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조회 수 : 2232
2011.05.26 (04:20:55)

  (부제: 사실을 자세히 관찰하라!)

 

성경은 기록 시대에 속하는 역사와 문화의 산물이다.  신구약 시대 사람들은 농경 사회에서 살았다.  성경도 농경 문화의 옷을 입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의미들이 식물학적 용어들에 의해 전달된다.  그 의미들이 놀랍게도 자세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전달된다.

 

원복음(3:15)에서 약속된 메시아는 여인의 씨(국역에선 여인의 후손)로 소개된다.  출애굽 사건 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은 처음 열매로 소개된다(2:3, 16:5, 1:8절 참조).  남방 유다를 멸망시키는 하나님의 심판은 씨를 심기 위한 기경(起耕)과 알곡을 거두는 추수(秋收)라는 농사로 설명된다(28:23-29).

세례 요한도 예수님의 구속 사역과 성령 강림 사이 관계를 추수 개념으로 설명했다(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3:11-12)

예수님은 멍에라는 농기구를 이용하여 칭의와 성화를 설명했다(11:28-30).  천국의 비밀을 알리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복음은 씨로 그러나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피택자는 씨로 각각 설명된다(13).  그리고 부활한 예수님은 첫열매로 소개된다(고전15:20).

 

농학(農學)이나 식물학(植物學)이란 과학을 이용하여 성경은 구속사적 의미를 설명한다.  영적(靈的) 의미가 농경 문화나 식물학에 실려있다.  이로써 구속사적인 의미가 더욱 풍부해진다.  이 사실을 무시하고 순수하게 영적 의미만 추구한다면(조직신학적 방법) 성경 진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오히려 성경 진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수 있다.  조직신학이 갖는 문제이다.  성경 신학이 이를 보완해 준다.  그러나 성경 신학도 주제별 연구에 치중하며 성경의 풍성한 의미를 충분히 알아내지 못한다.  풍성한 이해를 위해 영적 진리(眞理)를 담은 용기(容器)인 문화와 역사도 잘 관찰해야 한다.

 

복수(複數)의 의미를 띤 단수(單數)의 씨

씨는 하나이다.  그러나 그 안에 수많은 동일한 씨들이 잠재적으로 숨어있다.  한 알의 씨앗이 250개의 낱알을 가진 열매를 네댓 개 맺는 옥수수로 자란다.  결국 한 알이 일 천 개의 씨앗들로 나타난다.  뿌려진 한 알과 수확된 씨들 사이 질적 차이는 전혀 없다.  한 개의 씨앗은 단수로되 복수의 의미를 가진다.

 

씨의 이런 식물학적 역할과 기능은 원복음(3:15)의 내용을 잘 해석해 준다.  천적(天敵) 사이인 여인의 씨와 뱀의 씨는 각각 한 알이지만 때때로 복수의 의미도 갖는다.  어느 때는 여인의 씨가 원복음의 약속을 믿고 앞으로 올 메시아를 소망하며 사는 많은 신자들로서 그의 혈통적인 조상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특정한 때 이 씨는 뱀 자체와 싸워 승리할 메시아를 뜻한다.

그의 대표적인 승리는 그 안에 감추어진 수많은 씨들의 승리가 될 것이다.  이 점에서 한 알의 씨는 집합적 성격 때문에 대표적 단수의 의미를 갖는다.  이런 역할과 기능이 예수님의 구속 사역에 그대로 적용된다.  예수님은 혼자 십자가에서 죽고 사흘 뒤 부활했다.  그러나 이 때 그 안에서 성도들도 함께 죽고 부활했다(6:5).

 

이 점에서 신약 성경에서 자주 인용되는 in Christ라는 표현은 with Christ라는 표현과 같다.  그러나 전자는 그리스도와 성도 사이 수직적 관계를 그러나 후자는 수평적 관계를 각각 뜻한다.  수직적으로 예수님은 대표자로서 구속주라면 수평적으로 그는 맏형으로 구속 받은 형제들과 같이 혈과 육을 입었다(8:29).

원복음에서 앞으로 올 메시아가 여인의 씨로 소개된 것은 처음부터 성경 저자의 신학적인 의도였다.  농경 시대 보다 메시아를 더 잘 설명해 주는 것은 없었다.

 

장래 나타날 모습을 감춘 씨

사람들은 씨들을 살 때 초라하고 조그만 모습을 보지 않는다.  그 씨의 다 자란 모습과 그 열매를 미리 알고 있다.  씨의 이런 식물학적인 역할과 기능을 성경은 이용했다.  이사야 선지자가 앞으로 올 메시아를 이렇게 예언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53:2)

본래 연한 순과 줄기는 고운 모양도 없고 그리고 풍채도 없다.  마찬 가지로 원복음이 약속한 메시아도 초라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타날 것이다.  그를 기다린 선민조차 그에게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이사야는 미리 예언했다.  신약 시대 예수님이 나타났을 때 선민은 나사렛 출신 청년이라고 말하며 그를 무시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고 행하는 일을 보고 선민은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어야 했다.  더구나 그는 앞으로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될 것이다.  하나의 초라한 씨로 출발했지만 예수님은 나중 자신의 찬란한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할 것이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에 의해 창세 전부터 결정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오랜 동안 선민에게 이미 계시되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지상 삶과 공생애에 대해 기록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1:5)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10-11)

 

나중 예수님도 천국을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인 겨자씨로 비유하며 설명했다.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13:31-32)  흠모할 만한 모양도 없는 나사렛 예수님에 의해 출발된 하나님 나라는 놀랍게도 초라함 속에 찬란하고도 영광스런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씨들은 그 안에 고유의 모습을 지닌다.  이 점에서 씨들은 다 다르다.  시작은 다 같아 보인다.  그러나 나중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사이처럼 벌어진다.  사도 바울이 이를 설명했다.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고전15:37-38)

 

성부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그리고 아들의 부활이 식물학의 도움으로 사도 바울에 의해서도 아주 훌륭하게 설명되었다.  바울도 구속사가 식물학을 이용하여 충분히 설명될 수 있음을 알았다.  이런 방법으로 신학적인 주제(의미)는 쉽게 소재(사실)를 통해 설명된다.  이렇게 이론적이며 논리적인 조직 신학의 한계와 단점은 극복될 수 있다.

 

기적적인 생명력을 소유한 씨

피라미드에서 일 천년 동안 밀의 씨가 발아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견되었다.  이 씨앗을 심자 싹을 내고 자랐다.  씨는 놀라운 생명력을 지닌다.  그러나 주어진 환경이 맞지 않으면 씨는 절대로 발아하지 않는다.  때와 시기를 기다리며 생명력을 감춘다.  씨의 이런 성격이 하나님의 말씀에 적용된다(55:10-11, 벧전1:23).

 

씨의 식물학적인 기능을 이용하여 예언과 성취가 잘 설명된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준 예언과 계시의 말씀을 먼저 준다.  그러나 성취와 완성을 위해 하나님은 환경을 섭리하고 조정한다.  이사야 선지자를 비롯한 대소선지자들은 주전 8세기부터 남북 왕조의 멸망과 새로운 이스라엘의 건설을 동시에 예언했다.

이 예언들은 예수님의 승천 후 40년 정도 지나 문자적으로 완전히 성취되었다.  그러나 이 때까지 약 800년이란 장구한 세월이 흘렀다.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후 곧 선지자 시대가 끝났고 그리고 신구약의 중간기 450년 정도 지난 후 예수님이 출생했다.  이 동안 약속의 말씀인 씨는 싹을 내지 않고 생명력만 유지했다.  이 싹이 발아하여 자라려면 주어진 여건이 변해야 했다.

 

이에 대해 이사야가 예언했다.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6:11-13)

앗수르와 바벨론 제국에 의해 망한 남북 왕조의 백성들은 전세계로 흩어졌다.  흩어진 곳에 이들은 회당들을 세웠다.  나중 이 회당들은 예수님의 천국 복음을 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중 세계를 제패한 로마 제국은 효과적인 통치를 위해 군사용 도로를 만들었다.  모든 길들은 로마로 통했다.  나중 이 도로망은 그 당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우편 제도가 되었다.  그리고 로마 제국 아래 모든 민족들이 자유로이 이동하며 교제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여건을 때가 차매란 표현(4:4)으로 설명했다.  이 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출생했다.  신약 시대 로마 제국이 이루어 놓은 모든 것들을 최대한 이용하며 복음은 전세계로 쉽게 퍼졌다.  마침내 주후 313년 로마 제국은 그 동안 핍박한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럼 씨의 생명력은 무엇을 목적하는가?  수확 즉 열매를 목적한다.  하나님도 뿌려진 복음의 씨를 통해 실패 없이 열매를 거둘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제 시간에 맞춰 은혜의 단비를 주며 빈틈없이 그리고 정확하게 일할 것이다.  그러나 열매를 거두려면 먼저 씨앗이 땅에 떨어져 심어져야 하며 그리고 땅 속에서 썩어서 죽어야 한다.

예수님 자신이 설명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12:24)  식물학적 기능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신학적인 의미를 놀랍게 설명해 준다.  성경은 하나님의 변치 않는 약속 그리고 하나님의 작정의 성취 및 완성 등등을 씨의 식물학적 기능을 이용하여 설명한다.

성경은 구속사를 설명하기 위해 식물학이라는 자연 과학을 잘 이용했다.  믿음을 설명하기 위해 세상의 초등학문이 이용된다.  과학도 하나님의 창조 결과이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 믿음과 상식은 대립적 이분법이 아닌 논리적 이분법에 속한다.

 

첫열매의 식물학적 기능

한 알의 씨앗처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었다.  사흘 뒤 부활했다.  사도 바울은 그의 부활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도다 (고전15:20)  유감스럽게도 러시아 성경은 장자로 번역했다.  그러나 장자보다 첫열매가 훨씬 더 신학적인 의미를 풍성하게 전달한다.

잠자는 자들이란 앞으로 올 메시아를 믿고 소망하며 살다가 죽은 성도들을 지칭한다.  그러나 이들의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 뒤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이 점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동일한 부활이 곧 시작될 것을 알리는 반가운 신호와 소식이었다.  마찬 가지로 첫열매란 표현과 용어도 식물학적으로 그런 의미를 갖는다.

 

여건이 맞으면 땅에 심겨진 씨는 반드시 싹을 내며 자란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성령으로 부활했다고 기록된다(8:11, 고후13:4, 1:20).  그렇다면 예수님의 죽음은 애초부터 부활을 겨냥한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죽음과 부활은 분명히 두 사건이지만 논리적으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이다.  신약 성경도 유월절과 무교절을 같은 절기로 기록한다(22:1,7절 참조).  신구약 성경도 3일이라는 시간 간격으로 이 두 사건들을 하나로 연결시켰다.

그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성취된 구속(1:7-12)의 결과는 어떻게 성도들에게 개인적으로 전달되는가?  오순절 강림한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다.  이 점에서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 강림은 하나의 논리에 속한다.  이를 알리기 위해 신구약 성경도 50일이라는 시간 간격으로 두 사건들을 긴밀히 연결시킨다.  성령은 성도들을 거듭나게 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고 앞으로 이들이 받을 기업의 보증 역할을 한다(1:13-14).

 

이를 구약 성경의 절기들이 설명한다.  유월절과 무교절 사이 3일이란 간격이 있다.  그리고 이 절기들 사이에 낀 안식일 다음 날 이스라엘은 보리의 첫 열매를 수확하여 단으로 엮어 성전에서 요제로 하나님께 드렸다(23:9-11).  이 때 보리의 첫 열매는 그 해 처음 수확한 그 땅의 열매이다(23:10).  히브리어로 레쉬트인데 첫째(first), 시작(beginning, 최고(best)우두머리(chief)란 뜻이다.  이 수확물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마침내 얻었다는 구속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첫열매로 이스라엘은 당연히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했다.  구약에서 이런 의미를 갖는 첫열매가 부활한 예수님에게 그대로 적용되었다.  예수님도 안식일 다음날 즉 일주일의 첫날 부활했다(28:1).

첫열매를 드린 후 50일 뒤 또 다시 밀의 첫 수확물로 만든 두 개의 유교병을 이스라엘은 하나님 전에서 첫 요제로 드렸다(23:15-17).  이 첫 수확물은 이스라엘이 기업을 얻은 후 직접 농사를 지어 처음으로 거둔 밀의 맏물이다(23:16,19).  히브리어로 비꾸르로써 맏물이란 뜻이다.

이 맏물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자신의 기업을 마침내 상속받았다는 구속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런 의미가 그대로 신약 시대 오순절에 강림한 성령의 사역에 적용된다.  성령을 통해 선민은 물론 이방인들이 위로 거듭나며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된다(3:1-15, 2).  이 점에서 신구약은 다르지 않다.

 

구약의 절기들처럼 예수님의 공생애(요4:35절), 죽음과 부활, 성령 강림 사건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 사건은 모두 추수와 연결된다.  추수란 심음의 결과이며 목표이다.  이 점에서 성경에서 추수는 종말론을 뜻한다.  종말론적 추수는 예수님의 부활로 출발하며 오순절을 통해 계속 이어졌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이 세상의 종말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추수는 가을의 절기인 수장절을 지킴으로 완전히 끝났다.  이 때 온갖 열매들의 맏물들(비꾸림)이 성전에서 하나님께 드려졌다(26:1-11).  그렇게 한 해가 끝났다.  이런 신학적인 의미를 가진 삼대 절기들은 매년 이스라엘에서 반복적으로 지켜졌다.  이것은 하나님의 엄한 명령이었다(34:23-24).  이렇게 구약의 절기들은 신약의 종말론을 예언했다.

예수님의 재림 전까지 복음은 전세계로 전파될 것이다.  이로써 계속 추수는 전세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언젠가 추수가 끝날 때 세상의 종말도 그 종막을 고할 것이다(24:14).  종말론에서도 신구약 사이 차이는 전혀 없다.  다만 추수 장소에서 차이가 있다.  구약 시대 가나안에서 벌어진 추수가 신약 시대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진다.

 

결론

성경에서 사용된 농경 시대의 용어들과 단어들은 구속사의 설명을 위해 의도적으로 성경 저자에 의해 선택되었다.  성경 진리를 이해하려면 사고 방법을 디지털 식에서 에너로그 식으로 되돌려야 한다.  즉각적인 기쁨과 즐거움을 접고 인내력을 갖고 옛 농경 문화의 내용을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의 기록 방식은 특별 계시가 자연 계시에 속하는 세상의 학문과 과학을 무시하지 않음을 말한다.  특별 계시가 자연 계시에 실려 전달되듯이 성경의 구속사도 세속사를 통해 표현된다.  그렇다면 믿음이나 신앙은 세상 상식이나 과학과도 충돌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 계시, 세속사, 과학과 상식이 특별 계시를 무시한다면 이들은 역으로 특별 계시의 해석을 방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설교할 때 자연 계시들을 무작정 인용할 수는 없다.  성경 저자처럼 세심하게 자연 계시를 선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먼저 특별 계시의 신학적인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 점에서 조직신학(의미 중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에 근거를 두고 의미를 추구하는 방법도 병행해야 한다.  성경은 사실을 무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을 자세히 관찰함으로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알 수 있다.  성경의 기록 방법대로 본문을 해석함이 최고의 방법이다.  성경 본문의 사실을 더욱 자세히 관찰하라!

 

* http://blog.naver.com/rassvet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Selected 사실과 의미로 본 성경 본문(2) 첨부 파일
장창수
2232 2011-05-26
32 자유도 부정할 수 있는 자유
장창수
2440 2011-05-22
31 성공 후에도 자유자가 되라!
장창수
2248 2011-05-22
30 먼저 자유자가 되어라!
장창수
2184 2011-05-20
29 사실과 의미로 본 성경 본문 첨부 파일
장창수
2881 2011-05-08
28 일과 쉼(1)
장창수
2629 2011-04-25
27 성경의 지혜로 살려면 첨부 파일
장창수
2828 2011-04-12
26 무교와 교회 개혁 첨부 파일
장창수
2439 2011-04-08
25 유교와 교회 개혁 첨부 파일
장창수
2545 2011-04-08
24 불교와 교회 개혁 첨부 파일
장창수
2936 2011-04-08
23 지도자가 넘어야 할 시험
장창수
4043 2011-04-02
22 구원은 상실될 수 있는가? 첨부 파일
장창수
3857 2011-03-30
21 죽어야 단 것이…… 첨부 파일
장창수
2472 2011-03-21
20 자연 재난은 경고함으로 회개를 요구한다! 첨부 파일
장창수
2336 2011-03-16
19 모세가 경험한 두 문화 첨부 파일
장창수
2549 2011-03-14
18 문제는 교회의 정치 세력화이다. 첨부 파일
장창수
2472 2011-03-05
17 경기서노회 신흥교회 개발로 위기에 처함
유병도
2835 2011-02-28
16 바보야! 교회가 아니라 가정이야! 첨부 파일
장창수
2710 2011-02-19
15 교회 개척을 하신다고요? 첨부 파일
장창수
2891 2011-02-11
14 기초를 다시 쌓자! 첨부 파일
장창수
4518 2011-01-21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