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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6 (22:33:57)

기독교 신학을 다시 생각한다(19)/사복음서 묵상(122) 헬라어로 본 칭의와 성화

니고데모와의 대화 끝에 이런 성구가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16)  그와의 대화에서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 나라, 거듭남(3-7)과 거듭난 사람의 상태 (6, 8)를 설명한 후 광야에서 모세가 뱀을 든 것처럼 자신도 들려야 한다(14)고 말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예수님은 이런 계시를 남겼다. 예수님이 죽고 부활한 후 하늘로 들려야 비로소 성령이 강림하고 이로써 죄인들이 거듭남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이의 결론으로 위의 유명한 성구가 기록된다. 이 성구만 묵상하는 것은 신학적 의미를 신국론이 아닌 구원론에만 제한시키는 잘못을 범하게 한다. 이것이 조직신학의 문제이다.

본문에서 신자 곧 믿는 자는 누구인가? 믿는다는 단어가 헬라어 문법에 의하면 완료 동사가 아닌 미완료 동사이다. 완료 동사라면 한번의 행동으로 끝난 동작을 그리고 미완료 동사라면 연속적 행동을 각각 의미한다. 그러나 앞으로 계속 반복되어야 할 행위는 즉 믿음 또는 신뢰는 먼저 믿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결과이다. 이 결단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 위한 첫 믿음에서 비로소 나온다.

즉 첫 신앙고백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한다. 이 신앙은 헬라어 문법에서 완료 동사로 설명된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1:13-14)

여기서 그 안에서 믿어란 표현은 헬라어로 완료 동사에 해당한다. 그 결과 성령으로 인침을 받는 것도 단 한번 일어난다. 인침은 계속 반복적으로 받을 수 없다. 이런 절차로 신자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다. 다음 성구가 이를 잘 설명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12) 이 본문에서 영접하다의 헬라어 동사는 과거 완료 동사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행위는 일생에 단 한번 일어난다. 그에게 제시된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다. 그런데 위의 본문은 영접한 자가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로 또한 소개된다. 이 때 믿는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는 놀랍게도 미완료 동사이다. 즉 예수님을 구세주로 이미 영접한 자는 계속 그 이름을 믿는 자라고 설명된다.

여기 계속 믿는다는 말은 계속 그를 신뢰한다는 뜻이다. 이런 반복적 신뢰 행위는 일생에 단 한번 일어난 영접이라는 결정적 행위의 결과이다. 영접이 계속되는 신뢰의 직접적 원인이다. 다시 말해 요한 복음 3 16절과 1 12절에서 언급된 믿는 자 즉 신자란 최초의 믿음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 계속 그를 신뢰하며 사는 의인이다.

구원론의 관점에서도 본다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만드는 최초의 믿음은 칭의를 불러온다. 칭의는 중생과 양자를 뜻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예수님의 제자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는 신분의 획득을 뜻한다. 그러나 이것이 구원론의 전부가 아니다. 구주로 영접했다면 구주(Savior)를 주(Lord)로 계속 신뢰하며 살아야 한다.

칭의는 그를 계속 신뢰하며 살겠다(성화)는 출발점에 지나지 않는다. 즉 칭의는 성화의 출발점이다. 칭의는 성화의 원인이며 성화는 칭의의 결과이다. 성화는 영화에 달하기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삶의 과정이다. 구원론으로 설명한다면 성화란 칭의로 새롭게 획득한 신분에 걸맞은 삶과 행함을 뜻한다.

헬라어 문법은 위의 두 성구가 언급한 신자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소개한다. 성도란 칭의 후 계속 성화에 노력하는 신자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칭의는 구원의 출발점이라면 영화는 구원의 완성점이다. 칭의라는 출발점에만 계속 머물면 안 된다. 도착점을 향해 성화라는 선을 따라 계속 앞으로 가야 한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란 성구(합2:4, 롬1:17, 갈3:11, 히10:38절)가 이를 잘 증명한다. 여기 의인은 이미 단 한번의 결정적 믿음으로 의인이 된 신자이다. 그는 계속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이 믿음은 칭의를 불러오는 믿음이 아니다. 성화를 위한 믿음이다. 이 믿음은 반복적인 신뢰 행위로써 예수님(여호와)을 주(主 Lord)로 믿고 순종하는 행위를 뜻한다. 한번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계속 순종해야 한다. 이로써 의인은 살리라 즉 승리할 것이다. 

그러나 출발점에만 머무르는 신자는 신분에만 만족하며 자기 할 일 즉 의무와 책무가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는 맹목적인 거짓 또는 어린 교인이다. 이를  가르치기 위해 헬라어의 문법을 이용하여 사도 요한은 신자 즉 믿는 자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소개한다. 신자란 칭의에 기반을 두고 성화에 힘쓰는 성도이다.

이렇게 본다면 성화에 전혀 힘 쓰지않는 신자 즉 이 세상과 상식 이하의 윤리와 도덕을 보여주는 교인이란 미중생자(고전2:14) 아니면 주 안에 어린아이신자(고전3:1-3)이다. 신앙 삶에서 한번 일어나는 믿음이 아니라 일생 동안 반복되어야 하는 믿음을 신자는 계속 보여야 한다. 칭의만이 전부가 아니다. 성화도 당연히 강조되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자주 언급하는 값싼 구원이란 성화가 없는 칭의를 가리킨다. 성화를 죽여버리고 칭의만 강조하는 구원론은 수많은 목회자들로 하여금 목회상 불의와 부정을 저지르게 했고 양심에 화인 맞은 자가 되게 했다. 이 점에서 구원파의 구원관 즉 율법폐기론자와 전혀 다르지 않다. 이 모두 성화를 칭의에서 분리시킨 불행한 결과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에덴 동산을 창설한 후 아담에게 왜 선악과 규례를 주었는가? 그리고 구원주 하나님은 출애굽 사건 후 시내산에서 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었는가?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주 하나님은 창조와 구원을 통해 새롭게 부여 받은 신분에 따라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살기를 원했다. 이를 위해 율법이 필요했다. 그러나 율법은 시험을 또한 겨냥한다.

이 시험은 두 가지 목적을 띤다. 하나는 율법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의에 맞게 살도록 이스라엘의 삶과 행위를 유도한다. 이 점에서 하나님의 율법은 이스라엘을 연단시켜 합당한 하나님의 아들로 세우는 훈련과 학습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이 시험을 통해 하나님은 피택자와 유기자를 구별한다. 유기자는 계속 범법을 하도록 허용함으로 멸망에 이르게 할 것이다. 그러나 피택자의 경우 하나님은 그를 징계함으로 고쳐 세워가며 인도할 것이다.

이 모두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결과이다. 구원이 새생명의 출생을 뜻한다면 그 이후 생명(칭의)은 계속 자라(성화) 하나님 앞에 합당한 상속자(영화)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신분의 획득만을 기뻐하며 성화라는 고난의 과정을 기뻐하지 않는 교회와 신자들이 있다. 이들은 아버지의 사랑(칭의의 은총)만 원하고 아버지의 공의(성화)를 존중하지 않는 버릇 없는 아들과 같다.

칭의에 치우쳐 성화를 무시하는 구원론은 절대로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며 상식적으로도 용납되지 않는다. 칭의와 성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교회는 칭의 후 성화 삶 즉 구원 이후 삶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신자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이를 위해 기독교 신학은 반드시 기독교 윤리가 필요하다. 신앙 삶은 윤리 분야로 자신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학이 지금까지 무시한 기독교 윤리를 세워야 한다. 이것이 개혁이다 

​참조: http://blog.naver.com/rassvet/40204084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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