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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0 (04:18:06)

(부제:자유자 바울)

 

사도 바울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고전9:1)  놀랍게도 자신의 사도 직분을 자유와 연결시켜 설명한다.  그가 자유를 강조하고 있다.

사본(寫本)에 따라 자유자와 사도가 뒤바뀐다. “내가 사도가 아니냐? 자유자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이 두 사본들은 모두 다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자유자가 사도라는 직분보다 먼저 기록된 사본은 바울이 자유자로서 사도가 되었다고 증언한다.  사도가 되기 전 바울은 자유자였다.  사도로 부름 받기 이전부터 자유자로서 그는 신앙 삶을 살았다는 뜻이다.  사명을 받기 이전 먼저 자유자여야 한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가르침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성공 이데올로기가 한국 사회를 지배한다.  우리는 성공에 이르는 과정을 고통으로 생각한다.  그 과정을 인생의 한 부분으로 보며 즐길 마음의 여유를 갖질 못한다.  삶에 자유가 없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일단 성공하면 그 결과 얻어진 모든 열매를 그 동안의 고생에 대한 보상으로 알고 마음껏 누리고자 한다.

더 이상 노력하지 않고 장래를 위한 성장도 멈춘다.  서서히 성공자는 이기적인 공인(公人)으로 드러난다.  성공 후 추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이다.  그러나 만약 실패하면 깊은 좌절에 빠지거나 자살한다.  고진감래라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가치가 인생에 반드시 다양하게 발생하는 행불행에 대한 대응 능력이나 회복 탄력성을 낮춘다.  한국인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 이유이다.

 

목회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목회자는 주의 양들인 성도들을 목양(牧羊)해야 한다.  목회자는 모든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렇다면 목회자가 되기 전 즉 성도 시절부터 이런 자유를 소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자신을 영멸에서 구원시켜준 예수님과 동행하며 그를 알고 사랑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런 자유는 신앙 삶에 기본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자유를 배우지도 못하면서 직분을 받을 수 있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이 사람은 사명 맡을 준비가 전혀 안 된 지도자이다.  그런 목회자는 목회를 자신의 성공과 출세를 위한 방법과 수단으로 생각한다.  그는 항상 자신을 위해 일하면서 교회의 화목보다 분열을 조장한다.  나라의 지도자가 출세지향적인 인물이라면 큰 불행이다.

 

그럼 사도 바울은 어떤 내용의 자유에 대해 말하는가?  고린도 교회에 우상 제물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고전8:1).  믿음이 크고 강한 교인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우상 제물을 마음대로 먹었다.  그러나 믿음이 작고 약한 교인은 이를 떠라 하다가 그만 실족했다.  우상 제물을 먹는 소위 믿음이 좋은 신자가 교리적으로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교회의 덕을 세우는 면에서 이들이 잘못했다고 사도 바울은 보았다.

 

결론적으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하게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전8:13)  여기 우리를 위한 가르침이 발견된다. “바른 신학이나 교리 그리고 그에 따른 행위만 과시하듯 자랑하지 말라!  그리고 그런 과시가 혹 형제를 실족시키지는 않는지 잘 살펴라!”

 

사도 바울은 바른 지식을 버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식에 따른 행동이 다른 성도를 실족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때로는 지식과 그에 따른 행위를 유보(留保)시켜야 한다.  이 점에서 지식은 사랑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아니면 그 지식이 교만케 한다.  바울도 충분히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믿음과 지식을 소유했다.  그러나 그는 사랑의 원리에 따라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기보다 지식과 믿음을 유보시켰다(고전8:13).

 

위에서 언급된 자유자란 바로 이런 자유의 소유자이다(고전9:1).  사도 바울에 의하면 성도는 무엇보다 먼저 이런 자유를 누려야 한다.  그러나 출세지향적인 사람들에게 이 권면은 가히 충격적이다.  이들은 리더십이나 목회를 주로 은사나 재주로 생각한다.  이들이 인격 성숙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학위만 획득하면 그리고 자신의 능력만 충분히 보여준다면 충분히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식이나 은사는 지도자를 교만하게 만든다.  유감스럽지만 지식은 사랑과 별개이다.  지식이 은사라면(고전12:8) 사랑은 인격적 성숙에 속한다.  은사는 성숙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  마찬 가지로 지식도 사랑에 의해 견제되어야 한다(고전13:2).  이 때 자신의 지식과 이론적인 옳음이나 정당함을 유보시키며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이런 자유는 자기부정에서 나온다.  이웃 사랑은 항상 자기부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고전13:4-7).  자기부정이 성화와 목회의 최절정인 이유이다.

 

      *http://blog.naver.com/rassv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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