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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8 (17:56:33)

(부제: 전통 종교에 뿌리 한 교회의 개혁3)

 

무교는 한국의 전통 종교들 중 가장 오래되었다.  나중 들어온 불교나 유교가 무교를 흡수하는 듯 했으나 무교에 흡수되었다.  그 만큼 무교는 한국인의 정서(情緖)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근대에 들어온 기독교도 요즈음 혼합주의 모습을 보인다.  기독교의 어디에 무교적인 요소가 있는지 알아내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

 

무교의 기복성(祈福性)

무교(巫敎)는 반드시 지켜야 할 진리나 원칙이 없으면서도 종교(宗敎)이다그리고 사람들은 항상 현세(現世)의 복()을 추구한다이런 인간의 이기적 탐심을 잘 충족시켜 주는 것이 무교이다.  무당이나 점쟁이는 자신들을 찾는 사람들의 윤리에 무관심하다.  복채(卜債)만 넉넉히 준다면 굿을 해주고 점을 쳐준다.  사람들도 이들이 신들을 얼마든지 달래 인간에게 복을 주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신관(神觀)은 구약 성경에서도 발견된다.  거짓 선지자 발람은 영력(靈力)이 대단한 무당 같은 존재였다(22:6).  모압 왕 발락은 그를 초청해 애굽을 떠나 가나안 으로 가는 이스라엘을 저주(咀呪)하라고 요청했다.  이를 위해 발람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달래야 했다.  하나도 아닌 일곱 제단들을 세워 그 위에 제물을 올렸다(23:1-2, 4, 14, 29-30). 

발람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도 우상 신들과 다르지 않다고 믿었다.  그러나 여호와는 만물(萬物)의 창조주(創造主),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킨 구원주 하나님으로 물질(物質) 세계를 초월하는 신()이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그의 요구대로 행할 리가 없었다.  여호와의 지시를 받아 그가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했다(23: 5, 11, 12, 14, 18-24, 24:1,2,10).

구약 시대 가나안 땅에 농업 신 바알이 있었다.  가나안에서 대부분의 밭은 하늘의 비에 의존하는 천수답이었다.  원주민들에게 하늘의 비는 생명이었다.  비를 얻기 위해 남신(男神) 바알을 성적(性的)으로 자극하여 여신(女神) 아세롯과 성적 관계를 맺도록 해야 한다고 이들은 믿었다신전에서 벌어지는 의식 때마다 성전의 창남, 창녀가 성관계를 가졌다.  풍성한 추수를 위해서라면 이들은 불의(不義)도 서슴지 않았다.

 

무교나 발람의 종교 그리고 바알 종교, 모두 오로지 현세의 복에만 관심을 두고 이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이것은 인간이 만든 우상 종교의 공통된 성격이다종교들은 인간의 탐심을 충족시키도록 만들어졌다.  이에 대해 신약이 증언한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3:5)

 

한국인의 변칙성

오랜 동안 무교가 한국인의 의식 세계를 지배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사회는 대체로 부정직하다.  이익(利益)을 위해서라면 원칙(原則)보다 변칙(變則)을 기꺼이 택한다.  이것을 한국인의 적당주의(適當主義)라 한다.  고속철 공사를 하는 한국의 시행사는 수 억 원의 손해를 감수하며 다시 공사 해야 했다.  감리(監理)를 맡은 독일 회사가 한국인의 적당주의를 봐주지 않았다.

예전 독일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 때 거리에서 보도(步道)블록 공사를 보았다.  독일인들은 반 미터 이상의 땅을 파서 모래로 덮고 깊이 20센티가 넘는 단단한 블록을 깔았다.  공사 후 보도(步道)는 깔끔했다예전 서울의 거리를 걸을 때 여기저기 깨어지거나 부서진 보도 블록들을 보았다.  부실 공사 탓이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外國人)들이 이런 거리 모습을 본다면 과연 이들이 한국의 수출 제품을 신뢰(信賴)할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 보았다.

왜 한국 사회는 늘 총체적인 비리와 부패 현상을 보이는가?  모든 사회 분야에서 원칙은 있지만 이익을 위해 자신에게 편리(便利)한 원칙에 따라 일한다그렇게 진실성, 성실성(誠實性) 그리고 정직성(正直性)이 사회 전반적으로 결여된다.  지켜야 할 진리가 없어 변칙에 따라 살도록 우리를 길들인 무교의 영향이리라!

이런 잘못된 변칙성은 목회에서도 나타난다.  진리가 성경에 밝히 드러나 있지만 목회자들은 이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목회한다.  이를 예수님은 이렇게 경고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7:15-23)

 

불분명한 윤리 의식과 잘못된 이분법

무교에 따르면 불행(不幸)은 귀신(鬼神)의 노염을 산 결과이다귀신의 노염을 풀기 위해 한국인들이 무당을 찾는다결국 불행의 원인은 자신 탓이 아니다자기를 성찰함이 없이 무당의 도움으로 쉽게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이런 사람들에게 인격(人格)과 윤리의 성숙함은 기대할 수 없다.

기독교 성경은 기독인의 불행을 달리 말한다인간의 불행에 세 가지 원인들이 있다.  인간 자신의 죄() 때문에(2: 17), 죄와 무관하게 성도를 연단 (鍊鍛)시킬 목적 때문에(1-2) 그리고 하나님이 세운 자연법(自然法) 또는 상식을 어기기 때문에…….  많은 목회자들이 성경의 이런 가르침을 쉽게 간과한다.

고난 당한 성도를 위해 기도할 때 더 그렇다.  고난(苦難)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를 위해 기도해 준다또는 육체적인 질병에서 즉시 고침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한다하나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빌기만 하면 복을 준다고 이들은 믿는다.  이 점에서 기독인들은 무교인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이들은 복 받은 신앙인이란 불행(不幸)과 같은 고난을 전혀 당하지 않고 건강하게 그리고 유복하게 사는 성도라고 생각한다.  많은 기독교 신자들도 불행을 모르며 살기를 원한다.  예전의 전통 종교에서 배운 습관대로 수복강령을 위해 교회를 찾아 예수님에게 정성껏 기도한다.  기독교와 무교 사이 차이가 없다.

기독교 교인들 사이에서도 연단을 목적하며 보낸 하나님의 고난이 자연스럽게 또는 무의식적으로 무시된다.  오히려 이들은 고난 당하는 성도들을 이상한 눈으로 본다행복은 좋고 불행은 나쁘다는 식의 잘못된 이분법에 따라 인생과 삶을 판단하기 때문이다이런 신자들에게서 신앙의 성숙(成熟)은 기대난망이다.

예전‘아담 킹’이라는 한국계 미국인 아이가 프로야구 개막식에서 시구(始球)를 했다미국 가정에 입양되기 전 아이의 부모는 그의 두 다리가 썩어 들어감을 보고 그를 버렸다그러나 미국인 양부모는 아이의 처지를 알면서도 입양했고 알루미늄으로 튼튼한 두 다리를 만들어 주어 걷게 했다.

그는 양부모와 함께 건강한 모습으로 자신을 버린 조국을 다시 찾았다.  이 사실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야구장에서 시구하기에 이르렀다.  이 때 아이는 한국인들에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를 보며 한국인들은 미국인 부모에 대한 존경심과 아울러 그를 버린 부모에 대한 부끄럼을 동시에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수치스런 부분을 보는 듯 부끄러워했다.

불행을 무조건 피하려는 한국인의 정서에서 무교의 심각한 영향을 우린 발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자들의 삶에 발생하는 불행도 합력(合力)한 선()을 이루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8:28).  어느 날 예수님의 제자들이 출생할 때부터 장님인 사람을 만났다이 때 누구의 죄 때문인지 스승에게 물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답했다(9:1-3).

불행은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하게는 만드는 아주 좋은 기회란 것이다. 그렇다면 신자(信者)는 이분법적 사고를 버리고 불행을 신앙 성숙의 기회로 삼으려는 적극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 

 

감정이 진리보다 앞서는 신앙

신자들은 물론 대부분의 한국인은 합리적(合理的)이기보다 감정적(感情的) 이다무교에는 진리(眞理)가 없다.  모든 종교의식(宗敎儀式)은 보다 더 많이 시청각에 의존한다.  보고 듣는 사람들에게 신의 강림이나 임재를 알려야 했다.  이를 위해 'singing and dancing'이라는 자극적인 제의가 중요하다.

이런 영향을 받은 목회자들과 신자들은 예배를 축제로 생각하며 심리적(心理的) ‘카타르시스’를 얻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그렇게 얻어진 심리적 상태를 성령의 역사(役事)로 해석한다.  이런 예배 방식은 진리의 체계적인 설파(說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예배가 인간의 감성적, 심리적 작용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4:24).  여기 신령과 진정이라는 표현도 무교적 색갈이 지나치게 묻어난다원어로 신령은 영()을 가리키며 그리고 진정은 진리(眞理)를 말하기 때문이다.  신자들은 성령의 인도와 진리에 대한 깨달음에 따라 나오는 마음의 감격과 감동으로 하나님에게 예배해야 한다.

그러나 진리인 말씀을 무시하고 가벼운 심리적 감동만을 추구한다면 기독교 예배는 동양의 신비주의적(神秘主義的) 제의와 별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움에 따라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수반하는 감정적 동요와 의지적인 결단이 보여지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신앙 삶과 분리된 일상 삶

기독교는 진리(眞理)와 비진리를 따진다이 점에서 기독교는 무교(巫敎)와 근본적 (根本的)으로 다르다.  진리대로 살면 의()와 평강 그리고 생명(生命)에 이르지만 비진리대로 산다면 파멸에 이른다고 성경은 말한다.  진리에 근거를 두고 나와 남 그리고 세계를 생각한다.

구약의 율법(律法)은 하나님의 계시(啓示)에 의해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율법은 이스라엘이 반드시 지켜야 할 법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막(聖幕)이나 성전(聖殿)을 제조하는 방법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계시했다(25:40, 8:4, 대상28:12, 8:5).  인간의 부패한 마음에 따라 선심 쓰듯이 성전 기구들을 만드는 것을 하나님은 철저히 금했다이 때문에 성전이나 성막 또는 그 기구들을 만들 때 적당주의는 절대로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제사용 제물들도 성소(聖所)에 보관된(30:24) 척량 기구에 의해 정확하게 잰 후 하나님께 드려야 했다(23:13).

이런 정확성은 상거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모세의 법은 상거래를 위해 이스라엘이 정확한 척량(尺量) 기구들을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恩寵)으로 종()되었던 애굽 땅에서 구원(救援)을 얻었기 때문이다 (19:36).  깨끗한 상거래 습관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장수하게 할 것이라고 하나님이 약속했다(25:15).  그리고 부적절한 척량 기구들을 사용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가증(可憎)스럽기 때문이었다(25:16, 20:10).

상거래에서 정확한 척량 기구들을 사용하는 것도 신앙 삶 자체였다하나님의 율법(律法)에 근거를 둔 이스라엘 사회가 이방인 사회에 비해 경제적(經濟的)인 불의(不義)와 비리(非理)가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였다.  율법이 정치 면에서 견제와 균형을 제공했듯이 경제면에서 같은 효과와 결과를 주었다.

구약의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 사회의 경제와 정치면에서 적당주의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에게 일상 삶은 곧 신앙 삶이었다.  바로 이런 신앙 훈련은 이스라엘 인으로 하여금 성경적 원칙에 따라 철저히 살아야 한다는 사고(思考)와 삶의 자세(姿勢)를 길러주었다이스라엘이 우상 종교를 택한 이방 민족과 달리 모든 면에서 훨씬 앞서 발전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오늘날 기독교 국가들이 기타 종교 국가들보다도 전반적으로 발전한 것도 이런 신앙 정서(情緖) 덕분이다.  구약이 이를 잘 증언한다.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28:13-14)

 

오늘날 국제화(國際化) 시대를 맞아 모든 기업 활동들은 투명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제품이 팔리지 않고 필요한 자금 조달도 불가능하다평상시 정직하게 기업 활동을 한 회사들은 불황 때에도 이익을 낸다이를 생각한다면 구약의 이스라엘이 얼마나 선진화된 사회였는지 능히 짐작된다.

그럼 대한민국이 중진국에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가 왜 그리 힘든가오랜 동안 한국인의 의식 세계에 나쁜 영향을 준 무교의 종교적 정서가 만들어낸 적당주의와 변칙주의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애통스럽게도 한국 교회가 무교의 기복주의 신앙을 아직도 극복하지 못했다.  기독인들이 현세(現世)의 복을 위해서라면 진리나 원칙을 쉽게 무시한다.

그러나 기독인들에게 신앙(信仰)과 윤리(倫理)는 절대로 분리되지 않는다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믿음과 착한 양심(良心)을 가지라고 디모데에게 충고 (忠告)했고 착한 양심을 버리면 믿음의 파산자(破産者)라고까지 말했다(딤전1:19).

 

외형적 과시 현상

무교의 또 다른 영향이 있다현세적인 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의 물질적인 부요(富饒)를 과시하기 좋아한다이 점에서 한국인의 졸부(猝富) 근성도 무교의 영향으로 생각할 수 있다이 면에서 한국 목회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교회의 외적(外的) 성장을 몹시 자랑하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 교회를 구성하는 교인들을 잘 돌보기보다 교인들이 모이는 건물에 더 많이 투자한다교회의 모든 행사들과 프로그램도 교세와 목회자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함이다.  그 결과 본질을 놓치고 비본질적인 일에 더 열심이다.  목회자들과 신자들도 이 땅에서 영광(榮光)과 명예(名譽) 그리고 칭찬(稱讚)을 누리며 살기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세(來世)에 대한 소망(所望)이 확실하다면 헛된 일에 분요하지 않고 자랑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딤전6:17).  그리고 진실한 목회자와 성도는 개인의 헛된 명분(名分)보다는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보다 더 실리적(實利的)인 일을 택한다(5:25-26).

결론

종교와 신앙 면에서 이스라엘과 이방 나라 사이 차이는 엄청나다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창조주로서 유일한 신이다.  그러나 이방의 신들은 우상들이다.  전자는 참 신을 섬긴다면 후자는 거짓 신을 섬긴다.  기독교 성경이 우상 제조와 숭배를 금한 이유이다이들 사이 차이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상을 섬기는 민족들은 부패한 인간의 상상(想像)에 따라 만들어 놓은 우상 이상으로 신()의 존재를 생각할 수 없다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신의 전부이다.  이 점에서 우상 신은 자연이나 물질을 초월할 수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계시(啓示) 즉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낸다.  그 계시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자신을 생각하도록 요구한다.

계시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만물을 초월(超越: transcendence)하면서 동시에 내재(內在: immanence)한다.  자연(自然)과 인간 사회를 자신의 뜻대로 경영하고 그리고 이들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룬다.  이런 계시들을 읽으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무한(無限)함을 늘 묵상했다이렇게 신론(神論)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켰다.

결과는 무엇인가자연(自然)을 뛰어넘어 무한한 하나님을 묵상함으로 이스라엘인들의 사고력(思考力)은 무한히 발전할 수 있었다그러나 이방인들은 눈에 보이는 우상 이상 신의 존재를 사고할 수 없다이스라엘인의 창의력(創意力)이 우상을 섬기는 백성들의 창의력보다 월등히 앞선 이유이다.

오늘날 약 1500만 명의 유대인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산다수적으로 이들은 대단히 미약하다그러나 이들이 세계 역사와 인류 사회를 이끈다그 원인이 이들의 신앙 삶 자체에 있음을 우리는 본다종교와 그에 따라 형성된 종교적 정서가 어떻게 국민의 사고력(思考力)과 창의력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이스라엘은 잘 설명해 준다.  지금까지 개인과 사회의 문제들도 특정 민족의 종교 정서(情緖)와 무관하지 않음을 또한 본다. 

 

불교는 교리(敎理) 면에서, 유교는 교회 정치(政治) 면에서 그리고 무교는 신앙 삶 면에서 한국 기독교에 부정적(否定的)인 영향을 미쳤다한국의 기존 종교들이 한국 교회의 놀라운 성장에 기여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부작용(副作用)이 엄청나게 컸음을 우리는 본다.

오늘날 한국의 국회에 기독인 의원이 35%를 넘는다.  그러나 정치 개혁(改革)은 거의 불가능하다한국은 기독인 대통령을 4번이나 가졌지만 정치 분야는 여전히 후진국(後進國) 수준이다.  그 원인은 한국의 전통 종교들을 극복하지 못한 한국 기독교 자체에 있음이 암시된다.

한국인의 의식 세계에 각인된 전통 종교의 신앙 정서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교회 개혁(改革)도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그 동안 대한민국이 이룬 물질적, 경제적 성장을 뒷받침해 줄 정신과 사상 면의 발전도 없을 것이다.  한국 민족의 번영이 일시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 민족을 위해 기독교는 이 땅에 존재한다.  성경의 말씀에 기초한 한국 교회의 진정한 거듭남만이 한국 민족의 살 길이다이것이 가능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사용할 것이다그러나 근본적인 개혁이 없이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만을 외식적으로 주장한다면 한국 교회는 속 빈 강정과도 같을 것이다.  하나님도 결국 촛대를 옮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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