했다.  이런 종교적 심성은 한국인 목회자에게도 여전히 남아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한국 교회에 신학적 그리고 교리적인 혼란(混亂) 가중 또는 초래시키는 원인이다.

 

기독교의 신학과 교리는 적어도 2천 년이란 오랜 교회 역사를 통해 충분히 검증을 받으며 교회의 공적(公的)인 확인을 받고 형성되었다.  그러나 한국 목회자들은 이런 교리나 신학을 쉽게 무시하고 자신이 느끼고 깨달은 것을 진리인양 외친다.  나라는 작지만 한국에서 거짓 메시아들이 나왔고 온갖 사이비(似而非)나 이단(異端)들이 참으로 많이 나타났다.  많은 교주(敎主)들이 나타나 새로운 계시(啓示)를 주장하며 그리고 자신의 깨달음을 진리로 포장하여 선포한다그리고 다른 목회자의 설교를 듣지 못하도록 신자들을 단속한다. 

객관적인 진리가 무시된 곳에서 흔히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종교적 현상이다그 만큼 한국 목회자들에게 주관적(主觀的) 성향이 강하다는 뜻이다특히 목회에 성공한 목회자들이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성경과 동일시하여 강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그들은 무의식적으로 원효대사처럼 자기의 깨달음을 진리로 둔갑시킨다세계적으로 빠른 교회 성장으로 유명한 한국 교회가 늘 시끄러운 이유이다자신이 말씀인 예수님의 종임을 이들이 쉽게 잊기 때문이다.  영적 교만은 그들로 하여금 파멸의 길로 가게 만든다.  스스로 거짓임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열매로 어떤 나무인지 분별해야 한다.

 

결론

이렇게 한국인의 무의식 세계에 불교의 지나치게 대립적인 성속(聖俗) 개념과 끈질긴 인식적 주관성이 새겨져 있다.  이것들이 한국 기독교에 비성경적인 잘못된 종교 관행을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한국 목회자들의 의식세계에 각인된 불교의 사상과 철학 그리고 가치관을 성경의 가르침으로 고치는 것이 바로 한국 교회가 시급히 해야 할 개혁일 것이다.

 

*http://blog.naver.com/rassv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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